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214화 (214/346)

214화

이번에는 문스트럭과 A는 장렬하게 광탈하고, 정연과 레빗드림이 당첨됐다. 1차 경연보다 방청 수가 늘어나면서 현장 분위기도 더 뜨거웠다. 하필 이번에도 마지막 순서인 크리드를 기다리며 둘은 다리에 쥐가 났지만, 크리드가 등장하자마자 피로를 느낄 새가 없었다.

“미친, 애들 교복이야?”

“전부 같은 교복이네?”

“콘셉 너무 기대된다-”

활동 중에도 교복을 입은 모습을 몇 번 보여 주긴 했지만, 몇 번을 입어도 지겹지 않고 만족도 높은 게 교복 의상 아니겠는가? 게다가 각 멤버의 개성을 살렸던 기존 교복 의상과 다르게 이번에는 정말 학생들처럼 다 똑같은 교복을 입고 있었다. 데뷔 앨범 재킷 사진을 떠올리게 하는 단정한 모습이었다. 마치 클론들처럼 똑같은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라이트온의 서바이벌을 선택한 크리드, 이번 무대 살짝 스포해 줄 수 있나요?”

“음,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크리드의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승빈의 추상적인 답변에 둘은 더 흥미로웠다.

“애들이라면 분명 좋은 무대 준비했겠지-”

“맞아. 애들 무대로는 걱정할 필요 없는 거 진짜 축복이잖아.”

한참 서로 주접을 할 무렵, 무대 위로 익숙한 교실 책상과 의자가 세팅됐다. 학교를 배경으로 한 것일까, 정연은 벌써부터 새로운 무대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조명이 어두워지고, 사람들의 환호성 소리가 점점 커졌다. 곧 조명이 들어오고, 멤버들 모두 책상에 각 잡힌 자세로 앉아있었다. 뒤쪽의 VCR에는 커다란 AI 캐릭터와 자막이 나왔다.

[두려움에 갇혀 지내는 것에 안락함을 느끼게 될 줄이야]

그리고 급박한 초침 소리와 함께 의자에 앉은 멤버들이 발을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순식간에 무대에 집중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발 따라 움직여

생각보다 앞선 행동

모두가 똑같은 색

그 누구도 하지 않아 의심]

책상을 박차고 일어선 승빈의 도입부에서 정연은 비명을 지르며 환호했다. 지금까지 보기 힘들었던 반항적인 눈빛에 또 다른 매력을 느꼈다. 얌전히 책상에 앉아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멤버들의 주변을 배회했고, 그가 움직일 때마다 멤버들의 행동에 오차가 발생했다.

차지운이 쓰고 있던 안경을 건드리거나, 박재봉의 손목에 있는 팔찌를 빼내려는 시늉도 했다. 깨어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인 듯했다. 그리고 VCR에는 승빈의 정보가 담긴 화면이 나왔다. 이름과 나이, 혈액형, 성격 등에 대한 정보 사이에서 눈에 띈 것은 WARNING 문구였다.

[코드 네임: 승빈]

▶WARNING: 소중한 것을 지키지 못하는 것

“소중한 것을 지키지 못하는 것? 미친 거 아니야?”

[어쩌면 이곳이 편하다 생각했지

내 숨을 조여 오는 손길쯤

무시하면 그만

그런데 어느새 내 숨통을 끊어]

박재봉이 단정하게 감긴 넥타이를 신경질적으로 풀어 헤치며 파트를 이어 갔다. 여전히 젖살이 남아 있어서 아기 사자 같았다. 그리고 승빈을 본 정연처럼 레빗드림도 폭주하고 있었다.

[코드 네임: 이든]

▶WARNING: 약해 보이는 것

“약해 보이는 것이라니, 재봉아!”

“와, 이든이라는 이름 오랜만이네.”

멤버들의 워닝 포인트들이 하나둘 공개될 때마다 객석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코드 네임: 지운]

▶WARNING: 정체되는 것

[이제는 눈을 떠

좁은 새장 밖을 벗어나

이 정글 속에서

두 발 딛고 일어서]

리더인 정유현이 손목을 옥죄던 팔찌를 부숴 버리는 순간 깨지는 굉음과 함께 모든 조명이 꺼졌다.

[코드 네임: 유현]

▶WARNING: 꿈을 포기하는 것

“뭐야?”

