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순식간에 일그러지는 시공간은 나를 다시금 무대 위로 돌려놨다. 이곳의 시간 흐름으로는 10초도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눈부신 조명, 나를 향해 환호하는 사람들, 크리드의 우승을 축하하는 음악 소리와 기쁨을 나누는 멤버들의 웃음소리. 그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었다.
“승빈아!”
넥스트 레벨 우승 트로피를 쥐고 행복하게 웃는 지운이 형이 보였다. 부디 지금이 현실이길, 악몽과 같은 시간으로 돌아가지 않길. 희미해지는 정신 속에서 상태창 체력 포인트가 점점 소멸해 가는 것이 보였다. 시야가 점점 흐릿해졌다. 내가 밟고 있는 곳이 땅인지 하늘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승빈아!”
쿵 소리와 함께 누구의 목소리인지도 모르는 외침을 마지막 기억으로, 시야가 암전됐다.
눈을 떴을 때 먼저 보인 것은 병원 천장이었다. 그리고 정신이 돌아올 때쯤, 멤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른 멤버에게는 미안하지만 바로 지운이 형부터 찾았다.
“…형.”
내가 아는 지운이 형의 모습이었다. 악몽과 같았던 마지막 모습과 같은 사람이라고 믿을 수 없는 눈이었다. 걱정스러움에 눈물이 찬 눈이었지만.
“승빈아!”
“형, 괜찮아요?”
“걱정했잖아…….”
“숨, 숨 막혀-”
마음만 같아서는 내가 먼저 지운이 형을 찾을 생각이었지만, 형이 선수를 쳤다. 말랐다고 해도 키 180이 넘는 건장한 남자가 끌어안으니 숨쉬기가 힘들었다. 뒤로 물러선 지운이 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 미안. 괜찮은 거 맞지?”
“응, 괜찮아.”
그리고 이번엔 내가 안겼다. 잠시 주춤하던 지운이 형도 말없이 안아 줬다. 내가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는 어리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멤버들은 지운이 형과 함께 나를 품에 안아 줬다. 아무도 모를 얘기지만, 그날의 진실을 혼자 감당하지 말라고 말하는 듯했다.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
“…….”
“…좀 민망하다?”
선우 형의 말과 함께 모두 같은 극 자석이 된 듯 떨어졌다. 하긴, 아무리 사이가 좋고 애틋하다고 한들 병실 한복판에서 남자 여럿이 부둥켜안고 있는 그림은 조금…….
“뭐야, 승빈이 형, 울었어요?”
“진짜?”
그 짧은 순간에도 놀릴 거리를 찾는 박재봉과 강도현이다. 그런데 되려 내가 웃음이 나왔다.
“너 거울이나 보고 와라, 재봉아.”
방송이 끝나자마자 왔는지 아직도 파이널 무대 스타일링들이었다. 지운이 형과 박재봉은 눈 화장이 번져 있었다. 그 모습에 철없게도 웃음이 나왔다.
‘여기가 현실 맞네.’
힘없이 웃어 보이자 안심을 하면서도 여전히 걱정 섞인 말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어졌다.
“그러게 쉬엄쉬엄하라고 했잖아-”
“그래도 방송 막바지여서 다행이다…….”
“다행? 얼마나 많이들 걱정한 줄 알아? 팬 분들도 엄청 놀라셨다고.”
선우 형의 말에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메시지가 무더기로 와 있었다. 부모님과 누나에게도 연락이 왔다. 미국에서 생중계를 챙겨 본 듯했다.
[아들 괜찮아?]
[그러게 잘 먹고 다니라고 했지!]
[안 되겠다 한국에 한번 가야지]
‘한국 오시면 안 되는데…….’
와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이 한국 오시면 꼭 하시는 게 있거든. 그리고 인터넷은 더 심했다. 각종 포털 사이트 검색어에는 내 이름과 넥스트 레벨, 사고 등과 같은 단어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었다. 건강 이상설과 함께 지나친 스케줄에 혹사당하는 아이돌 산업에 대한 비판과 비난이 난무하고 있었다.
[크리드 문승빈 실신… 건강에 적신호?]
[쓰러지고 기절하는 아이돌들, 이대로 괜찮은가?]
-크리드 데뷔하고 제대로 쉬긴했냐ㅠㅠㅠ
└레디 활동 하다가 플온아하고 연말하고 바로 넥레한거이뮤ㅠㅠ
└애 죽겠다;;
-근데 저만큼하고 돈 저만큼 벌면 참짘ㅋㅋㅋㅋ
└ㅇㅈ어차피 통장잔고보면 싹 낫는거임
└재활비용으로 더 들어가겠다 ㅅㅂ
└근데 직장인들도 맨날일하고 쉬고싶을 때 못쉬는건 똑같은데ㅋ
-연예인 걱정하는거 아니다
그사이 매니저 형에게 전화가 왔다.
