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꿈만 같은 신인상 수상 이후 시상식이 어떻게 끝났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그저 울다가 웃다가의 무한 반복이었다. 대기실에 돌아오니 매니저 형을 포함한 소속사 스태프분들이 서프라이즈로 케이크를 준비하셨다.
“축하해, 애들아!”
“감사합니다!”
그리고 역시 이 현장 모두 ‘크리데이캠’에 찍히고 있다. 언제 카메라를 받아 온 건지, 강도현이 캠을 들이밀고 있었다.
“크리드의 떠오르는 울보 문승빈 군, 소감이 어떠신가요?”
“참나, 그쪽은 눈이나 제대로 뜨고 말하시죠?”
“전 멀쩡한데요?”
강도현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카메라를 돌려서 셀프캠을 찍었다. 하지만 곧장 화면을 전환했다. 자기도 놀랐겠지. 만만치 않게 울던 강도현의 눈도 팅팅 부어 있었으니까.
“어우, 깜짝이야.”
“푸하하!”
“재봉이 네가 웃을 때가 아닐 텐데?”
“으아, 카메라 안 돼요!”
박재봉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도망쳤다. 내 얼굴과 박재봉을 번갈아 보던 강도현이 의아하다는 듯 갸웃했다. 그리곤 말했다.
“너… 생각보다 안 붓는구나?”
뜬금없이 진지한 목소리에 멤버들을 포함한 대기실의 모두가 박장대소했다.
“진짜 난 네 머릿속이 너무 궁금하다, 도현아.”
“그야 내 머릿속엔 클로버 생각뿐이지-”
“와- 그렇게 나온다고?”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능글맞게 답하는 강도현에 어이가 없었다.
“너희 둘 빨리 와- 케이크 불 끄기 전에 소원 빌어야지.”
유현이 형의 말을 듣는데, 더 이상 소원이 없을 정도로 행복해서 어느 소원을 빌어야 하나 고민이 생겼다. 그만큼 행복하다는 증거겠지.
“다들 모였지? 그럼 소원 하나씩 빌고 다 같이 부는 거다?”
“네!”
모두 케이크 주변에 둥글게 서서 소원을 빌었다. 나도 고르고 고른 소원을 빌었다.
‘우리 크리드와 크리드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오늘보다 내일 더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이보다 행복할 수 없다고 해 놓고, 이런 소원을 비는 것이 살짝 민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앞으로 오늘의 이 엄청난 행복보다 더 큰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많기를 바라며 소원을 빌었다.
“다들 소원 빌었지? 그럼 하나, 둘…….”
“엣취!”
“…셋?”
허망하게 꺼져 버린 촛불 앞에 모두 얼음 상태가 되었다. 재채기의 당사자인… 나만 머쓱해졌다. 너무 울어서 그런지 코가 맹맹해졌다 느꼈는데 이럴 줄이야. 침이 안 튄 게 다행이었지만, 순식간에 조용해진 분위기에 민망함이 밀려왔다.
“…미안”
“타이밍이 어떻게 이럴 수 있냐?”
“문승빈이 문승빈 했네…….”
“그, 그 정도는 아니거든?”
“어차피 소원은 다 빌었으니까-”
지운이 형의 말에 강도현도 멈췄다. 크리드 초반에는 유현이 형한테도 고분고분하지 않았던 녀석이 신기하게도 지운이 형의 말에는 토를 달지 않는다.
‘저 자식 입꼬리 봐, 더 놀리고 싶어서 난리 났네.’
“그럼, 맛있게 먹자!”
윤빈 형의 외침을 시작으로 모두 케이크에 달려들었다. 연말 무대를 준비한다고 며칠 동안 식단 조절은 물론 군것질은 그림 속의 떡이었다. 오랜만에 먹는 달달함에 다들 말없이 케이크를 입에 집어넣었다. 하지만 박재봉은 자칭 ‘크리데이 최다 캠 소유자’의 명성만큼이나 그 와중에도 손에서 캠을 놓지 않고 열정적으로 인터뷰를 했다. 양 볼 가득 케이크를 물고 옹알거려서 하나도 못 알아들었지만.
“형, 우늘 시닌상 받아서 우땠어용?”
“야, 다 먹고 말해. 우물거려서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하나도 알아듣지 못한 나와는 다르게 선우 형과 강도현은 태연하게 통역을 했다.
“오늘 신인상 받아서 어땠냬.”
“…뭐야, 통역사야?”
“형도 알죠? 재봉이 놀릴 때 화 조금 올라오면 우다다 말하는데 딱 저 발음이잖아요.”
“알지, 알지. 거의 박재봉 언어 1급임.”
“츰나, 저 지금 왕전 또박도빡 말하구 이끄덩요?”
이건 무슨 뜻이냐는 눈으로 둘을 보니 선우 형이 자신만만하게 답했다.
