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너무 완벽해지면 슬플거같아ㅠ……
-크리드 슈스되지마 아니야 더 많이 사랑받아 그래도 너무 인기많아지진마
그런 팬들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댓글을 유심히 보던 승빈이 말했다. 평소처럼 부드러운 웃음이었지만 단단함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저희 아직 부족한 게 많아요. 그래도 여러분 덕분에 이렇게 멋진 경험할 수 있었고, 더 더 성장하고 싶어요. 단순히 인기의 문제가 아니라 더 좋은 무대, 음악 선물해 드리고 싶어요. 절대 여러분 속상하게 만들 일 없을 겁니다. 클로버도 알잖아요, 저희 여러분 없으면 안 되는 거.”
그래, 아직은 먼 미래의 일이다. 문스트럭은 지레 겁먹어 이 순간을 온전히 즐기고 축하하지 못한 마음을 애써 달랬다.
“이 모든 게 다 투마월 때부터 저희를 지켜봐 준 클로버분들 덕분이니까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클로버! 어떤 길이건 여러분과 함께한다면 모든 길이 설렘일 테니까요.”
그리고 이어지는 승빈의 말이 그녀의 허한 마음 한구석까지 채워 주었다.
“아니, 승빈이는 어쩜 저렇게 말을 예쁘게 하지?”
“뭐야, 너 울어, 지금?”
“미친, 야, 얘 진짜 우는 거 봐.”
훌쩍이기 시작하더니 금세 눈물을 펑펑 쏟아 내는 그녀였다. 양옆에서 신난 K와 A는 각도별로 근접 직캠을 찍기 시작했다.
“와, 남자 때문에 우는 20대 여성.”
“나중에 네 결혼식에서 이거 틀어야지.”
“그럼 신랑 때문에 우는 신부 되는 거잖아-”
“야, 계좌 불러. 방금 거 좀 괜찮았다.”
“아싸!”
울먹이던 와중에도 중요한 건 놓치지 않는 문스트럭이었다.
-미쳤다.... 승빈이 어디서 교육받고 오는거아님??
-오늘도 문스윗 명언 하나 또 추가됐다...
-그래... 저걸 그대로 이해할 수 있는건 우리밖에 없으니까!!
└ㄹㅇ 같은언어를 쓰는게 이렇게 감동일수가ㅠㅠㅠㅠ
-크리드 보유국에 태어나서 다행입니다...
└222
└333
그렇게 다양한 방향으로 클로버들에게 의미 있던 하루가 지나갔다.
* * *
“크리드의 환장여행, 그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미션이 남았습니다!”
“또요?”
“지난번이 끝 아니었어요?”
최 피디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말, 최종, 찐으로 마지막입니다!”
“지난번 미션 때도 마지막이라고 하셨던 거 같은데-”
“여러분들의 팀워크를 확인할 수 있는 미션이라서 꼭 필요했어요.”
두 눈을 반짝이며 꼭 필요한 미션이라고 하니 멤버들도 마음이 약해졌다. 힘들었지만 나름 재미있는 미션이기도 했고, 내심 어떤 미션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농구 게임에서 승리한 세 명은 베네핏으로 미션의 힌트 영상을 드리겠습니다!”
“진 팀은 또 힌트 없어요?”
“시간상 새로운 게임을 하기엔 스케줄이 빡빡할 것 같아요. 아시다시피 크리드분들이 너-무 슈퍼 스타가 되어 버려서……”
억울해하던 네 명도 그 말에 납득했다. 안 그래도 갑작스럽게 얻은 해외 인기에 씨넷 내부에서도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방영일을 확 당겨 버렸다는 소식을 들었거든. 아무래도 3집 활동과 함께 공개해서 화제성을 끌고 갈 생각이겠지.
“세 분은 미션 룸에서 힌트 영상을 보고 오겠습니다.”
스태프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에는 노트북이 있었고, 영상이 플레이되고 있었다.
“애들 인터뷰 영상 아닌가?”
“뭐지?”
영상은 멤버들이 인터뷰하는 영상을 10초씩 끊어서 보여 줬다.
[도현: 다른 멤버의 탐나는 점이요? 저는 승빈이 목소리요]
[재봉: 윤빈 형의 피지컬?]
[승빈: 지운이 형의 춤 실력이요.]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부랴부랴 찍은 인터뷰여서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굳이 이 영상을 보여 주는 의도가 무엇일지 한참 고민하다가 유레카를 외쳤다.