“네, 매니저 형.”
[지금 일어난 거야? 몸은 어때?]
“괜찮아요. 잠깐 어지러웠나 봐요.”
[너는 잠깐 어지러운 애가 무대에서 기절을 해? 무리하는 거 같으면 바로바로 얘기하라고 했잖아. 회사에서도 난리다. 여기저기서 전화 와 가지고.]
“죄송해요…….”
[더 아프거나 그런 곳은 없고?]
“네, 멀쩡해요.”
[알았어. 곧 병원 갈게. 며칠간은 휴식 취하자고는 했어, 회사에서도.]
파이널 경연을 준비하는 기간에는 밥 먹듯 밤새우면서 연습을 하니 매니저 형의 걱정도 무척 컸었다. 보통 사람의 체력으로는 커버할 수 없는 일이었다. 상태창의 체력 포인트 믿고 무리한 내 잘못이지.
[승넨이 무슨 일이냐;;]
-ㅅㅂ…정도껏 굴렸어야지
-ㅈㄴ살인적인 스케줄이긴했으뮤ㅠㅠ
-현장에 있었는데 진짜 갑자기 쓰러져서 완전 멘붕상태였음;;
-코어 ㄱㅅㄲ야ㅠㅠㅠㅠㅠ
-공지 떴네 잠깐 실신한거고 건강에는 이상 없대
-ㅈㄴ다행이다ㅠㅠㅠㅠㅠ
[투마월때도 그렇고 중요한 순간에만 몸 아프네]
-어쩌라고
-자기관리도 실력임ㅇㅇ
-저 체력으로 뭘한다곸ㅋㅋㅋㅋ
-투마월때도 그렇고;;
-무대할 때는 티 하나도 안낸게 실력이다 싸패 새끼들아 ㅅㅂ
└ㄹㅇ... 승빈이 정신력 대박이야 진짜ㅠㅠㅠ
“하…….”
“인터넷 반응은 신경 쓰지 마. 원래 그런 곳이잖아.”
“이런 건 신경 안 쓰여요. 팬분들 놀란 게 걱정이지.”
#코어_아티스트_보호해
벌써부터 멤버들의 건강 및 스케줄 관리에 불만을 가진 팬들이 만든 해시태그가 상위권에 노출되고 있었다.
“근데 유현이 형은요?”
“그게…….”
우물쭈물하는 멤버들을 추궁해 보니, 내가 쓰러진 후 유현이 형도 패닉 상태에 빠졌고 매니저 형의 부축을 받아 숙소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다고 했다.
“근데 그 와중에도 유현이 형이 형을 업고 이동했잖아요. 나중 돼서야 유현이 형도 완전 멘붕인 거 알았어요.”
‘그렇게 건강으로 걱정시킬 일 없을 거라고 했는데 쓰러져 버렸으니…….’
“안 되겠어요.”
“응?”
무언가 결심한 듯 주먹을 쥔 박재봉이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우리, 제대로 된 휴가 가요! 맛있는 것도 먹고! 잠도 푹 자고!”
사실 미션 보상을 받지 않았다면 이렇게 체력 포인트에 치명상을 입지는 않았을 것이다. 멘탈적으로 너무 큰 충격을 받으면서 체력 포인트에도 영향을 준 것이 분명했다.
“가서 크리데이 찍자, 그럼!”
“당연하죠!”
“근데 먹고 자는 것만 나오는 거 아니야?”
강도현의 뼈를 때리는 질문에 박재봉은 잠시 주춤했다.
“…클로버는 좋아해 주실 거예요.”
“그래, 진짜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 드리면 팬분들도 좋아하실 거야.”
그 후로도 휴가에 대한 의견이 오갔다. 그사이 매니저 형이 도착했고, 며칠 동안 안정을 취하라는 의사의 진단과 함께 숙소로 돌아갈 수 있었다. 가는 동안에도 매니저 형의 걱정 섞인 잔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오늘 바로 한약을 시켜야겠다, 너희 싹 다 데려다가 몸보신이라도 시켜야겠다. 젊은 것도 아니고 어린놈들이 벌써부터 몸을 그렇게 쓰면 내 나이 돼서 고생한다 등…….
* * *
“저희 왔어… 형?”
숙소에 도착하니 유현이 형이 거실에서 혼자 무언가 마시고 있었다. 긴가민가했지만 초록 병이 의심할 여지 없이 소주였다.
“헐.”
“금기의 음식이.”
