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213화 (213/346)

213화

서로 앨범을 주고받고 가벼운 인사를 끝으로 대기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본방송이 끝난 후 루커스의 사후 녹화를 보게 되었다. 국내에서는 최정상의 위치에 있고, 해외에서도 국내 그룹 중 원탑의 인기를 얻었음에도 여유 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큰 자극으로 다가왔다. 오랜만에 다른 그룹의 무대를 넋을 놓고 감상한 것 같았다.

“어, 승빈이네?”

“안녕~”

“안녕하세요!”

“와아아!”

루커스 팬들의 함성에 쑥스러움이 밀려왔다. 그동안 음악 방송에서는 클로버들의 응원 소리만 들었지, 다른 팬들의 함성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뭐야~ 룩앳미들 한눈파는 거야?”

“아니야~”

“안 되겠다. 승빈아, 얼른 들어가라.”

훈훈한 분위기에 나도 장단을 맞춰 돌아가려는 시늉을 했다.

“아, 진짜로 가면 어떡해!”

현장은 웃음소리로 가득했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저희 질투 많아요!”

“네~ 질투 많은 루커스 녹화 들어갈게요~”

AI와 같은 감독의 멘트에 현장의 모두가 웃음이 터졌다. 총 4번의 녹화를 했지만, 뒤로 갈수록 에너지가 폭발하는 것이 놀라웠다. 괜히 오랫동안 정상의 자리를 지킨 게 아니구나- 새삼 실감했다.

무대를 한 번 할 때마다 거의 바닥에 눕다시피 하면서도 무대만 시작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격렬한 춤과 라이브를 해내는 모습에 감탄했다.

‘이러니 4년 뒤에도 여전히 정상을 지킨 거구나…….’

그리고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재성의 도발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게 하등의 쓸모없는 짓이었구나. 형과 함께 최고가 되기 위해 돌아왔던 게 아니었나, 지키는 게 아니라 함께 올라가는 게 맞는 순서였다. 오재성이 우리를 끌어내리려고 한다는 건, 그 인간이 우리보다 아래에 있다는 소리였다. 지금 내 시선이 향할 곳은 나보다 아래가 아니었다.

의도치 않은 기회였지만 나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준 무대였다.

* * *

뮤직쇼를 보던 문스트럭은 뜻밖의 친목에 갸웃했다.

“루커스랑 승빈이랑 친분이 있나?”

“넥스트 레벨 때문 아니야?”

“그런가?”

그래도 루커스는 승빈의 전 소속사인 VM 소속 가수이고, 포커스의 선배 그룹인데 이렇게까지 우호적인 반응을 보일 줄 몰랐다.

“루커스 선배님들, 오랜만에 컴백하신 소감이 어떠신가요?”

“우선 승빈 군을 만나서 정말 반갑네요!”

“…네? 아, 감사합니다!”

“저희가 해외 투어를 마치고 약 8개월 만에 컴백을 했는데 기다려 주신 우리 룩앳미! 너무 고마워요-”

의문이 드는 친목이었지만 선배들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승빈의 모습은 또 처음이어서 새로웠고, 무엇보다 너무 귀여웠다.

“승빈이 당황했나 봐, 근데 너무 귀여워!”

“예쁨받는 후배가 이렇게 좋은 거다…….”

“나 이 친목 찬성함.”

인터넷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루커스가 승빈이 낳았냐?]

-엄청 우쭈쭈하넼ㅋㅋㅋㅋㅋㅋ

-넥레 찍으면서 성훈이랑 친해졌나봐

-훈훈하고 좋다ㅎㅎ

-루커스랑 친목이면 쌍수들고 환영하짘ㅋㅋㅋㅋ

└ㅇㅇ병크도 없고 조언도 많이 해줄 듯?

[승빈이 저렇게 당황한거 처음봨ㅋㅋㅋㅋㅋㅋ]

-내새끼의 사회생활을 보는거같지만 일단 예쁨받으니까 좋앜ㅋㅋㅋ

-저희 승빈이 예뻐해주셔서 감사합니다ㅠㅠ

-근데 나같아도 승빈이같은 후배면 ㅈㄴ예뻐할 듯

└예뻐만하냐? 난 업어키울거임

└이건 승빈이 의견도 들어봐야 한다

-루커스 이렇게 장난기많은 그룹이었음?ㅋㅋㅋㅋㅋ

└ㅇㅇ자컨만 봐도 지들끼리 엄청 장난침ㅋㅋㅋㅋㅋㅋ

└뭔가 범접하기 어려운 이미지였는데 인간미있넼ㅋㅋㅋ

짧았지만 순식간에 실시간 트렌드와 검색어에 승빈과 루커스의 이름이 올라갈 정도로 파급력을 가진 인터뷰였다. 물론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반응도 허다했다.

