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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220화 (220/346)

220화

모두 윤 피디의 손에 들린 상자에 시선이 집중됐다. 저 야비한 인간이 이번에는 또 어떤 이벤트를 준비했을지 감도 안 잡혔다. 잔뜩 경계하는 우리를 의식하듯, 윤 피디는 방송할 때만 내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 가증스럽게도.

“다들 긴장 풀어요, 아주 간단한 미션을 할 예정이니까요!”

‘간단은 개뿔…….’

“오늘의 기상 미션은… ‘친해지길 바라’입니다!”

“친해지길 바라?”

“뭐야, 저건 또…….”

“이제 와서?”

미션의 룰은 간단했다. 각자 그룹에서 한 명씩 종이를 뽑아서 나온 조합으로 요리 대결을 하는 것이다. 유현이 형을 시작으로 하나둘 그룹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내 차례가 왔고, 나는 종이를 뽑을 때마다 탄식을 감추지 못했다.

“오, 첫 번째는 선샤인의 하윤!”

“…우와.”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뭐 씹은 표정으로 하윤이 걸어왔다. 시작부터 불안했는데,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두 번째는 포커스의 김병대!”

“…와.”

순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신도 무심하지, 어떻게 내 손으로 저 둘을 뽑게 만들 수 있지? 똥손도 이런 똥손이 없었다.

“세 번째는 하이드의 박영훈!”

이쯤 되면 내 손에 어색한 인간들만 끌어들이는 무언가가 있는 게 분명하다. 그나마 투샤인의 정혁을 제외하고는 철저하게 앙숙이거나 어색한 사람들만 모이게 됐다.

팀원들을 훑어보던 김병대가 비아냥거렸다.

“조합 한번 대단하네요, 승빈이 형.”

“답이 없다 진짜…….”

그래도 약간의 위안을 얻어 보자면 유현재와 오재성이 같은 팀이 되었다는 거다. 내가 팀을 뽑는 과정 내내 웃음을 참지 못하던 유현재는 오재성과 같은 팀이 되고 더 우중충해 보였다. 꼴 좋다 뭐.

“자, 팀이 정해진 분들은 모여서 팀명과 구호를 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단 모두 한곳에 원형으로 앉았다. 그리고 10분 동안 누구 하나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결국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팀명부터 정해 보자. 생각해 둔 거 있어?”

“방금 결성됐는데 벌써 생각이 나겠어요?”

역시 이래야 김병대지. 오랜만에 듣는 말대꾸였다. 잠시 VM 연습생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하윤은 심드렁하게 답했다.

“그냥 1조 하죠, 뭐.”

“1조? 그걸로 될까?”

“안 될 거 있어요?”

진짜 사람 할 말 없게 만드는 X가지 없는 화법이었다. 그때 조용히 있던 하이드의 박영훈이 손을 들었다. 그래도 의욕은 있는 놈이구나, 반가운 마음에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아이디어 있어요?”

“그… 완벽하조 어때요?”

“…….”

아, 박재봉과 맞먹는 저주받은 작명 실력이었다. 그 뒤로도 1등우리조, 최강팀이조, 다이겼조… 따위의 이름을 제안해서, 다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스킬을 터득했다.

“넥스트 스텝 어때? 우리 프로그램 이름이 넥스트 레벨이잖아.”

“우, 와, 진짜 의미 있다-”

영혼 없는 표정으로 대답하는 김병대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진짜 입만 열면 한 대 쥐어박고 싶게 만드네…….’

“저, 저는 좋아요! 지금까지 나온 이름 중에는 제일 의미 있고…….”

“굳이 다른 사람 깎아내리면서 승빈이 형 올려 쳐야 하나?”

“네?”

“아니, 영훈이가 낸 아이디어를 무시하는 말이잖아. 안 그래?”

갑자기 박영훈에게 친한 척을 하는 김병대다. 박영훈도 떨떠름한지 슬쩍 자리를 옮겼다.

“아, 아니요. 저는 그런 뜻이 아니라…….”

당황한 정혁의 말을 우선 끊었다. 당황해서 아무 말이나 하다가 더 못 볼 꼴을 볼 테니까.

“일단 촬영 중이고, 팀명 정하는 데에 너무 힘 빼지 말자.”

“형도 조심해요. 안 그래도 투샤인이랑 크리드랑 너무 X목질 하는 거 아니냐고 말 많던데.”

