250화
정신없이 컴백 첫 주가 지나갔다. 둘째 주부터는 컴백 무대를 위해 잠시 멈췄던 팬 미팅 준비를 다시 시작했다.
사실 앨범 활동하면서 팬 미팅을 동시에 준비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스케줄이었다. 잠깐 눈 감았다 뜨면 연습실이었고, 또 눈 뜨면 방송국이었다.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는 순간까지도 졸다가 무대에 오르면 그제야 정신이 들고는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습하는 내내 멤버들의 얼굴에서는 설렘이 가득했다. 볼 때마다 그런 멤버들이 신기하다가도, 거울에 비친 내 얼굴도 별반 다를 바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얘들아, 내일 팬 미팅 공지 올라갈 거야.”
점심 도시락을 전해 주러 온 매니저 형의 말에 다들 몰려들었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한 지가 오래였지만, 밥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었다.
“대박. 그럼 티케팅도 바로 하겠네요?”
“어, 예매는 일주일 뒤에 열릴 거야.”
“미쳤다.”
“너희 음악 방송이나 녹화 시간이랑 안 겹치게 잡느라 죽는 줄 알았다.”
“와, 형, 진짜 디테일한 사람이네요.”
“회사에서도 하도 욕먹으니까 이젠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하시더라고.”
‘진작 잘 좀 하지.’
순간 떠오르는 생각을 숨긴 채, 매니저 형에게 질문을 이어 갔다.
“그럼 팬클럽 선예매가 먼저 열리는 건가요?”
“그렇지. 그것도 고민했는데, 우선은 선예매로 전 좌석 다 풀 예정이야.”
“공연장이 큰데, 빈자리 많으면 어쩌죠?”
“글쎄, 선예매에서 다 매진될 거 같은데-”
“에이- 형 또 우리 띄워 준다. 하여간 크리드 자존감 지킴이라니까-”
“그니까, 형, 뭘 좀 모르시네.”
아무리 생각해도 뭘 좀 모르는 건 선우 형과 윤빈 형인 거 같았지만, 굳이 덧붙이지는 않았다. 티케팅이 끝나고 이 형들이 얼마나 놀랄지가 좀 기대되긴 했으니까.
“우리 그럼 다 같이 내기할래요?”
“뭐를?”
“팬 미팅 언제 매진될지!”
재봉이의 신난 목소리에 다들 흥미로운 표정이었다.
“일단 매진이 될지부터 골라야 하는 거 아냐?”
“맞아, 재봉이 자신감 장난 아닌데?”
“매니저 형, 이거 봐요. 형 때문에 재봉이 정신 못 차리잖아요.”
“어쩐지 요즘 재봉이 키가 좀 컸다 했더니, 이게 다 어깨가 잔뜩 올라가서 그런 거였네.”
“아 진짜, 형들!”
역시나 때를 놓치지 않고 막내 놀리기에 신난 강박즈였다.
“근데 재밌긴 하겠다, 내기해 보자.”
“오~ 유현이 형이 내기라니.”
예상외로 유현이 형까지 흥미를 보이자 내기판이 더 커졌다.
“벌칙부터 정할까요?”
“팬 미팅에서 벌칙 수행하는 걸로?”
“완전 콜이지-”
“그럼 클로버들 앞에서 무반주로 섹시 댄스 어때?”
“미친, 강도현, 지금 자신 있다 이거지?”
“왜, 선우 형. 형은 쫄리나 보네?”
“무슨 소리임. 도현이 무반주 섹시 댄스 기대할게.”
“조용, 조용. 그럼 벌칙은 그걸로 하고, 각자 뭐에 걸 거야?”
크리드 정리 담당 정유현 선생님, 오늘도 열일하시네. 유현이 형을 볼 때마다 내가 리더가 아니라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거의 다 차지만, 매진까진 아니다에 한 표!”
“나도, 나도!”
“빈이 너, 나 따라 하는 거야?”
“나도 원래 그렇게 생각했거든?”
선우 형이 먼저 얘기하자 윤빈 형도 손을 들었다. 일단 둘은 벌칙 확정인 것 같고.
“무조건 매진이지. 근데 늦게 입덕한 클로버들도 많으니까 나는 일반 예매에서 매진!”
“나도 여기에 한 표. 매진은 될 거 같아.”
강도현이 자신만만하게 매진을 외쳤다. 동조하는 유현이 형도 꽤 진지한 표정이었다.
“와, 내가 유현이 형의 지지를 받다니. 오늘 완전 역사적인 날이다.”
강도현은 결과보다도 유현이 형과 같은 의견이라는 거에 감동한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강도현과 유현이 형이 같은 편인 모습은 우리에게도 상당히 낯설었으니까 말이다.
