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199화 (199/346)

199화

‘스페셜 보상?’

또 처음 등장하는 상태창이었다. 아니, 이게 무슨 병 주고 약 주고도 아니고. 스텟 깎은 지 얼마나 됐다고 이젠 또 스페셜 보상으로 스텟 강화?

반짝이던 스텟창이 다시 선택창으로 바뀌었다.

[*스페셜 보상: 강화 스텟 선택*]

-외모

-끼

-보컬

-댄스

-프로듀싱

실패창과 똑같은 형태였다. 이번에는 망설임 없이 보컬 스텟을 선택했다. 아직 카메라가 돌고 있었지만, 선택을 망설였다가는 지난번처럼 예기지 않은 순간에 발현될 게 뻔했다. 물론 이거는 스텟이 올라가는 거지만, 선택지가 사라질 수도 있는 거였으니까. 자연스럽게 손을 들고 관중에게 인사하면서 선택지를 눌렀다.

[이름: 문승빈]

외모: A

끼: A

보컬: A →A+

댄스: B-

프로듀싱: B

스텟을 선택하자마자 바로 보컬 스텟이 한 단계 올랐다. 얼마 만에 되찾은 A+ 스텟인지. 얼른 노래를 불러 보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자리로 돌아왔다. 표정을 숨길 필요도 없으니 있는 그대로 마냥 행복해했다.

관객들이 모두 빠져나간 아이스 링크장에서 ‘플레이 온 아이스’ 시즌 1의 마지막 엔딩을 찍었다. 그동안의 소감을 묻는 질문에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시원섭섭함을 토로했다.

그리고 나는 오늘 무대 했던 ‘NewDream’의 한 소절을 불렀다.

[이젠 두렵지 않아

눈앞에 펼쳐진 NewDream]

됐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다시 찾은 보컬 실력은 그새 더 숙련된 것 같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뭐든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제 인생 첫 취미를 얻어서 정말 행복합니다.”

여러모로 홀가분한 마음으로 답한 마지막 인터뷰까지, 지난 몇 개월간의 대장정이 끝났다.

* * *

올해도 이 기나긴 연말 무대의 끝은 씨넷이 장식할 예정이었다. 매년 마지막 날에 이뤄지는 씨넷의 연말 무대는 사실 모든 가수들이 암묵적으로 가장 열심히 준비하는 무대였다. 아무래도 음악 전문 채널이다 보니, 연말 무대에 사활을 걸 정도의 퀄리티를 요구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씨넷 측에서도 그에 맞춰 예산을 빵빵하게 잡고 세트 및 음향을 준비해 주니 가수에게도 욕심나는 무대였다. 게다가 위튜브 채널도 활성화되어 있어서 매년 씨넷의 연말 무대 영상들은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하고는 했다. 매년 한두 곡씩은 연말 무대 버프로 소소한 역주행을 할 정도였다.

그런 씨넷이 이번에는 남자 아이돌에 목숨을 건 듯했다.

“승빈아! 이게 무슨 일이야!”

“성재 형, 그새 또 살이 빠진 거 같은데요?”

“야, 말도 마라. 내가 지금 나이 차이 나는 동생 몇을 거느리고 있는데. 나이가 나이인지라 체력이 안 따라 준다니까. 애들이 얼마나 에너지가 넘치는지 내가 지금 아이돌 그룹 리더인지, 유치원 선생님인지 가끔 헷갈릴 정도야.”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더 오버하는 성재 형이 귀여웠다. 좋으면서 괜히 저러는 거네, 저 형.

“말도 마라. 내가 승빈 스쿨 존경하잖아.”

“갑자기 승빈 스쿨?”

“어. 아니 어떻게 서바이벌에서 다른 애들을 그렇게 도와줬대?”

하긴, 쉽지는 않았다. 내 거 연습하기도 바쁜 서바이벌에서 남을 그렇게 많이 도와주다니. 미션과 지운이 형이 아니었다면 어려웠을 거다. 비록 반쯤은 타의로 시작한 승빈 스쿨이지만, 그래도 덕분에 얻은 게 더 많았다. 성재 형도 그중 하나였지.

“에이, 형 은근히 선생님 역할 즐기는 거 같더만-”

“애들이 착해서 잘 따르는 게 귀엽지. 근데 그래도 에너지 소모가 장난 아니야.”