오케이. 생각보다도 더 빠르게 김병대가 입을 나불거렸다. 메인 카메라가 유현재와 오재성 쪽에 가 있어서 방심했나 본데, 그래도 그렇지. 녹화 중에 저런 비방용 단어를 지껄이다니.

“병대야, 아직도 여기가 VM인 줄 아나 봐?”

“뭐가요?”

“내가 너 꿍시렁거리는 거 하도 짜증나서 아예 녹음기를 하나 샀거든.”

주머니에서 녹음기를 꺼냈다. 이렇게 빨리 꺼낼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보란 듯이 가볍게 두어 번 흔들어 주자 처음에는 내가 장난치는 줄 알았던 김병대도 일순간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뭐라고요?”

“무슨 놈의 방송국 마이크가 이렇게 구린 건지, 네가 나불거리는 걸 하나도 못 잡아내잖아?”

“형, 지금 미쳤어요?”

자기 감정 하나 컨트롤 못하는 건 여전했다. 욱해서 소리치는 김병대 덕분에 모두의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되었으니까. 그렇게 어린 티 내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 줬는데도 말이다.

“병대 씨, 무슨 문제 있으신가요?”

벌써 피곤하다는 표정의 스태프의 질문에 김병대는 말을 얼버무렸다. 제가 무슨 말을 할 수나 있겠어? 카메라 앞에서 X목질이라는 단어를 쓰기라도 하겠냐고.

“별일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미친 건 너겠지.”

이미 얼굴이 잔뜩 시뻘게진 김병대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이렇게 해야지, 병대야.”

그리고 한마디 더 속삭여 주자 안 그래도 빨간 얼굴이 터질 듯했다. 그러니까 누굴 건드려, 자꾸. 방긋 웃는 얼굴로 녹음기를 두어 번 더 흔들어 주고는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도 녹음기는 꺼져 있었다, 잔뜩 흥분한 김병대는 그것도 눈치채지 못한 거 같지만.

‘겁주기는 이 정도면 된 거 같고-’

어차피 목표는 김병대가 아니었다. 오로지 오재수 하나뿐이었으니까.

* * *

“그럼, 본격적인 미션을 시작하겠습니다! 게임을 통해 돈 봉투를 고를 수 있습니다. 모두 같은 금액이 들어있지는 않겠죠?”

게임 종목은 이인삼각이었다. 대표 선수 두 명은 가위바위보를 통해 정했고, 나와 정혁이 뽑혔다. 우리 둘만 주먹, 나머지는 보자기. 한 번에 정해진 대표 선수에, 우리 둘은 신기하면서도 어이가 없어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정혁은 아직 내가 어색한지 조심스러워하는 게 티가 났다. 재봉이와 동갑이어서 그런지 정말 어린 동생이 생긴 기분이었다. 출발선에 서서 어깨동무를 했다. 나보다 키가 약간 커서 팔이 저렸다. 아주 조금.

‘묘하게 자존심 상하네…….’

안 그래도 요즘 박재봉도 무섭게 키가 크고 있어서 팀내 최단신이 되어 버릴까 긴장하고 있었는데, 하필 이런 타이밍에? 하지만 순박하게 웃는 얼굴에 금세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 어렸을 때 일찍 자라는 엄마 말 안 들은 내 잘못이지.

“잘 부탁해.”

“제, 제가 더 잘 부탁합니다!”

“긴장 풀어~ 이인삼각은 팀워크가 생명인 거 알지?”

“네!”

상대 팀을 보니 유현재와 오재성이 서로 발목을 묶고 있었다. 그 조합에 피식 웃음이 삐져나왔다. 서로 똥 씹은 표정으로 아주 약간의 접촉도 불쾌한 듯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게임 룰은 서로 발목을 묶은 채로 저기 보이는 깃발을 찍고 가장 먼저 돌아오는 팀이 이기는 겁니다!”

탕!

경쾌한 총소리와 함께 레이스가 시작됐다. 정혁과 나는 구호에 맞춰 한 발 한 발 달려갔다. 다른 팀원들의 열띤 응원 소리 속에서 3위를 유지했다. 의외로 앞쪽에 유현재와 오재성이 보이지 않았다. 둘의 자존심과 승부욕을 생각하면 벌써 한 바퀴를 돌고도 남았는데 말이다. 그리고 그 의문은 깃발을 돌면서 풀렸다. 유현재와 오재성은 한 차례 넘어졌는지 바지의 흙을 털고 있었다. 일어나서 다시 달려오려 해도 두 발자국 뛰고 고꾸라졌다.

