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화
“내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음, 공카 들어가서 클로버 글 볼 때?”
“오, 정답!”
“어휴 겨우 하나 맞혔네.”
거의 다 오답인 것이 스스로도 민망했는지 강도현이 머리를 긁적이며 해명했다.
“좋아하는 슬라임이 뭐냐, 아침에 일어나서 뭘 제일 먼저 하는지, 이런 거 물어봤으면 저도 다 맞힐 수 있었어요-”
“넌 문승빈 되려면 한-참 멀었다.”
“근데 도현 군, 마지막 질문만 맞혔네요? 어떻게 알았어요?”
“저도 말하면서 되게 낯간지러웠거든요? 근데 얘가 핸드폰 보면서 실실 웃을 때 보면 백이면 백 팬들 글 보면서 웃고 있어요. 그래서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네요.”
“제 말이 맞죠, 최 피디님?”
“그래, 인정할게-”
처음 질문지에 저렇게 답했을 때, 최 피디님은 너무 이미지 메이킹 하는 거 아니냐며 한참 놀렸었거든. 그런데 강도현이 같은 답을 하니 더 놀랄 만도 하지.
“그럼 도현 군의 억울함을 풀 질문 몇 개 해 보죠. 승빈 군이 제일 좋아하는 슬라임은?”
“승빈이는 뭐 많이 들어간 거 별로 안 좋아해요. 그냥 기본 흰색 슬라임!”
“오, 맞아요. 웬일이냐?”
“팬분들이 형형색색 슬라임 줘도 그 사이에서 기본 슬라임을 용케 찾아 가지고 그거부터 하더라고요.”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이건 룸메여서 확실히 압니다. 얘 물 마시고 목 풀기부터 해요. 맞지?”
“그래도 나한테 아예 관심이 없는 건 아니었구나?”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지 않아서 본게임에서 연이은 오답이 나와도 무덤덤했다. 그런데 이렇게 사소한 부분은 기억한다니, 내가 놀라는 것도 미션에 포함시켜 주면 안 되나- 괜히 아쉬웠다.
다음은 지운이 형과 박재봉이었다. 박재봉은 어른스러운 지운이 형 역할이 되어서 잔뜩 신나 보였고, 지운이 형은 차마 박재봉의 깨발랄함을 재현할 자신이 없는지 안 그래도 조용한 사람이 더 조용해졌다.
“자, 재봉군부터 질문하겠습니다. 내가 숙소에서 가장 아끼는 것은?”
“팬분한테 받은 봉끼 인형?”
“정답!”
“내가 올해 가장 많이 운 날은?”
“넥스트 레벨 우승한 날.”
“아~ 아쉽게 땡!”
“그날보다 더 운 날이 있었어?”
“자, 재봉 군은 총 4문제 맞혀서 도현 군 다음이 되었어요. 혹시 방금 질문 ‘나는 알 거 같다’ 하는 사람 있어요?”
나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손을 들었다.
“내가 쓰러져서 입원했을 때?”
“오! 정답!”
“진짜?”
“뭐야? 어떻게 알아요?”
“나 이제 문승빈이 무서울 지경인데?”
쉽게 놀라지 않는 유현이 형도 놀란 토끼 눈을 했다. 그 순간 속으로 나이스를 외쳤다. 3에서 4로 숫자가 올라가면서 미션 클리어 창이 떴거든.
[!MISSION CLEAR!]
▶[설득의 힘] 획득!
‘이번엔 누굴 설득해야 할 일이 생기려나-’
* * *
시작부터 끝까지 다이내믹했던 미국 일정이 드디어 종료되었다. 제주도에서 갑자기 미국으로 향한 것도 황당했는데, 환상여행 촬영에 이어 제이드 쇼까지. 영화도 이렇게 나오면 오버라고 할 정도로 신기함의 연속이었다.
“와, 드디어 한국 땅을 밟네요.”
“나 진짜 숙소 너무 그리웠잖아.”
“우리 가자마자 떡볶이 시켜 먹어요.”
“나는 곱도리탕!”
미국에서도 틈틈이 한식을 챙겨 먹기는 했지만, 배달 음식에 대한 그리움을 채울 수는 없었다. 다들 귀국하기 전에 제일 먼저 했던 게 배달 리스트 짜는 거였을 정도였으니까.
“얘들아, 문제가 좀 생겼는데…….”
“문제요?”
