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223화 (223/346)

223화

[곧 Next Level의 무대가 최초 공개됩니다!]

연습 과정 VCR이 모두 방송되고, 드디어 ‘넥스트 레벨’ 무대가 시작됐다. 다른 경연곡과는 다르게 음원도 먼저 공개하지 않은 노래였기 때문에, 팬들과 시청자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무대를 가득 채운 푸른 조명과 하얀 별 가루와 같은 무대 효과로 신비로운 느낌을 더했다. 첫 파트는 예상한 대로 센터 포지션인 승빈이었다.

“아, 돌았다. 승빈이 백발 했어!”

-ㅁㅊ백발승빈이즈백

└게임끝났네;;

└너무 오랜만에 봐서 눈물이 다나네ㅅㅂ

-얼굴 빨리 보고싶어어어어어ㅓ

└조명 뭐하냐!!!

-백발이라니.... 문승빈 백발이라니...........

[내가 걸어온 이 길엔

수많은 땀방울로

새겨진 발자국

내 미래를 알려 줄

지도가 될 거야]

승빈의 손짓에 따라 무대 뒤쪽 전광판에 있던 별똥별이 무대 한가운데 위치한 전광판으로 날아오는 연출이었다. 피아노 선율 하나와 승빈의 목소리가 전부였다. 세상에 태어나 먼지 한 번 먹어 본 적 없는 목소리라고 하면 주접이 심하다고 하겠지만, 감히 그런 목소리라고 해도 부끄럽지 않은 순간이었다. 발밑으로 별빛이 모이면서 조명이 점차 밝아지고, 문승빈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흡사 플레이 온 아이스에서 본 빙판 위 모습 같았다.

“X친, 지금 얼굴에 별 가루 붙인 거야?”

푸른 조명에 은색 별 가루와 같은 반짝이가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숙취 메이크업처럼 양쪽 눈 밑을 이어서 길게 뿌려진 가루가 독특했다. 백발에 붙인 트윙클과도 잘 어울렸다. 약간의 펌을 주어서 움직일 때마다 조금씩 살랑이는데, 트윙클이 더욱 반짝이는 효과를 주었다.

이어서 왼쪽 무대에서는 유현재가 등장했다. 아쉽게 센터 파트를 하진 못했지만, 가장 주력인 랩 파트를 맡게 되면서 오히려 유현재에게도 이득인 상황이었다. 승빈과 한 파트씩 연달아 부르는데, 확연히 다른 그림체 때문에 눈이 즐거웠다.

-둘다 분명 강아지상인데 다르네ㅋㅋㅋㅋㅋ

└승빈이는 댕댕이, 현재는 개새…

└왜요ㅠㅠ

“개새X 상이라는 것보다 정확한 설명이 없는 게 웃기다 진짜…….”

“강아지는 강아지네, 다른 의미로-”

우스갯소리도 잠시, 촘촘하게 쌓여 가는 악기 소리는 무대의 완성도를 높였다. 그 속에서도 승빈의 목소리는 결코 묻히지 않았다. 노래 자체에 대한 분석을 끈질기고 집요하게 했다는 것을 전부 느낄 수 있었다. 평소와 같은 음색이지만 노래의 가사와 분위기에 따라 약간의 변주를 주는 스킬까지 생겼다.

[Look! 눈앞의 Next Level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다음 Level을 넘을 유일한

Catch! 눈앞의 Next Level]

센터에게 주어진 킬링 파트는 바로 독무였다. 선은 부드럽지만, 그 속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잔동작 하나 허투루 추지 않고 정석으로 박자를 맞추는 순간에는 쾌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선발 영상 때도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일주일 사이에 더 업그레이드된 모습이었다.

완벽한 다른 능력에 비하면 춤 실력이 상대적으로 조금 아쉽다고 생각해 왔는데, 다섯 명 사이에서 보니 그런 아쉬움도 먼지보다 작아졌다. 이렇게 단기간에 춤 실력이 늘 수 있는 것인지 독무 내내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크리드가 진짜 다들 춤을 잘 추는 거야-”

“그니까. 승빈이 다른 팀 가면 메댄임.”

원래도 표정 연기가 가장 큰 무기였지만, 무대 위 여유까지 생겨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덕질을 하면서 ‘홀린다’는 표현에 대해 크게 공감하지 못했던 정연은 큰 깨달음을 얻은 기분이었다.

‘사람을 홀린다는 게 이런 거구나…….’

