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198화 (198/346)

198화

“저희 누군지 아세요…?”

“그, 스케이트 타는 청년 아니야?”

“대박- 플온아 보시나 보다!”

“안녕하세요.”

“맨~날 자빠지는데 오뚝이같이 일어서는 게 너무 기특해서 기억하지~”

사장님의 말에 나를 제외한 모두가 웃음이 터졌다.

“기다려 봐, 이것도 인연인데 서비스 줘야지.”

“와, 사장님 짱!”

“사장님 혹시 이 친구 이름도 아세요?”

“응? 이름은 잘 모르겠고 막내! 난 막내라 불러~”

“승빈이에요, 문승빈.”

“그래, 승빈이 친구들이랑 온 거야?”

“저희 팀이에요. 크리드.”

“크리드? 아우, 너무 어렵다. 그냥 잘생긴 청년들이라고 할게. 괜찮지?”

“네!”

통이 큰 사장님의 서비스 덕분에 불판 위로 온갖 해산물들이 가득했다. 다 익은 거 같다는 매니저 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젓가락이 달려들었다. 다들 말없이 먹는 데 집중했다.

“아유, 잘생긴 청년들이 복스럽게도 먹네! 막내도 많이 먹어! 많이 먹어야 안 넘어지지-”

“아, 사장님- 저 이제 많이 안 넘어져요~”

그 말에도 의심 가득한 사장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방송에서 넘어진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거든.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자 사장님이 종이와 펜을 가지고 오셨다.

“우리 가게 온 첫 번째 연예인인데 사인 한번 해 주고 가~”

모두 동시에 매니저 형에게 눈빛을 보냈다. 사인을 해 줘도 되냐는 무언의 질문이었다. 매니저 형은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옹기종기 모여서 종이 안에 사인을 했다.

“엥? 종이 7장 가져왔어~ 큼지막하게 받으려고!”

한 종이에 욱여넣은 사인이 민망해질 지경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개인별로 하나씩, 단체로 하나씩 하기로 했다.

“킹크랩 친구들도 잘 가고, 막내도 넘어지지 말고~”

“사장님, 킹크랩 말고 크리드.”

“그래, 잘생긴 청년들.”

줏대 있는 사장님의 네이밍 센스에 모두 두 손 두 발 들었다.

“다음에 또 올게요!”

소속사로 향하는 차에서 멤버들과 찍은 사진과 영상을 몇 개 골라서 올렸다.

CR:ID @CR:ID_official 1분 전

[멤버들과 함께 바다 보고 왔어요!]

(단체 밤바다 사진)

-헐 애들 잠깐 바다보고왔구나ㅠㅠㅠㅠㅠ

-연말이라 바쁠텐데 잠깐 휴식시간 가지고 오는게 좋지

-나 왜 바다보러 안갔지ㅠㅠ

[이건 한밤의 질주 (술 안 마셨어요!)]

(윤빈, 강도현, 박재봉, 박선우가 뛰어다니는 영상)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게 지금 무알콜상태라는거잖아ㅋㅋㅋㅋㅋㅋㅋ

-윤빈이 지금 선우 들쳐멘거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돌 운동회 계주냐곸ㅋㅋㅋㅋ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지운이 형이랑, 유현이 형하고 저!]

-진짜 MBTI는 과학인거같아

-귀여워ㅠㅠㅠ

-키순서대로 미레도넼ㅋㅋㅋㅋ

저녁이 되고, 역시나 목격담이 떴다.

[00조개구이 집에서 크리드 봤어요! 여기 사장님이 엄청 인싸이신데 재밌게 대화도 하고, 사장님이 승빈이 플온아 막내라고 서비스도 주셨어요! 그리고 마지막엨ㅋㅋㅋ애들 이름을 킹크랩이라고 하셔섴ㅋㅋㅋㅋ 애들 아침이어서 헤메코 하나도 안된 상태였는데도 진짜… 잘생겼어요ㅠㅠㅠㅠㅠ 마지막에 싸인을 한 장씩 요청하신건데 일곱명이서 옹기종기 모여서 한 종이에다가 하더라고요ㅋㅋㅋㅋㅋ 방해될 거 같아서 사진 요청은 따로 안했고, 뒷모습 찍은 사진만 올립니다! (사진) ]

-킹크랩ㅋㅋㅋㅋㅋㅋ

-애들모여서 싸인하는모습 상상하니까 귀여워서 죽겠으뮤ㅠㅠ

-저기 존맛인데 하

-ㅁㅊ 오늘 저기 갔었는데ㅠㅠ 역시 덕계못인가

* * *

“여러분, 오늘 드디어 플온아 첫 번째 대장정의 마무리를 하는 날이네요!”

