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화
라이브 영상에 제이드 쇼 특유의 편집까지 더해지니, 수십 번은 더 본 영상임에도 새삼 신기했다. 우리 영상으로 시작해서 마지막에는 제이드가 화제되었던 과거의 영상까지 교차 편집을 해서, 마치 음악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와, 제이드. 진짜 최고인데? 영화 보는 줄 알았어.”
“진짜 영화 같은 상황이기는 했어. 그래서 다들 난리 났잖아.”
“우린 그냥 재밌는 에피소드라고만 생각했는데, 사실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
“무슨 소리야! 너희 미국에 있을 때 촬영하려고 제이드 쇼 일정까지 조정했다고!”
“영광이야, 정말. 제이드 쇼 캐스팅됐다고 해서 우리도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덕분에 실감 중이야.”
이렇게 빨리 녹화 일정이 잡힌 게 신기하긴 했지만, 정말 제이드 쇼 측에서 일정을 조율하면서까지 우리를 캐스팅한 거라니. 그 얘기를 듣고 나니 다시 떨리는 기분이었다. 우연이 가져다준 선물치고는 너무 거대했으니까.
“한국에서는 어때? 축하 많이 받았을 거 같은데!”
“사실 우리가 그때 리얼리티 촬영 중이어서 핸드폰 볼 정신이 없었거든. 근데 자기 전에 핸드폰을 보니까 메시지 알림이 한 번에 오는데, 핸드폰에 불난 줄 알았어!”
“기억에 남는 반응 있어?”
“우리 누나한테 연락이 왔거든? 딱 한 줄 왔는데 그게 너무 웃겼어.”
“뭐라고 왔는데?”
“연예인 다 됐대!”
허무한 표정과 함께 코믹하게 표현하니 모두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이건 진심이었다. 2년 차 아이돌이지만 여전히 누나 앞에서는 평범한 남동생이었다는 게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었으니까.
“우리 누나한테 인정받으려면 한참 남았어.”
“조사하다가 알았어. 누나가 유명 사진 작가라며?”
“응. 내가 누나 인지도 따라잡으려면 되게 오래 걸리겠다 생각했거든? 근데 이 상태면… 여기까지 말할게. 더 까불면 누나한테 한 소리 들을 거야.”
“그래? 마침 우리가 준비한 게 있거든.”
“준비한 게 있다고?”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설마 스튜디오에 문해빈이 등장한다면… 생방송으로 등짝 맞는 장면이 송출될 것이기 때문이다.
“야, 문승빈!”
“…누나?”
“서프라이즈 선물이야!”
진짜 누나 목소리가 들리기에 긴장했는데, 영상 통화였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건 선물이 아니잖아-”
“뭐라고, 승빈아?”
“선, 선물로는 부족하지! 완전 행운이고 빅 이벤트고…….”
방송이라고 태도가 달라지지 않는 누나 덕분에 진땀을 뺐다. 이거 분명 현실 남매라고 인터넷에 박제될 거 같은데… 다행히 제이드가 적절한 타이밍에 멘트를 쳤다.
“동생이 엄청 자랑스러울 거 같아요!”
“당연하죠! 토스맨 출연한 아이돌 동생 가진 사람은 제가 유일무이할걸요?”
“동생에게 한마디 한다면?”
“얼른 누나보다 유명해져라~”
누나와의 깜짝 전화 통화 후 민망함에 달아오른 얼굴을 숨기느라 고생했다. 제이드와 제작진들도 생각보다 더 리얼한 누나의 반응에 만족스러워 보였다.
“이제 크리드에 대해서도 얘기를 해야겠어. 크리드는 어떤 음악을 하는 그룹이야?”
이번에는 유현이 형이 유창한 영어로 답했다.
“크리드가 추구하는 음악은 한계가 없는 거야. 나중에 넥스트 레벨이라는 경연 프로그램에서 우리가 했던 무대 봐 봐. 우리가 추구하는 음악과 무대가 담겨 있어.”
“그럼 서바이벌로 데뷔하고 또 서바이벌을 했다는 거네?”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거의 없는 나라의 입장에서는 두 번이나 서바이벌을 한 것이 신기할 만도 했다.
“한국에서 아이돌로 살아남기 정말 힘들구나- 좌절하거나 후회한 적은 없었어?”
이번에는 내가 답했다.
