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208화 (208/346)

208화

그 이후로는 모든 연습이 탄탄대로 그 자체였다. 자신감을 얻은 박재봉은 연습 내내 거의 날아다녔고, 덕분에 다른 멤버들까지 그 넘치는 에너지의 덕을 봤다. 여유가 생기니 자연스럽게 스텝뿐만 아니라 다른 안무에도 힙합 느낌이 더해졌다. 살살 연습을 하는데도 곡이 주는 느낌이 확실하게 전달되는 정도였다.

[이름: 문승빈]

외모: A

끼: A

보컬: A+

댄스: B- → B

프로듀싱: B+

그리고 나도 얻은 포인트를 바로 댄스 스텟에 추가했다. 이번 안무는 노래도 노래지만 안무에서 주는 힘이 컸기 때문에, 망설임 없는 선택이었다. 확실히 스텟이 올라가니 스텝을 밟는 발걸음도 더 가벼워지고, 같은 동작을 해도 느낌이 달랐다.

“승빈이 완전 지금 힙합 그 자체인데?”

“이번 기회에 랩도 다시 해 보는 거 어때?”

“됐네요. 메인보컬에 만족하겠습니다.”

그렇게 모든 안무를 숙지하고 나서는 바로 보드 연습에 돌입했다. 윤빈 형이 메인으로 스케이트보드를 타기는 하지만, 다른 멤버들도 등장할 때와 마지막 엔딩 장면에 짧게나마 보드를 타야 하기 때문이었다.

“와, 이걸 대체 어떻게 버텨?”

“으악!”

“윤빈 형은 어떻게 움직이는 거예요?”

밖으로 나가기는 어려우니 연습실에서 보드를 연습했는데,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었다. 여기저기서 넘어지는 소리와 비명이 난무했다. 어렸을 때나 착용했던 헬멧과 손목, 무릎 보호대를 찬 모습이 상당히 귀여워서 저대로 무대를 올릴까도 잠깐 고민했다.

‘역시 우리 팀 꽤 귀엽다니까?’

“조심해! 넘어지면 또 엉덩이 다칠라.”

감상에 빠진 것도 잠시 저놈의 엉덩이, 피겨 예능 이후로 내가 넘어질 것만 같으면 다들 엉덩이 얘기부터 꺼냈다. 아니, 넘어져도 엉덩이가 아니라 무릎이나 다른 곳을 꽈당 할 수도 있는 건데 말이다.

“강도현, 엉덩이 얘기 그만해라.”

“나는 우리 승빈이 엉덩이가 걱정되니까 그러지.”

“맞아, 형은 형 엉덩이한테 미안해해야 해요.”

“어쭈? 재봉이 얘가 아주 배은망덕한 거 봐?”

“저도 형 엉덩이가 걱정이라 그러는 건데요?”

그냥 자신감을 얻은 정도가 아니었다. 박재봉은 그 넘치는 에너지를 아주 사방팔방으로 분출하고 있었다. 이번 타깃은 나였다. 그렇게 연습 반, 노는 거 반으로 보드를 습득하고 나니 마침내 모든 준비가 끝났다.

주변을 둘러보는데 본격적인 첫 대결을 앞두고 있음에도 다들 무대에 대한 기대감만이 가득했다. 열심히 준비하면 설렘이 긴장을 압도한다는데, 딱 그런 상태 같았다. 아직 무대에 오르지 않았음에도 확신할 수 있었다, 분명 이번 무대는 성공적일 거라고.

* * *

길었던 대기 시간을 끝내고 마침내 현장 입장이 시작되었다. 문스트럭과 A는 오랜만에 마주하는 익숙한 방송국의 분위기에 살아 있음을 느꼈다.

“여기 진짜 오랜만이지?”

“응. 투마월 파이널 이후로 처음이잖아.”

“300명밖에 안 뽑아서 걱정했는데 웬일로 둘 다 뽑혔냐.”

“그니까, 나는 파이널 못 간 게 진심 천추의 한이었잖아.”

“대박, 시야 엄청 좋아 보이는데?”

파이널 인원보다 적은 인원이 들어가서인지, 훨씬 여유로웠다. 무대와 거리도 가까워서 돌출에 나온다면 말 그대로 계를 탈 수 있는 자리였다.

“애들 무슨 노래할지 너무 기대돼.”

“난 하이드 노래했으면 좋겠어, 애들이랑도 잘 맞고.”

“난 포커스 노래해서 포커스 X나 비교당했으면 좋겠는데… 라고 할 뻔.”

“이미 말했으면서 무슨.”