“자기가 지금 완전 또박또박 말하고 있는 거래. 웃겨, 진짜.”
아무 생각 없이 웃음이 나왔다. 옆에서는 지운이 형이 웃음 포인트가 눌렸는지 숨이 넘어가도록 웃고 있었다. 대기실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어느 하나 안 웃는 사람이 없었다. 공기마저도 행복으로 채워진 듯했다. 케이크 하나 가지고 이렇게 웃을 일인가. 그 치열한 서바이벌과 경쟁 속에서도 다들 아직 천진함을 잃지 않았다.
“맞다. 이따가 소속사 돌아가서 에이앱 해도 돼요?”
“신인상도 받았는데 당연하지-”
“그럼 지금 케이크 많이 먹으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선우 형의 말에 유현이 형이 태연하게 답했다.
“예외 조항 하나 만들지, 뭐. 상 받은 날은 무효화하기.”
“내가 잘못 들었나? 유현이 형이 말한 거 맞지?”
유현이 형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못 믿겠음 말고-”
“아 취소, 취소! 리더님 말인데 잘 들어야지-”
선우 형의 능글맞은 태세 변경에 2차 웃음 파티가 열렸다.
* * *
퇴근길 지하철에 겨우 자리를 잡은 문스트럭의 졸음을 한순간에 깨운 알림이 떴다.
[감사합니다, 클로버!♡]
“이런 미친.”
문스트럭은 곧장 가방에서 이어폰을 찾아 나섰다. 그러곤 절망했다.
“안 챙겨 왔어? 망할…….”
문스트럭은 급한 대로 핸드폰을 모로 세워 귀에 갖다 댔다.
“클로버어어어, 우리 신인상 탔어요!”
‘애들 신난 거 봐, 눈물 나네. 진짜 하필 오늘 이어폰을 안 가져와 가지고!’
-축하해 애들아아아
-Congratulation CR:ID
-ㅠㅠㅠㅠㅠ투표한 보람이 있다
문스트럭은 소리를 포기할지, 얼굴을 포기할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청각을 포기했다. 그러다가 문득, 얼마 전에도 이어폰을 놓고 와서 급하게 샀던 게 있음을 기억해 냈다. 그녀는 자신이 아는 온갖 신에게 간절히 빌었다.
‘다시는 신은 죽었다 뭐, 이딴 소리 안 하겠습니다. 그니까 제발…….’
그리고 그녀의 손에 집히는 줄 이어폰, 문스트럭은 유레카를 외치며 핸드폰에 연결했다. 다행히도 일회용 수준은 아니었는지 승빈이 목소리가 들렸다. 연결되는 순간 얼마나 짜릿했는지 하마터면 지하철에서 비명을 지를 뻔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부처님 또 아무튼 신님들.’
문스트럭은 다시 화면에 집중했다. 신인상을 예상이라도 한 건지 소속사에서 미리 준비한 케이크가 벌써 반쯤 줄어 있었다.
“하… 잘 먹는 거까지 기특할 일임?”
“저희 정말 긴장 많이 했어요.”
“맞아,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았어.”
-우리도 긴장많이했어ㅠㅠㅠㅠㅠㅠ
-진심 피말리는 투표였다 애들아…
-하 그래도 이겨서 뿌듯함ㅋㅋㅋㅋ
-이맛에 투표하지
“클로버분들이 진짜 진짜 열심히 투표해 주셨다고 들었어요!”
“맞아. 막 만두? 엄청 많이 사신 분도 봤어.”
“만두 팩 사면 투표권이랑 시상식 표를 줬대.”
“만두를?”
-나 이제 하루 삼시세끼 다 만두먹어야 할판임ㅋㅋㅋㅋㅋ
-만두전형 아님?ㅋㅋㅋㅋㅋㅋ
-클로버와 만두공장
-나 저걸로 드림어워즈 갔다옴ㅋㅋㅋ
-이제 만두의 만자만 들어도 신물나ㅠㅠ
“와… 클로버들 손가락 괜찮아요? 투표하느라 엄청 힘들었겠다-”
“그럼 클로버를 위해 승빈이가 애교를!”
“네?”
“잘한다, 도현아!”
문스트럭은 사회적 체면을 위해 작게 외쳤다. 그리고 이번에는 어떤 프로 아이돌 같은 면모를 보여 줄지 기대했다.
“내가 애교하면 넌 뭐 보여 주실 건데요?”
“나?”
“도현이도 애교하면 되겠네-”
“뭐… 그러죠?”
“네가 분명 애교한다고 했다?”
“…잠깐, 승빈아?”
-오 강도현 자신감
-아냨ㅋㅋㅋ승빈이 백퍼 안할거라고 생각해서 그랬나봄ㅋㅋㅋ
-그치만 상대는 문승빈인걸…
-도현이가 스스로 무덤팠넼ㅋㅋㅋ
승빈이 카메라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갑작스러운 얼빡에 문스트럭은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아직 할부도 다 안 갚았는데 떨어트렸으면 큰일이었다.