플레이 온 아이스는 높은 화제성과 시청률 덕분에 일찍이 시즌 2가 확정된 상태였다. 처음 갈라쇼 소식을 들었을 때는 프로그램의 마지막 경연이어서 아쉬움이 남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즌 2가 있다고 하니 다음엔 어떤 무대를 할까- 기대감이 앞섰다. 물론 시즌 2에 내가 나온다는 보장은 없지만?

대기실에서 현장을 확인해 보니 정말 많은 방청객들이 와 있었다. 저 사람들 앞에서 준비한 프로그램을 해야 한다니- 실수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과 함께 긴장감이 밀려왔다.

“크리드의 문승빈, 이정훈 선수!”

“와아아!”

엄청난 함성에 하마터면 스텝이 꼬일 뻔했다. 다행히 이정훈 선수가 옆에서 휘청거림을 막아 줬다.

“플레이 온 아이스 파이널 갈라쇼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최 피디입니다!”

“엠시도 본인이 하는 피디는 처음이야…….”

옆자리 H형이 귓속말했다. 역시 악마의 스타성이다. 최 피디의 능숙한 진행과 함께 앞선 팀의 경연이 시작됐다. 약 4개월 동안의 시간이 담긴 프로그램이었다. 실수하는 출연자도 있었고, 만족스럽게 무대를 마친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 다 아쉬움보다는 홀가분함과 행복이 가득했다.

“엄청 긴장했는데 하고 나니까 별거 아닌 거 같아!”

“그런 사람이 소감 말하면서 그렇게 우셨어요?”

“조용히 해-”

그리고 마침내 내 차례가 왔다.

“크리드의 문승빈 군의 무대입니다! 크리드의 곡인 ‘NewDream’으로 무대를 꾸민다는데, 저 역시 너무 기대됩니다. 나와 주세요, 승빈 군!”

“형, 준비한 대로만 하면 돼요.”

“그게 제일 어려운 거 알지.”

“당연하죠.”

심호흡하는 내게 이정훈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실수해도 돼요. 다치지 말고 후회 없이 하고 와요!”

“그래.”

시답잖은 얘기였지만 웃음이 나왔다. 덕분에 긴장도 풀렸다. 스케이트화 끈을 더 질끈 묶었다.

천천히 무대가 시작되는 위치로 향했다. 관객석에는 멤버들도 있었다. 언제 준비한 건지 헐레벌떡 플래카드까지 만들어왔다.

[빙판 위의 조랭이 문승빈]

‘하필이면 조랭이냐!’

조금 남아 있던 긴장도 한순간에 사라졌다. 뭔가 허술하고 어설프지만, 확실히 든든한 사람들이었다.

“오늘 준비한 콘셉은 화가입니다! 서투르지만 열심히 빙판 위를 색칠하겠습니다!”

“문승빈 파이팅!”

노래가 시작되고, 준비한 프로그램을 천천히 수행했다.

[눈앞에 펼쳐진 NewDream

눈부신 색들의 향연

컬러풀하게 칠해 봐]

가사에 맞춰서 붓질을 하는 제스처를 했다. 첫 번째 수행 미션은 런지 자세였다. 조금 삐그덕거리긴 했지만, 연습 때보다는 훨씬 부드럽게 빙판 위를 활주했다. 관객석에서 힘찬 응원 소리가 들렸다. 정훈 선수가 알려 준 방법을 머릿속으로 최대한 생각하면서 동작에 임했다.

[한 걸음 내디뎌

두려움보다 짙은

나에 대한 믿음

나를 이끌 거야 NewDream]

그리고 다음 과제는 한 발 스핀. 속으로 천천히 박자를 셌다.

‘3시 모양으로 서고, 오른발로 원을 그리면서 손은 가슴에…….’

긴장을 많이 했다면 머릿속으로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이 먼저 움직였을 것이다. 연습 때도 그러다가 넘어지거나, 축이 휘는 실수를 저지르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플레이 온 아이스를 시작하고 이렇게 편한 마음으로 빙판 위에 선 것은 나름 자신만만했던 첫 촬영 날 이후 처음이었다.

얼음 갈리는 시원한 소리와 함께 스핀 동작 수행을 마쳤다. 다음은 스파이럴. 한 발을 들고 활주하는 동작이어서 유연성과 함께, 균형 감각이 중요한 동작이다. 연습할 때 코어 힘이 부족하다는 걸 절실하게 느껴서 따로 운동을 할 정도였다. 살짝 비틀거리는 감이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오늘 난 잘하려고 온 게 아니다, 즐기기 위해 온 것이다.

