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215화 (215/346)

215화

“3위는 포커스입니다!”

“엥?”

“헐!”

“…대박.”

“어머, 이게 무슨 일이야!!”

성재 형은 흡사 투마월에서 6위로 발표된 날처럼 이목구비를 전부 개방하며 놀랐다. 멤버들도 모두 놀란 눈이었다. 오늘 투샤인이 굉장히 좋은 무대를 보여 준 것은 맞지만 막강한 포커스의 팬덤력을 이길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으니까. 어느 정도 상황을 예측했던 나에게도 놀라운 결과였다.

“포커스는 처음으로 상위권에서 내려왔는데, 많이 아쉽겠어요.”

“아, 아닙니다! 3위도 정말 좋은 순위죠…….”

“다음 무대에 대한 각오 한마디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번엔 조금 주춤했지만… 아, 3위라는 순위도 정말 좋습니다.”

‘아이고, 병대야…….’

오늘 여러모로 투마월을 떠올리게 하는 순간이 많았다. 김병대의 말로도 수습이 되지 않자 오재성이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온갖 미사여구로 가득한 소감과 해명을 늘어놓았다.

“성재 군, 너무 기뻐하던데 오늘 1위 노려볼 수 있을까요?”

“저희는 이미 1위보다 더 기쁩니다! 1위 그거 너희 해라, 크리드!”

“아, 진짜 성재 형 너무 웃기다니까!”

“다른 팀원들의 의견도 같나요?”

“네!”

신기하게도 정말 성재 형과 같은 사람들끼리 모인 그룹이다 싶었다. 너무 해맑은 반응에 MC들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1위는… 성재 군의 바람대로 크리드입니다!”

“와아아!”

“축하해!”

“우리 2등이다!”

표정이 좋지 않은 3팀은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와 투샤인은 기쁨을 만끽했다. 이따금 눈치를 주려는지 크게 기침을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별생각 안 들었다.

‘어쩔 거야, 지금 우리가 행복한데?’

그리고 일그러진 포커스의 얼굴은 꽤 볼만했다.

“자, 이제 파이널 3차 경연만을 남겨 두고 있죠?”

“맞습니다. 3차 경연의 주제는 ‘Who’s on the next level?’입니다!”

[Who’s on the next level?: 신곡 대결]

“3차 경연은 신곡 대결입니다. 경연 일주일 전에 음원이 공개되고, 일주일간의 성적을 최종 결과 산출 시 30%를 포함할 예정입니다.”

“정리하자면 음원 30%, 사전 투표 20%, 현장 투표 및 문자 투표 50%입니다.”

“…그리고 단체 무대가 있습니다. 각 그룹의 대표 멤버들끼리 무대를 만드는 거죠.”

예상치 못한 단체 무대 통보에 현장이 술렁였다. 신곡 무대는 이미 예상했던 부분이라 윤빈 형과 소속사에서 거의 준비를 마친 상황이었다.

“단체곡을 공개합니다. ‘NEXT LEVEL’입니다!”

단체곡 ‘NEXT LEVEL’은 프로그램의 여정을 정리하는 느낌의 밝고 리드미컬한 곡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안무가 어렵지 않아 보였다.

“대표 멤버는… 오늘 이곳에서 선정합니다. 1시간의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오늘 바로?”

“너무 촉박한데…….”

모두 우왕좌왕하던 사이 선샤인과 하이드는 대표 선수를 뽑았다. 모두의 예상과 한치도 벗어나지 않고 하윤과 유현재였다.

그리고 그 순간 상태창이 반짝이기 시작하더니 돌발 미션이 주어졌다.

[대표 멤버로 선발] +1

제한 시간) 1시간

▶성공 시 : 1 포인트 적립

‘타이밍 한번 참…….’

나오라고 빌 때는 눈길도 안 주더니, 이런 타이밍에만 나타난다. 그리고 서바이벌을 해서 그런가, 평소보다 미션창이 자주 등장하는 것 같았다.

원래는 대표 멤버로는 다른 멤버를 추천할 생각이었다. 체력적으로도 휴식이 필요했고, 신곡 무대에서 에너지를 많이 소모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나온다면 어쩔 수 없지. 베팅을 걸어왔다면 맞서 주는 게 도리니까.

“우리는 누가… 뭐야, 다야?”

모두가 손을 든 상황이 웃겼다. 심지어 말을 하던 유현이 형은 아예 손을 들고 말을 했다. 역시 자기애 빼면 시체인 크리드 다웠다.