[우린 저 푸른 하늘 위로

반짝이는 수많은 별

그중 가장 빛나길 바라

We are in the Next Level Yeah-]

센터 선발 영상에서도 화제가 됐던 고음 파트도 흔들림 없이 소화했다. 가장 많은 파트를 소화하고 독무까지 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안정감이었다. 끝 음에 가서 약간 갈라진 소리가 났는데, 그조차도 노래를 위한 장치라고 생각할 만큼 조화로웠다. 정연 역시 문스트럭과 같이 승빈의 거친 발성을 좋아했다. 자주 들을 수 없는 소리이기도 하고, 무대 위에서 모든 것을 쏟아 내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었다.

-미친;;

-문승빈 아가미설 찐이라니까?

└사람 아닌거같음ㅇㅇ

└당연함. 요정임

-나 지금 현장인데 다 울림ㄷㄷ

└현장 반응 어떤데?

└ㅈㄴ소름돋아 걍 문승빈밖에 안보임

└님이 승프여서 그런건 아니고?

└조용히해 안그래도 갈아탈거같으니까

[비로소 깃발을 꽂아

Here is my Next Level!]

넥스트 레벨을 처음 발표한 날과 같이 각 팀을 상징하는 깃발을 각자의 왕좌에 꽂는 것이 엔딩이었다. 엔딩 샷과 함께 ‘Next Level’ 무대가 끝났다.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모습조차 비현실적이었다.

-근데 문승빈 언제부터 저렇게 생긴 거임?

└원래 저렇게 생겼는데요

└투마월이랑 비교하면 ㅈㄴ잘생겨진거 팩트인데

└카메라 마사지랑 관리받았으니까 ㅂㅅ아

-ㅁㅊ…얘 이름 뭐임?

└머글인가본데 크리드의 문승빈이야! 저 비주얼에 무려 메보임

└ㅁㅊ비주얼 메보 ㅈㄴ귀한데

-우리 승빈이가 비주얼메보 소리듣는 날이 오는구나ㅠㅠㅠㅠㅠ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신기해. 매번 어떻게 잘생겨져서 오는 거지?”

“진짜. 승빈이가 데뷔하고 제일 많이 잘생겨진 듯.”

“승빈이 원래 잘생겼어-”

“맨날 투마월 시절 흙감자라고 하던 사람이 누구더라?”

“잘, 잘생긴 감자라는 거지!”

최애의 흑역사는 놀려도 내가 놀린다는 마인드였다. 어쩔 수 없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조금은 부족하고, 꼬질한 모습마저도 사랑스러워 보이다 보니, 애칭도 감자, 고슴도치, 찹쌀떡과 같이 멋짐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바뀐다. 하다못해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에 비유하여 비빔면, 볶음밥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으니 감자 정도면 양반이라고 자기 합리화를 한다.

무대를 마치고 각자 소감으로 이어졌다.

“승빈 군, 이번에 센터로 활약했는데 준비 과정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각 팀을 대표하는 실력 있는 멤버인 만큼 그 속에서 묻히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거 같습니다. 그래도 트레이너 선생님, 우리 크리드 멤버들 조언 덕분에 저만의 매력을 보여 주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네. 역시나 깔끔한 소감이네요. 이제 여러분이 무대를 하는 동안 이루어진 개별 투표 결과로 1위 베네핏을 받을 그룹이 정해집니다.”

“마침 방금 결과가 들어왔네요!”

“현장 투표와 인터넷 실시간 투표를 합산한 개별 1위는… 크리드의 문승빈 군입니다!”

1위가 발표되자마자 정연과 K, A는 집안이 떠나가라 기뻐했다. 개인 베네핏은 결국 팀의 우승에 도움이 되니까.

-승빈이ㅊㅋㅊㅋ

-너무 당연한 결과여서 하나도 안떨렸음 (물컵을 쥔 손이 정신없이 흔들리는 짤)

-2위는 오재성이네ㅎ

└당연한 결과아님?

└유현재라고 생각했는데

└너두? 나두

-오재성은 진심 팬덤빨 아니냐??

└서바이벌에서 팬덤빨 아닌게 있긴함?

-현재도 잘했는데 아깝다ㅠㅠㅠ

뒤이어 하이드의 무대부터 파이널 신곡 무대가 시작됐다. 유현재가 독보적이었지만 나머지 멤버들도 프로그램 초기보다는 확실히 성장해 있었다. 고질적인 문제였던 팀워크도 조금 개선된 듯했다.

