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엄마, 아빠?”
옆에 있던 최 피디님은 싱긋 웃으며 신호를 줬고, 뒤를 돌았다. 익숙한 얼굴. 부모님이었다.
“아들, 오랜만이다~”
“우리 아들!”
상상도 못 한 부모님의 등장이었다. 미국에서 촬영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촬영이 끝나고 시간이 남는다면 부모님을 만나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실현될 줄이야.
나는 한걸음에 부모님께 달려갔다. 웬일로 엄마도 두 팔을 벌려 나를 품에 안아 주셨다. 평소였다면 애가 주책이라며 아빠에게 밀었을 텐데, 아무래도 요 며칠 건강으로 걱정시켜서 그런 거겠지.
“너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
“몸은 괜찮고?”
“네. 이제 아무렇지 않아요.”
무심하지만 걱정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회귀 전의 나였다면 이 분위기마저도 어색해서 지금보다 더 뚝딱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다. 회귀는 나에게 아이돌로서의 두 번째 기회를 준 것만이 아니다. 아들로서 도리를 다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나는 일부러 더 부모님의 품을 찾았다. 두 분은 처음에는 얘가 왜 이러냐는 반응이었지만, 못 이기는 척 더 힘을 주어 안아 주셨다. 감동적인 가족 상봉 뒤로 멤버들은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있었다.
“맞다. 엄마, 아빠, 여기는 크리드 멤버들. 유현이 형, 지운이 형, 재봉이, 도현이, 선우 형, 윤빈이 형이에요.”
“당연히 알지! 내가 크리드 멤버들 이름도 못 외웠을까 봐?”
“엄마 지난번 영통 때 지운이 형보고 유현이 형이라고… 읍!”
“얘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안녕하세요! 크리드입니다-”
“승빈아, 너도 가서 같이 인사해. 우리 아이돌 아들 인사 좀 받아 보자. 그 시그니처 포즈도 있잖아. 손 이렇게 하는 거.”
점점 민망함이 밀려왔지만 큰마음 먹고 멤버들 사이로 들어갔다. 그리고 유현이 형의 신호에 맞춰 구호를 외쳤다.
“본 투 샤인! 안녕하세요, 크리드입니다!”
아빠는 흐뭇하게 웃으셨고, 엄마는 숨이 넘어가랴 까르르 웃으셨다. 두 귀가 빨개질 정도로 민망하고 어색했지만, 회귀 전에는 보여 드린 적 없는 아이돌로서 성공한 모습을 보여 드릴 수 있어서 감격스러웠다.
티벡스 시절에는 일부러 연락하지 않았다. 데뷔했다는 소식 말고는 아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기사로만 접하셨겠지. 아무리 방목형 양육을 하셨다고 한들 걱정을 아예 안 하실 순 없었을 것이다. 배우로 잘 풀리고 나서는 바빠서 연락을 못 했다. 신인상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일주일 뒤에 발견했을 때,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나에겐 자기 합리화를 위한 핑계였다.
‘지금 생각하면 진짜 불효였지.’
“이러니까 진짜 아이돌 같다, 아들!”
“저 이제 아이돌 맞아요-”
“그저 장소 안 가리고 아무 데서나 노래 부르던 아기였는데 말이야.”
갑자기 훅 들어오는 과거 얘기에 나는 연신 엑스 표시를 했지만 이미 늦었다.
“승빈이 형이 그랬어요?”
“어휴, 말도 마~ 등굣길에도 노래를 어찌나 부르던지! 해빈이가 버리고 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잖아?”
멤버들은 처음 듣는 과거 얘기가 흥미로운지 눈을 반짝이며 엄마의 말에 집중했다.
“아, 엄마……!”
“그래서 아이돌 할 거라며 한국 간다고 했을 때 아, 얘는 노래할 운명인가 보다 했지. 지금도 그러니, 승빈아?”
“당연히 아니죠! 내가 애도 아니고.”
“어쭈, 다 컸다 이거지?”
엄마가 볼을 꼬집었다. 아들이라고 살살 봐주는 분이 아니어서 눈물이 고일 정도였다.
“아, 아파요, 엄마-”
아빠는 옆에서 안절부절못한 채로 엄마의 손을 떼어 내지는 못하고 양손을 휘적이고 계셨다.
“여보, 얼굴에 자국 남겠다.”