“각자 매력 어필이나 할까요?”

멤버들 모두 자신이 대표 멤버가 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사실 누가 나가더라도 불안함이 없다. 그만큼 개인 기량이 좋은 그룹이니까.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노래는 가장 잘 소화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어. 요즘 춤에 자신감도 많이 붙었고.”

“그럼 투표로 뽑자. 자기 자신 빼고 투표할 수 있는 거 알지?”

멤버들이 직접 뽑는 것이기 때문에 더 긴장이 됐다. 팀에 확실한 도움을 줄 수 있는 멤버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고, 다른 그룹의 대표들과 겨뤄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 싶은 마음도 컸다.

“유현이 형 3표, 승빈이 형 3표, 지운이 형 1표”

“동점이네…….”

“둘이 직접 불러 보는 거 어때요? 안무도 기억나면 하고.”

우리 둘의 음색이 이 노래에 잘 어울려서 예상했지만, 결국 유현이 형과 일대일로 맞붙을 줄이야. 개인 역량도 가장 좋고, 올라운더인 멤버였기에 더 긴장이 됐다.

“그래. 누가 먼저 할래?”

“…….”

“내가 먼저 할게.”

아, 늦었다. 그러지 말아야 했는데 순간 유현이 형의 기세에 말리고 말았다.

[내가 걸어온 이 길엔

수많은 땀방울로

새겨진 발자국

내 미래를 알려 줄

지도가 될 거야]

역시 안정감 있는 라이브와 춤이었다. 긴장을 풀고 멤버들 앞에 섰다. 다른 사람보다도 멤버들에게 평가받으려니 더 긴장이 되는 것만 같았다.

[Look! 눈앞의 Next Level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다음 Level을 넘을 유일한

Catch! 눈앞의 Next Level]

주어진 준비시간이 짧았기에 가장 잘할 수 있는 파트를 골랐다. 그리고 긴장한 것이 무색하게 스스로도 마음에 드는 어필을 마쳤다. 투표 결과는 3대 1. 내가 선발됐다. 유현이 형도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했지만, 그러면서도 걱정을 아끼지 않았다.

“오늘은 오랜만에 고기 먹자. 오늘만 봐도 무대 하나 했다고 거의 기절하던데, 대표 선수로 나가는 만큼 체력 관리 잘해야지.”

“기절까지는 아니었거든요-”

“그럼 고기 말고 샐러드…….”

유현이 형의 말에 강도현과 윤빈 형, 박재봉이 다급하게 외쳤다.

“안 돼요! 우리 승빈이 형 고기 먹어야 해요!”

“맞아!”

“소고기 먹어야 해!”

“와, 내가 진짜 감동받아서 눈물이 다 나네…….”

유현이 형은 못 말린다는 듯 바람 빠진 웃음 소리를 냈다.

[대표 멤버로 선발] +1

[MISSION CLEAR!]

10분을 남기고 미션을 클리어했다. 이번에는 어떤 포인트를 높일까, 끼와 외모 중 고민이 됐다. 그사이, 주어진 대표 선발 시간이 모두 끝났다. 투샤인은 성재 형, 포커스는 오재성이 선발됐다. 예상했던 결과였다.

“대표 멤버들은 두 곡을 소화해야 하는 만큼! 전력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촬영이 끝나고 유현이 형이 나를 불러 세웠다.

“아까는 모른 척한다고 했지만, 스스로 너무 혹사시키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어.”

“…….”

“이 그룹이 나한테 어떤 존재인지 알지?”

“그럼요.”

“누구 하나 다치지 않고 마치고 싶어.”

“알았어요- 누가 보면 죽을 병이라도 걸린 줄 알겠네. 형이 먼저 말한 거예요, 이제 힘든 거 있으면 다 말할게요. 됐죠?”

일부러 더 과장해서 말했다. 유현이 형은 더 말을 않고 멤버들의 뒤를 따랐다. 사실, 대표 멤버를 한다고 했을 때 뜯어말릴 줄 알았다. 지금까지 멤버들이 부상을 입거나, 멘탈적으로 힘들 때마다 누구보다 신경을 쓰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말리지 않은 것은, 나를 믿어 준 거겠지. 이번 대표곡 노래 대결에서 더 잘해야 하는 원동력이 생겼다.

“뭐야, 문승빈 빨리 와!”

“그냥 승빈이 형 두고 갈까요?”

