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205화 (205/346)

205화

‘눈부셔’ 첫 공개 날 100명의 연습생들과 함께 한 단체 인사 영상이었다. 그리고 이내 조명이 들어오며 눈부셔 인트로가 시작됐다. 노래가 시작되고 10초 동안은 댄서들 사이에서 모습을 숨겼다.

[눈부셔 New World

나를 향한 이 시선이 짜릿해

너만의 스타 그게 바로 나야]

수많은 댄서들 사이에서 한 명씩 모습을 공개했다. 아마 무대가 공개되면 맨 처음엔 우리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모두 같은 의상과 같은 동작의 춤을 추고 있으니까.

그리고 이내 7명이 맨 앞줄로 향했다. 센터인 나를 중심으로 V자형으로 펼쳐진 대형이 되었다. 정말 투마이월드 시절처럼 온몸에 힘을 다해 군무를 맞췄다. 표정도 일부러 시종일관 생글생글 웃는 얼굴을 유지했다.

[오직 너를 위해 노래할게

새로운 나의 세상으로

눈부셔 New World]

짧지만 임팩트 있던 눈부셔 무대가 끝나고, 무대가 암전됨과 동시에 댄서들이 모두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선우 형의 묵직한 저음이 새로운 무대의 시작을 알렸다.

[We will CR:ID All New]

일곱 명만 남은 무대 위, 머리 위로 핀 조명이 들어오고 마린 룩 카라에 붙어 있는 리본을 거칠게 풀어서 던져 버렸다.

“뭐야?”

“리본 뜯은 거지?”

그리고 주머니에 있던 지도를 꺼내 들었다. 내 주변으로 멤버들이 모이면서 유현이 형이 망원경을 들어 무대 뒤를 향했다. 전광판에는 왕좌 모양의 CG가 나타났다.

그리고 준비한 물감을 양 볼에 얇게 펴 발랐다. 발그레한 블러셔들은 땀과 함께 물감에 뒤섞였다. 본격적으로 ENEMY 무대가 시작되면서 이전 눈부셔 무대와는 전혀 다른, 자유로운 분위기의 무대가 시작됐다. 그 순간 양쪽에 있던 다른 팀들의 환호성이 터졌고, 현장에 있던 스태프들의 외마디 탄성도 들려왔다.

[눈앞의 수많은 ENEMY

달려 나가 승리만을 위해

점점 더 쌓여 가 LEVEL UP

더 이상의 침묵은 없어]

눈부셔 무대는 칼 군무가 특징이었다면 ENEMY 무대는 각자의 개성을 살린 무대였다. 그래서 얼굴에 묻힌 물감의 색도 빨간색부터 보라색까지, 일곱 빛깔을 담았다. 센터의 나를 기점으로 여섯이 원을 만들어 서로 다른 안무를 하기 시작했다. 프리스타일 같아 보이지만 철저한 계산과 준비로 만들어진 파트다. 잘못하면 정신 사나워 보이기 딱 좋은 안무지만 워낙 기본 실력들이 좋고, 연습을 많이 해서 그런 걱정은 없었다.

태풍의 눈을 그리듯 안무가 연결되어 나에게 도착했다. 특히 신경 썼던 독무 파트였다. 당연히 메인 댄서인 지운이 형이나 피지컬이 좋은 윤빈 형이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를 믿고 맡겨 준 거다.

[내가 걸어온 발자국을 봐

길을 잃어도 두렵지 않아]

게다가 다양한 장르의 춤을 출 수 있는 멤버들로 구성되어서 무용, 힙합, 스트릿 안무가 모두 가능했다. 그 모든 장르가 한곳에 모여 녹아 들어가는 장면은 무대를 하면서도 소름이 돋았다.

비록 커다란 세트나 화려한 무대 장치는 없는 말 그대로 ‘맨몸 싸움’이었지만 아쉽거나 불안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우리를 잘 보여 줄 수 있는 무대였으니까.

세팅한 머리는 헝클어지고,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있었지만, 무대를 하면서 ‘나 진짜 살아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설령 삑사리가 나거나 실수를 하더라도 전혀 아쉽지 않을 무대였다. 물론 그런 일은 없었지만.

[앞으로 새겨갈 My Way

더 이상 두렵지 않아 ENEMY]

마지막 파트와 함께 각자 가지고 있던 오브제를 쥐고 일곱 개의 왕좌에 앉았다.