“애들은 방에 들어가라-”
선우 형이 한쪽 팔엔 박재봉을, 다른 팔로는 강도현을 끼고 방으로 향했다. 술은 우리 숙소 반입 불가의 음식이었고, 회식 자리에서도 술은 칼같이 거절하는 형이었기 때문에 더 낯설었다. 윤빈 형은 지운이 형의 눈짓을 알아차리고 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조용히 유현이 형 앞에 앉았다.
“죄송…….”
“미안.”
내 사과보다 유현이 형의 사과가 더 빨랐다.
“형이 미안할 게 뭐가 있어요.”
“내가 평정심을 유지했어야 했는데.”
“…….”
“지금도 이거 안 마시면 안 될 거 같아서 이러고 있잖아.”
유현이 형이 잔에 남은 술을 입 속으로 모두 털어 넣었다. 투마월과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지만, 책임에 대한 강박은 여전했다. 아니, 더 강해졌지.
“저도 죄송해요. 그렇게 건강으로 걱정 안 시키겠다고 했는데. 제 욕심이 너무 과했나 봐요.”
“혼자 감당하려고 하지 말라고 했잖아.”
마른세수를 하는 얼굴은 지금껏 보지 못한 버석함이 느껴졌다. 그런 유현이 형을 보다가, 문득 웃음이 나왔다. 왜 웃냐는 질문에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누구보다도 혼자 감당하는 사람이 혼자 감당하지 말라고 혼내는 게 웃겨서요.”
“이거랑 그건,”
“같죠! 하나도 안 달라요. 나도 나 혼자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해서 밤새도록 연습한 거고, 몸에 무리 가도 모른 척한 거예요.”
유현이 형은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는 지지 않고 더 열변을 토했다. 나도 내가 이렇게 말을 빨리, 많이 할 수 있는 사람인 줄 몰랐다. 선우 형이 옆에 있었다면 네가 래퍼 하라며 놀렸을 것이다.
“형은 리더니까 중심을 잡아 주는 게 중요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가끔 형이 너무 힘들 땐 다른 멤버들한테 기대도 된다는 말 하고 싶었어요. 오늘도 다섯 명이서 얼마나 잘했는지 알아요? 저보다 더 정신없었을 텐데 다들 침착하게 절 돌봐 줬어요. 형 없어도 잘 굴러간다 이게 아니고, 형이 가지고 있는 짐을 나눠 줘도 될 만큼 강하다는 뜻이에요.”
“이렇게 잘 아는 애가 그렇게 혼자 견뎠던 거야?”
“그니까요! 형이나 나나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네요. 쌤쌤인 걸로 합시다.”
뻔뻔한 나의 태도에 유현이 형은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냈다. 나도 키득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나도 잔 하나 가져와서 마시면서 대화하고 싶었다. 저 형이 소주 자체를 너무 맛있게 마시기도 했고.
“알았어. 그러니까 앞으로 너도 우리 멤버들 믿고 너무 부담 갖지 말고… 건강 잘 챙기고”
묘하게 혀가 꼬인 말투였다.
‘내년이면 그래도 합법적으로 마실 수 있겠군.’
유현이 형도 자연스럽게 잔에 술을 따르고 나를 주려다가 멈칫했다.
“아, 맞다.”
“헐, 형 저 아직 미자라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열여덟 아닌 거 같아, 너.”
‘당연하지, 스물둘이니까!’
“참나, 내년만 되어 봐요. 그땐 형 술친구 해 줄께요.”
“그래, 술 못 마셔도 술친구 해 줘.”
“저 아마 잘 마실걸요?”
“마셔 본 적도 없으면서?”
회귀 전 별명이 인간 헛개수였다. 마셔도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고. 술 자체를 좋아하지 않지만, 가끔 매니저 형과 마실 때면 끝도 없이 마시곤 했다. 혼자 안 취해서 결국 뒷정리 담당이 되는 사람이 딱 나였다. 한때 주당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온갖 연예인 술 모임으로부터 연락을 받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형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점점 눈이 풀리더니 그대로 책상 위로 쓰러졌다. 급하게 손을 뻗지 않았으면 그대로 얼굴과 부딪칠 뻔했다. 저 얼굴에 상처라니, 문화재 훼손이라며 거품 물 팬들을 생각하니 본능적으로 몸이 튀어 나갔다. 술병을 보니 겨우 반이 사라져 있었다.
‘뭐야, 이 형 알쓰였어?’
빨리 1년이 지나서 성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현이 형은 워낙 완벽하고, 철저한 사람이어서 약점을 찾기가 힘들다. 그런 형을 술로 놀려 먹을 생각에 벌써 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