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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232화 (232/346)

232화

“와, 문승빈, 이제야 오냐?”

“승빈이가 꼴지네 꼴지야.”

“승빈아, 기다리다가 해 지는 줄 알았다.”

결국 미션 장소에 가장 마지막에 도착한 건 우리 방이었다. 그리고 하필이면 1등으로 도착한 팀이 강도현네라서 아주 신나셨다 지금. 착한 윤빈이 형이 옆에서 말리려고 해도 아주 핸들이 고장난 에잇톤 트럭처럼 폭주를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피디님, 기상 미션 알고 계셨죠?”

“당연하지!”

“근데 지금 이 상황은 뭔가요?”

헐레벌떡 약속 장소에 도착한 우리를 보고 모든 스태프가 웃음을 참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최 피디님의 악성 곱슬머리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떠올라 있었으니까. 저 폭탄 머리만 아니었어도 피디님이 제작진과 짜고 친 게 아닌가 의심할 뻔했다.

“아니, 내가 뽑힐 줄은 몰랐지, 나도. 그랬으면 선착순은 절대 안 했지.”

“아~ 본인은 당연히 안 할 거라서 이렇게 짜셨다?”

“와- 우리 승빈이, 못 본 사이에 사람 모함하는 실력이 늘었네?”

투닥거리는 우리를 보고 다들 꽤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얼핏 카메라가 클로즈업 들어오는 게 보일 정도였다. 맞는 말이긴 했다. 세상 어느 피디가 자기가 기상 미션을 할 줄 알았겠냐고.

“자, 마지막으로 도착한 팀은 이쪽으로 와 주세요.”

“기상 미션의 상품은 바로 의상 선택권이었습니다!”

“의상이요? 무슨 의상?”

다른 멤버들도 처음 듣는 얘기인 듯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먼저 도착한 방부터 오늘 입고 다닐 의상을 고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의상 콘셉은 아직 비밀입니다!”

잔뜩 신난다는 표정으로 윤 피디가 꺼낸 것은 바로 숫자가 적힌 카드였다. 총 4가지 카드에는 [-500, -40, 0, +500], 의미를 알 수 없는 플러스마이너스 기호와 숫자가 적혀 있었다.

“숫자를 고르는 건가요?”

“숫자가 의상이랑 관련된 건가요?”

“같은 방은 같은 걸 고르는 건가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질문이 쏟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4가지 중 무엇도 의상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였다.

“질문은 금지입니다. 1등인 윤빈, 도현 팀부터 먼저 고르겠습니다.”

“형, 뭐 고를까요?”

“대체 이게 무슨 뜻일까?”

“플러스 표시가 있는 게 좋은 거 아닐까요?”

“그런가……?”

“하나밖에 없으니까 분명 좋은 거일 거 같아요! 저희는 [+500] 이걸로 하겠습니다!”

결국 강도현의 의견대로 첫 팀은 [+500]을 골랐다. 다음은 2등으로 들어온 유현이 형과 선우 형 팀. 둘은 또 색다른 추측을 했다.

“이거 숫자가 무게인 거 아닐까?”

“오, 그럴 듯한데요?”

“근데, 그럼 0이 뭐지?”

“가벼운 순으로 한 거 아닐까요? 아님 0이면 아무것도 안 입는 건가.”

“설마-”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절대 0은 선택하지 않는 유현이 형이었다. 고민 끝에 결국 [-500]을 선택했다. 마지막 선택자는 재봉이와 지운이 형 팀. 이쪽은 이미 답이 정해져 있었다.

“형, 들었죠? 우린 0만 아니면 되는 거예요!”

“0도 괜찮을 거 같기는 한데…….”

“형, 빨가벗고 싶어요?”

“아니, 마이너스가 있는데 0이 그럴 거 같지는 않아.”

“그건 그렇네요. 그래도 전 [-40] 해 보고 싶어요! 혼자 숫자가 애매하잖아요.”

“그래, 난 뭐든 상관없어.”

이유는 달라졌지만, 결국 박재봉이 원하는 대로 카드를 선택했다. 뻔한 결과였다. 지운이 형이 재봉이를 이길 리가 없었으니까. 막내 온 탑이 따로 없었다.

“그럼 승빈 씨는 자연스럽게 남은 카드를 가지게 됩니다.”

그렇게 내 손에 넘겨진 [0] 카드. 모두 카드를 가지고도 대체 이 숫자의 정체가 뭘까 아직도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 듯했다.

“여러분이 선택한 카드는 바로 각 년도를 의미하는 카드였습니다!”