‘잘생겼어!’
아직 시상식 헤메코 상태여서 평소보다 더 화려한 얼굴이었다. 망설임 없이 카메라 앞에 선 승빈이 유행하는 애교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모 여자 아이돌이 예능에서 만들어서 유명해진 ‘한눈팔지마 송’인데, 극강의 귀여움이 필요한 노래와 율동이어서 제대로 성공한 아이돌이 얼마 안 되기로 유명했다. 그런데 그 어려운 걸 승빈은 해냈다. 게다가 ‘너’를 ‘클로버’로 개사하는 센스까지 보여 줬다.
[클로버 한눈팔지 마
그럼 난 엉엉 울 거야
클로버 나만 사랑해 줘
그럼 난 히히 웃을 거야]
-이런 ㅁㅊ
-우리 승빈이가 한눈팔지마 송을…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주님 오늘 한명 올라갑니다
-평승프 다짐함
-귀여워ㅠㅠㅠㅠㅠㅠㅠㅠㅠ
-승비닝 ㅈㄴ아무렇지 않음ㅋㅋㅋㅋㅋㅋㅋ
-투마월 때 생각낰ㅋㅋㅋㅋ
승빈의 뻔뻔한 애교에 멤버들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운은 그새 또 웃음이 터져서 윤빈의 뒤로 넘어간 지 오래였다.
“뭐야, 지운이 형 왜 이렇게 웃어요? 형도 애교할래요?”
“아, 아니… 아 배 아파.”
문스트럭 역시 투마월 당시 태연하게 승빈네컷을 하고 간 모습이 떠올랐다. 평소에는 애교에 약하지만 할 땐 하는 남자, 한 방이 있는 남자 문승빈. 승빈은 의기양양하게 자리로 돌아가며 자연스럽게 진행을 했다.
“자! 이제 도현이의 깜찍한 애교 봐 볼까요~”
-승빈이 신났엌ㅋㅋㅋㅋㅋ
-너무 자연스럽게 토스하는데?
-혐관이얔ㅋㅋㅋㅋ
-아싸 도현이 애교
-따봉승빈아 고마워!
“망한 거 같은데요?”
“한 입으로 두말하기가 있습니까? 얼른 가세요-”
“하…….”
도현이 크게 결심한 듯 카메라 앞에 섰다. 그러고는 혀 짧은 소리와 함께 몸을 베베 꼬며 신인상 감사합니다- 애교를 했고, 뒤에서 나머지 멤버들은 귀를 막거나 눈을 가리는 조치를 취했다.
-…
-도현아 수고 많았다
-도현이 어제 태어났음?
-귀여운데 왜요ㅠㅠㅠㅠ
-애들 질색햌ㅋㅋㅋㅋㅋㅋ
“여러분, 저희는 저걸 매일 보고 삽니다…….”
“그래서 너무 좋지?”
“네. 너무 좋아서 귀마개랑 안대가 필수품이에요-”
“재봉이한테는 특별히 더 신경 쓸게-”
“와~ 하나도 안 고맙네요~”
-강도현 박재봉 또 티격태격댘ㅋㅋㅋㅋ
-둘이 한마디도 안지는거 너무 웃김
“어우, 정신없어. 모두들 자리에 앉자-”
“넵-”
-정유현 거의 뭐 유치원선생님 아님?
-애들 유현이 말만 잘듣는거 너무 웃김
-진짜 ‘말’만 잘들어서 아직 까부는 애들도 있는데요
-유현이가 리더여서 다행이다…
-군기 ㅈㄴ잡나보넼ㅋ
-뭐야 이 어그로는
“아무튼! 오늘 신인상을 받기까지 클로버 여러분에게 너무 큰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희가 시상식에서는 너무 울어서 말을 제대로 못 했는데, 이렇게나마 여러분들에게 남은 진심을 다 전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앞으로 더 멋진 모습 많이 보여 드릴게요!”
“클로버한테 대상 가수 팬이라는 이름 꼭 선물해 줘야지-”
-도현이 야망 너구리;;
-야망 너구맄ㅋㅋㅋㅋㅋㅋㅋ
-남은 신인상 다 니들꺼야ㅠㅠ
-신인상 싹쓸이 가보자고
-다음은 오렌지 뮤직어워즈 신인상이다
“총알 장전해 놔야겠네…”
보통 이런 소통 콘텐츠가 끝나고 검은 화면에 자신이 얼굴이 뜨면 현타가 오기 마련인데, 자연스럽게 다음 투표를 생각하는 자신이 신기했다.
* * *
에이앱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갈 채비를 하던 중, 유현이 형이 매니저 형에게 뜻밖의 제안 하나를 했다.
“저희 단체로 바다 갔다 와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