‘이거 타인의 삶이구나!’
10초씩 인터뷰 영상이 끝나자 칼같이 노트북 전원이 꺼졌다. 유현이 형과 지운이 형은 아직 아리송한 듯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자, 이제 한 분씩 옆방으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안내에 따라 옆방으로 순서대로 이동했다. 들어가 보니 최 피디가 싱글벙글 웃으며 기다리고 있었다며 반갑게 맞이했다.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고 앉으니 테이블 위에 동물 카드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카드를 보고 이번 미션이 타인의 삶임을 확신했다.
“자, 원하는 동물을 선택하면 미션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타인의 삶이라면 따라 하기 쉽고, 평소에 놀리고 싶었던 이를 선택하는 게 아무래도 정석이다. 나는 여우와 너구리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너구리를 골랐다.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강도현.’
“너구리를 고른 승빈 군은 오늘 하루 동안 멤버 도현 군이 되어 볼 것입니다! 가장 싱크로율을 잘 유지하는 멤버에게는 한국에 도착하면 큰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하루 종일 강도현 성대모사와 모창, 행동을 따라 하며 킹받게 할 생각에 절로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뒤이어 유현이 형과 지운이 형이 조금은 어두운 얼굴로 밖으로 나왔다.
“누구 뽑았어요?”
“난 강아지…….”
“저요?”
“응. 최선을 다해 볼게.”
지운이 형이 나를 따라 한다니, 전혀 예상도 못 했다. 비장한 눈으로 두 주먹을 쥐고 말하는데 역시 매사에 열심인 형이었다. 그 옆에 유독 말이 없어진 유현이 형에게 물으니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고양이.”
“와우.”
“아…….”
유현이 형이 선우 형을 따라 한다니 도무지 상상이 안 갔다. 뒤이어 멤버들도 선택을 마쳤다. 선우형이 지운이 형을, 박재봉은 윤빈 형을, 윤빈 형은 유현이 형을, 마지막으로 강도현이 박재봉을 뽑은 것이 공개되자마자 모두 웃음이 터졌다. 박재봉은 질색했고, 강도현은 잔뜩 신난 얼굴이었다. 입술을 꽉 깨문 박재봉 앞에서 강도현이 알짱거리며 성질을 긁고 있었다.
“재봉이 형, 화나쪄요?”
“제가 언제 그렇게 혀 짧은 소리를 냈어요!”
“형, 화낸 거예요? 울어 버릴 거야!”
“그리고 전 재봉 아니고 윤빈 형이거든요?”
“윤빈 형은 그렇게 화내는 사람 아니거든요?”
박재봉은 기가 막힌다는 듯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재봉아, 물 좀 떠와 봐-”
“누가 그렇게 막내 물심부름을 시켜요~”
제대로 막내 버프를 쓰려는 강도현을 보며 유현이 형이 처음 들어 본 텐션의 목소리로 물었다.
“재봉아, 지금 도현이 형한테 대드는 거야?”
“도현이 형이요……? 뭐야, 설마 문승빈이 나야?”
나는 강도현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따라 했다. 주로 박재봉이나 나를 놀릴 때 짓는 표정인데 하도 많이 봐서 완벽하게 재연할 수 있었다.
“재봉아, 지금 형한테 문승빈?”
“야, 내가 언제 재봉이를 부려 먹었냐?”
“쓰읍, 자꾸 반말하네?”
“와… 와, 이건 기만이지! 요…….”
깐족거리는 성격은 아니지만, 강도현을 따라 한다는 핑계로 나사 하나 풀린 것처럼 행동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었다. 분해 죽겠다는 강도현을 골려 먹는 것도 즐거웠고. 그때 유현이 형을 유심히 보던 선우 형이 물었다.
“와중에 유현이 형은 누구를 뽑았길래 텐션이…….”
“딱 봐도 박선우잖아요, 지운 형!”
“와우-”
“그럼 윤빈 형이 누구야?”
“누가 누군지 외우다가 하루 다 가겠는데?”
그때 최 피디님이 제안 하나를 했다.
“여러분, 이렇게 따로 하니까 헷갈려서 미션 진행이 안 될 거 같은데 그냥 서로 바꿔서 하는 거 어때요?”
“그게 좋을 거 같아요.”