“방송 사고인가?”

곧 조명이 돌아왔고, 변화한 멤버들의 모습에 정연과 레빗드림은 지금까지의 비명과는 차원이 다른 환호성을 내질렀다. 교복 위로 테크웨어와 방탄조끼를 걸친 멤버들은 금방이라도 애니메이션에서 튀어나온 비주얼이었다. 금방이라도 전투에 투입될 인간 병기와도 같은 느낌을 주었다.

“야, 이거 고장 났나?”

“X친, 언니 지금 심장 괜찮아요?”

“아니?”

“지금 150인데?”

스마트워치에 기록된 심박수는 150을 유지하고 있었다. 착용한 이래 가장 빠른 수치였다. 운동할 때도 보기 힘든 숫자의 연속이었다. 너무 좋아서 심장이 터질 거 같다는 표현이 비유만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차 하나 보이지 않는 칼군무가 이어졌다. 경연마다 소소한 라이브 논란이 있었던 것을 멤버들도 알고 있었는지, 중간중간 자체적으로 기합을 넣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무대의 몰입도를 더 높였다. 정말 내일 따윈 없는 이들처럼 미친 듯이 에너지를 쏟아 내고 있었다.

[불도저처럼 달려들어

스스로 알을 깨고 날아가

뒤돌아보지 않아

눈앞의 장애물에 집중해

I’ll survive!]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군무였다. 그동안 크리드의 무대 모두 마음에 들었지만, 각 잡고 칼군무를 하는 모습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참이었는데 말이다. 정연은 다시 크리드에 입덕하는 기분이었다. 익숙함에 안주하지 않고 예상치 못한 무대를 준비하면서 언제나 팬들의 니즈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아이돌이라니, 소설 속이라고 해도 설정 과다라고 욕먹을 그룹이었다.

[끝까지 살아남아

I’ll survive till the end

세상의 끝이 온다 해도

나에겐 또 다른 시작일 뿐]

멤버들 간의 디테일 차이도 무대의 퀄리티를 높였다. 가장 단정한 모습이었던 정유현과 승빈이 가장 흐트러진 모습으로 선두에 서 있었다. 각자 두려움을 상징하던 물건을 거대한 스크린 속 캐릭터를 향해 던졌고, 부서지는 화면이 이어졌다. 무대를 마친 멤버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고, 현장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모두 숨을 쉬는 방법을 잊은 듯 무대의 여운에 머물고 있었다.

“…크리드의 무대였습니다!”

“와아아아!”

MC의 목소리와 함께 다시 박수와 함성이 터졌다. 여전히 그녀의 심박수는 130~140을 오가고 있었고, 레빗드림 역시 흥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미쳤어, 미쳤어!”

“애들 너무 잘해… 이게 말이 되나? 어떻게 갈수록 더 잘해?”

“현장 반응이 엄청난데요! 크리드의 소감 들어 보겠습니다.”

격렬한 안무와 쉴 틈 없는 라이브에 멤버들도 지금까지 본 모습 중 가장 체력적으로 버거워 보였다. 숨을 몰아쉬던 승빈이 마이크를 쥐었다.

“이번 경연은 저희가 특히나 고민도 많이 하고, 사실… 준비 과정에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두려움도 많았고요. 하지만 역으로 그런 저희의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보자 의견을 모을 수 있었고 어려웠지만, 만족스러운 무대를 할 수 있었습니다.”

“고생한 만큼 여러분들의 많은 응원과 함성을 받을 수 있어서 너무 뿌듯해요!”

그런데 승빈의 상태가 이상했다. 소감을 말할 때도 벅차 보였는데, 비틀거리다가 결국 정유현과 차지운의 부축을 받으며 퇴장했다. 괜찮냐는 팬의 외침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걱정은 커져만 갔다.

“승빈이 아픈가 봐…….”

“컨디션이 안 좋았나?”

* * *

무대를 마쳤을 때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쏟아지는 함성과 내 이름을 부르는 팬들의 목소리도 귀에서 웅웅거리기만 했다. 드디어 해냈다는 안도감에 온몸의 힘이 풀렸고, 잠시 비틀거리는 몸을 지운이 형이 잡아 줬다. 사실 소감도 무슨 정신으로 말했는지 기억이 희미했다. 한 번 풀린 다리는 오늘따라 빨리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유현이 형과 지운이 형의 부축을 받으며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촬영 끝나고 괜찮다고 글이라도 올려야겠다…….’