“아, 맞다. 우리 아들 아이돌이지. 얼굴이 생명인데 쏘리~”
“근데 어떻게 여기 올 생각을 하셨어요?”
“최 피디님한테 연락 받았지.”
“최 피디님이요?”
최 피디님을 찾아보니 스태프들과 무언가 얘기를 나누는 듯했다.
“나중에 따로 감사 인사 꼭 드려, 알겠지?”
“네.”
“그나저나 캐서…….”
“승빈아, 여기 오랜만이지? 뭐 하고 놀까?”
엄마가 아빠의 말을 급하게 끊는 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듯했다.
“애들아, 너희도 같이 와! 아줌마 아저씨가 맛있는 거 사 줄게~”
“감사합니다!”
부모님이 향한 곳은 츄러스 가게였다. 어렸을 때 자주 놀러와서 먹던 곳이었는데, 아직도 그 자리에 있었다. 부모님이 잠시 자리를 비우고 멤버들도 짝을 지어서 각자 구경하고 싶은 곳을 향했다. 가게 앞에는 나와 윤빈이 형만 남았다.
“형도 여기 자주 와 봤겠네요?”
“응. 주말이면 거의 가족들이랑 놀러 왔었어.”
“저는 여기 오면 예전에 어떤 길 잃은 형을 부모님한테 데려다준 기억이 나요.”
“그래? 신기하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형도 길 잃은 애 도와준 적 있구나.”
츄러스를 오물거리던 윤빈 형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답했다.
“아니? 내가 길을 잃어버렸는데?”
순간 오랜만에 상태창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잊고 있었다. 상태창은 나와 회귀 전 인연이 있는 사람의 비밀이 풀리면 작동했었지?
‘설마…….’
예상도 못한 타이밍에 상태창이 반응해서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 갔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어떤 형이 부모님한테 데려다줬어.”
“…….”
“진짜 오랜만이다. 근데 아직도 이름 기억해. 리버였어.”
툭, 츄러스를 든 손에 절로 힘이 빠졌다.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이었다. 맥없이 바닥에 떨어진 츄러스를 윤빈 형이 주웠다. 소름끼치도록 익숙한 장면. 그렇게 아주 오래 된, 먼지 쌓인 기억을 마주했다.
* * *
시간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부모님은 그때도 지금과 다를 바 없이 방임형 육아를 하시던 분들이었다. 게다가 거의 매주 오는 놀이동산은 눈 감고도 어디에 어떤 놀이 기구가 있고, 가게가 있는지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그날도 혼자 이곳저곳을 누비던 중 관람차 앞에서 울고 있는 남자애를 봤다. 키도 나보다 한 뼘이나 컸고, 덩치도 또래보다 큰 남자애였다. 그런데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길래 호기심에 다가갔던 거 같다.
“이름이 뭐야?”
“톰.”
지금 생각하면 내가 바보였다. 투마월 마지막 방송 날 윤빈 형의 영어 이름이 톰이라는 걸 알았는데도, 흔한 이름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왜 울어?”
“길을, 잃어서 흑, 부모님을 못 찾겠어…….”
“뭐야, 그거 때문에 우는 거야? 다 컸잖아!”
“하지만…….”
그땐 겨우 길 잃었다고 우는 걸 이해를 못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윤빈 형도 겨우 9살이었는데 너무 냉정한 반응이 아니었나 후회가 되기도 하네. 아무튼 어이가 없어서 허리춤에 손을 갖다 대던 중에 쥐고 있던 츄러스를 떨어트렸다.
“…너 때문에 떨어트렸잖아!”
윤빈 형은 퉁퉁 부은 눈으로 츄러스를 줍더니 자신의 것을 내게 내밀었다.
“내, 내 거 줄게.”
다 먹는 건 8살이 생각해도 비양심적이라고 생각했는지 반으로 나눠 먹었던 것 같다.
“걱정 마. 내가 찾아 줄게! 엄마 아빠 이름이 뭐야?”
“엄마랑만 왔어. 캐서린이야, 우리 엄마 이름.”
아빠가 말하려다가 엄마가 막은 이름. 캐서린, 윤빈 형의 어머니였다. 그렇게 놀이공원 이곳저곳을 배회하고 다녔다. 중간중간 놀이 기구를 타기도 했고. 윤빈 형은 그때도 무서운 건 질색하는 형이었다. 그래서 천천히 운행하거나, 무섭지 않은 놀이 기구만 탔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을 지금까지 못 알아본 게 너무 억울하네.’