이어서 무대를 이어 간 선샤인은 기존의 귀여운 콘셉을 버리고 각 잡힌 군무를 가지고 왔다. 멤버들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앳된 얼굴과 목소리에는 이질적인 콘셉이었다.

투샤인은 마지막 경연을 졸업과 연결하여 기분 좋게 마지막 무대를 완성했다. 뭉클함이 느껴지는 무대였다. 포커스의 무대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훌륭했다. 재수 없지만, 전체적인 실력은 크리드 다음으로 출중한 팀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크리드가 등장하고, 지금까지의 무대는 크리드의 무대로 모두 지워질 것임을 모두가 확신했다.

* * *

“넥스트 레벨 파이널, 대망의 피날레를 장식할 팀, 크리드입니다!”

“와아아!”

크리드 멤버들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품이 큰 검은색 사제복을 입고 나온 멤버들에 현장 반응은 뜨거워졌다. 처음 보는 짙은 세미 스모키 화장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지만 문스트럭이 가장 놀란 것은 머리였다. 넥스트 레벨에서도 백발이었지만, 반짝이를 붙였던지라 지금 마주한 백발 생머리의 충격이 더했다. 처음 자신의 마음을 흔들었던 시절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일말의 거짓도 없이 승빈의 모든 머리를 좋아하지만, 첫사랑은 이길 수 없었다. 문스트럭은 오랜만에 보는 백발에 쉬지 않고 사진을 찍었다.

‘내가 오늘 레전드 하나 남기고 간다.’

문스트럭에 비해 레빗드림은 근심이 가득했다. 무대 위 재봉의 자신감이 떨어져 보였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처음 해 보는 스모키 화장을 의식하는 듯했다. 팬인 자신이 보더라도 베스트인 스타일링은 아니었다. 주변에서도 이런 크리드의 모습을 낯설어하는 반응도 있었다.

“뭐야? 갑자기 센 콘셉을 하네”

“그냥 하던 거나 하지…….”

“박재봉은 어디서 연탄재 묻혀 온 거 같네…….”

그 소리에 욱한 레빗드림이 일부러 힘차게 재봉을 응원했다.

“재봉아! 잘 어울린다!”

현장에 쩌렁쩌렁 울리는 응원에 박재봉이 살풋 웃었다. 옆에 있던 윤빈도 거들었다.

“우리 재봉이 멋있죠!”

“응!”

“잘 어울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성훈이 멘트를 이어 갔다.

“오늘 스타일링이 굉장히 파격적인데, 이유가 있을까요?”

성훈의 질문에 승빈이 답했다.

“저희 이번 파이널 곡 ‘넥스트 월드’가 굉장히 강렬한 곡입니다. 그래서 그에 맞게 지금껏 저희가 시도하지 않았던 파격적이고 강렬한 스타일링이 뭐가 있을까 엄청 고민했어요. 그러던 중에 스모키 화장을 하고 사제복을 입어 보기로 했습니다.”

“혹시 아이디어는 누가 냈죠?”

“부끄럽지만 제가…….”

승빈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파격적인 제안이었는데 멤버들, 특히 재봉이가 정말 큰 결심 해 줬어요. 그래서 이 자리 빌려서 다시 한번 고맙다고 말해 주고 싶어요.”

팬들의 응원에 자신감이 다시 올라온 재봉도 한마디 덧붙였다.

“저도 형 덕분에 새로운 도전 할 수 있어서 지금 무척 기대돼요!”

“네. 그럼 크리드의 무대를 보기 전에, 크리드의 마지막 각오를 담은 영상 함께 보고 오겠습니다.”

크리드 멤버들이 무대 아래로 돌아갔다. 솔직히 레빗드림은 승빈의 아이디어가 야속했지만, 옆에 있는 문스트럭 때문에 차마 티를 내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문스트럭이 먼저 얘기를 꺼냈다.

“이번엔 조금 승부수를 둔 거 같네. 그래도 재봉이도 잘 소화할 수 있을 거야.”

“언니도 진짜 무서울 정도로 미적 기준이 확고한 거 같아요.”

“당연하지. 아이돌이 아름다워야 아이돌이지.”

“하, 오늘 재봉이 무대에서 안 어울리면 원망 좀 할게요.”

“쌍욕만 아니라면야 뭐…….”

모두가 자리를 떠난 무대 위 전광판에서는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아련한 BGM과 함께 시작되는 VCR 타임. 화면 가득 문구가 떠올랐다.

[넥스트 레벨과 함께한 시간,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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