비행기가 착륙하고, 다들 내릴 준비를 하는데 매니저 형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공항이 마비 수준이래.”
“마비요? 왜요?”
“왜긴 왜야. 너희 귀국해서 그렇지.”
“아니, 항상 팬분들이 많긴 했지만, 마비 정도는 아니지 않아요?”
“에이~ 형 또 오버한다.”
“우리 기분 좋으라고 그러는 거죠?”
“오랜만에 한국 왔다고 공항 낯설까 봐 그래요?”
공항이 오랜만이라 그런지 매니저 형이 답지 않게 겁을 줬다. 제주도 갔을 때 난리가 나긴 했지만, 그때는 상대적으로 작은 김포 공항이었으니까. 오늘은 인천 공항인데 이 큰 공항이 마비가 된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아냐… 진짜야…….”
“네?”
“지금 바로 못 나갈 거 같아. 안에서 좀 더 대기해야 할 거 같다.”
얼른 내려서 나가고 싶은 멤버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14시간의 비행으로 다들 몸도 정신도 지친 상태였다.
“형, 진짜예요?”
“어. 지금 밖에서 대기 중인 스태프분이 연락했는데, 지금 난리도 아니래.”
“대체 왜요?”
“팬들도 팬들인데, 너희 귀국한다고 기자들이 쫙 깔렸나 봐.”
듣자 하니 토스맨 사건 이후로 회사로도 인터뷰 요청이 말 그대로 쏟아졌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환상여행 촬영으로 계속 미국에 있고, 바쁜 스케줄에 짬을 내기가 어렵다 보니 대부분 서면 인터뷰로 진행하고는 했다. 그러다 보니, 토스맨 사건 이후로 처음으로 한국 기자들 앞에 서게 되었고, 과열된 취재 열기에 공항이 혼잡스러워진 거였다.
“와…….”
“저희 그 정도였어요?”
“다들 해외에서 이슈 됐다고 하면 더 난리니까.”
“하… 얼른 집 가고 싶은데.”
“제발 머리라도 감고 싶어요.”
괴롭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우리도 팬들도 안전이 제일 중요했으니까.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정도 바깥 상황이 정리되었다는 얘기에 드디어 발걸음을 옮겼다. 급한 대로 각자 몰골도 좀 정리한 상태였다.
“와…….”
“이거 실화야?”
솔직히 어느 정도는 매니저 형이 MSG를 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공항 게이트를 나가자마자 보이는 엄청난 인파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눈이 안 떠지는데?”
“선글라스를 끼고 나왔어야 했네.”
“우리 이렇게 꼬질한 모습으로 기사 나가는 거야?”
“하… 일단 웃자.”
“그래, 웃기라도 해야 덜 못나 보이지.”
“전 오늘 기사 안 찾아볼래요.”
“나도…….”
쉴 새 없이 터지는 플래시에 제대로 눈을 뜨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도 연예계 활동하면서 스포트라이트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전부 내 오산이었다.
“토스맨으로 대박 날 줄 아셨나요?”
“미국 현지에서의 반응은 어땠나요?”
“미국 진출을 노리고 출국한 거였나요?”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 어떻게 되나요?”
거의 뭐, 고함을 지르듯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질문에 정신이 혼미했다. 셔터 소리와 섞여 제대로 들리지도 않을 정도였다.
“질문 순서대로 10개만 받겠습니다.”
언제 오셨는지, 코어 엔터의 프레스 담당자분이 현장에서 쏟아지는 질문을 정리했다. 이 순간 가장 반가운 얼굴이었다.
“토스맨 반응을 예상하셨나요?”
“아니요, 지금도 사실 얼떨떨합니다. 예상보다 더 큰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되어 신기할 따름입니다.”
첫 질문에 대한 답변은 당연히 유현이 형이었다.
“어떻게 토스맨을 알아보셨나요?”
“사람들이 모여 있기에 뭔가 하다가, 토스하는 모습을 보고 알아봤습니다. 평소에 그의 콘텐츠를 즐겨 봤었거든요.”
이어지는 질문은 윤빈이 형 담당이었다. 몇 번을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긴 했다. 형이 그 콘텐츠를 몰랐다면 애초에 구경할 생각도 하지 않았을 테니까.
“앞으로 미국 진출 계획이 있으신가요?”
