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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235화 (235/346)

235화

달려간 곳엔 한 부부가 서 있었다. 윤빈 형의 부모님이었다.

“톰!”

“엄마? 아빠!”

우리 가족과는 사뭇 다른 재회 장면이었다. 셋 다 눈물 범벅이었으니까. 멤버들은 언제 나타난 건지 내 옆에 모여 있었다.

“너무 감동적이다…….”

“나도 엄마 아빠 보고 싶어지네-”

“뭐야, 다들 알고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자리 만들어 주느라 힘들었다?”

“근데 너희 부모님 만나는 건 우리도 몰랐어.”

“맞아. 그건 완전 서프라이즈!”

그사이 최 피디님이 어깨동무를 하며 물었다.

“어때, 제주도보다 더 좋지?”

“어제 왜 그렇게 당황하시나 했는데.”

“나, 프로그램 유출이라도 된 줄 알고 조마조마 했었잖아.”

“감사합니다. 피디님 덕분에 선물도 받고, 추억도 되찾았어요.”

한참 동안 눈물바다였던 윤빈 형이 눈물을 닦고 멤버들을 소개했다. 그리고 나를 소개할 땐 승빈이 아닌, ‘리버’라 했다. 멤버들은 낯선 이름에 어리둥절해하며 내게 물었다.

“리버?”

“리버가 뭐야?”

“문승빈, 너 영어 이름이 리버야?”

“응.”

“리버? 그때 그 형?”

“지금껏 형인 줄 알았는데 사실 나보다 동생이었어!”

윤빈 형 어머니가 나를 형이라고 하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정말 신기한 인연이네! 항상 찾고 싶다고 했었잖아. 이렇게 다시 만나다니…….”

“저도 너무 신기해요.”

“그때 정말 고마웠어요.”

“저도 그날, 톰 형 덕분에 평생 남을 기억을 선물 받았어요.”

“톰이 한동안 리버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매일 이곳을 찾아오곤 했어요.”

“제가 아마 그 후에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서 한동안 이곳에 오지 못했어요. 그래서 다시 만나지 못했나 봐요.”

유창한 영어 대화 사이에서 선우 형은 가만히 눈동자만 굴리고 있었다.

“와, 승빈이 유학파인 게 처음으로 실감이 나네.”

“듣기 평가 하는 기분이야.”

“형, 영어 울렁증 생길 거 같아요.”

선우 형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박재봉과 강도현을 어깨에 끼고 자리를 옮겼다. 이후로는 부모님, 멤버들과 자유 시간을 보냈다. 이곳에 오면 꼭 하는 게 있었는데, 부모님과 사진 부스에서 사진을 찍는 거였다. 한국에 오고 나서는 찍지 못했으니 몇 년 만의 사진이었다. 인자하게 웃는 아빠, 아빠의 머리 위로 장난스럽게 브이를 하는 엄마 사이에서 겨우 얼굴을 들이미는 나.

“해빈이도 왔으면 좋았을 텐데.”

“바쁘다는데 어쩔 수 없지~”

“다음엔 꼭 네 명이 같이 와요.”

“좋지~”

다음으로는 멤버들과도 찍었다. 일곱 명이서 그 좁은 부스에 몸을 우겨 넣는 것부터 미션이었다. 예상한 대로 사진의 결과는 처참했다. 지운이 형은 겨우 손가락만 나왔으니까. 얼굴이 온전하게 나온 것은 유현이 형이 전부였다. 나머지는 머리통만 나오거나, 반쪽 얼굴만 나오고 난리도 아니었다.

스태프들까지 다 같이 즐긴 저녁 식사를 마지막으로 촬영이 종료되고, 근처에 위치한 새로운 숙소에 도착했다. 자연스럽게 나와 윤빈 형은 부모님들과 방을 쓰게 되었다. 유치원 때도 부모님과 한 방에서 잔 적이 없어서 그런가, 내내 어색했다.

“아들, 못 본 사이에 키가 더 큰 거 같다?”

“이제 거의 180일걸요?”

“그러게. 전에는 아빠 품에 쏙 들어왔던 거 같은데.”

“그럼 내가 도와주면 되니까~”

그러더니 부모님이 큰 원을 만들어서 나를 품에 가뒀다. 흡사 포위당하는 모양새였지만 나쁘지 않았다.

* * *

다음 날 아침엔 부모님들의 인터뷰 촬영이 있었다. 긴장한 아빠와 달리 엄마는 역시나 여유로워 보였다. 인터뷰를 위해 새로 산 옷이라며 카메라 테스트까지 하는 여유를 보이셨다.

“선배님, 이번 인터뷰는 제가.”

