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209화 (209/346)

209화

완벽하게 임팩트를 남긴 도입부였다.

“미친, 선우야!”

“뭐야? 선우 노래 좋은데?”

“너무 귀여워!”

이후 승빈이 시무룩한 박선우의 어깨에 손을 얹고 파트를 이어 갔다. 다리가 한 개는 더 들어갈 통 큰 청바지를 입은 모습에 문스트럭은 귀여움에 질식할 수 있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지금껏 자주 볼 수 없었던 장난스러운 표정 연기도 눈이 즐거웠다. 코에 붙인 밴드와 강아지 모양 판박이까지, 완벽한 스타일링이었다.

[Step1. 가장 멋진 보드를 사는 거야

집중해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아

저 형보다 멋있어 보이는 거야]

그러고 승빈이 손으로 가리킨 곳엔 윤빈이 있었다. 안 그래도 큰 피지컬이 품이 큰 옷을 입으니 2배는 더 커 보였다. 능숙하게 보드를 타는 모습에 사람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미쳤네. 윤빈이 보드도 타?”

어깨가 축 처진 박선우의 어깨를 뽑아내듯 일으켜 세운 승빈이 빰, 빰 박자에 맞춰 쌍브이를 날렸다.

“미쳤나 봐, 승빈이 작정했는데?”

[Step2. 걸음걸이는 언제나 당당히

자신감이 생명인걸

걷는 것만으로 그녀의 마음을 you got it]

“헐, 승빈이 힙합 춤도 출 줄 알아?”

“스텝 귀여워!”

승빈과 선우, 재봉이 가사에 맞춰 힙합 스텝을 밟았다. 잔망스럽게 스텝을 밟는 모습이 흡사 토끼 형제들을 보는 듯했다. 듣기만 해도 저절로 어깨춤을 출 수밖에 없는 비트에 사람들도 하나둘 무대에 빠져들었다. 자칫 촌스러울 수 있는 가사임에도 콘셉과 잘 어우러졌다.

“이거 편곡 누가 했냐?”

“선샤인 노래가 이렇게 신났어?”

“이 정도면 거의 재창조 수준인데?”

빠르게 쪼개지는 하이햇 소리와 묵직하게 무게를 잡아 주는 사운드로 더 풍부한 소리를 만들어 냈다. 마냥 발랄하기만 했던 원곡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새로운 느낌의 편곡이었다.

올드스쿨 콘셉에 맞춰 90년대 유행하던 기본기 스텝을 변형한 안무를 하는데, 커다란 옷이 펄럭거리면서 크리드 특유의 밝고 건강한 에너지가 돋보였다. 멤버들마다 고글, 비니, 유선 이어폰, 페이스 페인팅 등 다양한 아이템을 사용한 것도 무대를 더 풍성하게 만들었다.

[힘껏 달려 봐 스케이트보드!

하늘 끝까지 날아 봐 붕붕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은

아마 이런 거 아닐까?]

다시 박선우가 저음으로 랩을 시작했다. 그동안은 얼굴과는 상반된 매력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저 목소리마저도 귀엽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무대 전에 긴장했던 얼굴은 어디 가고, 억눌렀던 끼가 한 번에 터지는 순간이었다. 박선우의 팬은 거의 울 듯한 목소리로 목이 터져라 응원을 했다.

이어서 차지운의 브레이킹 댄스가 시작됐다. 화려한 안무도 눈에 들어왔지만 차지운 주변에서 자유롭게 응원을 하거나 흥을 돋우는 멤버들의 모습에 현장 열기도 뜨거워졌다. 무대를 잘하는 아이돌은 많지만 정말 즐기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아이돌은 드물었다. 아이돌 산업이 비판받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런데 무대 위 크리드는 정말 무대를 즐기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 에너지가 고스란히 관중들에게 전달될 수 있었다.

[넌 내게 말했어

스케이트보드는 중요하지 않다고

그런 거 없어도

넌 내가 좋대 Wow!]

마지막으로는 모든 멤버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무대 앞으로 나온 뒤, 보드를 멈추곤 브이를 하며 무대가 끝났다. 화려한 엔딩이었다. 이전 무대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함성이 들렸고, 앵콜을 외치는 이들도 있었다.

“역시 우리 애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니까?”

“미쳤어, 진짜!”

“우리, 흡, 선우 너무 흐어엉…….”

