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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207화 (207/346)

207화

본격적으로 귀엽기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다. 그 첫 시작은 오해나 디렉터와의 콘셉 회의였다.

“올드스쿨에 귀여움이라…….”

“아무래도 좀 어렵겠죠?”

“어려울 거 있나요? 귀여움이라는 게 혀 짧은 소리 내고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게 전부는 아니잖아요?”

“그렇죠.”

정확하게 내가 생각한 걸 집어내는 게 역시 오해나 디렉터다웠다. 귀여움이라고 하면 냅다 애교부터 하는 선샤인과는 차별화되는 게 이번 무대의 핵심이었으니까.

“음…….”

잠시 고민을 하던 오해나 디렉터가 경쾌한 핑거 스냅 소리와 함께 외쳤다.

“개구쟁이! 개구쟁이 콘셉 어때요?”

“개구쟁이요?”

“장난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는 무대를 기획하는 거예요. 올드스쿨 콘셉의 의상과도 잘 어울릴 거 같고, 노래 주제도 좋아하는 사람에게 스케이트보드를 잘 타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 하는 소년의 이야기잖아요.”

“오, 노래랑 딱이네요.”

“사랑에 빠져서 마냥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의 모습을 보여 주는 거죠. 어설프지만 그 자체가 청춘인 것처럼-”

“생각만 해도 벌써 귀엽겠는데요?”

“맞아요. 스케이트보드를 직접 타고 등장하거나, 타는 듯한 안무를 넣어도 좋고요.”

“보드 타다가 넘어지는 척해도 괜찮을 거 같아요.”

“진짜 넘어지는 거 아니고요?”

“그게 더 가능성이 높긴 하겠네요.”

그 모습이 상상됐는지 잠깐 웃던 오해나 디렉터는 곧장 패드를 꺼내서 콘셉 보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품이 큰 셔츠와 바지, 고글과 비니, 90년대 유행했던 아이템 등으로 채워지는 화면에 감탄이 나왔다. 내가 태어나기 전의 것들을 잘 소화해 낼 수 있을까 내심 걱정이었지만.

“그리고 올드스쿨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키치한 아이템들로 포인트를 줘도 좋을 거 같아요.”

“디렉터님은 정말 천재이신 거 같아요. 매번 감사해요.”

“나도 승빈 군이 매번 재밌는 아이디어를 가져와서 재밌어요.”

“제 아이디어가 마음에 안 드실 때도 있죠?”

“아뇨? 왜 이런 걸 얘기하지? 뭐, 이런 호기심은 있는데, 마음에 안 들었던 적은 없어요.”

솔직한 대답에 오히려 안심이 됐다. 아무리 그래도 비즈니스로 만난 사이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승빈 군 말 들어 보면 납득할 만하고, 나도 생각 못 한 부분을 캐치한 적도 많아서 이제 엉뚱한 걸 들고 와도 기대가 돼요.”

“감사합니다.”

오해나 디렉터는 새삼스럽다는 듯 옅게 웃었다. 그러곤 아무 말 없이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홀로 남은 회의실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우리가 꾸며야 할 무대가 점점 선명해지고 있었다.

* * *

안무 연습 시간, 선우 형의 지휘에 맞춰 연습을 시작한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아 안무 숙지를 마쳤다.

“와, 안무 진짜 쉽다.”

“그냥… 율동 아니야?”

“생각보다 더 많이 바꿔야겠는데?”

그동안 쉴 틈 없이 꽉꽉 채워진 안무만 하다가 포인트 안무만 있고, 대부분 율동에 가까운 안무를 하려니 지루해서 몸이 근질거렸다.

“중간에 브레이크 댄스 타임을 넣을까?”

“근데 우리 브레이크 댄스 출 수 있는 사람 있나……?”

“나 조금 할 수 있어.”

“헐, 역시 지운이 형!”

나도 손을 들었다.

“나는 고난이도 안무까지는 아니고, 기본 스텝이랑 루틴 정도는 할 수 있어.”

“오, 웬일?”

“뭐야, 강도현 기억 안 나? 안무 시간에 배웠었잖아.”

“내가?”

아뿔싸, VM에서가 아니었구나. 티벡스 소속사에서 배웠던 거였어. 그 미친 대표가 갑자기 또 힙합에 빠져서 한 달 안에 힙합 댄스 기본기 속성 과외를 끝내라고 했었거든. 물론 그것 역시 연습 다 하고 무산됐지만 말이다. 고개를 갸웃하는 강도현에 당황하지 않고 수습했다.

