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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216화 (216/346)

216화

“넥스트 레벨 측에서 이번 주에 단체 엠티를 간다고 하더라.”

“갑자기 엠티요?”

“어.”

“제가 생각하는 그 엠티가 맞아요?”

“엠티가 뭐 다른 것도 있니?”

“아니, 그냥 체육대회 정도 하는 거 아니었어요?”

윤 피디가 드디어 미친 게 분명했다. 원래 회귀 전 넥스트 레벨에서도 엠티 같은 건 없었으니까. 갑작스러운 스케줄 변경에 전달하는 매니저 형의 표정도 좋지 않아 보였다.

“그러니까. 갑자기 스케줄 조정하느라 우리도 난감했어.”

“진짜 막 나가시네 이제.”

아무리 시대가 변해 간다 해도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진리, 방송국이 갑이라는 것. 뜬금없는 1박 2일 엠티 스케줄에 당황한 건 우리 팀뿐만이 아니었다. 숙소에 들어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핸드폰이 울렸고, 전화한 사람은 역시나 성재 형이었다.

[승빈아, 너희도 엠티 얘기 들었어?]

“어, 형. 우리도 방금 전해 들었어.”

[아니, 이게 무슨 친목 프로그램도 아니고 갑자기 엠티가 뭔 말이래.]

“그러니까. 생각만 해도 머리 아프다.”

[야, 진짜 너희 팀이라도 없었으면 끔찍했을 듯.]

“형,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야.”

[근데 진짜 큰일이야, 시간이 얼마 없어서.]

“시간이 없다고? 왜?”

[엠티 갈 준비를 해야 하잖아!]

“그냥 가면 되는 거지, 뭘 준비해야 해?”

[얘 좀 봐라. 1박 2일이면 옷이 몇 벌이야- 일단 잠옷부터 얼른 골라야겠다.]

이런 상황에서도 잠옷부터 고를 생각을 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아는 연예인 중 제일 비범한 사람은 바로 성재 형인 것 같다. 이런 사람이 연예인을 안 하면, 누가 연예인을 하겠냐고. 얼른 옷부터 골라야겠다며 호들갑을 떨던 형은 급하다며 바로 전화를 끊었다.

“와, 자기가 걸어 놓고는-”

뜬금없는 타이밍에 끊긴 전화에 황당해서 몸을 일으켰다. 짧은 통화였지만 그새 기가 빨렸는지 물이라도 한 잔 들이켜야 할 것 같았다.

“뭐 하냐?”

“형, 어떤 게 더 나은 거 같아요?”

잠옷 고르는 게 유행이었나.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건 캐리어를 펼쳐 놓고 짐을 싸고 있는 박재봉이었다. 양손에는 휘황찬란한 색감의 잠옷 두 벌이 들려 있었다.

“벌써 짐 챙기는 거야?”

“네! 저 엠티 처음 가 봐요!”

‘이게 그런 엠티는 아닐 텐데…….’

긴장을 안 하는 건지, 아니면 너무 긴장해서 애가 미쳐 버린 건지. 이것저것 챙기는 박재봉의 손이 제법 분주했다. 뭘 챙기나 해서 보고 있자니 신나서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는 거 아닌가.

“재봉아, 우리 가는 거 1박 2일인 건 알고 있지?”

“그럼요!”

“그런 거 치고는 짐이…….”

“형이 봐도 좀 그렇죠?”

“음… 어.”

“맞아요, 저도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어?”

“하… 더 큰 캐리어는 없는데-”

황당함에 방으로 뛰어 들어가는 박재봉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냉장고 앞에 서 있던 지운이 형과 눈이 마주쳤다.

“말리기는 틀렸어.”

“형도 봤어요?”

“어. 아까 저거보다 덜 챙겼을 때도 내가 많지 않냐 했는데, 부족하다고 하더라고.”

“서바이벌 끝나면 진짜 여행이라도 한 번 가야겠어요.”

“그러게. 안 그래도 지난주에 재봉이 학교 친구들은 수학여행을 갔나 봐.”

“아…….”

이제야 박재봉의 행동이 이해가 갔다. 최근에 얘가 좀 텐션이 낮았지만, 서바이벌을 준비하느라 조금 지쳐서 그런 줄 알았는데 이유가 있었구나.

“형은 어떻게 알았어요?”

“나는 애들 관련된 거는 거의 다 알지.”