“사실 선샤인 노래만 아니라면… 뭐든 괜찮아.”

“에이, 설마. 애들도 선샤인 노래는 고려도 안 했을 듯?”

드디어 녹화가 시작되고, 선샤인의 무대로 경연의 시작을 알렸다. 투샤인의 데뷔곡을 선곡한 선샤인은 딱 예상한 만큼의 무대였다. 투샤인이 제일 신인이었기 때문에 노래의 인지도가 높지 않았다는 점도 한몫했지만, 앳된 얼굴과 작은 체구의 선샤인 멤버들과 잘 어울리지 않은 신사 콘셉이었다.

“얘네 다 미자야?”

“그럴걸? 얘네 데뷔할 때 신인 중에 제일 평균 나이 어리다고 언플 했었잖아.”

“진심 어린애들이 입으니까 양복도 교복같네.”

이어지는 하이드의 무대는 역시나 유현재만 눈에 보였다. 문스트럭과 A는 동시에 말했다.

“내가 쟤 최애로 잡을 뻔했잖아.”

얼굴, 피지컬, 실력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지만, X랄맞은 성격 때문에 최애로는 도저히 잡을 수 없었다는 게 둘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아, 근데 무대 보니까 혹하긴 한다 진짜.”

“도현이가 슬퍼할 거야.”

“나도 어쩔 수 없는 얼빠인걸…….”

투샤인이 무대로 올라오자 이성재를 알아본 전직 팔로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성재다!”

“헐, 성재 너무 오랜만이야-”

“그래도 괜찮은 애들이랑 데뷔했네.”

“이름도 성재가 냈던 투샤인으로 데뷔했잖아.”

“안녕하세요! 투샤인입니다!”

투샤인의 무대는 기대한 것보다 좋았다. 데뷔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이성재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의 얼굴은 아직 낯설었고, 자연스레 기대치가 낮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기소개 때 수줍어하던 모습과 달리, 하이드의 묵직하고 딥한 매력을 나름대로 잘 살렸다는 점에서 문스트럭과 A 모두 놀랐다. 무대가 끝나고 나서는 다시 순둥한 모습으로 돌아오는데, 이번 방송으로 꽤나 인기몰이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합니다!”

“성재야, 해냈네!”

객석에서 한 여성 팬의 외침이 들렸고, 퇴장하던 이성재도 고개를 돌려 꾸벅 인사를 했다.

“열심히 하는 애들이 잘돼서 좋아.”

“이제 포커스인가? 누구 노래 남았지?”

“우리 애들이랑 선샤인… 잠깐만.”

“야, 설마…….”

“애들 1위 아니었어?”

문스트럭과 A는 크리드가 자발적으로 선샤인의 곡을 선정한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아니, 선샤인 곡을? 진짜로?”

“그것도 문제인데, 포커스가 크리드 곡을 한다는 거잖아?”

“아씨, 또 어그로 X나 꼬이겠네…….”

포커스의 등장과 함께 한쪽 무리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포커싱 많이 왔나 보네?”

“주변에서 클로버 봤냐?”

“아직은……? 많이 당첨 못 됐나 봐.”

그때 문스트럭과 A 사이로 누군가 머리를 스윽 내밀었다.

“아, 깜짝이야……!”

“저기 혹시 클로버…….”

“어? 네! 저희 클로버예요!”

“여기 간식…….”

“잘 먹을게요! 저희는 준비한 게…….”

“아, 나 애들 스티커 있음. 최애가 누구세요?”

“저 선우요…….”

에너지가 하나도 없어 보이는 말투와 얼굴이었지만 양손에 박선우 슬로건과 인형, 가방 안에는 짐 때문에 닫히지 않는 지퍼 사이로 클로버 응원봉이 보였다.

친화력이 좋은 A가 주도적으로 말을 걸었다.

“선우 팬이시구나! 마침 하트 선우 있는데, 이거 드릴까요?”

“네!”

“혼자 오셨어요?”

“…네.”

“저희도 다섯 명 응모했는데 저희 둘만 왔어요-”

“네.”

모든 대답이 네로 이뤄지는 신기한 현장이었다. 애매한 건 질색인 문스트럭이 물었다.

“근데 왜 이렇게 힘이 없어요~ 선우 보러 온 건데?”

“…크리드가 선샤인 곡 하게 돼서요. 제가 워낙 낯가림이 심하기도 하고…….”

“선우랑 선샤인이 왜요?”

“아, 모르시는구나… 선우가 선샤인 데뷔조였다가 떨어졌었거든요.”

“…헐”

“죄송…….”