“이번에 좋은 기회로 관심을 받았지만, 조급하게는 생각 안 하려고 합니다. 일단은 다음 앨범 준비에 집중할 예정입니다.”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공교롭게도 내가 마무리했다. 진심이었다. 잠깐 관심받았다고 해서 급하게 미국 진출을 노렸다가는 이도 저도 아니게 될 게 분명했다. 모두의 관심이 집중된 지금, 제일 중요한 건 바로 다음 앨범이었다.
다행히 공항 직원분들과 경호원분들이 중간중간 상황을 제어해 주셔서 정신없지만 안전하게 인터뷰를 마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크리드였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우렁찬 단체 인사를 마지막으로 드디어 공항을 벗어날 수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린 지 자그마치 2시간이나 지난 후였다.
“와, 나 진짜 제이드 쇼만큼이나 떨렸어.”
“사실 나는 그때보다 더 떨렸어.”
“그니까. 평생 볼 카메라 다 본 거 같아.”
“하… 드디어 집에 간다.”
“먹고 싶은 거 다들 골라 봐. 미리 시켜 두자.”
“콜콜! 나는 무조건 곱도리탕 먹을 거야.”
“나는 아무거나 얼큰한 거면 괜찮을 듯.”
“나도- 고를 기운도 없다. 뭐든 좋습니다.”
그게 우리의 마지막 대화였다. 주문까지 마친 후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기절하듯 잠들었고, 도착했다는 매니저 형의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분명 눈 감았다 떴을 뿐인데 벌써 숙소에 도착했다니. 누가 내 시간을 도려내 간 거 아닌가 의심이 들었을 정도였다.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야식을 흡입하고, 그리운 숙소 침대에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 * *
오랜만에 돌아온 한국이었지만, 여유 부릴 시간이 없었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바로 회사로 향했다. 이제 진짜 3집 앨범 준비를 시작할 때였다.
“아니, 나만 시차 적응 안 돼?”
“나 진짜 새벽에 깼잖아.”
“피곤해 죽겠음.”
아직 다들 시차 적응이 안 되어서인지 비몽사몽한 상태였다. 사실 시차 적응은 둘째 치고, 극한의 스케줄 탓이 아닐까 싶지만 말이다.
“나는 미국 시간이 딱이었나 봐.”
“너는 원래도 늦게 자서 그래.”
“어쩔-”
“초딩이냐? 어쩔?”
“어쩔 어쩔-”
“됐다, 됐어.”
평소처럼 강도현과 투닥거리다 보니 벌써 회사 앞이었다. 여기도 오랜만에 보는 기분이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크리드 여러분.”
“안녕하세요, 디렉터님.”
오늘은 우선 오해나 디렉터와 전반적인 앨범 콘셉에 대해 얘기를 나눌 예정이었다. 그러고 나서 코어 엔터 임원진들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해야겠지.
“오늘은 뭐부터 얘기를 해 볼까요?”
“아, 그 전에 일정이 좀 바뀌어서요.”
처음 보는 오 디렉터의 난감한 표정에 의아하던 찰나, 회의실 문이 열리더니 달갑지 않은 얼굴들이 등장했다.
“오, 이게 누구야. 우리 크리드 아닌가.”
‘우… 리… 크리드?’
코어 엔터테인먼트 이 본부장이었다. 넥스트 레벨 이후로 처음 보는 거였는데, 전례 없는 친한 척에 다들 당황한 눈치였다.
“안녕하세요, 본부장님. 여긴 어쩐 일로…….”
“어휴, 어쩐 일이라니! 크리드가 왔는데, 내가 나와 봐야지!”
뻔했다. 예상치 못하게 미국에서 반응이 오니까 노친네들이 난리 난 게 분명했다. 서바이벌 출신이라고, 아이돌이라고 무시하던 게 아직도 선한데 뻔뻔하기 그지없었다.
“아, 그러셨구나. 감사합니다.”
“일단 다들 앉지.”
생색 한번 내고 나갈 줄 알았는데, 자리를 잡는 게 수상했다. 오 디렉터님 쪽을 보니, 아까 디렉터님이 하려던 말이 이거구나 싶었다.
“이제 다음 앨범 준비한다며?”
“네, 컴백 준비해야죠.”
“그걸 아예 영어로 내면 어떤가?”
“…네?”
“왜, 요즘 많이들 그러지 않나? 노래를 아예 영어로 내던데.”
“갑자기 영어는 왜 그러시죠?”
“아니,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미국 진출 안 할 거야?”
어디서부터 문제인 걸까, 이 회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