덤덤하게 얘기하는 형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래, 언제나 형은 그랬다. 자신의 영역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참 한결같았다.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이건 그렇지 않은 사람이건 그 세심함에는 정도의 차이가 없었다.

‘생각할수록 오재성 그 새끼가 더 괘씸하네.’

오재성 역시 형의 영역 안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몇 번을 실망시키고 또 실망시켜도 형은 오재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상황이 사람을 그렇게 만든 거라고 굳건히 믿는 사람이었다. 나쁜 애는 아니니까, 재성이도 얼마나 힘들면 그러겠니. 티벡스 시절 형이 달고 살던 말이었다.

어쩌면 내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에게 하는 말 아니었을까.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오재성과 다른 멤버들을 품을 수는 없었을 테니까.

“뭐야, 우리 여행 가?”

“어? 도현이 언제 나왔어?”

“아까 재봉이 짐 싸는 거 보다가 들어갔는데, 얘는 어디 갔어?”

“짐 더 챙긴다고 방에 가셨답니다.”

잠깐의 정적을 깬 건 강도현이었다. 그새 씻었는지 머리를 터는 손에는 피곤함이 가득해 보였다. 그럴 만도 한 게 벌써 1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아이고, 그러다 아주 그냥 숙소째 들고 가시겠어?”

“그러게 말이다. 캐리어 들지도 못할 듯.”

“근데 갑자기 무슨 여행?”

“아… 재봉이가 이런 엠티에도 엄청 신나 하고 기대하는 거 같아서. 제대로 여행 한번 가자는 소리였어.”

“여행 좋지- 지난번에 잠깐 바다 간 것도 재밌었잖아.”

“맞아. 이번에는 아예 숙소 잡고 가 보자.”

“도현이 너, 별 보고 싶다 그랬잖아. 산 쪽으로 가도 좋을 거 같은데-”

반쯤 감긴 채로 얘기하던 강도현의 눈이 번쩍 떠졌다. 딱 봐도 쟤 벌써 감동받은 표정이었다.

“헐, 형 대박. 그걸 기억해요?”

“당연하지.”

“와, 문승빈. 봤냐? 이게 나와 지운이 형의 관계다.”

“좋으시겠어요 아주-”

“그럼 가서 별 보면서 형이 좋아하는 바비큐도 해 먹자고요.”

“당연하지. 내가 제대로 구워 줄게.”

“예스- 우리 1등하고 꼭 단체로 여행 갑시다.”

“그래, 꼭 그러자, 우리.”

다행이었다. 이제는 형의 그 따듯함을 알아주는 사람들과 함께라서.

“뭐야, 여행?”

“어, 형은 또 어디 갔다 왔어요?”

“나 잠옷 사러 갔다 왔지.”

“잠옷?”

“어, 우리 엠티 간다며! 내 잠옷을 그대로 입을 수는 없잖아-”

그럴 만도 했다. 선우 형의 잠옷은 형이 중학교 때부터 입었다는 체육복이었다. 고무 대야를 떠올리게 하는 강렬한 뻘건색에 궁서체로 박혀 있는 형의 이름 세 글자. 잘못 빨기라도 하면 그냥 갈기갈기 찢어질 것 같은 티셔츠까지 환장의 조합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 어떤 자컨이나 방송에도 형의 찐 잠옷이 나온 적은 없었을 거다.

“형 치사하다, 혼자 사러 갔어?”

“나 뭐 입을지 몰라서 2개 샀거든. 고르면 다른 하나 줄까?”

“대박. 어, 나 주라.”

아, 이쯤 되니 나도 잠옷을 골라야만 할 것 같다.

* * *

그토록 원치 않던 엠티 날 아침이 밝았다. 강원도에 위치한 펜션에 출연진이 모두 모였는데, 다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차라리 그냥 무대를 열 번 더 준비하는 게 낫겠어.”

“진심. 아크로바틱이건 서커스건 다 할 테니까 지금이라도 이거 취소되면 좋겠다.”

확신하는데 지금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다 똑같은 생각 중일 거다. 단 한 사람, 윤 피디만 제외하고.

“근데 1박 2일이나 엠티를 하면 파이널 준비할 시간이 되나?”

“그러게. 가뜩이나 시간 없는데-”

“그니까. 별걸 다 하네 진짜.”

투덜거리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고, 입 다물고 있는 사람들도 동조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 스케줄이었다. 우리가 지금 뭐 하하호호 친목 도모 하고 있을 때도 아니고.