“와아아!”

그제야 온몸의 긴장이 풀렸고, 왕좌에 거의 기대듯 누웠다. 무대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오는데, 서로의 얼굴을 보고 한참을 웃었다. 물감은 흘러내리고 있고, 어찌나 격하게 안무를 했는지 다들 양 볼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머리도 잔뜩 헝클어져 있고, 뭐 하나 얌전한 곳이 없었다.

“승빈아, 무슨 마라톤 뛰고 왔어?”

“선우 형이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요?”

“승빈이 옷에 물감 다 묻은 거 봐.”

“코디 누나한테 혼나겠네요…”

“아, 근데 너무 재밌었어!”

“누가 보면 물감 놀이 체험한 줄 알겠어요.”

무대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었지만, MC 성훈이 멘트를 이어 갔다.

“첫 번째 크리드의 무대 잘 봤습니다. 이번 주제 ‘WHO AM I’,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나요?”

유현이 형이 답하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마이크가 내 앞으로 넘어왔다. 이걸 왜 나한테 주냐는 눈빛에 유현이 형이 작게 속삭였다.

“네가 제일 잘 알 거잖아.”

부담감보다 고마움이 앞섰다. 시작부터 무모한 무대였지만 모두 내 의견을 존중하고 완성시켜 줬으니까.

“크리드의 정체성은 ‘새로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저희가 서바이벌을 통해 만들어진 그룹이잖아요. 투마이월드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도 자주 들었고요. 그런 대중들의 생각에 파장을 일으켜 보고 싶었습니다. 투마이월드를 통해 크리드가 만들어졌지만, 앞으로 크리드가 만들어 갈 음악은 언제나 새로울 거라는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대중분들에게 익숙한 눈부셔와 한 번도 보여 드리지 않은 수록곡 ENEMY를 보여 드렸고요.”

마이크를 쥔 손이 미세하게 떨려 오고 있었다. 크리드는 내가 꿈꿔 온 이상적인 그룹이라고 늘 생각하면서도 이렇게 직접 표현할 기회는 없었으니까.

“앞으로도 저희만의 색깔로 가득한 무대, 많이 보여 드리겠습니다.”

소름 끼치도록 행복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게 자리에 앉았고, 지운이 형에게 물었다.

“저, 말 잘한 거 맞겠죠?”

“응. 잘했어.”

하나, 둘 어깨를 토닥이는 멤버들의 손길에 떨림이 멎었다. 다음으로 이어진 투샤인의 무대는 신인의 풋풋함이 잘 보이는 무대였다. 성재 형이 리더로서 중심을 잘 잡아 줬고, 나머지 멤버들 역시 어린 나이지만 탄탄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저희가 아직 곡이 얼마 없어서 걱정이 많았지만! 투샤인의 정체성인 ‘빛’을 가장 잘 표현한 데뷔곡으로 무대를 꾸몄습니다!”

하이드는 수록곡 ‘BLACK JACK’을 선곡했다. 예상한 대로 수트핏의 깔끔한 무대였다. 하지만 유현재와 아이들이라는 느낌을 떨쳐 내기엔 부족한 무대였다. 능력치가 좋은 멤버가 하나라도 있다는 건 장점이지만, 너무 차이가 나는 건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앞으로 하이드가 보완해 가야 할 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샤인은 앞서 검정색 그 자체인 하이드의 무대와 완벽하게 대비되는 무대였다. 유현재는 항마력이 부족했는지 내내 고개를 돌렸다가 시종일관 무표정이었다.

마지막으로 포커스의 무대는 예상한 대로 엄청난 스케일이었다. 무대 장치부터 거대한 제단 모양 세트를 가져오더니 불도 나오고, 케르베로스 모형도 나왔다.

“와… 저거 다 얼마일까요?”

“근데 얘네 어디 있냐?”

하지만 포커스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첫 무대부터 기선 제압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무대 세트에 힘을 주었는데, 정작 포커스 멤버들이 가려졌다. 게다가 화려한 카메라 무빙을 계획한 듯했지만, 오히려 조잡한 느낌을 주었다. 카메라맨과 충돌이 발생할까 조마조마하던 참에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카메라맨의 뒤로 뛰어가던 포커스 멤버가 카메라맨의 발에 걸려 넘어진 것이다. 카메라 원샷을 받고 있던 오재성의 파트에서 카메라가 흔들리고 말았다.