[Never stop Just keep on dreaming

달려 나가 나의 NewDream

잠들지 않아도 생생하게 잡히는 이 꿈

절대 놓치지 마]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과제. 싱글 악셀이다. 연습 중 성공한 적이 한 번도 없는 점프였다. 앞으로 뛰어야 하기 때문에 심리적 압박도 있었고, 점프 후 한 발로 몸 전체를 지탱해야 하기 때문에 까다로웠다. 혹시 넘어지더라도 실망하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원래 점프까지 넣을 계획은 없었는데, 스핀과 스텝이 생각보다 더 잘 잡히면서 욕심을 내 본 거였으니까.

[망설이지 마

눈 감고 Jumping!

언제나 너에겐 열려 있어

NewDream]

가사 그대로 눈 딱 감고 몸을 던졌다. 몸이 한 바퀴 돌아가는 게 느껴졌다. 그 짧은 순간에도 성공할까, 못 할까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빙판 위에 왼발의 날이 닿는 순간 직감했다.

‘됐다……!’

약간 오버 턴을 하긴 했지만 넘어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성공적이었다. 환호성과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무대 위에서 받았던 것과는 또 다른 성취감이었다. 이제 스핀과 함께 엔딩만 남았다. 괜히 시원섭섭했다. 오늘의 무대가 시즌 2 합류에 큰 도움이 되길 바라며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이젠 두렵지 않아

눈앞에 펼쳐진 NewDream]

엔딩 포즈는 두 손을 하늘 위로 펼치기였다. 실수하지 않음에 절로 주먹이 쥐어지고 탄성이 터졌다. 언제 온 건지 이정훈 선수도 어깨동무를 하며 축하해 줬다.

“형, 진짜 잘했어요!”

“고마워!”

“승빈 군의 컬러풀한 무대였습니다, 수고한 승빈 군에게 모두 응원의 박수 부탁드릴게요!”

“잘했어, 승빈아!”

“최고야!”

환호하는 사람들, 빙판 위로 쏟아지는 꽃다발과 인형까지 이 모든 게 비현실적이었다. 노력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변수가 가득했던 지난날들과 달리, 내 노력만큼의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관객석에 있는 멤버들 앞으로 달려갔다. 가자마자 끌어당겨서 머리를 헝클이고 얼굴을 반죽하고 난리가 났다.

“야, 제일 잘했어!!”

“형, 피겨 선수 해도 되겠는데요?”

“안 돼- 얘 아이돌 해야 해!”

평소였다면 질색했겠지만, 이 순간만큼은 온전히 기쁨을 누리고 싶었다.

“안녕하세요.”

“정훈 선수님이죠?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저희 형 사람, 아니 피겨 선수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재봉이의 엉뚱한 발언에 정훈 선수도 박장대소했다. 둘이 나이가 비슷해서 어쩌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무대를 끝으로 마지막 순위 결과를 기다리게 되었다. 점점 순위가 올라갈수록 불리지 않은 것이 좋으면서도 부담이었다. 그리고 1위 후보에 올랐을 때, 기왕 이렇게 된 거 1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플레이 온 아이스 갈라쇼 미션 1위는 총점 100점 만점에 92점으로… 크리드 문승빈, 이정훈 선수!”

“형!”

“정훈아!”

“축하해, 승빈아!”

꽃가루가 쏟아졌고, 전광판에는 점수판이 나왔다. 그리고 1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승빈 군, 소감 부탁드려요.”

“와… 저 정말 기대도 안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높은 순위 선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저는 피겨를 한 번도 배워 본 적도 없고, 단순히 좋아한다는 이유로 무모하게 도전한 거였어요. 그래서 시행착오도 많았고, 처음엔 정말 아무것도 못 했는데… 정훈이가 정말 많이 도와줬고, 우리 크리드 멤버들도 옆에서 응원해 줘서 가능했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 믿고 매주 본방 사수 해 주시고 오늘 이렇게 방청하러 와 주신 모든 클로버들! 감사합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매 순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정훈 군도 한마디 부탁해요.”

“승빈이 형이 겸손하게 말한 거지만, 정말 최선을 다하고 진심으로 임해 줘서 고마웠어요. 오늘 1위의 가장 큰 주역은 승빈이 형 본인이니까 오늘 이 기쁨을 온전히 즐기길 바랍니다. 함께해서 정말 영광이었어요!”

후회 없이 완벽한 피날레였다. 그리고 마법처럼 눈앞의 상태창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스페셜 보상 : 선택 스텟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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