“아, 나 혼자 학원에서 배운 거였다. 미안.”

“그치? 배워 놓고 까먹은 줄 알았네.”

지운이 형과 유현이 형이 거울을 보며 이리저리 안무를 짜더니 말했다.

“여기 포인트 안무인 보드 안무는 그대로 넣고, 전체적으로 빈 구간에 힙합 요소가 들어간 안무를 넣으면 될 거 같아.”

“스텝은 승빈이랑 지운이 형이 도와주면 되겠다.”

“오~ 승빈 스쿨 이제 춤도 하는 거야?”

“진짜 수강료 받아야 한다니까?”

그때 눈치 없는 상태창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1번의 역경 극복] +1

제한 시간) 24시간

▶성공 시: 1 포인트 적립

‘역경 극복?’

뜬금없는 미션이라고 생각했지만, 내게 다가온 역경의 존재를 알아챈 것은 스텝 연습을 시작한 지 고작 10분 지났을 때였다. 안무 자체는 지운이 형이 먼저 알려 주고 반씩 나눠서 반은 내가, 또 다른 반은 지운이 형이 스텝부터 알려 주고 있었다.

“이, 이렇게요?”

“아니, 아니. 오른발을 왼쪽 향해서 뻗고 같이 트위스트를 해야지.”

“오른발을 왼쪽으로…….”

그런데 지운이 형네 그룹이 계속 진도를 못 나가고 있는 거였다. 다들 춤을 어느 정도 출 줄 알아서 스텝은 가볍게 넘어갈 줄 알았는데, 박재봉이 예상치 못한 복병이었다.

‘아, 이건가 보네, 이번 역경이-’

힙합 관련 안무를 거의 안 해 봐서 그런지 박자를 맞추는 것부터 상당한 어려움이 있어 보였다. 지운이 형은 차분하게 재봉이를 알려 주고 있었다.

“한 동작씩 다시 한번 해 보자.”

그러고도 꽤 시간이 지났지만,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반복되는 연습에 재봉이도 지운이 형도 많이 지쳐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지운이 형이 잠깐 쉬자며 백기를 들었다. 크리드의 보살로 유명한 지운이 형이 포기할 정도면 심각하다는 소리였다.

마냥 이 안무에만 시간을 쏟을 수는 없기에 일단 패스하고 나머지 안무들을 맞춰 나갔다. 안무 연습뿐만 아니라 노래 연습과 녹음까지 있었기에 갈 길이 멀었다. 박재봉의 표정이 어두워 보였지만, 당장 해결해 줄 수는 없는 문제였다.

안무에 신경이 많이 쓰였는지, 녹음 대기 시간 내내 박재봉은 스텝 연습을 했다. 잔뜩 심통이 난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여파로 녹음에도 평소처럼 집중하지 못했다.

“재봉아, 지금 다른 거 신경 쓰이는 일 있어?”

“죄송합니다.”

“지금은 녹음에 집중하자. 알겠지?”

“네! 다시 들어갈게요!”

우여곡절 끝에 녹음을 마친 박재봉의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프로듀서의 쓴소리까지 들으면서 자신감은 더 하락한 듯했다.

‘설상가상이네.’

* * *

다시 시작된 안무 연습, 어제와 똑같은 부분에서 박재봉이 막혔다. 계속 같은 스텝을 반복하는데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근데 희한하게도 박재봉이 동작을 못 따라오는 건 아니었다. 이제 어느 정도 반복적으로 연습해서 동작은 정확하게 하는데도 힙합 느낌이 전혀 안 났다. 그 느낌이 제일 중요한 파트였기에 큰일이었다. 우리 중 유일했기에 더 문제였다.

‘대체 뭐가 문제지.’

가만히 박재봉의 움직임을 관찰하고는 깨달았다. 지금 박재봉은 이미 춤추는 법을 알고 있는 게 문제였다. 힙합 스텝은 기존의 방송 안무와는 그 결이 달랐다. 리듬을 세는 법이라든지 스텝을 쪼개는 방식이 달랐는데, 박재봉은 이미 수많은 연습으로 방송 안무의 리듬이 익숙해진 거다. 그래서 같은 동작을 하더라도 자기에게 익숙한 리듬을 타게 되는 거였다.

‘이건 반복한다고 해결될 게 아니네.’

“재봉아, 잠깐 이쪽으로 와 봐.”

이미 박재봉의 온몸에는 땀이 가득했다.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는지 말 안 해도 알 수 있었다. 벌게진 얼굴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아 보였다.

