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근데 저 사람은 무슨 콘텐츠로 유명한 거예요?”
“이름 그대로야. 토스맨.”
“토스? 뭘 넘기나?”
이름에 대한 의문은 곧 해결됐다. 마이크를 들고 열창하던 그가 갑자기 앞에서 관람을 하던 일반인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마이크를 건네받은 관객들은 당황한 듯 가사를 잊어버리거나, 음 이탈을 냈다.
“저렇게 사람들의 리얼한 반응을 보여 주면서 인기를 얻었구나-”
“가끔 잘 부르는 사람들도 있겠네요?”
“맞아. 제이드 알아?”
“알죠! 그 사람 데뷔곡이 엄청 인기였잖아요.”
“그 사람이 처음 SNS에서 유명해지게 된 것도 토스맨 콘텐츠 덕분이었어.”
“진짜요?”
“미쳤다…….”
제이드의 사례를 듣고 나서야 토스맨의 쇼츠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앞에는 노래를 잘 못하는 사람들의 영상이라 제이드의 영상이 더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게다가 평범한 학생으로 보이는 사람이 준수한 노래 실력을 보여 주니 반전 매력이라며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좀만 더 구경하고 갈까요?”
“음… 지금 매니저 형도 없이 자유 시간인데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
“에이, 사람이 저렇게 많이 모여 있는데요? 가서 조금만 있다가 가요!”
“그래. 대신 10분만 있다가 가는 거야.”
“네!”
첫째인 유현이 형도 겨우 스물둘인데, 유치원 선생님 같았다. 외향적인 멤버들이 먼저 앞으로 향했고, 나와 지운이 형, 유현이 형은 조용히 뒤를 따랐다.
“애들이 어디 있지?”
인파 속에서 멤버들을 찾아다녔다. 한참 앞으로 갔을까, 손을 흔드는 윤빈 형이 보였다.
“맨 앞줄까지 갔어?”
“체력도 좋아-”
“기왕 보러 온 거 앞에서 보는 게 좋죠!”
저 넷을 어떻게 말리겠는가? 오는 길이 험난하긴 했지만, 확실히 앞줄에서 공연을 보는 게 좋았다. 의외로 토스맨의 노래 실력도 훌륭해서 더 재밌게 즐겼던 거 같다. 그렇게 한참 공연을 하던 토스맨이 노래를 멈췄고 관중 쪽으로 걸어왔다.
“음… 이번엔 누구에게 마이크를 토스해 볼까?”
“여기!”
“나하고 노래 불러요, 토스맨!”
주변에는 토스맨의 콘텐츠에 출연하고 싶은 팬들이 어마어마했다. 우리는 발표할 사람을 구하는 선생님 앞에 선 학생처럼 토스맨의 눈을 필사적으로 피했다.
“완전 끝내주는 친구를 찾고 있어! 오늘은 조금… 지루했거든! 반성해, 뉴욕!”
“와, 완전 돌직구네요?”
“돌직구?”
나는 곧장 영어로 번역을 했고, 윤빈 형은 격하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토스맨의 특징인데, 못 부르면 엄청 놀려, 그리고 잘 부르면 엄청 칭찬하고!”
완전히 양날의 검과 같은 콘텐츠였다. 잘 부른다면 유명세와 함께 기회가 되지만, 애매하게 부른다면 흑역사로 남을 테니까.
“다음 곡으로는 Love Pain을 부를 거야! 다들 긴장하고 있으라고-”
“Love Pain? 저 이 노래 엄청 좋아하는데!”
“재봉이도 이 노래 알아?”
“당연하죠~”
영어는 몰라도 Love Pain 가사는 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유명한 곡이니 나이가 어린 박재봉도 알 만했다.
“이번에 걸리는 사람은 운이 좋으면서 안 좋겠네요.”
‘Love Pain’은 미국의 국민 가수 애리얼의 곡인데, 전 세계적으로 대히트를 친 팝송이다. 내가 걸리면 운이 좋으면서 안 좋은 이유는, 모르면 간첩일 정도로 유명한 곡이기 때문에 가사나 멜로디를 틀릴 일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 노래 하이라이트가 얼마나 높은지 알지? 다들 물이라도 마셔 둬~ 그 파트만 다 넘길 거니까!”
“형. 근데 저 사람 뭐라고 하는 거예요?”
“전부 영어여서 못 알아듣겠네!”
“후렴구 음정 엄청 높으니까 걸린 사람은 각오하래. 물이라도 마시라고.”
“혹시 모르니까 진짜 마셔 둘까요?”
“난 목캔디 있어!”
