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192화 (192/346)

192화

땀을 비 오듯 흘리는 내 모습이 거울에 적나라하게 비쳤다. 잠자는 시간도 줄이고 연습을 해서 그런지 다른 날보다 다크서클이 더 짙어져 보였다. 하지만 그런 내 몰골보다도 더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바로 미션 마감을 2시간 남기고 채워질 생각이 없는 노래 포인트.

[!타임 어택: 노래 포인트 5칸 달성!]

남은 시간) 2시간

[제목: 플라워 매직]

-노래:  ■■■■□

-안무:  ■■■■□

‘X발, 왜 안 올라가는 거야?’

답답한 마음에 나답지 않게 마음이 조급해졌다. 미션을 실패하면 발생할 랜덤 스텟 차감도 걱정이었다. 또, 비교적 간단하다고 생각한 미션 하나도 성공하지 못한다면 앞으로의 미션은 어떻게 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막막함도 있었다.

노래를 이렇게도 불러 보고, 저렇게도 연습해 봤다. 분명 내가 귀로 듣는 소리는 더 좋아진 것만 같은데, 왜 노래창은 움직일 생각을 안 하는 거지? 내가 이것보다도 더 이 노래를 잘 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내 실력이 늘어날수록 상태창의 기준치도 높아지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나조차도 이게 내 최선인 거 같은데, 얘는 대체 나를 얼마나 높게 평가하는 건지. 이걸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상태창에게 농락당하고만 있는 기분이었다.

‘집중하자. 이럴 때일수록 객관적으로 봐야 해.’

눈치 없는 시간만 점점 흘러가고 있었다.

[!타임 어택: 노래 포인트 5칸 달성!]

남은 시간) 5, 4, 3, 2, 1

>> TIME OVER!

[제목: 플라워 매직]

-노래:  ■■■■□

-안무:  ■■■■■

‘말도 안 돼……!’

오만했다. 지금껏 그랬듯 무조건 미션을 성공할 거라고 자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상태창이 내가 맞닥뜨린 현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더 열받는 건 안무는 다섯 칸을 다 채웠다는 것이다. 안무는 올랐는데 노래는 대체 왜 안 오르는 건데?

[!타임 어택: 노래 포인트 5칸 달성!]

제한 시간) 72시간

▶성공 시: 랜덤 스텟 +1

▶실패 시: 랜덤 스텟 -1

>> MISSON FAIL!

회귀하고 처음으로 마주하는 미션 실패였다. 그래, 언젠가 한 번쯤은 마주해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런 식은 곤란하지. 반짝거리던 상태창이 다음 화면으로 넘어갔다.

[!FAIL: 적용할 스텟을 고르시오!]

-외모

-끼

-보컬

-댄스

-프로듀싱

‘랜덤 스텟이라더니 선택하게 해 주네?’

X가지 없는 상태창이 웬일로 자비를 베풀고 있었다. 얼른 고르기라도 하라는 듯 상태창이 번쩍이기 시작했지만, 처음 등장한 미션 실패창에 정신이 멍해졌다. 그 어떤 스텟도 지금 감소시키기에는 아까웠다. 게다가 한 번 떨어진 스텟이 다시 똑같이 오른다는 보장도 없잖아.

평소라면 망설임 없이 프로듀싱을 골랐겠지. 하지만 지금은 여러 개의 연말 무대를 동시에 준비하고 있었다. 프로듀싱 스텟이 무대 구성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뭐 하나 쉽게 선택할 수 없었다.

고민 끝에 그래도 프로듀싱이나 끼를 선택할까 했지만, 조금 진정되니 다른 방향으로 생각이 튀었다. 시상식 무대까지 고작 이틀 남았다. 이틀만 잘 버텨 보면 되지 않을까. 미션을 성공해서 보상을 받을 때에도 바로 수령하지 않았던 적이 있지 않았나. 내가 선택하기 전까지는 이 상태가 유지될 것도 같았다. 근데 미션 보상처럼 선택하지 않을 경우, 선택을 재촉하는 쪽으로 흘러가려나?

‘일단 버텨 보자.’

그렇게 번쩍거리는 상태창을 애써 무시했다. 다행히도 실패에 대한 대가가 바로 실행되지는 않는 듯했다. 이틀, 딱 이틀이면 된다.

“승빈아, 너 어디 봐?”

“벽에 뭐 붙었냐?”

“아, 아니. 잠깐 멍때리느라-”

“피곤하긴 한가 보네. 문승빈답지 않게 요즘 멍을 자주 때리고 말이야.”

“그러게요. 형도 보약 좀 챙겨 먹어요.”

실패창이 뜬 이후로는 시도 때도 없이 상태창을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바뀌었나? 떨어진 거 없나?

‘휴, 아직은 그대로네.’