“아이고, 많이 우시네…….”

“걱정을, 흑, 너무 많이, 흐윽 했는데에…….”

퇴장하는 순간까지 잔망스럽게 나가는 멤버들의 모습에 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자, 넥스트 레벨 1차 경연이 모두 끝났는데요. 현장 가득 뜨거운 응원 주신 모든 현장 평가단분들 감사합니다! 가장 잘했다고 생각한 그룹에게 세 표, 못했다고 생각하는 팀에게는 마이너스 한 표를 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현명한 선택을 기다리겠습니다!”

“또, 오늘 경연곡은 오늘 6시 각종 음원 사이트에 공개될 예정입니다.”

현장을 빠져나오면서 셋은 아직 무대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근데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저는 F…….”

“저희 이것도 인연인데, 짹친 하실래요?”

처음 본 날 맞팔까지 하다니. 문스트럭은 A의 친화력에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오프 하면 만나요!”

“네.”

F는 여전히 낯을 가리는지 귀까지 빨개졌다. 황급히 지하철역으로 달려갔고, 문스트럭과 A는 계정을 확인하고 눈을 의심했다.

“이, 이게 저 사람이라고?”

“와…….”

피드에는 크리드의 안티들이 쓴 글에 인용으로 남긴 욕이 가득했다. 그리고 계정명이 이해가 갔다.

@악개(악플러잡는개)

[기간제 그룹 빨면서 ㅈㄴ나대넼ㅋㅋㅋ]

-응 너희 오빠들 7년 벌 돈 우리애들 1년만에 벌음 ㅅㄱ

[와꾸 상한거봐…]

-유흥살오른 00이 팬이 할말은 아닌거같은데

“진짜 온오프가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진짜 전투적인 사람이었네…….”

A는 조용히 그녀의 계정을 차단했다. 그녀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 * *

무대를 마치고 모두 홀가분한 얼굴이었다. 선우 형도 마음에 든 무대였는지 불안한 기색이 없었다.

“현장 반응도 엄청 좋았어요!”

“맞아. 모니터링할 때도 너희 무대할 때 제일 함성이 컸어.”

회사 스태프들의 말에 더욱 자신감이 생겼다. 혹시나 견제를 받아서 순위가 낮을지라도 절대 아쉽지 않을 무대였다. 부끄러울 게 없는 무대였으니까.

“현장에서 귀엽다는 말 엄청 많이 들었어요.”

“거봐요- 우리 귀여운 거 할 수 있다니까?”

“어휴, 그래. 너희 귀엽다, 귀여워.”

뒤이어 순위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모두 촬영장에 모였다. 긴장되는 분위기 속에서 유일하게 땀범벅인 얼굴로 웃고 있는 우리 팀이 귀여웠다. 꾸며 내지 않은 진정한 의미의 귀여움이었다.

“5위부터 발표하겠습니다. 5위는… 선샤인입니다. 이로써 선샤인은 다음 경연에서 3위 이상을 하지 않는다면 탈락하게 되는 탈락 후보에 올랐습니다.”

탄식과 함께 선샤인 멤버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다음 무대 꼭, 좋은 성적 받겠습니다.”

리더 하윤이 독기가 서린 눈으로 답했다.

‘방송 나가면 말 나오겠네…….’

숨기지 못하는 감정은 화살이 되어 돌아오기 마련이었다. 4위는 하이드, 3위는 투샤인이었다. 예상 밖의 선전에 투샤인은 축제 분위기였다.

“정말 기쁜가 봐요, 성재 군?”

“아유, 사실 저희에겐 1위나 마찬가지죠!”

“그럼 1차 경연 대망의 1위를 발표하겠습니다! 200명에게 1위 투표를 받고, 30명에게 2위, 30명에게 3위, 40명에게 5위를 받은 팀입니다. 과연 크리드… 의 곡을 한 포커스일까요, 크리드일까요?”

파이널을 떠오르게 하는 터키 아이스크림 장수식 진행이었다. 지운이 형은 긴장이 되는지 두 손을 꾹 쥐고 뭐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마 1위를 하게 해 달라는 주문이겠지.

“축하합니다, 크리드!”

“와!”

선우 형은 감격스러움에 곧장 울음을 터트렸고, 현장은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우리도 예상치 못한 눈물에 선우 형을 달래느라 진을 뺐다.

“선우 군이 많이 우는데, 고생이 많았나 봐요.”