[아무리 그래도 후배그룹이랑 경쟁그룹인 애한테ㅎ…]

-ㅈㄴ포커스 데뷔할 때 챌린지도 안해주더닠ㅋ큐ㅠㅠ

└팬들이 스스로 지새끼 찬밥신세라고 광고를하네

└내새끼 찬밥신세인게 내 잘못임?

-포커스가 얼마나 못하면ㅋ…

└루커스가 잘못한건데 얘기가 왜 거기로 흐름?

└느그 포커스가 싸가지없는걸 왜 루커스 탓함?

└포커스가 싸가지 없는걸 니가 어떻게 아세요?

그리고 방송이 끝나고 싸움에 장작을 던지는 사진 하나가 올라왔다.

LookUs @LookUs_official 1분전

[승빈이랑 한 컷!]

승빈과 함께 찍은 단체 사진이 올라왔고, 순식간에 몇만 리짹과 멘션이 달리기 시작했다. 반응이 더 컸던 이유는 승빈과의 사진이 루커스 계정에 거의 처음 올라온 타 가수와의 사진이었기 때문이다.

-ㅁㅊ문승빈 어떻게 했냐?

-나 지금 눈을 의심함

-내가 루커스 공계에서 타그룹이랑 사진을 보다니…

└아무래도 룩앳미 너무 오래한거같다

-진짜 해도해도 너무하네 ㅅㅂ

└우냐?

└울지말고 말해봐ㅠ

그리고 곧 크리드 공계에도 글이 올라왔다.

[멋진 루커스 선배님들의 무대 너무 잘 봤습니다! 잊지 못할 하루가 될 거 같아요★]

(사진)

-이게 무슨 세계관 최강자들의 사진이냐

-승빈이 최피디 이어서 1군픽되는거 너무 웃기고 귀여움ㅋㅋㅋㅋㅋㅋ

-이정도면 승빈이가 인간 클로버 아니냐?

-루커스와 문승빈… 이거 되는 주식이다

└풀매수 가보자고

연예계에서 좋은 인맥을 만드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논란이 있는 연예인들과의 친목 소식은 팬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주된 원인이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문스트럭은 승빈이가 기특하기만 했다. 드물게 올라오는 인맥마저 다 상상 그 이상이었으니까.

“나 진짜 승빈이 오래 좋아할 거 같다…….”

“너, 그 말만 거의 1년째 하고 있는 거 알지.”

“미X, 곧 승빈이 처음 본 지 일 년 되는 거잖아.”

일 년이 되어 가는데도 아직도 덕심이 식기는커녕 불타오르다니, 문스트럭은 소름이 돋았다. 이렇게 순식간에 1년을 보냈으니 2년, 3년은 시간문제였다. 이전에는 2년 이상 덕질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는데, 승빈은 10년도 거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빈의 식판 계정을 운영할 거라는 친구의 말을 더는 장난으로 받아들일 수 없어서 웃음도 나오지 않는 그녀였다.

* * *

정신없이 준비하다 보니 벌써 2차 경연 당일이었다. 반쯤 졸면서 무대 스타일링을 모두 마치고 잠시 음료수를 마시던 중, 포커스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너에게 완벽한 남자

꿈꿔 온 그런 사람

내가 되어 줄게

You’re one & only]

‘저 X친 새끼가……!’

오재성이 첫 파트를 시작하는 순간 확신했다. 대체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 모르겠으나, 지운이 형의 무대를 본 것이 분명하다. 저건 지운이 형의 제스처였으니까.

티벡스 시절의 제스처였다면 의심도 안 했을 것이다. 무대에서 조금이라도 눈에 띄고, 같은 제스처를 반복한다면 이걸로라도 사람들 입에 오르지 않을까- 절박한 마음으로 만든 제스처였으니 잊을 수가 없겠지. 하지만 저 동작은 형이 투마월 시즌4 대면식 무대에서만 보여 준 것이다. 현장에 있던 나도 형이 항상 하던 제스처가 아닌 새로운 것이어서 집중해 봤던 기억이 있었으니까.

포커스가 첫 번째 무대였으니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충격으로 무대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도를 넘어가는 도발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었으니까. 두통은 깊어졌고, 속이 울렁거려 화장실로 도망치듯 달려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경연 준비로 식단 조절을 하고 있어서 먹은 것이 없어 쌉싸름한 위액만 게워 낸 것이 전부였다.