“빨리 와, 고기 먹으러 갈 거야-”

나도 모르는 새 입꼬리가 올라갔다. 따듯함을 가득 품고 다시 힘차게 멤버들과 매니저 형을 향해 달려갔다.

그날 저녁은 말 그대로 고기 파티였다. 식단 관리로 몇 주째 닭가슴살과 샐러드만 먹던 멤버들도 먹잇감을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전투적으로 고기를 흡입했다.

“이사님이 법카 주셨다. 오늘은 먹고 싶은 만큼 마음대로 먹어!”

매니저 형의 말에 모두 환호했다.

“맞다, 공계에 글 올려야지.”

고기로 가득한 상과, 크게 쌈을 싸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내 사진을 찍으면서 멤버들의 사진도 몇 장 찍었다. 모두 하나같이 양 볼 가득 우물거리는 사진이었다.

“너무 퉁퉁하게 나온 거 아니야?”

“재봉이 완전 햄스터 같다.”

“윤빈 형은… 쌈을 몇 개를 넣은 거예요?”

입에 다 들어간 게 용할 정도였다.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렸다.

[클로버! 오늘 경연 마치고 오랜만에 고기 파티 했어요ㅎㅎ 열심히 먹고 파이널 경연도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ps. 햄스터가 된 멤버들 사진도 같이 올려요ㅋㅋㅋㅋ 언제나 음식에 진심인 우리♡]

-승빈이 컨디션 안좋다는 글봐서 걱정했는데 맛있는거 먹고있구나ㅠㅠ

└고기많이먹어!!!

└세점씩 싸서 먹어

-애들 볼 터지겠엌ㅋㅋㅋㅋㅋㅋ

-크리드말고 햄리드하잨ㅋㅋㅋㅋ

-1g이라도 사라지지마…

-아 진짜 귀여웤ㅋㅋㅋ큐ㅠㅠㅠㅠㅠ

-진심 코어는 삼시세끼 고기반찬 먹여라

팬들의 걱정도 조금은 사그라든 거 같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 * *

“다들 각자 연습 잘해 오셨죠? 단체곡 연습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서바이벌이 시작되고 처음으로 이뤄진 단체 연습 시간. 전원이 모일 때만큼 북적거리지는 않았지만, 다른 팀과 함께 연습을 하는 건 처음이라 긴장감이 가득했다. 성재 형과 나를 제외하고는 다들 하나같이 사이가 안 좋았으니까. 특히 하윤 쟤는 거의 뭐, 오재성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여기나 저기나 지금 이게 비하인드로 찍히고 있다는 건 이미 잊어버린 듯했다.

하지만 그 날카로운 긴장감 사이에서, 나만 혼자 다른 걸 생각 중이었다. 바로 포인트 분배. 미션으로 얻은 포인트를 어디 쓸까 고민했지만, 단체 연습을 시작한 순간 그 모든 고민이 일순간 사라졌다.

‘무조건 얼굴, 얼굴이다.’

실력은 이 중에서 내가 제일 월등했다. 자만이 아니라 이들의 상태창을 보고 하는 소리였다, 물론 상태창을 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기는 했지만. 하지만 외모를 비교하자면 얘기가 좀 달라졌다.

오재성과 유현재 모두 큰 키에 아이돌보다는 배우상에 가까운 얼굴들이었다. 유현재는 이미 배우로도 활동 중이었고, 그 말인즉슨 카메라 마사지를 이미 제대로 받은 얼굴이라는 소리였다.

사실 오재성 쪽은 그렇게 견제될 정도는 아니었다. 못생겼다고는 할 수 없지만, 회귀 전에도 후에도 아이돌 팬들이 그다지 좋아하는 얼굴상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유현재는 달랐다. 배우상이기는 했지만, 무대에서의 얼굴도 상당했다.

보통 배우상이라고 하는 얼굴들이 아이돌 스타일링을 하면 어색하기 마련인데, 유현재는 그런 것조차도 없었다. 잠깐 대표를 유현이 형으로 바꿀까 고민이 들 정도였다. 이미 미션 클리어도 떴는데, 설마 줬던 걸 다시 뺏어 가겠어?

‘이놈의 상태창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도 하지.’

단체곡 자체가 화려한 안무보다는 각자 끼 부리는 게 중요한 노래였기에, 보여지는 모습이 더 중요하기도 했다.

‘나도 이번에 배우상이라는 소리 한번 듣고 만다.’

이번 경연, 혼자만의 목표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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