“형이 그럴 정도면 형네 애들이 진짜 활발하긴 한가 봐요.”

“말도 마라, 저기 봐. 지금도 챌린지 찍고 있잖아.”

“귀엽네요. 근데 형, 형도 몰랐죠?”

“뭘?”

“우리 같이 무대 하는 거요!”

씨넷은 이번 연말 무대의 하이라이트로 남자 아이돌 간의 콜라보 무대를 기획했다. 우리와 포커스, 성재 형이 속한 투샤인과 선샤인, 그리고 하이드까지. 전부 남자 아이돌이라는 걸 제외하고는 공통점이 없어 보였지만, 다들 최근 1-2년 사이에 데뷔한 그룹들이라 대충 루키 특집인가 싶기는 했다.

“어, 당연하지. 나 진짜 너네랑 스페셜 무대를 한다 그래서 귀를 의심했잖아. 저희가요? 왜요? 이랬다니까, 진짜로-”

“근데 진짜 대체 무슨 조합이려나.”

“너 병대랑 아직도 사이 안 좋아?”

“병대는 양반이에요. 이따 걔보다 더한 또라이 하나 올 거니까 형도 조심해요.”

“또라이? 와, 나 승빈이 네가 이렇게 사람 싫어하는 거 처음 봐.”

“그러게요. 걔도 참 대단하죠?”

오늘은 다섯 팀이 처음으로 모이는 첫 연습 날이었다. 각 팀당 최소 5명 이상씩이라서 전부 모이기도 쉽지 않을 텐데, 불도저 같은 씨넷의 추진력이란. 그렇게 다 큰 남자 몇십 명이 서있으니 꽤 큼지막한 연습실임에도 불구하고 자리가 여유롭지는 않았다.

“안녕하십니까, 포커스입니다.”

마치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제일 늦게 도착한 포커스를 마지막으로 모든 멤버가 모였다. 오재성이 보이자마자 지끈거리는 머리는 이제 일상인 듯했다. 이제 적어도 이 두통이 오재성과 연관 있다는 것까지는 확실하게 파악했다.

‘도대체 뭐 하는 인간이지?’

회귀 전 내가 알던 오재성과 성격이 똑같은 거까지는 이제 파악했는데, 그 이상을 캐내기는 쉽지 않았다. 기회가 될 때마다 여러 번 떠봤지만, 아무래도 회귀까지는 아닌 듯했다.

‘회귀한 애가 저렇게 멍청하게 굴기도 쉽지 않지.’

“자, 여러분. 다 같이 모일 수 있는 연습 시간이 적다 보니 집중 부탁드릴게요.”

익숙한 얼굴이었다. 투마월 때도 전체적인 무대를 봐주던 안무가였다. 이 정도면 씨넷 공무원 아니실까 하는 뻘한 생각도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잠시 멍때릴 시간도 없었다.

“5팀 각자 준비한 무대를 하고 나면, 다 같이 하는 건 5분 내외로 짧게 끝날 거예요.”

“전체적인 콘셉은 간단해요. 바로 전투입니다. 5팀이 마치 대결하는 느낌으로 합을 맞출 겁니다.”

그 이후로 한참 설명이 이어졌고, 바로 안무 연습이 시작되었다. 개별 무대에 단체 무대까지, 미리 바다를 다녀온 게 다행이다 싶었다.

* * *

1차로 연습을 마치고 잠깐 주어진 쉬는 시간. 급하게 안무 익히느라 정신없어서 몰랐는데, 누가 짰는지 새삼 조합 한번 살벌하네. 으레 이런 쉬는 시간에는 서로 통성명도 하면서 얘기를 나누고는 했는데, 이 큰 연습실에 말소리 하나 없었다.

우리와 포커스는 말할 것도 없고, 지난번에 그 난리를 쳤던 선샤인 애들은 우리 쪽은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하이드만 접점이 없던 그룹이었는데, 내 기억으로는 쟤네도 포커스랑 사이가 안 좋았던 거 같은데? 회귀 전에 오재성이 없고 강도현이 있었던 포커스긴 하지만. 안하무인으로 굴던 김병대 때문에 두 팀이 싸웠다는 루머가 있었다. 물론 루머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서로 인사를 나누는 걸 보니, 이번에는 아직 발생하지 않은 사건인 듯했다.