“여기 일단 앉아 봐.”

“저 연습 더 해야 해요.”

“알아, 쉬라는 소리가 아니야.”

“그럼요?”

일단 애를 진정시키는 게 일 순위였다. 집중력이 흐려지면 흐려질수록 익숙한 자세로 돌아가기 쉬웠으니까.

“지금 동작은 똑같이 잘하고 있거든? 근데 리듬 타는 게 문제인 거 같아.”

“그러게요.”

“안무를 모르는 게 아니니까 누워서 발로만 리듬을 한번 타 보자.”

박재봉은 뭐든지 열심히 하는 타입이었다. 못 하는 게 있으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반복하고 연습해서 되게 만드는 타입. 무엇을 하든 온 힘을 다하는 게 박재봉의 장점이었다. 하지만 힙합 스텝은 다르다. 오히려 힘을 뺄수록 그 느낌이 나왔다.

“누워서요?”

“어, 너 지금 몸에 힘이 너무 들어가서 그래. 다른 곳에 힘을 다 빼고 발만 움직여 봐.”

이건 회귀 전 내가 썼던 방법이기도 했다. 박재봉을 보면 회귀 전의 내가 많이 떠오르는데, 가장 큰 게 바로 이 열심히 하는 점이었다. 요령이나 방법을 모르고 마구잡이로 열심히만 하던 과거의 문승빈을 떠올리게 했다. 물론 그렇게 해서 얻은 것도 있었지만, 노력한 만큼 결과가 안 나오면 좌절하기도 쉬웠다. 지나친 열정은 사람을 빠르게 소진시켰으니까.

그래서 서바이벌 때부터 종종 재봉이를 보면 걱정되던 순간들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살짝 위험해 보였다. 그래서 일부러 다른 멤버들은 마실 거라도 사 오라고 내보냈다. 신경 쓰이는 대상이 많아질수록 더 내려놓기 힘든 법이니까.

“마음 급하게 먹지 말고. 시간 충분해.”

“그거랑 별개로 못하는 제 모습이 싫어서 그래요.”

“그런 모습을 견딜 수 있어야 결국에 잘해 내는 거야.”

“참나, 누가 보면 인생 2회차인 줄 알겠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박재봉은 내 말을 이해했는지, 이전보다 느리지만 정확하게 스텝을 연습했다. 누워서 발동작을 반복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계속 흘렀다.

‘이제 2시간 남았네…….’

그때, 박재봉이 벌떡 일어섰다.

“형, 이제 슬슬 발에 익어 가는 거 같거든요? 한번 서서 해 볼게요.”

“그래 볼까?”

패기롭게 도전했지만 아직 어색했다. 박재봉은 점점 볼을 부풀려 가면서도 물을 마시거나, 심호흡을 하는 방법으로 스스로 컨트롤했다.

‘기특하네.’

비록 1시간 가까이 스텝이 발에 붙지 않아 골머리를 썩이게 한 건 기특하지 않았지만.

“에휴, 왜 이렇게 안 될까요.”

“당연하지- 이거 나도 일주일 동안 익힌 거야. 하루 만에 하는 게 신기한 거지.”

“하지만 다른 형들은 다 해냈잖아요.”

“다들 힙합 장르 춤을 춰 봐서 그런 거지, 뭐. 따지고 보면 네가 제일 대단한 거야. 노베이스로 누구도 이렇게 빨리 못 익혀.”

점점 박재봉의 표정이 풀어지고, 어깨가 올라갔다.

“그래요?”

“그럼~”

다시 자신감이 생긴 박재봉은 심기일전으로 재도전했다. 누워서 했던 스텝의 감각을 최대한 끌어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점점 스텝의 모습이 갖춰지고 있었다. 박재봉도 점진적으로 완성되어 가는 모습에 신이 났는지 더 열정적으로 연습에 임했다.

[남은 시간: 30분]

심장이 쫄깃했다. 과연 박재봉이 30분 안에 기적적으로 스텝을 완성할 수 있을까? 연습할수록 정교해지는 박재봉을 믿어 보기로 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다. 승빈 스쿨의 칭찬은 박재봉도 스텝을 마스터하게 한다 이거지. 그리고 또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됐다!”

마침내 이뤄 낸 첫 성공이었다. 감격에 가득한 박재봉이 나에게 달려들 듯 껴안은 것과 동시에 상태창이 반짝였다.

[!MISSON CLEAR!]

남은 시간은 고작 5분, 완벽한 터치다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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