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화
“이게 뭐지?”
문스트럭은 20분 동안 자신이 꿈을 꾼 게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옆자리에서 함께 생중계를 보던 K 역시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된 얼굴이었다.
“정리해 보자.”
“그러니까… 우리 애들이 무슨 촬영인지는 모르겠으나 미국에 갔는데.”
“거기서 우연히 뉴욕을 지나다가 토스맨을 만난 거 같고.”
“토스맨 콘텐츠로 즉석 라이브를 했는데.”
“그걸 오백만이 보고 있었다는 거지?”
사건의 시작은 이렇다. 제주도에 있는 줄 알았던 멤버들의 미국 항공편이 뜨면서 클로버판은 잠시 시끄러웠다. 문스트럭 역시 귀국 프리뷰 찍을 생각이나 하고 있었는데 미국이라니? 게다가 최 피디, 윤 피디와 함께 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팬들은 기대감과 분노를 동시에 가지던 때였다.
그 후에는 갑자기 주제를 알 수 없는 코스튬을 입고 미국 거리를 활보하는 목격담이 뜨지 않나…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었다. 그리고 오늘, 이전의 것들은 평범하게 보일 만큼 대형 사건이 터진 것이다.
[토스맨 미쳤넼ㅋㅋㅋㅋㅋㅋㅋ]
-크리드가 왜 거기서 나와…?
└나 아직도 꿈꾸는거 같음
└와중에 애들 실력미침ㅋㅋㅋㅋㅋㅋㅋ
-지금 해외에서도 반응좋앜ㅋㅋㅋㅋ
└드디어 우리에게도 든든한 해외웅니들이
└편집본 조회수도 역대급으로 터지고 있음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
└근데 해외팬덤 커지면 좋은건가ㅠㅠ
└다다익선이다
[와중에 애들 너무 똑부러지지않냨ㅋㅋㅋㅋㅋㅋㅋ영어도 잘하고]
-승빈이도 미국 살다온건 알았지만 저정도일줄은 몰랐어;;
└유죄강아지ㅠㅠㅠ
└영어 잘하는 멤버가 둘이나 있으니까 해외진출해도 문제 없을 듯?
└ㅇㅇ유현이도 꽤 할 듯 의사집안이었으면 조기교육 빡세게 받았을거잖아
-선우 패기 때문에 뒤집어졌음ㅋㅋㅋㅋㅋㅋㅋㅋ
└완전 반전매력 아니냐;;
└해외에서도 그걸로 벌써 짤 만드는 사람들 많더랔ㅋㅋㅋㅋㅋ
└세계최초로 토스맨한테 토스한 인간이랰ㅋㅋㅋ
라이브 영상과 편집된 클립들 모두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한국에서는 약간의 국뽕이 섞이면서 더 홍보 효과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졌다. 토스맨이 해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꽤 인지도 있는 채널이었다는 점이 이렇게 작용할 줄이야.
-역시 한국의 자랑스러운 아이돌입니다! 크리드 응원합니다^^
-한국 아이돌이 확실히 퀄리티가 높음…
-얘네 소속사가 어디냐? 주식 좀 사게
└엔터주식은 사는 거 아닌데;;
└혹시 알아? 얘네가 제2의 루커스될지?
└종토방 아재들 빠른거봐;;
-캬 주모 여기 국밥 한그릇 추가요!
└이런게 국위선양 아니냐
해당 영상은 아침 뉴스 ‘지구촌 이모저모’ 코너에도 소개됐다. 아침밥을 먹던 문스트럭은 하마터면 입에 있던 밥을 뿜을 뻔했다.
“이, 이게 맞아?”
[토스맨의 영상에 등장한 한국 아이돌!]
-토스맨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미국의 인플루언서의 영상에 등장한 한국 아이돌! 바로 크리드입니다. 지난해 화제의 프로그램 ‘투 마이 월드 시즌 2’를 통해 데뷔한 크리드는 갑작스러운 토스맨의 마이크 ‘토스’에도 당황하지 않고 반전의 실력을 보여 줬는데요, 지구촌 이모저모! 토스맨과 크리드의 영상으로 마무리합니다, 다음에 또 봐요!
월요일 아침이어서 졸린 눈을 다 뜨지도 못한 상태였는데, 크리드의 깜짝 뉴스 소식 덕분에 절로 두 눈이 떠졌다.
[얔ㅋㅋㅋㅋㅋㅋㅋㅋ미쳤네]
[크리드 뉴스 진출까지 한거냐;;]
[이렇게 진출할 줄은 몰랐는데]
[사회면 아닌 뉴스에서 아이돌을 보게 될 줄이야....]