“아이고, 어쩌냐 쟤네…….”

“동선을 너무 복잡하게 했어.”

대면식 무대는 넥스트 레벨에서 유일하게 팬들 없이 진행되는 경연이었다. 그 이유는 바로 원테이크 촬영. 딱 한 번 주어진 녹화 기회에 모든 걸 담아내야 했다. 그렇기에 너무 복잡한 동선은 오히려 촬영에 방해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포커스는 그러한 점에 대한 고려 없이 무조건 화려하게만 무대를 구성한 거였다.

무대가 끝나고 본인들도 아쉬움이 많이 남았는지 짧게 마무리 인사만 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멤버들의 표정 모두 어두웠다. 오재성은 넘어진 멤버에게 다가가 뭐라 얘기하는 듯했고, 해당 멤버가 울먹이며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포커스의 강렬한 무대 잘 봤습니다. 무대 세트가 엄청나던데요?”

“네, 첫 무대에서 눈도장을 제대로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열심히 준비해 봤습니다!”

“중간에 조금 위험한 상황도 있었던 거 같은데…….”

“죄, 죄송합니다…….”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카메라가 돌자 바로 태세를 전환한 오재성에 성훈이 대본을 또박또박 읽었다.

“역시 재성 군이 리더답게 달래 주네요.”

‘누가 보면 로봇인 줄 알겠어…’

“자, 첫 번째 경연이 모두 끝이 났습니다. 자체 투표로 진행되는 첫 번째 대면식 순위는 잠시 후! 공개하겠습니다.”

모두 투표실로 향했다. 누구를 1위로 뽑을까 고민했는데, 멤버들의 의견이 모두 일치했다.

“투샤인에 투표하자.”

가장 주제에 잘 맞았고, 멤버 개개인이 잘 보이는 무대였기 때문이다. 성재 형과의 인연을 빼고 보더라도 가장 스토리있고, 잘 만든 무대였다.

투표를 마치고 드디어 결과 발표만을 앞두게 되었다. 처음이니 어떤 순위를 받더라도 인정하겠지만 이왕이면 높은 순위를 받고 싶었다.

“오늘 5위는! 선샤인입니다. 총 70점을 획득했습니다.”

“네?”

선샤인 멤버들은 그럴 리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왜 그러죠, 선샤인?”

“아, 아닙니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1위에게 50점, 4위는 10점을 주기 때문에 포커스와 서로 1위를 뽑아 주기로 했다면 최소 80점을 받아야 하는데 70점이 나왔으니 놀란 게 아닐까?

“4위는 하이드!”

“3위는 투샤인입니다.”

“대망의 1위는… 축하합니다, 크리드!”

“와!!”

“축하해!”

1위가 발표되자마자 멤버들이 모두 튀어 올랐고, 서로 얼싸안고 기쁨을 만끽했다.

“최약체 팀으로 뽑혔던 크리드가 첫 번째 대면식 1위를 차지했습니다. 소감이 어떤가요?”

선우 형이 상기된 목소리로 소감을 전했다.

“오늘 무대 보고 나면 생각이 바뀔 거라고 했는데, 그 말이 실현되어서 정말 기분 째… 아니 좋습니다!”

‘아이고, 저 형이 조용히 넘어가나 했다…’

“투샤인과 하이드가 1위로 뽑으면서 총점 120점을 얻었습니다.”

‘선샤인과 포커스가 4위를 줬나 보군.’

“대면식 1위를 한 크리드에게는 500포인트와 함께, 다음 미션의 노래를 선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죠?”

“맞습니다. 다음 주제는 바로 ‘WHO ARE YOU’입니다!”

VCR에 글자가 떠오르고 설명문이 올라왔다.

[WHO ARE YOU : 상대팀과 노래를 바꾸는 곡 체인지 미션]

“와우…”

“누구 노래를 하지?”

4위를 한 하이드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쟤네 저러다가 선샤인이랑 곡 체인지할 수도 있거든.

‘볼만하겠네.’

“곡 선정은 내일 이곳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럼, 가요계 최고의 신인을 결정하라 NEXT LEVEL!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본격적인 서바이벌의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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