자꾸만 형의 마지막 무대가 떠올랐다. 원망으로 가득했던 눈, 한때 동료였던 사람을 올려 봐야 하는 비참함은 나에게도 온전히 전해졌으니까. 혼신의 힘을 다한 무대였겠지만, 이전과는 다른 에너지. 지운이 형에게도 비극이었지만, 나에게도 최악의 기억을 준 무대였다.

이 노래를 한다고 했을 때부터 짐작했지만, 두 눈으로 보니 충격이 더 컸다. 형을 조롱하는 걸 가만히 쳐다볼 수 없었다. 와중에도 행여 메이크업이 번질까 터질 듯 입술을 깨물고 있는 거울 속 내 모습이 더 비참했다. 겨우 정신을 다잡고 화장실을 빠져나오니 유현이 형이 서 있었다.

“아, 저 찾으러 왔어요?”

“괜찮은 거 맞아?”

“당연하죠.”

일부러 더 밝게 웃으며 상황을 무마하려고 했다. 그럴수록 유현이 형의 표정은 굳어 갔지만.

“구토하는 소리 다 들었어.”

“…….”

“모르는 척해 줘?”

할 말을 잃었다. 눈물이 떨어지지 않으려고 의도치 않게 힘을 주어 형을 노려보는 꼴이 되었다.

“네, 저희 곧 경연해야 해요.”

“…그래.”

최근에 본 유현이 형의 얼굴 중 가장 차가운 얼굴이었다. 투마월의 기억이 떠오를 정도였다. 유현이 형이 먼저 화장실을 떠났고, 거울을 보다가 스스로 뺨을 쳤다. 정신을 차려야지. 순간에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모두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순 없다. 특히나 고생하고 뼈를 갈아 준비한 무대니까.

‘이번만 버티자.’

매번 이런 생각으로 이겨 냈다. 그렇기에 ‘이번만’은 허상이라는 것을 안다. 4년 뒤 지운이 형의 미래를 완전히 바꾸는 날, 그때는 정말 끝날 수 있을까. 무의미한 희망을 품는 게 의미가 있을까.

대기실에 돌아가니 멤버들 모두 분주히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유현이 형과 눈이 마주쳤지만, 형은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이 정신없는 와중에도 그게 형의 배려라는 걸 알았다.

‘우리 진짜 많이 친해지긴 했구나.’

“형, 왜 이제 와요?”

“유현이 형이랑 있었어요?”

유현이 형이 조용히 모두를 모아 말했다. 짐짓 진지한 표정이어서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승빈이 옷에 뭐 흘려서 수습하느라 늦었어. 이건 코디 누나한테 걸리면 안 되는 거 알지?”

“아이고, 많이 묻었어?”

예상도 못 한 변명이었다. 그리고 괜히 고마웠다. 판을 깔아 줬으니 나도 좋은 연기로 보답해야지.

“감쪽같지? 이건 코디 누나도 못 찾아낼걸?”

“이러고 혼나면 재밌겠다.”

“너나 조심해서 먹어라, 강도현. 너는 흰옷 입고 초코라테를 마시냐?”

“네, 네. 밀크쉐이크 드셔서 티 안 나고 참 다행이네요~”

“어휴, 초딩 싸움 또 시작이네-”

“중딩한테 그런 말 들으니까 더 자존심 상하네?”

“저 이제 열일곱, 고딩이거든요?”

“아직 졸업식도 못 했으면서?”

“아, 진짜!”

“알았어, 알았어-”

어떻게 변명해야 하나 머리 아프게 고민했던 것이 민망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상황이 마무리됐다. 여전히 내 눈을 피하는 유현이 형이었지만, 나는 스쳐 지나가며 고맙다고 말했다. 내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어느덧 바로 앞 순서인 하이드의 무대까지 끝이 났다. 언제나처럼 모두 모여서 팀 구호를 외쳤고, 촬영장으로 향했다.

“이번 경연 정말 우여곡절 많았지?”

“네!”

“그만큼 잘해 내고 싶지?”

“그럼요.”

“긴장은 연습할 때만, 무대 위에서는 아무 생각 하지 말고 준비한 만큼 하면 돼. 알겠지?”

“당연하죠!”

마지막 남은 긴장감도 시원하게 떠나보낼 수 있었다. 무대 위로 향하는 걸음걸음마다 수많은 관중의 환호성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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