“물론 체력적으로 힘들고, 마음 고생도 했지. 그래도 서바이벌을 하면서 우리는 더 강해질 수 있었어. 멤버들 간의 팀워크도 단단해졌고. 다양한 무대를 보여 줄 수 있는 기회였어서 후회는 전혀 없어.”
“나 열여덟 살 때는 이렇게 성숙한 생각 못 했는데! 대단해.”
토크 쇼여서 가벼운 주제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의외로 진지한 음악 얘기도 나눌 수 있었다. 영어를 어려워하던 선우 형도 열심히 외운 멘트와 윤빈 형의 도움으로 문제없이 인터뷰를 마쳤다.
“리얼 토스맨이 된 기분이 어때?”
“아주 좋았고 신기했어! 토스맨에게 마이크를 토스한 최초의 사람이라는 타이틀도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도 특유의 능글맞고 먼저 던지고 보는 무데뽀 정신이 부족한 영어 실력을 커버해 줬다. 틀리면 어떡하냐고 걱정한 사람치곤 틀리면 바로 고쳐서 문장에 반영하는 등, 센스 있게 대처했다. 그렇게 1시간가량의 라이브 인터뷰가 끝났다. 모두 촬영 종료 사인을 받고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냐며 아쉬워했다.
“오늘 정말 멋진 그룹과 인터뷰 할 수 있어서 기뻤어! 마지막으로 우리 쇼를 위해 준비한 무대가 있다고 들었는데?”
“맞아. 토스맨과 불렀던 Love Pain 크리드 버전을 준비했어.”
“편곡도 직접 했다며?”
“응. 윤빈이라는 멤버가 직접 편곡을 했어.”
“너희 진짜 재능 있는 사람들끼리 모였구나?”
제이드의 아낌없는 칭찬에 윤빈 형은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면서도 방긋 솟아오른 광대는 숨겨지지 않았다. 방송 섭외와 함께 제작진으로부터 요청받은 편곡이었다.
마지막으로 사운드 체크를 하고 무대를 준비하고 있으니, 처음 무대를 준비했을 때가 떠올랐다.
하나부터 열까지 쉬운 것 하나 없는 과정이었다. 한국과 미국에는 엄청난 시차가 존재했으니까. 아직도 퀭한 얼굴로 화상 회의에 참여한 프로듀서님과 오해나 디렉터님의 피곤 섞인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화상 회의는 영 안 해 봐서 어렵네요…….”
“괜찮아요, 강 프로듀서님, 20분 만에 들어오신 거면 충분히 잘하신 겁니다.”
“칭찬 고마워요, 오해나 디렉터.”
“진짜 칭찬이에요.”
“그만 놀리세요.”
“넵.”
그나마 두 분이 친한 사이여서 유한 분위기를 이어 갈 수 있었지, 어색하거나 원수 사이였다면 분명 싸움판이 났을 것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윤빈 형과 의논한 편곡 방향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니까, 3집 타이틀이랑 믹스를 하겠다는 거죠?”
“회사하고는 상의된 거야?”
정곡을 찌르는 강 프로듀서님의 질문에 나와 윤빈 형 둘 다 잠시 침묵했다. 윤빈 형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내 답변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그야…….”
“안 했죠?”
오해나 디렉터님은 예상했다는 반응이었다.
“네.”
“근데 이래도 되는 거예요?”
“결과물을 가져가서 설득하려고요.”
조금은 뻔뻔한 내 태도에 강 프로듀서님은 당황스러워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편곡의 문제가 아니라, 곡을 선공개해도 되냐는 거지.”
“그것도 할 말이 있어요.”
“그래요, 일단 들어 봅시다.”
오해나 디렉터님은 역시나 무심한 듯 ‘일단 들어 보자’ 반응이셨다.
“저희가 3집 타이틀곡을 어떤 걸로 할까 고민이었잖아요? 빡센 퍼포먼스 위주로 할지, 이지 리스닝을 선택할지. 그런데 이번 토스맨 일로 대중성을 잡은 상황에선 이지 리스닝으로 이 흐름을 이어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번에 타이틀곡을 믹스해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거죠. 자연스럽게 타이틀곡에 대한 홍보가 될 겁니다. 노래가 나오고 나서는 다시 제이드 쇼 무대를 찾아볼 것이고요.”
거의 10분 가까이 쉬지 않고 편곡 방향에 대해 얘기하고 나니 숨이 찰 지경이었다. 말없이 내 설득을 듣던 두 사람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나도 찬성. 듣고 보니 막을 이유가 없네.”