치열한 가위바위보의 결과로 결국 나와 강도현, 유현이 형과 선우 형, 지운이 형과 박재봉이 매칭되었다. 윤빈 형은 운이 좋게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었다. 강도현을 막내라는 이유로 더 골려 먹을 기회가 사라진 게 아쉬웠지만, 확실히 덜 혼란스러웠다.
“자, 이제 서로 바뀐 성격으로 미션을 수행하겠습니다! 여기 질문지에는 사전에 여러분이 질문에 답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질문을 듣고 상대의 입장이 되어서 답을 하는 겁니다. 가장 많이 맞힌 팀이 1차 미션에서 이기게 됩니다.”
그리고 최 피디님이 미션을 발표하기 무섭게 상태창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이 타이밍에? 의문이 들었지만 미션을 확인하고 의도를 이해했다.
[!MISSION: 멤버들의 놀람! (0/4)]
남은 기간) 1시간
▶성공 시: 설득의 힘 획득 +1
▶실패 시: 멤버와의 불화 +1
꽤 오랜만에 등장한 돌발 미션창은 역시나 매콤했다. 실패 시 멤버와의 불화라니. 불화도 억지로 만들 수가 있구나.
‘최대한 많이 맞혀서 멤버들이 모두 놀라게 만들어야겠네.’
이젠 불시에 등장하는 상태창에 익숙해졌다. 전처럼 당황하지 않고 강도현의 능글거림에 맞받아쳤다.
“도현아, 이럴 땐 자기 세뇌를 하는 거야. 나는 강도현이다…….”
“그런 걸 왜 하냐? 어차피 난 다 잘하니까…….”
“야, 내가 언제 그렇게 자뻑이 심했냐?”
“승빈아, 왜 그렇게 화를 내니? 이게 내 성격인 걸 어떡해?”
“아오, 문승, 아니 강도현 저 진상…….”
강도현은 뭐라 더 핀잔을 주려다가 제 얼굴에 침을 뱉는 기분이 들었는지 화를 삭였다. 항상 강도현이 나를 놀리고 내가 열받아 하는 입장이었는데, 가끔 이렇게 입장 바꿔 사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식으로 숙소 규칙에 건의해 볼까…….’
“자, 첫 번째 팀은 강도현-문승빈 팀! 팀명 정했나요?”
“넘버원입니다!”
“이름은 누가 지었죠?”
최 피디의 장난기 가득한 질문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문승빈을 연기하는 강도현이 지었습니다.”
“와- 저걸 저렇게 피해 가네?”
“첫 번째 질문입니다! 강도현이 가장 좋아하는 과자는?”
“고구마킥이요.”
담담하게 답했지만 정확한 답에 최 피디님의 목소리에서 당황스러움이 느껴졌다.
“정, 정답! 두 번째 질문, 외계인을 만난다면 첫마디로 뭐라고 할 건가요?”
“음… 안녕?”
“오… 정답!”
“뭐야? 너 왜 이렇게 잘 알아?”
‘그야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단순한 사람이니까……?’
그다음에도 강도현이 제일 좋아하는 영화 장르 질문 빼고는 모두 맞혔다. 문제를 맞히는 내내 강도현을 비롯한 멤버들이 감탄했고, 덕분에 벌써 2명의 놀람을 얻을 수 있었다.
[멤버들의 놀람 (2/4)]
이렇게 되니 강도현도 점점 부담감을 느꼈는지 속성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음식, 드라마 취향, 외계인을 만나면 뭐라고 답할 것인지’와 같은 질문이었다.
하지만 최 피디님이 같은 질문을 낼 만큼 그리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첫 번째 질문부터 내 예상이 적중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강아지?”
“땡!”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한다, 오늘 뭐 할 것인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
“오~ 로맨틱했어요, 하지만 땡!”
“이거 문승빈이 적은 거 맞아요? 승빈아, 이렇게 못 맞히면 어떡해?”
“도현아, 가만히 좀 있어. 안 그래도 큰일 난 거 같으니까.”
그새 승부욕이 불타서 열정적으로 고민하지만, 끝도 없이 이어지는 오답 퍼레이드에 낄낄댈 수밖에 없었다.
“와, 실망이다. 오늘로 우리 우정은 끝인 거 같다.”
잔뜩 억울하다는 표정이었지만, 제가 생각해도 할 말이 없는지 뭐라 반박하지 못하는 강도현에 다들 웃음이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