어느새 자리를 옮기신 건지 자연스럽게 스태프 쪽으로 이동한 최 피디가 멘트를 이어 갔다.

“다들 지금이 몇 년도이신지 아시죠?”

“당연히 20XX년이잖아요!”

“와, 설마?”

“네, 맞습니다. 각자 카드에 적힌 숫자를 더하거나 빼면 답이 나오겠죠?”

상상치도 못한 결과였다. 500년을 빼면 조선시대일 거고, 40년을 빼면 7080 의상이려나.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다 보니 다들 같은 포인트에서 의문을 품었다.

“그럼 [+500]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좋은 질문입니다! 미래에 우리는 뭘 입게 될까요?”

최 피디님의 손짓에 맞춰 미션 장소 한쪽에 덮여 있던 거대한 천이 벗겨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등장한 옷은 정말 상상 그 이상이었다.

“아, 피디님, 제발-”

“지금 저게 다 뭐예요?”

“피디님, 저 미국 처음 오는 거란 말이에요…….”

미래를 예상한 멤버들 사이에서 나만 웃는 얼굴이었다.

“자, 오늘의 주인공. 미래 도시에 가게 될 두 분, 앞으로 나와 주시죠!”

“와, 우리가 미션 1등이었는데!”

“…….”

강도현은 온몸으로 억울함을 표현하고 있었고, 윤빈 형은 이미 해탈한 듯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최 피디님 손에 들린 의상은 바로 우주복이었다.

“여러분의 편의를 위해 헬멧은 필수 착용은 아닙니다.”

“와…….”

“물론 쓰고 싶으시다면 당연히 쓰는 건 자유입니다.”

저걸 한국에서부터 들고 온 건지 제법 본격적인 형태의 우주복이었다. 둘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우주복을 건네받았다. 얼핏 봐도 무게감이 상당해 보였다.

“[+500]을 봤으니 다음은 극과 극을 먼저 봐야겠죠? [-500]을 뽑은 팀은 앞으로 나와 주세요.”

이번 팀도 이미 자신들의 미래를 예상한 듯했다. 최 피디님이 넘겨받은 옷이 바로 한복이었으니까.

“여러분은 시간 여행을 한 겁니다. 말투와 행동 모두 옷에 맞춰서 해 주시는 게 이 의상의 포인트입니다.”

“유현이 형은 그냥 평소처럼 말해도 되겠다!”

“그러니까. 형은 원래도 옛날 사람처럼 말하니까-”

박재봉과 강도현이 그새를 못 참고 또 형을 놀리기 시작했다. 박재봉은 그렇다 치고 강도현은 이미 제가 입을 우주복은 잊은 듯했다.

“도현아, 우주복 헬멧 고정시켜 버리기 전에 조용히 하자?”

“와, 유현이 형 흑화했다.”

“도련님이 그런 말 쓰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재봉이는 한국 돌아가면 형이랑 운동 가자?”

“잘못했어요.”

마법의 단어였다. 상대적으로 체력이 약한 나와 박재봉을 데리고 운동을 간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박재봉은 정말 반쯤 기어서 집에 왔다. 도저히 걷지 못하겠다며 숙소 계단을 기어서 올라가려는 걸 말린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뒤로 유현이 형이 운동의 운 자만 꺼내도 도망 다니는 박재봉이었다.

“그래도 한복이 주인 찾아갔네.”

“맞아, 유현이 형이 입으면 거의 뭐 한복 홍보 대사일 듯.”

“선우 형이 큰일났지 뭐.”

“형, 얌전한 말투 쓰려면 말 못 하는 거 아니에요?”

역시나 선우 형의 표정은 당황스러워 보였다. 의상이 문제가 아니었다. 도련님 말투라니, 선우 형과 그렇게 안 어울리는 단어가 있을 수가.

“선우 형 오늘 묵언 수행 하겠다.”

자신의 미래를 모르고 까불거리는 박재봉이었다.

“[-40]팀 의상은 바로 이겁니다.”

최 피디님이 꺼낸 다음 의상은 바로 청청 의상이었다.

“오, 생각보다 무난한데요?”

“옷 예쁜데요?”

다들 생각보다 멀쩡한 의상에 희비가 갈리던 중, 최 피디님이 쇼핑백에서 뭔가를 추가로 꺼내 왔다.

“말씀드렸죠? 여러분은 지금 시간 여행 중인 겁니다. 그럼 옷만 입어서는 안 되겠죠?”

그리고 등장한 건 바로 찰랑거리는 바가지 머리 가발. 완벽하게 복고풍 그 자체인 헤어스타일이었다.

