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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229화 (229/346)

229화

서바이벌도 끝났고, 걱정하던 팬들을 위한 브이앱을 한 지도 벌써 며칠이 지났다. 오랜만에 찾아온 여유로운 일정에 다들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또 컴백을 준비해야 하는지라 이런 느슨함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했다.

“얘들아, 좋은 소식이 있어.”

“뭔데요, 형?”

“뭔데 이렇게 비장하게 말해요.”

그렇게 여느 때와 같이 연습실에 다 같이 모여 있었는데, 사뭇 비장한 모습으로 매니저 형이 등장했다.

“너희 단체 여행 간다는 거 일주일 휴가 받아 왔다!”

“헐, 대박!”

“일주일이요?”

“진짜 자유로운 휴가인 거예요?”

“아니, 선우 너는 뭘 하려고-”

“에이- 그냥 궁금해서 그러죠.”

비장하게 말할 만큼 중요한 내용이기는 했다. 여러모로 힘겨웠던 서바이벌에 대한 보상으로는 조금 모자라긴 했지만, 그래도 기대했던 것보다 빠르게 결정된 휴가였다.

“근데 회사에서도 제안한 게 하나 있어.”

“뭔데요?”

“숙소나 이런 거 다 회사에서 지원하고-”

“네?”

“와, 미쳤다!”

“지원하고……?”

회사의 지원이라는 소리에 다들 신난 눈치였지만, 역시나 핵심을 파악하는 건 유현이 형이었다. 저 뒤에 이어질 말이 대충 예상이 갔다.

“딱 이틀만 화보 찍는 게 어떻겠냐고-”

“화보요?”

“갑자기 무슨 화보를요?”

아니, 전혀 예상 못한 내용이었다. 끽해 봐야 자컨 촬영이나 리얼리티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화보라고?

“상반기 중에 너희 팬 미팅 계획 중이거든.”

“팬 미팅이요?”

“대박. 언제요?”

“어디서 하는데요?”

“팬 미팅 기간은요? 이틀? 삼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질문 폭탄이 시작되었다. 그래, 질문이 없으면 크리드가 아니지. 순식간에 넋이 나간 매니저 형이 입을 떼려다 말았다. 무슨 말부터 답해야 할지 정신이 없어 보였다.

“자, 다들 조용. 하나씩 물어봐야지. 형, 팬 미팅 관련해서 어디까지 정해진 거예요?”

역시 상황을 정리하는 건 유현이 형. 덕분에 정신 차린 매니저 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막 얘기가 나온 거라서- 일단 일정은 학생들 시험 기간 피해서 5월쯤으로 생각 중이긴 한데, 지금 장소 대관 먼저 알아보고 있어.”

“기간은요?”

“기본적으로는 주말 이틀 예정이고, 대관하는 곳에 따라서 금요일까지 할 수도 있는데, 아마 금요일은 리허설 때문에 어려울 가능성이 크지?”

“그래도 많이 했으면 좋겠다-”

당장 다음주에 팬 미팅을 하는 것처럼 박재봉이 설레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팬 미팅이라니, 듣기만 해도 가슴 떨리는 단어이긴 했다.

“아, 그런데 그게 화보랑 무슨 연관이 있어요?”

팬 미팅에 팔린 정신을 겨우 붙잡고, 매니저 형에게 질문했다. 애초에 화보 얘기가 먼저였는데 말이지.

“맞다, 화보!”

아니나 다를까 다들 화보는 순식간에 까먹었던 모양이었다.

“아, 그래서 팬 미팅 포스터도 찍을 겸 굿즈로 화보집을 내려고 하나 봐.”

“화보집이요? 와, 저 화보집 찍어 보고 싶었는데-”

“근데 화보를 찍을 만한 곳이 있어요?”

“그러게요. 저희 어디 가요?”

“이게 제일 중요한 얘긴데, 제주도 어떠니, 얘들아?”

“제주도요?”

“지금 어떠냐고 물어보신 거예요?”

“당연히 좋죠!”

“저희 제주도 가요?”

제주도라는 단어에 다들 난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단체여행이라고 해도, 강원도 정도를 생각했는데 제주도라니. 일단 비행기를 타고 갈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으니까. 코어가 그래도 돈을 좀 쓰려나 보네. 그동안 우리 굴린 게 양심에 찔리긴 했나 보다 싶었다.

“해외로 나가면 좋긴 한데, 그건 곧-”

“네? 해외요?”