“그래, 윤 피디가 준비해 왔다고 했지?”

프로그램 촬영 시작 후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한 윤 피디가 처음으로 촬영을 주도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본능적으로 경계했다. 부모님 인터뷰이기 때문에 자극적이고 개인적인 질문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평범한 질문 몇 개를 하고 나니 슬슬 자극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승빈 씨가 1등 하실 거라고 예상하셨나요?”

“이런 건 굳이 답변 안 해도 되죠?”

역시 우리 여사님이다. 정중하게 웃고 있지만 더 말 시키면 가만 안 두겠다는 경고가 담긴 목소리였으니까. 최 피디님은 바로 윤 피디를 자리에서 밀어내고 본인이 앉았다.

“당연하죠! 잠깐 쉬었다가 이어 갈까요?”

“그게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피디님.”

촬영이 잠시 멈추고, 최 피디가 윤 피디를 불렀다. 촬영장 구석진 곳이었지만, 현장 모두가 들을 수 있는 정도였다.

“형식아, 지금 우리 프로그램이랑 그런 질문은 좀… 결이 안 맞지 않나?”

“…죄송합니다. 그치만 문승, 아니 승빈 군 서사나 프로그램 재미를 위해서…….”

“이러니까 자극적인 프로그램밖에 못 만드는 거지, 형식아.”

윤 피디는 자존심의 한계가 온 듯 손에 쥔 주먹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네, 선배님. 근데 저희 밖에 나가서 얘기하는 게.”

“난 그렇게 길게 말할 생각이 없는데?”

“…….”

“공중파 프로그램 하고 싶다며. 언제까지 자가 복제에 한순간의 프로그램 화제성을 위한 자극적인 걸로 밀고 나갈 순 없잖아?”

최 피디님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오랜 시간 롱런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건강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재미와 감동을 놓치지 않았고. 자극적인 콘텐츠가 판을 치고, 주류가 되어 왔다고 외치는 현대 사회에서 최 피디님의 예능은 휴식과도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윤 피디가 가장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특성들을 가지고도 최 피디님은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윤 피디도 반박을 못 하는 거지.

“네. 제가 부족했습니다.”

“배워 가면서 하는 거지~ 근데 다음 질문부터는 내가 한다?”

“…네.”

수군거리는 스태프들을 노려보며 윤 피디가 자리로 돌아갔다. 뒤에서 지켜보던 강도현이 귓속말을 했다.

“윤 피디가 저렇게 깨지는 날도 오네?”

“되게 신나 보인다?”

“그럼 안 신나겠냐?”

“사실 나도 통쾌해.”

플레이 온 아이스에 멘탈, 체력을 모두 갈아 넣으며 임한 보람이 있었다. 역시 강한 놈은 더 강한 놈으로 누르는 게 가장 통쾌하다. 앞으로도 최 피디님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자, 촬영 재개하겠습니다! 어머니, 괜찮으시죠?”

“그럼요~”

“승빈 군은 어떤 아들이에요?”

선글라스를 치켜올리던 엄마가 무심히 답했다.

“음… 절대 걱정 안 시킬 거라는 믿음이 있는 아들?”

예상한 대로였다. 나와 누나 모두 저런 믿음이 있으니까 홀로 한국에 보내고, 자유롭게 키우신 거겠지. 하지만 뒤에 이어진 말은 전혀 생각도 못한 답이었다.

“그래서 더 신경이 쓰이는 애예요, 승빈이는.”

“와… 제가 다 감동 받았는데요?”

“멘트 좋았어요?”

“어머니, 방송하셔야겠는데요?”

‘둘이 죽이 척척 맞네…….’

“장난이고. 진짜 그래요. 승빈이는 어렸을 때도 덤덤했어요. 잘 울지도 않고, 알아서 자기 밥그릇 잘 챙겼고… 조용한데 또 남들 앞에서 노래 좋아하는 거 보면 마냥 새침한 애도 아니었고. 근데 해빈이보다 신경이 많이 쓰였던 이유는 애가 도통 티를 안 내더라고요. 지 누나는 힘들면 바로 전화에 문자에… 근데 사실 부모한테는 그게 마음 편하잖아요. 곪기 전에 달래 줄 수 있으니까. 근데 승빈이는 그런 게 너무 없었지.”

“아들이 너무 착했네~”

“그쵸! 최 피디님도 아들 키우시나?”

“저는 아직 미혼.”

“어머, 미안.”

인터뷰 내내 하하호호 웃음이 끊기지 않았다. 인터뷰를 가만히 지켜보던 강도현이 물었다.

“두 분 원래 알던 사이야?”

“나도 좀 의심된다.”

“티키타카가…….”