다시 뿌엥 하고 울어 버리는 선우 형에 멤버들 모두 웃음을 참지 못했다. 결국, 유현이 형이 선우 형을 달래서 대신 소감을 말했다.

“이렇게 좋은 성적 받아서 멤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고 합니다!”

촬영이 끝나고, 1위의 기쁨보다 더 통쾌한 승리를 목격할 수 있었다. 대기실로 향하는 복도에서 만난 선샤인 멤버들은 여전히 선우 형에게 시비를 걸려고 시동을 걸고 있었다. 하지만 선우 형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단호한 눈으로 말했다. 여전히 말이 떨리긴 했지만 장족의 발전이었다.

“다른 사람 상처로 자존감 세우는 거, 비참하지 않니, 하윤아?”

“뭐라고요?”

“너희가 그렇게 과거에 머물러 있는 동안, 내가 뭘 이뤄 가고 있는지 지켜봐. 이제 시작이니까.”

벙쪄서 아무 말도 못 하는 선샤인 멤버들을 뒤로 하고 선우 형은 당당하게 대기실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직구를 날렸다.

“선샤인 노래, 그래서 하자고 한 거였지?”

“헐. 형, 알고 있었어요?”

“너희 연기는 하지 마라. 너무 티가 나더라고.”

“와…….”

“근데 형, 진심 힙합하는 줄 알았어요.”

“그니까, 나는 무슨 랩 가사인 줄?”

남은 기쁨은 온전히 선우 형에게 맡기고, 나는 꼭 확인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대기실에서 나와 오재성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신도 나에게 이 정도의 자비는 허락하는지, 비상구에서 담배를 피우는 오재성을 발견했다. 나를 발견하고는 황급히 담배를 바닥에 던졌다.

“승빈 선배님이셨구나.”

‘어릴 때부터 골초였군.’

나는 성큼성큼 계단을 내려가 오재성에게 다가갔다.

“저기.”

“네? 무슨 일이죠, 승빈 선배님?”

“너, 정체가 뭐야?”

벽 한쪽에 몰린 오재성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이마를 찌푸렸다.

“무슨 뜬금없는 질문인지… 이해가 잘 안 가는데요.”

“제스처, 그거 어디서 알아 왔어?”

“선배 무대에서 봤죠. 이번 무대 준비하면서 누구 말대로 폐 안 끼치려고 선배 직캠만 백 번은 본 거 같거든요. 근데 무대마다 그 제스처 하시더라고요?”

오재성은 제스처를 재현하며 조소를 날렸다.

“근데 너무 지루해서 제 스타일대로 바꿔 봤고요.”

그러고는 무대 위에서 했던 두 번째 제스처를 했다.

‘그래, 저 제스처가 맞았어.’

사실 대기실에서 포커스의 무대를 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내 파트를 담당한 오재성이 내 시그니처 제스처를 따라한 거였다. 작게 화살을 날리는 제스처인데 이건 현재 내가 하는 제스처여서 별생각 없이 넘어갔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지루하다는 듯 눈을 까뒤집더니 입술을 한번 쓸어내리고 털어내는 제스처를 한 것이다. 그 순간 깨질 듯한 두통이 밀려왔다.

“아……!”

“뭐야, 괜찮아?”

“응, 그냥 좀 머리가 아파서…….”

“약 먹어야 하는 거 아니야?”

“괜찮아. 좀 쉬면 될 거 같아.”

‘저건 내가 티벡스 시절에 했던 제스처인데……?’

흔하진 않지만 그래도 비슷할 수는 있기에 기분 탓인가 했지만, 제스처 뒤에 오는 윙크까지. 똑같아도 너무 똑같았다.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설마 우연의 일치인 걸까? 아니면 오재성이 정말…….’

스탠바이하라는 스태프의 말에 바로 대기실을 떠났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그리고 오재성을 마주한 지금, 머리까지 소름이 돋음과 동시에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두통이 밀려왔다. 상태창은 어지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상태창 과부하 발생!]

‘알겠다고… 정신 사납게 X발…….’

잠시 비틀거리며 벽에 기댔고, 두통이 멈추니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왜 이러냐는 듯 미간에 주름을 잡던 오재성에게 물었다. 단어 하나 뱉을 때마다 입술이 바싹 마르고 있었다.

“너, 나 언제까지 속여 먹을 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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