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우리가 신인상 후보라니-”
“신인상은 진짜 꼭 받고 싶어.”
“자- 그럼 그만큼 최고의 무대를 준비해야겠지? 모두 집중!”
유현이 형과 지운이 형의 말에 어딘가 유치원생이 된 기분이었지만 다들 광대가 내려올 줄 몰랐다. 연말 시상식 중 가장 화제성이 높은 ‘드림 어워즈’의 신인상 후보가 되었으니까. 이번 시상식에서는 신세계와 레디의 리믹스 버전을 준비했다. 시상식 무대인 만큼 더욱 풍부하고, 웅장한 사운드와 강렬한 안무를 보여 주는 것이 모두의 목표였다. 포커스와의 커버곡 대결만큼이나 중요한 무대였으니까.
하지만 걱정되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처음 리믹스를 녹음했을 때는 보컬이 A+였기 때문에 하이라이트 고음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었다. 원래 반 키 낮은 것을 보컬 스텟으로 얻은 자신감으로 반 키 높이기까지 한 상태였다. 지금 상태로는 혼자서 그 파트를 맡을 자신이 없었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솔직하게 멤버들의 도움을 구하기로 했다. 혼자서는 도저히 답이 안 나왔다.
“우리 무대 구성을 좀 바꿔야 할 거 같아.”
조금은 갑작스러운 제안에 모두의 눈이 나를 향했다. 12개의 눈과 매니저 형의 눈까지 더해지니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어디를?”
심호흡 한번 하고, 수업 시간에 발표하는 초등학생처럼 한 손을 번쩍 들었다.
“나 혼자 부르는 하이라이트 부분을 화음 넣어서 같이 불러 주실 분 구합니다.”
일부러 더 장난치듯 말을 꺼냈다. 민망한 듯 손도 살짝 들어 올렸다. 혼자서 수십, 수백 번 고민했던 무게가 담기지 않기를 바랐다.
“하, 드디어 나한테도 기회가 오는 건가.”
바로 입을 연 건 선우 형이었다. 절대 형의 톤으로는 불가능한 파트였지만, 그걸 알기에 저렇게 장난을 치는 거겠지. 사람이 어쩜 저렇게 눈치가 빠르지. 다시 한번 형의 회귀를 의심해 보게 되었다.
“안 그래도 너 연말 무대 다 끝나면 목 나갈까 봐 걱정했음.”
“맞아. 뭘 그렇게 고음을 때려 박았다니?”
“윤빈 형이 시켰지! 저 형 승빈이 고음을 너무 좋아한다니까?”
“헐, 모함이야!”
“응. 맞아!”
“윤빈 형 모함이라는 말은 어디서 안 거예요?”
“재봉이 네가 맨날 도현이랑 싸울 때 쓰잖아-”
날이 갈수록 한국어가 일취월장하는 형이었다. 강도현이 분위기를 이어 윤빈몰이를 시작했다. 형이 전체적인 무대 프로듀싱을 맡은 건 맞지만, 고음은 온전히 내 욕심이었는데 말이지. 물론 옆에서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더 욕심낸 건 맞았다. 저 형 알고 보면 사람 길들이는 거에 소질 있는 거 아냐?
“내가 승빈이 고음을 좋아하는 건 맞지만!”
“거봐, 이거 다 윤빈이 형 때문이네~”
“나는 승빈이 저음을 더 사랑하거든!”
“와… 뜻밖의 사랑 고백 잘 들었구요.”
“내가 다 감동적이네.”
한 마디도 지지 않고 핑퐁이 오가는 대화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언제 이렇게 허물없는 사이가 됐나.
“그래서 누가 화음 넣을 거야?”
잠깐 정신 놓고 있으면 끝도 없이 달려가는 대화가 역시 크리드다웠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건지, 한마디만 듣고도 가볍게 던지려는 의도를 모두 알아챘다. 이젠 진짜 가족이 된 건가.
“그러게. 우리 한 번씩 불러 볼까?”
“각자 부르고 승빈이가 간택해 주는 걸로!”
“아니, 이 형들 사서 투마월 찍고 있네.”
“왜, 재봉이 쫄리는구나?”
“합시다. 어디 한번 해 보자구요!”
질 줄 모르는 박재봉의 승부욕도 여전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 경쟁을 즐기고 있다는 거?