그와 별개로 엄마의 답변은 지금껏 나의 생각과는 너무 달랐다.

“승빈아, 어떻게 생각해?”

“워낙 저 믿고 자유롭게 키우는 분이라고 생각해서…”

“어머니, 어떻게 된 건가요?”

“네가 먼저 말을 안 하니까 우리가 먼저 연락하면 부담스러워할 거라고 생각했지!”

“음, 승빈이가 잘못했네.”

“피디님?”

“이제 하루에 한 번씩 연락하라고 제가 만날 때마다 쪼아 댈게요.”

“하루에 한 번은 좀 그렇고, 한 달에 한 번은 하라고 해 주세요.”

“그전에 얼마나 연락을 안 하고 산 거예요?”

나는 이때다 싶어 강력하게 억울함을 호소했다.

“피디님, 너무하죠? 거의 반년에 한 번 연락 주신다니까요?”

“그건 승빈이 네가 먼저 연락을 해야지-”

아군이었다가 적군이었다가. 그래도 부모님의 진심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관심 없는 듯 해도 다 알고, 궁금해 하셨구나.

윤빈 형 부모님 인터뷰는 물 흐르듯이 진행됐다. 애정이 뚝뚝 떨어지는 답변에 윤빈 형은 또 눈물을 고였고, 지운이 형이 말했다.

“이제 우리 팀 최대 울보, 재봉이 아니고 윤빈이야.”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변과 함께 촬영이 끝났다.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갈 부모님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한국 가서 연락할게요.”

“편할 때 해~ 아까 인터뷰 때문에 괜히 눈치 보지 말고.”

“정말 자랑스러워, 아들.”

“아빠도 건강 잘 챙기고요.”

“너도 잘 먹고 다녀. 얼굴이 반쪽이 됐어-”

끝까지 담담할 줄 알았다. 하지만 오늘 헤어지면 최소 몇 달, 길게는 몇 년 동안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아쉬움이 밀려왔다. 아빠의 눈에도 눈물이 맺혀 있었다. 나는 말없이 두 분을 한 번씩 안아 드렸다. 배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지운 형이 말없이 어깨동무를 했다. 나도 모르게 텐션이 가라앉은 게 눈에 보였나 보다.

“다음번엔 너희 집에도 우리 초대해 줘!”

“당연하죠. 마당에서 바비큐 파티해요.”

“기대되는데? 설날에 어머니가 보내 주신 음식 너무 맛있게 먹었거든.”

일상적인 말이었지만 위로가 됐다. 언제든 다시 만날 기회가 있으니까. 회귀 전에는 몰랐던 그동안의 오해를 풀고, 진심을 전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꿈과 같은 이틀이었다.

“여러분, 저희는 이제 뉴욕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저희 프로그램 이름이 뭐였죠?”

“환상여행이요!”

“뉴욕부터는 이름이 조금 달라질 예정이니, 다들 기대해도 좋습니다.”

“이름이요? 프로그램 이름을 바꾸는 거예요?”

“이름에 그냥 줄 하나 그을 거예요.”

“줄이요?”

“도착해서 알려 드릴 테니 지금은 비밀입니다.”

수상한 말을 뒤로 하고 뉴욕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진 후였다. 대충 숙소에 급하게 짐을 풀고, 근처 한식집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미국에 온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한식을 찾던 멤버들 맞춤 식사였다.

“와, 살면서 먹은 김치찌개 중에 제일 맛있는 거 같아.”

“국물 먹으니까 좀 살 거 같다.”

“오늘 일정은 이대로 끝인 건가?”

본격적인 촬영은 내일부터라 짧지만 진짜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아무래도 나와 윤빈 형이 있다 보니 다들 걱정 없이 우리만 두고 숙소로 가셨다. 자체 콘텐츠 촬영을 위해 매니저 형 두 분만 남았기에 편한 마음으로 타임스퀘어로 향했다.

“역시 뉴욕하면 타임스퀘어지.”

“헐, 대박. 저 진짜 꼭 가 보고 싶었는데!”

항상 사람들로 북적이는 타임스퀘어였지만, 평일 저녁인 걸 감안해도 상당한 인파가 모여 있었다. 한쪽에만 유독 사람들이 모여있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우리도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 무슨 버스킹이라도 하나 본데?”

“와우! 저 사람, 그 사람이에요. 토스맨-”

“토스맨?”

“요즘 인기 있는 숏폼 크리에이터인데, 여기서 보다니 신기하네요.”

오직 윤빈 형만이 그가 누구인지 알아봤고, 요즘 가장 핫한 쇼츠 위튜버라는 형의 설명에 우리도 잠깐 보고 가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 중 누구도 그 가벼운 발걸음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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