자연스럽게 윤빈 형은 나를 형이라고 불렀다. 나도 당연히 나보다 덩치가 큰 동생이라고 생각해서 형 노릇 좀 했었다. 집에서도 막내였고, 누나만 있어서 남자 형제를 가지는 게 그땐 꿈이었거든.
“형은 근데 몇 살이야?”
“너는?”
“난 9살.”
그때 정말 당황했지. 먹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떨어트릴 뻔했으니까. 그래도 지금까지 형처럼 군 게 민망하고 아까워서 계속 나이를 속였다. 10살이라고 하니 역시 형이라서 씩씩한 거라며 지금처럼 헤실헤실 웃었다. 결국 형의 어머니는 찾았다. 눈물의 상봉을 하는 모자를 두고 나는 자리를 떠났다. 너도 부모님께 데려다주겠다는 윤빈 형 어머니의 말에 덤덤하게 답했던 거 같다.
“저기 센터 가서 엄마 아빠 찾게 방송해 달라고 하면 돼요.”
애초에 윤빈 형 어머니를 찾을 가장 빠른 방법은 알고 있었지만, 형이랑 노는 게 재밌었다. 내 노래를 끊지 않고 박수 쳐 가면서 들어 줄 사람이 필요했던 거 같기도 하고.
* * *
“그때 그 형, 노래 정말 잘했는데.”
“…….”
“너희 어머니가 너도 막 길거리에서 남 눈치 안 보고 노래 불렀다는 거 듣는데, 그 형 생각나더라고. 그 형도 나 데리고 다니면서 계속 노래 불렀어. 엄마를 못 찾아서 내가 울려고 하면 울지 말라고 노래도 불러 주고.”
“리버 형은 꼭 가수해야겠다!”
이 형은 알까? 내 노래에 그렇게 기뻐하고, 칭찬해 주던 사람은 본인이 처음이었다는 것을. 나는 그 기억으로 노래를 하며 살고 싶다는 큰 꿈을 품게 된 것도.
윤빈 형은 그때도 지금처럼 리액션이 풍부한 형이었다. 노래 하나만 불러 줘도 박수를 치고 온갖 감탄사를 연발했었지. 그래서 난 신이 나서 더 크게 노래를 불렀고. 지금 생각하면 웃음만 나온다. 그때 팝송만 부른 게 아니라 한국 가요도 엄청 불렀거든.
“그 형 때문에 케이 팝 처음 들었어.”
“와…”
“그 전엔 한국 노래, 드라마, 영화 다 안 봤었어. 한국인이라고 놀리던 애들 많았거든.”
나도 자동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해외 사는 한국인이라면 밥 먹듯이 당하는 게 인종 차별이니까. 나도 케이 팝 부르고 다니다가 대놓고 내 앞에서 눈 찢고, 칭챙총 하던 놈들 수도 없이 많이 봤거든. 물론 난 무시하고 부르고 다녔다.
“형, 그럼 투마월 때 전우치도…….”
“응. 한국 노래에 관심 생기니까 자연스럽게 드라마랑 영화도 찾아보게 된 거지.”
나비 효과라는 게 얼마나 강력한지 실감했다. 머리끝까지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무슨 노래인지 기억해요?”
“당연하지, 그 형이 나보다 키가 좀 작았는데 막 안무도 따라 하면서 알려 줬어. 그 노래 제목이…….”
“원더레인 레이스.”
“원더레인의 레이스!”
내 입에서 원더레인의 레이스가 나오자 윤빈 형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뭐, 뭐야? 어떻게 알아?”
“나이 속여서 미안해요, 형.”
“응?”
아직 상황 판단이 안 된 윤빈 형은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서 굳어 있었다. 하긴, 10년 동안 형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사실 동생이었고, 같은 그룹으로 활동하게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냐고.
“…진짜?”
“응. 진짜.”
“말도 안 돼!”
“나도… 나도 진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형이 토미가 맞는 거 같아.”
“세상에!”
윤빈 형은 특유의 커다란 리액션과 함께 믿을 수 없다며 오 마이 갓을 외쳤다. 그리고 때마침 엄마의 외침이 들렸다.
“리버! 윤빈이 선물 왔다고 알려 줘!”
“진짜 리버 형… 아니, 리버가 맞아?”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싱긋 웃었다.
“선물이 왔다는데 가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