“디렉터님과 프로듀서님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높은 퀄리티의 편곡을 준비하면 회사 분들을 설득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 같아요.”
“다음 앨범부터는 아예 나랑 같이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는 게 어때요? 우리만 보기 아까운 PT였는데?”
“저야 영광이죠!”
그렇게 시작한 무모한 편곡 작전은 다행히 회사 분들도 만족할 만한 퀄리티를 만들어 내면서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우여곡절이 많았기 때문에 더더욱 완벽한 무대를 보여 주고 싶었다.
* * *
토요일 오전 9시 반. 문스트럭은 방 한편에 설치한 빔 스크린에 위튜브 화면을 띄워 놨다. K가 사온 커피와 A가 포장해 온 피자를 세팅하니 제법 그럴싸한 모양새였다. 비록 이 시간에 연 음식집이 거의 없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말이다. 주말에는 12시 전에 일어나는 일이 없던 그녀들이었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제이드 쇼가 몇 시에 공개된다고 했지?”
“현지 기준으로 8시 공개니까, 오전 10시!”
“토요일이라 다행이지, 평일이었어 봐.”
“그니까. 실시간으로 못 볼 뻔했어.”
오늘이 바로 크리드가 출연한 제이드 쇼가 공개되는 날이었다.
“나 진짜 아직도 황당해. 나만 그래?”
“야, 크리드도 황당할걸?”
“아니, 내 아이돌이 갑자기 국뽕의 주인공이 되다니?”
“완전 웹 소설 제목 감 아니냐.”
“그니까. 진짜 크리드 서사 미침.”
미국에서 화제라는 얘기부터 황당했는데, 그게 점점 커져서 결국 제이드 쇼까지 출연하다니? 제이드 쇼는 시기마다 가장 화제가 되는 주제를 제일 먼저 다루기로 유명해서, 제이드 쇼에서 언급되는 것들은 반드시 유행을 타고는 했다. 그말인즉슨, 이게 시작이라는 얘기였다.
“이러다 크리드 미국 진출하면 어떡함?”
“야, 끔찍한 소리 하지 마. 그러다 내 구오빠 꼴 난다고.”
“아, 미친. 그러네.”
사실 문스트럭의 구오빠는 글로벌 아이돌이 될 뻔했다. 미국 진출에 미친 회사 덕분에 가장 잘나갈 때 미국으로 넘어가서 현지 시장을 노리기 시작했다. 첫 미국 진출치고는 유의미한 성과를 내기는 했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해외 인기의 맛을 본 소속사는 미국병이 심각해졌고, 미국 차트에 맞춰 발매일과 시간을 정하고 노래도 영어로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과 반비례하여 반응은 점점 사그라들었다. 애초에 관심의 시작이 한국 아이돌에 대한 호기심이었는데, 그 기반을 버리고 현지화를 노리니 반응이 좋을 리가 없었다. 순간적 관심에 눈이 돌아간 소속사가 간과한 포인트였다. 이미 팝 스타는 넘쳐났으니까.
하지만 소속사가 정신 못 차리고 미국에만 집착하자, 결국 한국에서의 위치마저 애매해졌다. 와중에 회사에서는 해외 팬들만 챙기고 한국 팬들을 등한시하여 팬덤마저 박살 나는 결과를 초래했다. 문스트럭이 해외 진출 얘기만 나와도 민감한 이유였다.
“결국 망해서 금방 군대 갔잖아.”
“맞아, 그래서 내가 미국 하면 치를 떠는데.”
“에이, 그래도 이건 잠깐 화제 되는 거니까.”
“맞아. 근데 생각보다 해외 팬들 붙는 거 같던데?”
“그냥 해외 팬들만 많아지고, 본격적으로 해외 진출은 안 했으면.”
“근데 확실히 크리드가 서바이벌 출신이라, 인기에 비해 해외 팬덤이 약하긴 했어.”
“그건 그래. 이번에 좀 해외 팬 화력 좀 붙었으면 좋겠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벌써 10시 5분 전이었다. 제이드 쇼 채널에서 선공개 링크가 올라왔고,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와, 카운트다운까지 한다고? 진짜 본격적이다.”
“야, 동시 접속자 숫자 봐.”
“이게 말이 되냐, 진짜.”
“우리 이제 크리드 못 보러 다니는 거 아니냐?”
“해투만 가도 힘든데.”
“야, 시작한다!”
마침내 제이드 쇼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