“안녕하세요, 여러분. 다들 도착하신 건가요?”

“네.”

“좋습니다. 지난 몇 주간 삭막한 연습실과 녹화장에서만 여러분을 보다가, 이렇게 밖에서 보니까 또 반갑네요.”

표정 관리에 도가 튼 유현이 형마저 순간 인상을 찌푸릴 뻔할 정도로 재수 없는 말투였다. 전혀 반가워 보이지 않는 표정으로 참 뻔뻔도 하시지.

“일단 다들 짐 풀고 점심 식사부터 하시죠. 본격적인 일정은 그 후에 안내드리겠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촬영이 시작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윤 피디는 그 말만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각자 짐을 풀고, 식당이 있다는 옆 건물로 향했다. 펜션 단지 전체를 다 빌리기라도 한 건지 이동하는 와중에도 스태프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게 다 뭐야?”

“대박. 거의 뷔페 아니에요?”

“와, 스케일 무슨 일이야.”

넓은 공간을 가득 채운 다양한 종류의 음식에 다들 넋을 놓은 듯했다. 금방이라도 음식을 향해 달려가고 싶지만, 다들 아직까지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윤 피디가 또 뭘 하려고 이러는 거지.’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여러분 뭐 하세요? 얼른 식사하셔야죠.”

“식겠어요. 드세요, 어서.”

하지만 더 이상 윤 피디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다른 작가들이 식사를 권유하자 다들 머뭇거리면서도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와, 고기 미쳤다.”

“형, 저기 양고기도 있어요.”

“재봉아, 뷔페에서는 김밥 같은 거 먹는 거 아냐.”

“연어 대박이다. 그냥 입에서 녹는데?”

그리고 고삐가 풀리는 건 한순간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더 이상 들어갈 곳도 없어 반강제적으로 식사가 끝났다. 그리고 이어진 재모임 시간에는 다들 만족스러운지 한층 풀어진 표정으로 나타났다.

“다들 맛있게들 드셨나요?”

“네!”

처음으로 윤 피디 얼굴을 보고도 다들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호의적인 답변이라니.

“그럼 이제 오늘의 스케줄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는 바로 단체곡 연습입니다!”

나왔다, 윤 피디의 주특기. 방심한 사람들 뒤통수치기.

“뭐라고? 여기서 연습한다고?”

“단체곡? 그거 각 팀에서 한 명씩 뽑은 거 말하는 건가?”

예상치 못한 윤 피디의 발언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져만 갔다. 세상 힐링할 것처럼 밑밥을 깔아 놓고는 갑자기 연습이라니. 아직 소화도 다 안 됐는데 정말 지독하기 그지없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맘으로 연습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겠죠?”

‘개뿔이나…….’

엠티라고 해서 잔뜩 신났던 박재봉부터 확인했더니, 역시나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단체곡만 연습하는 거면 다른 멤버들이라도 쉴 수 있지 않을까.

“그럼 그동안 다른 분들은 뭘 하시냐? 바로 파이널 순서 정하기 대결입니다!”

에라이. 저 인간, 내 속마음을 읽기라도 하는 건지, 생각하는 족족 깨부수는 것도 능력이다 싶었다.

“간단한 게임들을 통해 순서를 정하게 될 겁니다. 생방송 투표가 진행되는 만큼 순서가 아주 중요하겠죠?”

주위를 한번 둘러보니 다들 있는 힘껏 표정 관리를 하고 있었다. 잠깐 방심이라도 했다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욕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였으니까.

“아까 뭐라 했지? 서커스?”

“어. 엠티 와서 아크로바틱이건 서커스건 다 하게 생겼네.”

입이 방정이라며 자책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럼, 단체곡 최종 파트 분배부터 시작할까요?”

다른 팀원을 다 내보내고 대표 멤버들만 남은 이곳, 윤 피디의 말을 시작으로 눈치 싸움이 시작됐다. 하윤과 유현재는 댄스 포지션, 나와 성재 형, 오재성은 보컬 포지션이라서 자연스럽게 경쟁 구도가 형성됐다.

“물론 그냥 정하는 건 아니고, 투마월 출신인 분들은 익숙할 텐데…….”

‘무슨 얘기를 하려고……?’

윤 피디는 흥미로운 듯 입꼬리를 씰룩이고 있었다. 거기서부터 불안함이 엄습했다. 투마월 출신들에게 익숙한 것이라면.

“센터 선발전이 있을 예정입니다!”

저 또라이 X끼가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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