“다들 왜 이렇게 자신이 없어요! 선예매에서 다 매진될 거예요!”
역시 박재봉다웠다. 형들이 아무리 놀려도 꿋꿋하게 본인의 의견을 주장했다.
“오- 재봉이, 줏대 있는데?”
“든든하네, 우리 막내.”
“나도 재봉이랑 같아.”
그보다 의외인 건 지운이 형이었다. 조용하지만 명확한 목소리로 박재봉의 의견에 동조했다.
“헐, 대박.”
“지운이 형, 형도 선예매에서 매진될 거 같다는 거죠?”
“와. 형, 완전 연예인 다 됐네.”
“아니, 이게 왜 연예인 다 된 거야-”
물론 강도현의 놀림에 바로 얼굴이 빨개지긴 했지만, 그래도 의견을 바꾸지는 않았다.
“나도 선예매에 한 표. 우리 클로버들이 얼마나 많은데-”
확신했다, 분명 티케팅이 시작되자마자 순식간에 매진될 거라고. 자만심이 아니라, 이유 있는 자신감이었다. 클로버들의 화력을 믿었다.
“완전 갈렸네. 누구든 벌칙은 하겠고만-”
“그러게, 재밌겠다.”
“나는 당연히 아니니까, 다들 미리 섹시 댄스 연습해 두세요.”
“선우 형, 형이나 연습해요. 윤빈 형이랑 같이 섹시 댄스 추려면 연습 많이 해야 할걸요?”
“우리 재봉이, 형 섹시 댄스가 많이 보고 싶었구나? 지금 보여 줄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박재봉 앞에서 웨이브를 타기 시작하는 선우 형이었다. 기겁을 하는 재봉이가 연습실 끝까지 도망쳤지만, 선우 형의 섹시 댄스를 피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더는 도망치지 못할 정도로 구석에 박재봉을 몰아 놓고 춤을 이어 갔다.
‘정말 신종 고문이 따로 없네.’
* * *
무대 세트 리스트와 기획에도 멤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첫 팬 미팅인 만큼 모두 팬의 니즈를 충족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었다. 각자의 매력을 잘 보여 줄 수 있는 개인 무대부터, 유닛 무대 그리고 팬들이 원하는 커버 무대까지 준비할 계획이다. 말 그대로 종합 선물 세트와 같은 팬 미팅이 될 수 있도록 다들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나왔다.
“우리가 이벤트를 준비해 보는 건 어때?”
“어떤 이벤트요?”
“우리가 팬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나, 보여 주고 싶은 모습을 담은 영상을 제작해서 팬들도 모르게 딱 공개하는 거지!”
“서프라이즈처럼?”
“응!”
선우 형의 제안에 모두 좋은 의견이라며 동의했다. 보통 팬이 가수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비밀 이벤트를 기획하는 걸 역으로 이용해서 예상치 못한 기쁨을 줄 수 있는 방법이었다.
“막 다음 무대 준비 때문에 들어가야 한다고 거짓말하고 딱 공개하면 재밌을 거 같은데?”
“오, 좋다. 벌써 기대되는데?”
“빨리 팬 미팅 하고 싶어요.”
그렇게 다들 부푼 맘으로 연습을 이어 갔다.
* * *
토스맨이 화제가 되면서 유독 이번 컴백에는 라이브 콘텐츠가 많이 잡혀 있었다. 오늘 촬영하는 콘텐츠 역시 ‘킵보이스온’이라는 콘텐츠로, 약 20분 정도 쭉 라이브를 하는 콘텐츠였다. 많은 노래를 감질나게 조금씩 들려주는 게 이 콘텐츠의 묘미라, 처음 녹화 제안이 왔을 때부터 노래 순서 정하기에 다들 진심이었다.
“다들 그럼 이대로 확정?”
“아- 뭔가 신세계를 오프닝으로 웅장하게 하고 싶기도 하고-”
“안 돼. 그만, 그만. 우리 이러다가는 연습도 못 하고 가겠어.”
자그마치 2시간에 걸친 기나긴 회의 끝에 지금의 순서가 정해졌다. 크리드의 말랑한 사랑 노래부터 시작해서 세계관을 담은 웅장한 노래들까지. 처음 영상을 클릭하는 사람들이 흥얼거릴 만한 노래들을 앞쪽에 배치했고, 조금 낯설 수 있는 강렬한 노래들을 뒤에 배치했다. 철저하게 유입과 조회수를 노린 순서였다.
“크리드 여러분들, 반갑습니다.”
“본 투 샤인! 안녕하세요, 크리드입니다.”
“와- 제가 이 인사를 직접 듣다니, 영광이네요. 저도 그룹명 크리드에 투표했었거든요.”