[구오빠는 사회면에 나왔었는데, 크리드는 효자네ㅇㅇ]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릴 정도로 클로버 친구들의 연락이 왔고, 문스트럭은 생각했다.
“그래, 사회면으로 뉴스 진출 안 하는 게 어디야…….”
음주 운전, 마약, 성 추문으로 뉴스에 출연했던 구최애와 수많은 간잽의 오빠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데뷔한 지 1년만에 공중파 뉴스 진출한 아이돌]
-아침먹다갘ㅋㅋㅋㅋ이게 무슨 봉변인가 싶었음
└봉변이라니ㅠㅠ
└먹던 밥 뱉어서 봉변이라고ㅠㅠ
-아침먹다가 부모님이 쟤네 니가 좋아하는 남자애들 아니냐고 해서 뭔 소린가했는뎈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돜ㅋㅋㅋ
-그래도 이런 좋은일로 출연한게 어디얔ㅋㅋㅋㅋ
└ㅇㅇ내 구오빠는 사회면으로만 출연했는데ㅎ…
└너도? 야 나도
그룹뿐만 아니라 멤버 개개인에 대한 해외 반응도 뜨거웠다. 특히 고음을 깔끔하게 소화한 승빈과 반전으로 랩을 해낸 박선우에 대한 언급이 가장 많았다.
[해외에서 선우 별명이 리얼 토스맨이랰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토스맨도 의식하나봄ㅋㅋㅋㅋ엔스타 이름 바뀌었엌ㅋㅋ
└진짜 리얼토스맨됐넼ㅋㅋㅋㅋ
└토스맨이 두고보랰ㅋㅋㅋ
└다음에 한국가면 진정한 토스맨을 겨뤄보자고 하넼ㅋㅋㅋㅋ
[승빈이 해외에서 moonvoice로 불린뎈ㅋ큐ㅠㅠㅠㅠ달의 목소리라고ㅠㅠ]
-어떻게 성도 문씨여섴ㅋㅋㅋ
└나만 달이어서 더 좋음? 진짜 승빈이 목소리 달 같아ㅠㅠ
└포근하고 은은하게 빛나는 게 딱 달같은 목소리임ㅠㅠㅠㅠ
-니들 승빈이 영어 이름이 리버인건 알고 앓는거냐?
└이런 ㅅㅂ…
└시비거는거임?
└아니;; 알고 앓으면 더 좋아진다고;;
└아 ㅇㅋㅇㅋ
-그럼 영어 이름이 문리버인거야?
└ㅇㅇ 그거 때문에 더 환장하더랔ㅋㅋㅋㅋㅋ
승빈의 이름과 동일한 유명 팝송 덕분에 외국 팬들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효과가 있었다.
“현지화 전략이 이렇게 쓰이네…….”
연예인들에겐 이름도 하나의 콘텐츠가 된다. 한국에서는 잘 지은 이름 하나가 열 광고 부럽지 않다는 말도 있을 정도다. 그런 점에서 승빈의 영어 이름은 최상의 작명이었다.
크리드의 뮤직비디오와 직캠에도 점점 해외 팬들의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매일 댓글 창에서 해외 팬들이 있는지 묻던 팬들은 감격스러운지 각자 어디에서 왔는지 묻는 댓글이 많았다.
[hi global clover!]
[유럽에서도 반응 좋은가봐]
[난 아랍어도 봄ㅇㅇ]
[번역기 댓글도 많앜ㅋㅋㅋㅋ]
해외 팬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국내 70, 해외 30의 비율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해외 팬들의 화력이 필요한 투표에서도 국내 팬들의 부담이 줄어들 것이 기대됐다.
문스트럭의 머글 친구들에게도 연락이 많이 왔다, 주식과 관련된 질문이 가장 많은 것이 함정이었지만. 하루 이틀 반짝할 해프닝이라고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스케일은 점점 커졌다.
* * *
뉴욕에서의 둘째 날, 경쾌한 신세계 모닝콜과 함께 멤버들이 졸린 눈을 비비며 숙소 거실로 모였다. 지구 반대편에서 어떤 난리가 난 줄도 모르고 전날 자유 시간과 함께 연이은 촬영으로 피곤이 가득한 눈이었다. 까치집을 정리할 정신도 없이 모여서 나는 두 손으로 눈만 빼꼼 꺼내 보였다.
“자! 어제 자유 시간 신나게 보냈나요?”
“…느에.”
“여러분, 제가 미국에 오면, 이 환상여행에 오면 선 하나가 더 생긴다고 한 말 기억하나요?”
“그런 말을 했었어요……?”
나는 기억을 한참 되감았다가 스치듯 말했던 최 피디님의 말이 떠올랐다.
‘선이 생긴다는 게 뭔 소리지?’
“모두 모니터를 한번 봐 주세요!”