선샤인과 하이드도 데뷔 동기인 걸로 알고 있는데, 별로 서로 반기는 거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니 결국 5팀 중에 사이가 좋은 건 우리와 투샤인뿐이었다. 친화력이라고는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성재 형과 강도현, 그리고 맹목적으로 우리를 동경하는 투샤인 멤버들까지. 환상의 조합이었다.

“와, 나 이러다 관절 나가는 거 아니냐.”

“안무 진짜 빡세긴 한데, 그 정도는 아니구만.”

“너도 몇 년 지나 봐라. 어떻게 되나 보자.”

“형, 도현 님은 몇 년 후에도 똑같으실 거 같은데요?”

“맞아요! 10년 후에도 똑같이 춤 잘 추실 거 같아요!”

“와- 너희 지금 누구 편드는 거야?”

“성재 형, 유치하게 누구 편이냐니-”

“맞아요. 저희 형이 좀 유치해요.”

“다들 말 편하게 해요. 나도 그냥 도현이 형이라고 불러도 되는데.”

“헐, 대박. 진짜요?”

“형 그럼 혹시 전화번호 물어봐도 돼요?”

성재 형이 한마디 던지면 강도현이 받아치고, 강도현의 그 한마디에 다른 투샤인 멤버들은 자지러지고. 벌써 편해졌는지 이제는 강도현의 편에 서서 성재 형을 놀리기까지 했다. 싸늘하기까지 했던 연습실에서 우리가 있는 공간만 장르가 달랐다.

“크리드는 참 분위기가 좋네요-”

나지막이 들리는 목소리가 낯설었다.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하니, 하이드의 ‘유현재’였다. 실제로는 오늘 처음 봤지만, 나에게도 꽤나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래 보인다니 다행이네요.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럽네요.”

“네?”

예상치 못한 말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순식간에 모두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고, 당황한 나와 달리 유현재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이미 시선에 익숙한 사람이기도 했고, 그 자체도 타인의 시선을 그리 신경 쓰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유현재, 어쩌면 이 연습실에서 가장 유명할 이름. 하이드는 지금으로부터 2년 뒤 해체할 그룹이었다. 데뷔 초부터 유현재와 아이들로 불렸을 정도로 인기의 격차가 심각했고, 최근 유현재가 조연으로 들어간 드라마가 대박이 나면서 그 격차는 더 심해졌다.

사실 지금 이 자리에 유현재가 와 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연기를 핑계로 그룹 활동을 빠져도 이상하지 않을 위치였다. 쉬는 시간을 틈타 대부분의 여성 스텝이 유현재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을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가장 큰 비극은 유현재는 오로지 가수가 꿈이었다는 거다. 하이드가 해체하고 전업 연기자의 길을 걸었지만 2년도 되지 않아 그는 은퇴를 선언하고, 완전히 연예계를 떠났다. 그래서 나와는 활동 시기가 거의 겹치지 않아서 지금 이렇게 마주하고 있는 게 조금 신기했다. 사실 내가 아이돌 출신 연기자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유현재의 은퇴이기도 했으니까.

“좋겠어요, 승빈 씨는.”

“그게 무슨-”

“저희 팀은 이미 글렀거든요.”

“예?”

아니, 이건 뭐 박선우 2탄인가? 저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에 필터링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지금 내가 제대로 듣고 있는 게 맞나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기적적인 화법이라니.

더 무서운 건 저 모든 얘기를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하고 있다는 거다. 이미 해탈하고도 남은 사람의 모습인가.

“선배님, 의외시네요.”

“뭐가요?”

“되게 과묵하실 줄 알았어요.”

“아… 무섭게 생겨서?”

“네? 아니 그건 아니고-”

“괜찮아요. 나 그런 소리 많이 듣는데-”

“저희 팀에 더 무섭게 생긴 형 있는데요?”

“…아!”

내 말을 듣고 주위를 둘러보던 유현재의 표정이 처음으로 바뀌었다. 그 시선의 끝에 위치한 게 바로 우리 지운이 형이었거든.

“처음으로 내가 순한 얼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저희 형이 뭐가 어때서요!”

“먼저 무섭게 생겼다고 한 사람이 누구였더라?”

“…….”

말하면 할수록 이상한 사람이었다. 유현재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이미지 중 맞는 게 단 하나도 없었다. 잘못했다가는 제대로 말릴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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