프로그램 담당 PD의 말에 다들 반가운 눈치였다. 그룹명에 투표할 정도면 저분도 꽤나 투마월에 진심이었던 거 같은데. 어쩐지 단발성 녹화임에도 대기실이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했다.
“한 10분 정도만 목 푸시고, 바로 녹화 들어갈게요.”
“네, 알겠습니다.”
“저희 진짜 원 테이크인 거 아시죠?”
“진짜로 기회 더 안 줘요?”
“그럼요. 틀려도 무조건 그대로 나가니까, 목 잘 푸셔야 해요.”
무시무시한 프로그램이었지만, 멤버들의 얼굴에서는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춤도 안 추고 서서 부르는 건데, 이미 다들 격한 안무에도 라이브를 했던 사람들이니까.
“크리드분들, 녹화 시작하겠습니다. 자리 잡아 주세요.”
PD의 사인과 함께 녹화가 시작되었다.
원 테이크로 진행된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정말 딱 마지막 노래가 끝나는 순간 모든 카메라가 꺼졌고, 녹화가 종료되었다.
‘이거 완전 좋은 프로그램인데?’
다들 칼퇴할 생각에 기분이 좋아 보였다. 어쩌면 이 프로그램이 잘 되는 것도 짧은 녹화 시간으로 인한 스태프들의 엄청난 만족 때문 아닐까. 어딜 봐도 다들 표정이 밝아서,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저희, 한 3시간 뒤에 바로 영상 업로드될 거예요.”
“완전 속전속결이네요?”
“그게 바로 저희 프로그램의 매력 포인트죠.”
“맞아요, 오늘 진짜 재밌게 촬영했어요.”
“저도요. 제가 봤을 때 이거 조회수 터질 거 같아요.”
“진짜요?”
“네. 제 촉은 정확합니다. 진짜 너무 잘하시더라고요.”
“감사합니다!”
이게 오늘의 마지막 스케줄이었던지라, 오랜만에 다 같이 밖에서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갔다. 마지막 순서로 씻고 나오니 이미 영상이 업로드되어 있었다.
‘진짜 빠르네.’
영상이 올라온 지 겨우 5분 정도 지났는데 벌써 댓글이 천 개 이상 달려 있었다. 토스맨으로 해외에서 반응을 얻기 시작한 후에 가장 신기한 점이었다. 해외 팬들은 다들 우리와 다른 시간대를 살고 계실 텐데 어쩜 이렇게 빠른 건지, 우리 영상이 공개되자마자 순식간에 외국어 댓글이 댓글창에 가득했다.
-Sooooooooo Amazing-
-CR:ID Plz come Chile ^3^
-Voice? Perfect. Visual? Perfect!!!!!!!
-한국인 댓글 찾아요.....
└222 한국인 여기 있습니다....
└333 이제 크리드 영상에서 한국어 댓글 보면 감격스러움ㅠ
쭉 댓글을 읽는데 한국인을 찾는 클로버들도, 영어로 주접을 떠는 외국 팬들도 다 너무 귀여웠다.
한참 위튜브 댓글을 보다가 정신 차려 보니 벌써 영상이 올라온 지 30분이 훌쩍 지났다. 잠깐 보고 머리 말리려고 했는데, 이미 머리도 반쯤 말라 있었다.
-미쳤다...... 이정도면 탈아이돌 아님??
-와.... 저러니까 토스맨이 토스해도 자신있게 불렀지
-우리나라가 크리드 보유국이라 감사합니다......
-얘네 노래 다 좋은데??
-아니 크리드가 누군가 했는데 나 왜 노래 알지....?
-희한하게 노래들이 익숙하네
일어나야지 하면서도 댓글창을 새로 고침 하는 손은 멈추지 않았다. PD가 장담한 대로 정말 조회수가 터지고 있었다. 한 번 새로 고침 할 때마다 기하급수적으로 조회수가 늘어나서, 그 짜릿함에 더 핸드폰을 놓을 수가 없었다. 찍으면서도 기대하긴 했지만, 그 기대를 뛰어넘는 정도의 격렬한 반응이었다. 위튜브 알고리즘 픽을 받았는지 클로버가 아닌 대중의 댓글이 더 많이 보였다. 물론 그것보다 훨씬 많은 건 외국 팬들의 댓글이었지만.
뿌듯한 마음에 위튜브와 짹짹이를 왔다 갔다 하고, 계속 타임라인을 새로 고침 하며 반응을 살폈다. 그러다 방금 올라온 기사 하나를 발견했다.
[‘크리드’ 불공정 계약의 산물? 방송국의 갑질 논란]
지금까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던 선우 형네 소속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