지난번 보컬 스탯이 깎이고 컨디션이 안 좋았던 때 이후로 지운이 형은 한동안 목캔디나 목에 좋은 것들을 챙겨 두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러고 있는 줄은 몰랐지만.
[Love is so Pain
달콤함 속엔 언제나
가시가 숨어 있지]
토스맨이 노래를 시작하자, 사람들의 떼창이 시작됐다. 나도 오랜만에 관객이 되어 마음 편하게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렇게 1절이 끝나고, 토스맨이 무대 관객 쪽으로 걸어왔다. 토스 타임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 가 볼까? 집합 시간이 얼마 남지도 않았…….”
“토스 타임!”
“?”
갑자기 마이크가 지운이 형 앞에 놓였고, 지운이 형은 얼떨떨한 얼굴로 일단 노래를 이어 갔다.
[Love is like a candy
달콤한 맛에
모든 걸 걸게 되겠지
Pop pop 쏟아지는 Love]
갑작스러운 상황인데도 흔들리지 않는 노래 실력에 토스맨은 잠시 당황한 듯 마이크를 바로 옆자리인 유현이 형에게 넘겼다.
‘이거 그림이 이상해지는데?’
[언제나 실패한 사랑인걸
그래도 멈출 수 없어
이미 중독된걸]
“이 X끼들 뭐야?”
연속해서 잘 부르는 사람을 찾은 건 처음이어서일까, 토스맨은 비속어도 마다하지 않고 감탄했다. 그리고 내 차례가 왔는데, 바로 후렴구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토스맨은 이제 흑역사를 제조할 타이밍이라며 입꼬리가 귀에 걸려 있었다. 나는 일부러 긴장한 얼굴로 심호흡을 했다.
[Love Pain!
불에 덴 듯 아파 와
하지만 이 고통이
싫지만은 않아!]
한 번에 3옥타브 미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만인의 ‘음소거 구간’이었지만, 큰 무리 없이 소화했다. 이 어이없는 우연이 모인 상황에 토스맨도 헛웃음이 터졌다.
“뭐야, 단체로 왜 이래?”
분명 마이크를 옮길 타이밍이었는데 계속 내 앞에 멈춰 있었다. 마이크를 넘기지 않을 거냐는 제스처에도 고개를 저었다.
“어디 한번 계속 불러 봐!”
[Love is so bittersweet!
입 안 가득 씁쓸하게
퍼진 사랑에 난 또
정신 차리지 못하지]
주변의 환호성이 더해지면서 나도 이 상황을 더 즐기게 됐다. 그리고 혹시나 다음 타자인 선우 형으로 넘어가기 전에 고음 파트를 모두 끝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후렴구 고음이 한 번 더 남은 상태에서 선우 형으로 넘어가 버렸고, 모두 긴장된 눈으로 선우 형을 지켜봤다.
역시나 형은 고음 파트를 묵음으로 하며 유머로 승화했다. 토스맨은 그제야 안심이 된 듯 의기양양한 얼굴로 마이크를 가져갔다.
“그럼 그렇지!”
그리고 자신이 부르려던 찰나, 선우 형이 마이크를 낚아챘다. 마이크를 토스해 본 적만 있지, 뺏겨 본 적은 없는 토스맨이었기 때문에 놀란 토끼 눈이었다. 콘텐츠를 찍던 카메라맨도 토스맨의 얼굴을 찍어야 할지, 선우 형을 찍어야 할지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선우 형은 자신을 놀리던 토스맨의 당황스러운 얼굴이 재밌는 듯 씩 웃더니 바로 랩을 시작했다.
[Love! 첫맛은 끝없는 달달함
하나 그건 한 순간의 꿈
Pain! 매일 밤 꿈에 나타나
나를 괴롭히는 이 사랑이
여전히 좋아 정신 나간 듯이]
뜻밖의 반전에 환호성이 터졌다.
‘2절 시작이 랩인 걸 알고 있었구나!’
영어 가사를 모르는 곳은 아예 한국어로 개사를 해서 프리스타일로 진행했다. 랩 파트가 끝나자 바로 미련 없이 마이크를 토스맨에게 들이밀었다.
“토스맨이 토스당한 거야?”
“미쳤는데?”
토스맨이 당황해서 가사를 얼버무린 것은 처음이었다. 토스맨은 노래가 끝나고 우리를 인터뷰했다.
“동양인들 아니야? 어디서 왔어?”
“한국에서 왔어. 아, 남한이냐 북한이냐 묻지는 말아 줘. 남한에서 왔으니까.”
“영어를 엄청 잘하네? 어디서 배웠어?”
토스맨의 말에 나와 유현이 형, 윤빈 형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영어 잘하는 거 같아? 영광인데?”
“응, 너 발음이랑 악센트가 완전 미국인인데?”