“나부터 해 볼래. 고음 하면 강도현이지~”
“와, 진짜 태어나서 처음 들어 보는 소리네요.”
“그럼 다음은 나!”
“오, 유현이 형 적극적인데? 저 파트 탐났구나!”
부담이 될 법한데도 다들 나서서 자기가 해 보겠다고 손을 들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연습을 시작하더니, 이제는 알아서 순서까지 정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동안 고민했던 시간이 부질없이 느껴졌다. 혼자 삥삥 돌아가려고만 했는데, 정면 돌파하는 순간 나를 도와줄 사람이 이렇게나 많았다.
가장 먼저 선우 형이 멤버들 앞에 섰다.
“풉”
“야, 이게 뭐라고 긴장이 되냐?”
“형이 긴장하는 거 진짜 보기 드문데-”
선우형은 패기 있게 고음 파트를 불렀지만, 결과는 기권이었다. 새빨개진 얼굴을 쓸어 넘기며 선우 형이 윤빈 형의 등 뒤로 거의 쓰러지듯 업혔다.
“나는 기권-”
“선우 형은 뭐, 이렇게 될 줄 알았고. 그다음은 그럼 지운이 형!”
“이렇게 될 줄 알았다고? 너무해!”
“도현이 형이 두 표, 지운이 형이 한 표, 유현이 형이 세 표.”
“유현이 형으로 확정!”
결국, 화음은 유현이 형과 하게 되었다. 서브보컬 포지션이지만 다른 그룹이었다면 충분히 메인보컬을 하고도 남을 실력이었다. 모난 곳 없이 부드러운 음색은 내 음색과도 잘 어울렸다. 덕분에 하이라이트 고음에 대한 두려움이 안심으로 변했다.
“둘이 목소리 합 좋은데?”
“이렇게 둘이서만 화음은 처음이지 않아?”
“나중에 둘 듀엣곡 만들어 줄게.”
“와, 윤빈 형 대박!”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면서 재잘거리는 모습을 보니 정말 쓸데없는 고민을 했구나-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바보였네, 문승빈.’
여전히 요지부동인 상태창을 보며 이제는 불안하지 않았다. 상태창을 올려다보며 옅게 비웃었다. 그래, 상태창 따위. 어디 내가 네 뜻대로만 움직일 줄 아냐.
이거 없을 때도 연기, 노래, 춤 다 잘만 했다. 탈탈 털어먹으면 털어먹었지, 휘둘리지는 않을 테다. 오류나 뜨는 시스템 새끼, 어디 한번 해보자고.
* * *
가수에게 있어 연말의 꽃말은 각종 시상식이다. 그리고 그 시상식의 꽃은 바로 ‘신인상’이었다. 대상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대상보다도 의미 있는 상이었다.
“대상은 몇 번이고 받을 수 있지만, 신인상은 인생에 한 번뿐이잖아?”
“그니까, 우린 무조건 애들 신인상을 사수해야 한다는 거지.”
올해 강력한 신인상 후보는 단연 크리드와 포커스였다. 사실 크리드가 데뷔할 때 올해 신인상은 당연히 크리드가 따 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깨고 포커스가 데뷔를 앞당기면서 대결 구도가 만들어졌다. 사실 VM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대결 구도였지만, 엄청난 언플과 물량 공세로 대중의 뇌리에 포커스의 이름을 박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니까.
“하, 투표권을 얻으려면 만두를 먹으라고?”
“진짜 이런 거 사면 호구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열 팩 샀잖아.”
“응, 내가 그 호구라고.”
시상식 투표권은 다양한 방법으로 구할 수 있는데, 하루 한 번씩 생기는 투표권과 협찬사의 제품을 사면 얻을 수 있다. 또, 광고를 보면 생기는 별을 일정 개수 모으면 투표권이 생긴다. 그리고 아이디를 무한 생성해서 투표하는 방법도 있다. 물론, 돈이 추가적으로 들어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래도 아직 우리가 60%고 포커스가 35%지?”
“응, 근데 투표 기간 일주일 정도 남아서 아직 안심 못 하지.”
공식 계정에도 크리드가 후보에 오른 부분의 투표 방법과 독려 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드림 어워즈 투표 방법
(링크) (링크)
크리드가 드림 어워즈 신인상, 퍼포먼스(남자 그룹) 후보에 올랐습니다! 클로버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CR:ID #드림어워즈 @CR:ID_dfficial
다양한 이벤트와 투표 독려로 클로버와 포커싱 모두 바쁜 일주일을 보냈다. 그리고 투표 마지막 날, 한자리에 모인 문스트럭과 K, 레빗드림, 정연은 떨리는 마음으로 투표 현황을 확인했다.