오재성의 도발로 멘탈적인 타격도 있었고, 체력적으로도 버거운 스케줄이었다. 그 모든 것들이 축적되어 한 번에 터져 버린 것이다. 자세히 보니 상태창에 추가했던 체력 포인트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너 요즘 무리하긴 했어. 잠도 거의 안 자고 연습만 하고.”

“무대 기획까지 도맡아 했으니 더 피곤했겠지.”

“저 괜찮아요…….”

“괜찮긴 뭐가 괜찮아! 너 이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말고 누워 있어.”

“와… 윤빈 형 저런 표현은 또 언제 배웠대…….”

“장난칠 힘 남은 거 봐서는 괜찮은 거 같은데요, 유현이 형?”

“아, 힘드니까 웃기지 마, 강도현…….”

그 말을 끝으로 거의 기절하듯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순위 발표 촬영을 해야 한다고 깨우는 손길이 없었다면 내일까지 깨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저 부어서 나오는 거 아니에요?”

정신이 들고나니 바로 얼굴 걱정이 됐다. 쉽게 붓는 타입이라서 식단 조절도 더 빡세게 하고, 중요한 스케줄 전날에는 잠도 많이 자지 않는다. 그런데 거울을 보니… 이미 꽤 부어 있었다. 급하게 붓기를 빼는 운동을 하자 선우 형이 말했다. 강도현도 빠지지 않고 말을 덧붙였다, 내 화를 돋우는 역할이었지만.

“괜찮아, 클로버들은 부어도 귀엽다고 할걸?”

“그럼 진짜 사랑이다.”

“도현아, 그만 놀려-”

“역시 지운이 형밖에 없다니까?”

조금은 못난 모습에도 귀엽다고 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큰 축복이었다. 그보다 더한 크기의 사랑이 있을까? 나도 거울 보고 잠깐 놀랐는데 말이다.

“넥스트레벨 2차 경연 순위 발표식을 지금 시작합니다!”

5위는 하이드였다. 선샤인은 가까스로 탈락을 면했다. 하이드의 유현재는 아쉬워하는 멤버들 사이에서 유독 표정 변화가 없었다.

“하이드가 아쉽게 5위를 차지했습니다. 다음 무대에 대한 각오가 있나요?”

“다음 무대는 더 좋은 모습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때 다른 멤버의 마이크를 받아 간 유현재가 살벌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그룹에서 뭘 더 좋은 모습을 보여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저 X끼가 뭘 잘못 먹었나?’

무능력한 멤버들과 데뷔한 것이 열받았겠지. 오늘 무대도 실수 연발에 유현재 말고는 남은 게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유현재의 얼굴과 재능은 하이드에서 썩기에는 아깝다. 본인도 그걸 너무 잘 알아서 문제지만.

“음, 잠깐 녹화 멈출까요……?”

MC의 조심스러운 제안에도 윤 피디는 촬영을 감행했다. 당연히 윤 피디에게는 이보다 흥미로운 순간이 없겠지. 알아서 악편 소스를 만들어서 사방에 던지고 있으니, 윤 피디의 찐 웃음을 정말 오랜만에 봤다. 안타까웠다. 저 인간이 흥미로움을 느끼는 대상이 되는 건 앞으로 가시밭길이라는 뜻이었다.

“하이드의 다음 무대 기대하겠습니다!”

“…네! 다음으로 선샤인은 기적적으로 탈락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어떤가요?”

“다음 무대 기회 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오늘보다 더 멋진 무대 준비해서 좋은 순위 받겠습니다.”

이 팀도 마음고생이 심했던 건지, 리더인 하윤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도 눈물을 보였다. 하윤도 눈가가 붉어졌지만, 눈을 더 부릅뜨며 눈물을 참는 듯했다.

‘귀엽게 생겨서 더 무서운 거 같다니까.’

“3위는… 의외네요?”

“네?”

의외라는 MC의 말에 모두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의외라면 낮은 순위인 팀이 순위 상승을 했거나, 높은 순위인 그룹이 순위 하락을 했다는 것이다. 지난번에 투샤인이 3위를 했으니 이번에는 크리드, 포커스 중 한 팀이 순위가 하락했다는 거니까.

전례 없는 긴장감이 현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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