1위는 지운이 형과 성재 형의 팀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가까스로 2위를 차지했다. 정혁은 2위라는 등수에 기뻐하면서도 나에게 미안한 기색이었다. 쉬는 시간에 조심스럽게 다가온 정혁이 말했다.

“제가 좀 더 잘했으면 1위 했을 텐데, 죄송해요.”

“그럴 리가! 1위 팀은 투마월 때부터 알고 지내서 서로 잘 알잖아. 근데 우리는 오늘 처음 하고도 2위나 했잖아? 이건 성재 형한테는 비밀인데, 우리가 더 대단한 거야. 이건 성재 형한테 말하면 안 된다?”

“네!”

꾸벅 인사를 하고는 다시 팀 멤버들의 축하를 받으러 달려가는 뒷모습이 귀여웠다. 나도 오랜만에 멤버들 쪽으로 향했다. 강도현은 독보적인 친화력으로 벌써 팀원들과 친해졌다.

“형은 투마월 때도 그렇고, 이인삼각 참 잘해.”

“성재 형이 잘 맞춰 줘서 그랬지.”

“자, 이제 등수 순으로 돈 봉투 선택의 시간을 갖겠습니다!”

“부자 되어서 오세요.”

시답잖은 농담이었지만 지운이 형의 취향을 저격했는지 돈 봉투를 선택하는 내내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우리 팀의 돈 봉투는 이번에도 가위바위보에서 진 내가 가져오게 되었다. 봉투를 열어 본 순간, 나는 제작진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이, 이거 교환 안 돼요?”

[15,000원]

“만 오천 원을 누구 코에 붙여요!”

팀원들에게 만 오천 원을 뽑았다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조용조용하게 자리에 돌아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팀원들에게 붙잡혔다. 정혁을 제외한 모두가 금액에 실망한 반응이었다.

“이걸로 뭘 하지.”

“라면이나 사서 먹어야겠어요?”

오재성이 비아냥대며 말했다. 2위를 하고도 저런 금액을 뽑을 줄이야. 그래도 걱정한 거에 비해서 나름 음식다운 음식을 만들어 냈다. 특히 정혁이와 손발이 잘 맞았다. 우리 팀 멤버들과 달리 어린 나이인데도 요리를 꽤 능숙하게 해냈다. 덕분에 오랜만에 평화롭게 요리를 한 것 같다.

“만 오천 원으로 저 정도 퀄리티 만들어 낸 게 제일 대단하네-”

“맛있겠다!”

먹음직스러운 비주얼에 두 사람, 김병대와 오재성을 제외한 모두가 감탄했다. 성재 형은 이제 하다 하다 요리까지 잘해 버리는 거냐며 핀잔을 줬다.

각 팀의 요리가 나오고, 심사는 누구에게 맡길지 기다리는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윤 피디가 옷깃을 정리하고 있었거든. 그리고 이번에도 내 촉이 맞았다.

“심사위원은… 윤 피디님입니다!”

“…와아”

“누구 음식이 제일일지 벌써 기대되네요!”

‘우승은 글렀네-’

각 팀의 음식을 아주 신중하게 평가하는 듯했지만, 결과는 예상대로 오재성 팀이었다. 정작 오재성 팀인 박재봉은 나에게 우리 팀 음식이 훨씬 맛있다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지만.

“우승 팀 팀원에게는 맛있는 전골 밀키트를 선물로 드립니다!”

“…우와-”

모두 아침부터 일어나서 어색한 사람들과 장을 보고 요리한 정성에 비해 상품이 터무니없다고 느낀 게 분명하다. 게다가 저 밀키트, ppl이다. 씨넷 계열사라 그런지 투마월 때도 몇 번 ppl로 나온 전적이 있었다.

1등으로 뽑히고 내심 뿌듯해하던 오재성도 상품을 확인하고는 힘겹게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30분 뒤, 나는 오재성이 얼마나 열을 받았는지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야외 촬영이 모두 끝나고 다음 촬영지로 향하기 전, 숙소에 두고 온 짐이 떠올랐다. 급하게 짐을 챙기러 가는 길, 모두가 떠났다고 생각한 그곳에서 오재성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진짜 또라이라니까? 그 고생을 시켜 놓고 밀키트?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누구랑 통화 중인 거지?’

“응. 나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자기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다니까?”

방금 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목소리 톤과 말투였다. 자기? 앞으로 일이 굉장히 흥미롭게 진행될 거 같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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