“그야, 난 미국인이니까.”
“X친. 어쩐지 영어를 너무 잘하더라!”
자칫 기분이 상할 수 있는 질문에도 윤빈 형은 특유의 바이브로 여유롭게 넘어갔다.
“노래를 엄청 잘하던데? 가수야?”
“응. 한국에서 아이돌로 활동하고 있어.”
“그냥 해 본 말인데 진짜 가수라고?”
“크리드라는 그룹이야.”
“크리드? 위튜브에 치면 나와?”
“당연하지!”
그 자리에서 위튜브에 크리드를 검색한 토스맨은 뮤직비디오와 음악 방송 직캠의 조회수를 보고 흥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게다가 엔스타 라이브 댓글에는 크리드를 알아보는 국내, 해외 팬들의 댓글이 달리고 있었다.
-CRID we love you♡
-우리애들이 왜 여깈ㅋㅋㅋㅋㅋ
-이 소년들은 그냥 아이돌이 아닙니다 공중제비를 보여주십쇼!
-wowowowowowow
“미쳤는데? 그냥 데뷔한 가수가 아니라 완전 인기 아이돌이잖아?”
“에이, 아직 데뷔한 지 얼마 안 돼서 우리 모르는 사람도 많아.”
“이러니까 실력이 좋지! 맞다. 나 아까 고음 엄청 잘한 애랑 랩 하던 애도 인터뷰하고 싶어.”
내 옆에 있던 선우 형이 물었다.
“이번엔 뭐라냐?”
“형이랑 저 인터뷰하고 싶대요.”
“헐, 너까지만 하고 도망쳐야겠는데?”
토스맨이 내 쪽으로 걸어오자 선우 형은 슬금슬금 자리를 옮겼다.
“Love Pain 고음 파트를 한 번에 성공한 건 네가 처음이었어!”
‘말하는 게 왜 이렇게 오그라드는 드라마 대사 같지…….’
“고마워. 워낙 유명한 곡이고, 나도 이 노래 엄청 많이 들었거든.”
“뭐야, 너도 미국인이야?”
“아니? 어렸을 때 잠깐 살았어. 그다음부터는 독학했고.”
“중요한 걸 못 물어봤네, 이름이 뭐야?”
“문승빈이야. 크리드에서 보컬을 맡고 있어.”
“얘가 메인 보컬이야!”
윤빈 형이 옆에서 메인 보컬이라고 강조해 주자 토스맨은 딱 소리가 나도록 핑거 스냅을 하며 말했다.
“어쩐지!”
“너희 모두 영어 잘하는 거 같은데…….”
“선우야, 토스맨이 우리 모두 영어 잘하는 거 같대.”
유현이 형의 말에 선우 형이 다급하게 매니저 형을 찾았다.
“유현이 형! 매니저 형 연락돼요?”
“안 그래도 매니저 형도 라이브 방송 보고 여기로 오는 중이래.”
“아오, 저 남자 오기 전에 도망쳐야 하는데!”
선우 형은 핸드폰 전광판 앱을 사용해서 나에게 보여 줬다.
[매니저 형 올 때까지만 시간 좀 끌어 줘! 나 영어 인터뷰 못 해.]
‘매니저 형, 어디쯤 오고 계세요…….’
결국, 나는 토스맨을 붙잡고 온갖 TMI를 늘어놓았다.
“아, 알았어. 나 이제 랩…….”
“토스맨!”
“뭐야? 또?”
“우리 영상 꼭 올려 줘!”
“알았으니까 한마디만 더 덧붙이면 안 올릴 줄 알아!”
더이상 붙잡을 말도 없었던 참이었다.
‘이제 선우 형이 알아서 해결할 문제다…….’
그리고 선우 형의 뒤편에서 구원자를 발견했으니, 매니저 형과 피디님들이었다.
“애들아, 이제 가자!”
“형! 빨리!”
“미안, 우리 매니저가 왔네. 촬영 때문에 가 봐야겠어. 덕분에 오늘 정말 즐거웠어, 고마워!”
“랩한 애 인터뷰 해야 하는데!”
매니저 형의 손에 못 이기는 척 끌려가는 선우 형의 얼굴이 그제야 환해졌다. 선우 형은 황망하게 마이크를 내미는 토스맨에게 외쳤다.
“쏘리! 씨유어게인! 아이러브유!”
“얌전히 있어라, 선우야.”
“어휴, 진짜 형 조금만 늦게 왔어도 저 국제적 흑역사 만들 뻔했어요!”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네…….”
그때까지만 해도 뉴욕에 도착한 첫날부터 재밌는 일을 겪었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짧은 라이브의 파급력은 우리의 상상 이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