“아니, 아니야. 잘못 말한 거야.”

“잘못 말한 게 아닌 거 같은데요? 우리 해외 가요?”

“너희도 차차 해외 진출하겠지. 그래서 말한 거야. 다른 거 없어, 없어!”

‘뭐지, 조만간 해외에 나가는 스케줄이 있는 거 같은데……?’

횡설수설하는 매니저 형이 수상했지만, 다들 제주도에 꽂혀서 나 말고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거 같았다. 금세 대화 주제가 다시 제주도 여행으로 돌아왔다.

“그럼 일주일 내내 제주도인 거예요?”

“어. 도착해서 쭉 놀고, 마지막 이틀만 촬영할 거야.”

“이거 약간 간식 준다고 꼬셔서 병원 데려가는 거 같은데-”

“막상 가면 일주일 내내 일하는 거 아니에요?”

“너희 나를 뭘로 보고!”

“엥, 형 말고 회사를 뭘로 보는 거죠~”

“그건 맞아.”

“네?”

“…아니, 뭐라니. 나는 더이상 노코멘트 하겠어.”

“형, 완전 진심 나왔다 지금.”

“쉿! 다들 비밀이야, 이거.”

순간적으로 자기도 모르게 공감하고는 당황한 매니저 형의 표정에 다들 빵 터졌다.

‘역시 형도 직장인이었구나…….’

코어 잘하자. 팬들이 매일 하는 말이 백번 이해 갔다.

* * *

휴가와 화보 촬영 스케줄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아무리 봐도 이미 다 정해 놓고 통보한 거 같단 말이지. 매니저 형이 휴가를 허락받았다고 말한 그날로부터 겨우 이틀 지났는데, 우리는 지금 김포공항이었다.

“아니, 다들 어떻게 알고 오신 거지?”

“누구 우리 제주도 간다고 말한 사람?”

비공개 스케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항에는 우리를 기다리던 사람들로 가득했다.

“형, 저 쌩얼인데 어떡해요.”

“나도 마찬가지야.”

“마스크 써도 되겠죠?”

“나는 모자만 쓰려고.”

아무 생각 없이 밴에서 내리려다가 횡단보도 앞을 가득 채운 인파에 놀라서 일단 멈췄다. 이른 새벽 비행기라 도착하면 바로 숙소로 향할 예정이어서 다들 자유로운 차림새였기에, 당황스러움이 더했다. 못 봐줄 정도는 아니었지만, 평소 공항 패션에 진심이었던 일부 멤버들은 상당한 충격에 빠져 있었다.

“그냥 이대로 숙소로 돌아가면 안 될까요?”

“되겠니……?”

“역시 안 되겠죠.”

“다들 내리자.”

“형, 잠깐만요. 재봉아, 나 틴트 좀.”

“야, 나도 한 번만.”

“윤빈 형, 형도 이리 와 봐요.”

다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언제나 준비된 상태인 박재봉의 틴트를 빌려 급한 대로 생기를 불어넣었다. 캐리어를 못 여는 게 이렇게 아쉬울 수 없었지만,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다들 급하게 단장을 마쳤다.

“이제 진짜 내리자. 다들 준비됐지?”

“네…….”

“하, 제발 다들 예쁘게 찍어 주시길.”

마침내 차에서 내렸고, 그 이후로 비행기를 탈 때까지는 제대로 된 기억이 없었다. 인파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7명이 다 같이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고 이동했다. 경호원이 배치되었지만, 공식 스케줄이 아니었기에 그 수가 충분하지 않았다. 데뷔 후 처음 겪는 혼돈의 시간이었다.

“이거 완전 투마월 공개 대면식 같지 않았어?”

“와, 맞아요. 그 얘기 들으니까 확 생각나네요.”

“난 진짜 누구 하나 넘어질까 봐 걱정이었어.”

“다행히 팬분들도 다친 분은 없는 거 같긴 한데-”

“공항 패션 따위를 걱정할 때가 아니었네.”

“그러게.”

차 안에서 단장하던 때가 전생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넥스트 레벨’ 이후로 외부 스케줄은 처음이었다. 확실히 서바이벌의 힘이 크기는 했는지, 새로 유입된 팬들이 많아진 것 같았다. 팬들뿐만 아니라 공항을 이용하기 위해 온 일반 승객들 중에서도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신기한 경험이었지만,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혼란의 시간이었다.

“제주도 공항에서도 이럴까요?”