“와…….”

“나, 저런 머리 우리 아빠 옛날 사진에서나 봤어.”

“저거 완전 재봉이 거네.”

“무슨 소리예요! 저랑 완전 안 어울리거든요?”

“피디님, 그런데 왜 가발이 하나밖에 없나요?”

“아, 다른 한 분은 왁스로 깐 머리를 하게 될 겁니다.”

“헐…….”

“둘 중 무엇도 포기할 수 없잖아요.”

하여간 이상한 부분에서 준비성이 철저한 분이었다. 지운이 형은 역시나 재봉이에게 선택권을 넘겨줬고, 재봉이는 한참 고민하다가 바가지 가발을 선택했다. 예상되는 결과였다, 깐 머리를 별로 안 좋아하는 데다가 왁스라면 기겁하는 애였으니까.

“지운이 형, 제가 형 살려 준 거예요.”

“그래, 고맙다, 재봉아.”

물론 지운이 형에게 제일 다행인 결과였다. 형과 바가지 머리……? 생각만 해도 끔찍했으니까.

“승빈 씨만 남았네요. 분명 승빈 씨가 꼴찌였는데 말이죠.”

“저는 어떤 옷을 입게 되나요?”

“승빈 씨는 20XX년의 옷을 입게 될 건데요.”

“와, 저게 상품 아님?”

“바로 현대인의 옷인 정장입니다!”

“뭐야, 승빈이 형 혼자 멋있겠네.”

“근데 혼자 정장 입고 있는 것도 웃기지 않을까?”

최 피디가 건네준 옷은 정말 정석 그대로의 정장이었다. 그동안 여러 종류의 슈트를 입기는 했지만, 대부분 무대 의상이었던지라 그 화려함이 달랐다. 그런데 오늘 의상은 정말 회사원이 출근할 때 입을 법한 기본 정장 형태라 오히려 색다르게 느껴졌다.

“승빈 씨는 이제 바쁜 도시의 회사원입니다. 그러니 이 사원증과 안경을 같이 착용하실 거예요.”

이어서 건네준 사원증에는 제법 그럴싸하게 사진과 회사명이 들어가 있었다. 비록 씨넷 소속인 게 맘에 안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진짜 같은 사원증이 신기했다. 지난 생에도, 이번 생에도 만져 볼 일 없는 물품이었으니까.

“오, 안경 승빈 대박인데-”

“팬분들이 좋아하시겠다.”

“승빈이 안경 쓰면 진짜 느낌 다르긴 해.”

“그런데 피디님, 정장이 두 벌이네요?”

“그렇죠? 팀당 두 명씩이라 두 벌씩 준비했으니까요.”

“오, 그러면 나머지 한 벌은 당연히 피디님이 입으시는 거죠?”

“…응?”

오랜만에 보는 최 피디님의 당황한 표정이었다. 언제나 여유만만한 모습이었기에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에 모두의 이목이 끌린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카메라 담당 스태프들마저 옆으로 고개를 빼서 피디님 얼굴을 보려고 난리였다.

“저희 둘이 한 팀 아니었나요?”

“아니, 팀은 아니고 그냥 룸메이트였던 거지.”

“와… 그럼 저만 혼자 이걸 입으라는 거죠? 다들 둘씩 입는데 저.만.혼.자?”

일부러 더 서운하다는 듯 연기했다.

“와, 승빈아. 그 연기력을 지금 여기서 쓴다고?”

“연기라뇨… 저는 정말 진심을 말했을 뿐인걸요.”

“이건 재능 낭비 수준도 넘었다, 진짜.”

어떻게든 주제를 돌리려는 피디님이었지만 택도 없었다. 다들 그새 최 피디님께 한 번씩 놀림 당했던 전적이 있는 건지, 모든 스탭들이 합심해서 야유와 함께 분위기를 몰아갔다.

“피디님, 룸메이트를 버리시는 거예요?”

“승빈 씨만 혼자네.”

“저희가 무거워도 옷 두 벌이나 챙겨 왔는데…….”

“알겠어! 입으면 되잖아, 입으면!”

결국, 최 피디님의 KO 패였다.

“그럼 다들 의상 갈아입고 오실게요!”

다들 벌칙이나 다를 바 없는 의상을 들고 가는 뒷모습이 처량하기만 했다. 간단한 옷과 소품이라 먼저 갈아입고 나와서 다른 멤버들을 기다렸다.

그리고 등장하는 화려한 실루엣. 첫 주자부터 강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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