“게다가 포커스가 크리드 곡까지 해 버리니…….”

“울상일 만했네, 내가 잘못했네.”

어색해질 분위기에 포커스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크리드의 곡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정말 좋아하는 선배님이고-”

“오재성 또 저러네…….”

“또, 저희가 라이벌 구도잖아요? 그런 점에서 크리드 선배님의 곡을 저희만의 색으로 재해석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애들 좀 놔줘라, 이놈들아…….”

누가 보면 서로 대화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 만큼 환상의 티키타카였다. 그러나 진짜 분노는 무대가 시작한 후부터였다.

[부서진 운석들, 그리고 그 자리를 채운 다섯 개의 별]

[신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저 X발 XX들이…….”

나지막한 선우 팬의 욕설에 문스트럭과 A도 등골이 오싹했다. 살기가 느껴지는 한마디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문스트럭이 더 살벌한 욕설을 하게 됐다. 오재성이 문승빈의 파트를 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승빈의 트레이드 마크인 제스처를 하다가 지루하다는 제스처와 함께 다른 제스처로 바꿔서 한 것이다.

“저 X끼 지금 승빈이 조롱한 거임?”

“간도 크다, 진짜…….”

고음 파트에서 제발 삑사리가 나 달라고 빌었지만, 그 부분만 갑자기 AR 소리가 커지면서 누가 봐도 립싱크를 한 게 티가 났다.

“올 라이브가 규칙 아니었냐?”

“가지가지 한다, 진짜…….”

기분은 나빴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부족함 없는 무대였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분명 오재성의 평소 음역대라면 실패했을 고음 파트는 교묘한 술법으로 넘어가 버렸으니 큰 실수를 한 부분도 없었다.

“저희만의 신세계를 보여 드릴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난 쟤만 보면 소름 돋아.”

“하, 애들 무대 잘해야 할 텐데…….”

수심 가득한 세 명의 얼굴은 크리드가 무대 위로 올라오고 더욱 짙어졌다.

“의상 뭐야, 올드스쿨이야……?”

“애들 귀엽다… 귀엽긴 한데 이거 경연인데…….”

“애들도 실수할 때가 있는 거겠죠……? 그렇게 믿고 싶다.”

펑퍼짐한 카고바지와 다리 두 개는 들어갈 법한 통큰 청바지를 입고 걸어 나온 멤버들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지만, 경연이라는 생각을 하면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승빈이 얼굴에 저거 스티커인가요? 그거 귀엽다.”

“저거 요즘 유행하는 빵 스티커인 거 같은데?”

“선우도 붙였네요? 자기 닮은 고양이 캐릭터인데 너무 귀엽다!”

“근데 선우 텐션이 낮은 거 같아서 걱정이에요.”

그녀의 말대로 유독 박선우가 긴장을 많이 한 듯했다. 아무래도 데뷔조에서 탈락한 그룹의 노래를 한다는 것이 부담이었던 걸까.

“선곡 과정부터 굉장히 의외라는 평을 많이 받았는데요, 오늘 준비한 무대 소개 부탁드려요!”

“네, 저희가 오늘 준비한 무대는 선샤인 선배님의 ‘스케이트보드’입니다.”

“오늘 의상도 굉장히 귀여운데요?”

“크리드만의 올드스쿨 감성이 가득한 무대를 위해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그럼, 크리드의 무대 함께 보실까요! 후즈 더 넥스트 레벨?”

조명의 불이 들어오고, 스피커에서 둥둥거리는 비트가 서서히 커지고 있었다. 멤버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유롭게 대화를 하거나, 스텝을 밟는 연기를 하고 있었다.

“여섯이네?”

“누가 안 나온 거지?”

그리고 커다란 휘슬 소리와 함께 시선이 무대 뒤로 쏠린다. 그리고 박선우가 무대 중앙으로 스케이트보드를 두 손으로 쥐고 뛰어나왔다.

[눈이 마주친 거야

그 순간 모든 게 Stop

네가 좋아하는 남자는

스케이트보드를 잘 타는 Boy]

박선우에게서 들어 본 적 없는 음역대의 파트였다. 그동안 동굴 저음만 들었는데 의외로 중저음 음역대에서는 맑은소리가 났다. 노래를 많이 불러 보지 않아서 기교 없는 창법이었는데, 오히려 천진난만한 소년 콘셉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아직 두려워

어색하고 바보 같은걸

나도 저 형처럼 멋있게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싶은데]

그러고는 양손으로 볼을 감싸고 능청스럽게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데, 전광판에 비친 얼굴에 현장은 뒤집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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