“뭐야, 얘네 언제 이렇게 올라온 거임?”
“50%대 47%? 이게 가능해?”
“보니까 루커스 해외 팬들이 엄청 참여했나 봐.”
“아니, 지들 본진도 아닌데 왜?”
“VM이 루커스 동생 그룹이라고 엄청 언플하고 걔네 관련해서 콘텐츠 내보내고 했잖아. 동생 그룹이라고 엄청 아껴. 막 오재성이 루커스 김성훈 sibling이다 하면서.”
“둘이 닮아서?”
“응, 그런 거지.”
팬 서포터즈 계정에도 좁아진 투표 격차를 알리는 글이 올라왔다.
[★긴급★
(드림 어워즈 신인상 투표 현황)
현재 2위 그룹과 3%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클로버 여러분의 막판 스퍼트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말고 꼭 크리드에게 신인상의 기쁨을 선물해 줄 수 있게 투표에 임해 주세요!]
-하;;우리도 외국인 언니들 도움 좀 얻어봐?
-ㅠㅠㅠ해외투표도 가능한데 멍청한 공계가 국내투표 방법만 올려서 해외팬들은 투표법 모르는 사람도 많음
-하...집에 만두만 백만개인데
-광고만 몇백개 본거같음
위기감을 느낀 몇몇 클로버는 각종 언어로 번역을 하여 외국 팬들에게도 투표 방법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상당히 큰 파장을 일으켰다.
“야, 포커스 국내 팬이랑 해외 클로버랑 전쟁이라는데?”
“갑자기?”
“와, 개살벌해. 해외 클로버들 한국어로 욕하는 거 봐.”
[클이드에 해외팬이 있긴 하냐?ㅋㅋㅋ]
-네 XX에 우산을 펼치겠다.
-XX를 XX해서 XX할 것이야
-네 멍청함에 부모님이 우실거야
-네 XX로 젓갈을 만들거야
“…와우.”
번역기를 사용한 한국어라서 그런지 글에서 어딘가 더 맑은 광인의 느낌이 났다. 인용과 멘션은 거의 전 세계 욕 박람회와 같았다. 이렇게 전투력이 강할 줄은 몰랐다.
[한국 클로버, 우리 해외 클로버들이 도움을 줄 수 있나요? 방법을 알려주세요.]
-I love you international clover♡
└we love you too!
-여기 영문번역 있어요!
└고마워!
해외 팬들과는 항상 문화 차이 등으로 피 튀기게 싸우기만 했던 문스트럭에게는 굉장히 신기한 광경이었다. 역시 최애 가수를 좋아하는 마음 하나는 국적도 초월하는 것일까.
해외 팬들의 참전과 함께 좁혀지던 격차도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해외 포커스 팬들과 루커스 팬들과의 충돌이 발생했다. 온갖 외국어로 싸움이 벌어지는데, 번역 버튼을 누르면 무시무시한 말들이 오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야, 진짜 세상에 다양한 욕들이 있다-”
“나 지금 평생 볼 외국 욕 다 본 거 같아.”
결국 투표 결과는 51%대 48%로 크리드의 승리로 끝났다. 물론 전문가 점수와 다른 평가 요인이 들어가지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중 투표에서 이겼다는 건 신인상은 거의 확정이라는 의미다. 12시가 지나고 1위가 확정되자 국내, 해외 클로버들은 축제 분위기였다.
“하…….”
“불태웠다…….”
“VM에서 돈 풀었냐?”
“개쫄렸어, 진짜.”
분명 치맥을 하며 여유롭게 놀려고 온 펜션이었건만, 내내 투표로 마음 졸이던 네 명은 그제야 핸드폰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근데 드림어워즈 가는 사람 있냐?”
“나.”
“정연아, X나 부럽다… 그날 연차 못 뺌”
“나도 그래서 대리 맡김.”
“학생하고 싶어.”
“시간이 많을 땐 돈이 없고, 돈이 생기니까 시간이 없고-”
문스트럭의 말에 모두 격하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돈보다 중요한 게 시간이라는 걸 깨달은 어른들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