“설마…….”

“비행기 타고 숙소까지 가고 싶어요.”

박재봉의 엉뚱하지만 진심이 담긴 말에 다들 공감했다. 짧은 비행을 마치고 다행히 안전하게 공항을 빠져나왔다. 따뜻하면서도 구름 한 점 없는 완벽한 날씨였다. 멤버들 모두 기쁜 마음을 쉽게 숨기지 못했다. 매니저 형의 차를 타고 숙소를 향하는 내내 창문에서 얼굴을 떼지 못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와 활짝 핀 꽃들이 아름다웠다.

“오늘 바다에서도 놀아요!”

“당연하지-”

“이따가 회도 먹고!”

“바나나 보트도 탈 거야!”

다들 이렇게 하고 싶은 게 많았나, 평소에 뭐 하고 놀지 계획이라도 짠 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특히 박재봉과 강도현의 반응이 엄청났다.

“작년에 제주도로 수학여행 간다고 했는데 못 갔던 거 엄청 아쉬웠는데!”

“수학여행 제주도로 가는 건 국룰인가 봐요.”

캐리어 가득 짐을 챙기고도 부족해서 배낭까지 메고 온 박재봉이다. 본인과 닮은 토끼 키 링이 달랑거리고 있었다. 크기가 꽤 큰 배낭이 가득 차 있었다. 뭐가 들었나 궁금하던 참에 박재봉이 배낭에서 간식거리를 꺼냈다.

“설마 그 안에 다…….”

“간식들이에요!”

“와우!”

윤빈 형, 선우 형은 박수까지 치며 기뻐했다. 숙소로 가는 1시간 동안 배낭에서는 쉬지 않고 간식이 나왔다. 누구 하나 졸지 않고 시끌벅적하게 떠들었다. 항상 귀마개를 하고 자던 유현이 형도 말없이 멤버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수다를 떨고, 게임을 하고, 노래를 부르느라 한시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매니저 형은 그러다가 숙소 가서 하루 종일 잠만 자겠다며 에너지를 아끼라고 했지만, 모두의 흥을 억누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도착했다!”

“와! 바로 앞에 바다가 있네요?”

“승빈이가 꼭 바다가 보이는 숙소에서 지내고 싶다고 해서.”

“고마워요, 형!”

바다는 슬픈 기억이 담긴 장소였지만, 이제는 멤버들과 함께 좋은 기억들로만 채우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바다가 보이는 숙소를 부탁했다. 일곱이기 때문에 세 개의 방으로 나누었다.

“룸메 어떻게 정할까?”

“게임으로?”

재봉의 제안에 선우 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냥 뽑기로 하자. 여기서도 게임이라니, 게임으로 룸메 정하기는 이제 신물 나.”

게임을 제안했던 박재봉조차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말이었다. 투마월부터 크리드 존, 넥스트 레벨까지. 게임으로 무언가 정하는 일이 너무 많았다.

사다리 어플을 통해 정한 룸메이트로는 나, 유현이 형, 선우 형이 가장 큰 방에 배정됐다. 다른 방에는 지운이 형과 윤빈이 형, 강도현과 박재봉이 같은 방이 되었다. 모두 지운이 형의 방을 부러워했다. 우리 멤버 중에서 유현이 형 다음으로 가장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어서 평화로운 룸메이트 생활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방은…….

“선우야, 과자 먹고 잘 치워야지.”

“아, 넵.”

“말로만 넵 하지 말고. 승빈아, 너도 옷 잘 걸어 두고.”

“알았어요.”

“너도 말로만 알았다고 하지 말고-”

유현이 형이 잠시 나간 사이 선우 형과 눈이 마주쳤고, 동시에 말했다.

“쉽지 않겠는데…….”

“그래도 형은 집에서 룸메잖아요.”

“휴가 와서도 룸메라니, 그게 더 싫은 거 아니야?”

“듣고 보니 그러네.”

그래도 옆방에서 들리는 투닥거리는 소리에 서로 위안했다.

“제가 이 침대 쓸래요!”

“넌 나보다 작은 애가 더 큰 침대를 쓰냐?”

“동생한테 양보해야죠!”

“장유유서 몰라?”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거거든요?”

“이게 진짜?”

“으아악 유현이 형, 도현이 형이 때려요!”

“아니에요!”

덕분에 선우 형과 또 한 번 마음이 통했다.

“초딩도 저렇게 안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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