“모니터요?”
“우리 프로그램 로고 아니에요?”
최 피디님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뭔가 재밌는 일을 꾸미고 있는 것 같은데, 피디님에게 재밌는 것은 높은 확률로 우리에겐 힘든 일이라서 불안함이 엄습했다.
그때, [환상여행]의 ‘ㅅ’ 위에 빨간 줄이 하나 찍 그어지더니 B급 감성 가득한, 조악한 피가 흐르는 로고가 완성되었다.
“환… 장여행?”
“정답! 이제부터 환상여행은 잊으세요! 환장여행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쩐지. 최 피디님 예능치고 무난하게 간다 했더니 이런 반전이 숨어 있었을 줄이야.
“환장이요?”
“이번 환장여행을 잘 이겨 낸다면 또 다른 환상여행이 펼쳐질 테니, 모두 최선을 다해 주시길!”
최 피디님의 폭탄선언에 지운이 형이 조용히 물었다.
“근데… 저희 그 옷을 입고 캘리포니아 거리 돌아다닌 게 환상여행인가요?”
조곤조곤한 말투로 팩폭을 날렸다. 최 피디님은 잠시 헛기침을 하더니 천연덕스럽게 답했다.
“그래도~ 재미와 감동 모두 얻었잖아요? 얼마나 환상적이에요?”
“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특히나 우주복을 입고 다녀서 길거리 아이들에게 온갖 수모를 당한 둘의 반응이 가장 리얼했다.
“진짜 피디님도 같이 입었어야 했다니까요?”
“어휴, 크리드는 이제 문승빈 일곱 명으로 이뤄진 팀 같아. 나를 너무 편하게 대하는데?”
하긴, 나는 플레이 온 아이스로 이미 친분이 있어서 상대가 피디님이지만 거리낌 없이 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멤버들은 아무래도 처음 작업하는 피디님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어려워하는 게 눈에 보였다.
어색함도 잠시, 최 피디님 특유의 재치와 나이나 경력으로 급을 나누지 않는 태도 덕분에 멤버들도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스스럼없이 대하는 멤버들에 내심 안심이 됐다. 피디님 역시 지나치게 격식을 차리고 벽을 치는 것보다는, 선을 지켜 가며 가까워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다행이었다.
“헐, 피디님, 너무해요!”
“제가 뭐 어때서요?”
“그 반응은 뭐냐, 문승빈?”
“야, 재봉이 너, 나 존경한다며!”
“아~ 존경은 하죠!”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반응이 오가니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하… 그래서 저희 이번엔 뭘 하죠?”
“일단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장소 이동을 한 후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향한 곳은 뉴욕의 한 공원 농구장이었다.
“저희 농구해요?”
“이건 너무 윤빈 형 전용 게임 아니에요?”
“자, 그럼 팀부터 나눠 볼까요? 유현 군과 재봉 군이 조장이 되어서 각자 가위바위보로 정하겠습니다.”
“가위, 바위, 보!”
첫판은 재봉의 승리였다. 박재봉은 곧장 윤빈 형을 뽑았다. 유현이 형은 나를 뽑고, 선우 형은 필사적으로 재봉에게 어필했다.
“재봉아, 농구는 어? 키가 전부다!”
“진짜 눈물겨워서 뽑는 거예요, 형.”
“고마워!”
그렇게 윤빈 형, 선우 형, 강도현, 박재봉이 한 팀이 되었다. 우리 팀에는 스태프분이 합류해서 4대 4를 맞췄다.
“농구는 윤빈 형이 압도적으로 잘하는데…….”
걱정하던 찰나, 최 피디님의 한마디에 전세가 역전됐다.
“이번 경기는 바로… 훈민정음 농구입니다!”
“훈민정음이요?”
“그게 뭐야?”
윤빈 형과 박재봉만 영문을 모른 채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훈민정음 농구는 영어를 포함한 외국어를 쓰지 않고, 오직 한국어만을 사용하여 농구를 하는 게임입니다!”
“…헐.”
윤빈 형은 망연자실한 얼굴을 했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생기로 가득했던 선우 형이 떨어트린 농구공이 통통 소리를 내며 굴러갔다.
“오 마이 갓.”
“어! 지금 시작한 건가요?”
“아니지!”
“아깝…….”
“자, 모두 자리로 돌아가고 호루라기가 불리면 시작하는 겁니다!”
“네!”
경쾌한 휘슬 소리와 함께 경기가 시작됐다. 그리고 시작과 동시에 경기가 중단됐다.
“선우야! 여기로 패스!”
“형?”
“아, 맞다. 쏘리-”
“형!”
하지만 비단 윤빈 형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도현이 형! 마이 볼!”
“아오, 박재봉!”
‘…쉽지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