당연히 연습에 제대로 집중이 될 리가 없었다, 스텟창은 그대로인데 실력이 퇴보하는 느낌이었으니. 게다가 눈에 보이지라도 않으면 이렇게 신경 쓰이지 않을 텐데, 약 올리듯이 시도 때도 없이 발광하는 상태창 때문에 집중이 어려웠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연습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반복하다가, 순간 핑 도는 기분과 함께 스텝이 꼬였다. 휘청이다가 다시 중심을 잡은 나에게 멤버들이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승빈아, 너 좀 쉬어야 하는 거 아냐?”

“그래, 지운이 형 말 들어라.”

“쉴 시간이 어딨어. 얼른 하고 숙소 가서 쉴게.”

“오늘 너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지운이 형이 걱정스럽게 물었지만, 더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나중에 따로 맞추려면 더 힘들어.”

“그건 그렇지만-”

멤버들의 걱정 어린 시선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언제 어떤 스텟이 떨어질지 모르니까 더 연습해야만 했다. 떨어지더라도 최대한 노력으로 커버할 수 있도록.

“먼저 들어가-”

“너 오늘 여기서 자고 가게?”

“아마도 그럴 거 같다.”

“지금이 서바이벌도 아니고…….”

“걱정 말고 얼른 들어가서 주무세요- 특히 재봉이는 키 커야지.”

“참나, 저 이제 형이랑 얼마 차이 안 나거든요?”

멤버들이 먼저 숙소로 돌아간 새벽, 여전히 거울 앞을 떠나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연습실에 내 운동화 끌리는 소리와 목소리만 가득했다. 이미 트레이닝복은 땀으로 젖어 있었고, 얼굴에도 비 오듯 땀이 흐르고 있었다. 동작 하나, 음정 하나 놓치지 않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투마월 파이널 때 이후로 가장 많이 연습하는 거 같네.’

완곡을 마치고 연습실 바닥에 그대로 쓰러졌다. 뭐라도 하나 더 스텟이 오르면 그걸 선택할 생각이었다. 그럼 제로섬이잖아. 하지만, 내 바람과 달리 여전히 상태창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게 너무 억울해서 입술을 꽉 깨물고 눈을 감았다. 더 보고 있다가는 멘탈이 남아나지 않을 거 같기 때문이다. 저 화면 하나에 이렇게 휘둘리는 것도 자존심 상했다.

이까짓 상태창이 뭐라고. 고작 등장한 지 1년도 안 된 존재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는 게 새삼 우스웠다. 상태창 없이도 평생을 살아왔고, 회귀 전에도 알아서 잘해 냈다. 비록 아이돌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연예인으로 봤을 때는 결국 성공한 삶이었다.

상태창에 나타나는 저런 수치처럼 내 상태를 완벽히 알지는 못하더라도, 더 나아지고 올라가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도전했던 나였다. 그런데 지금 나는 저 상태창 포인트 하나로 괴로워하고 있다는 게 스스로 우스웠다.

* * *

쏜살같이 이틀이 지났고, 마침내 대결의 날이 밝았다. 상태창은 요지부동이었지만, 덕분에 연습 하나는 제대로 했다. 지나친 연습량에 온몸이 쑤셨지만, 반대로 마음은 좀 가벼워졌다. 이 정도 연습량이면 무대에서도 분명 빛을 발할 거니까.

올해 연말 무대의 스타트를 끊는 오늘 방송은 청과 백 두 팀으로 나뉘어 대결로 이뤄지고, 둘씩 짝을 지어 각 무대마다 승패가 결정됐다. 그리고 모든 팀의 점수를 합해 최종 우승팀이 정해지는 형태였다. 십 년 넘게 같은 포맷으로 이뤄지는 터라, 연말 무대 중에서도 마니아층이 상당한 방송이었다.

‘팀은 누가 이기건 상관없지.’

중요한 건 오직 우리와 포커스의 대결 무대였다. 올해 가장 히트 친 서바이벌 출신과 몇 년 만에 나온 대형 기획사 출신의 신인 아이돌의 대결. 듣기만 해도 흥미로운 주제 아닌가. 방송사에서도 이미 한참 전부터 우리 둘의 대결을 메인으로 방송을 홍보했으니 말 다 했지, 뭐.

양쪽에서 칼 갈고 무대 세트까지 알아서 준비해서 방송국에서도 신났다는 얘기를 얼핏 들었다. 제대로 각 잡고 무대를 선보이라며 우리 둘의 대결을 2부 오프닝으로 배치해 주기까지 했다. 모든 무대가 생방송으로 진행되므로 무대 세트를 따로 준비할 시간이 충분치 않기에, 1부 마친 후 이어지는 광고 시간을 활용하게 해 준 거다.

‘특별 대우도 이런 특별 대우가 없네.’

그만큼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세기의 대결이었다.

무대 의상으로 갈아입고 가면까지 챙기니 모든 준비가 끝났다. 포커스의 무대가 바로 다음이었기에 우리도 슬슬 이동하기 위해 대기실을 나섰다. 모니터 화면에서는 포커스가 이제 막 등장하고 있었다. 예상 그대로였다.

“와, 쟤네 지금 오토바이 끌고 온 거야?”

“VM 진짜 이 갈았네.”

“승빈아, 너는 쟤네가 저럴 거 어떻게 안 거야?”

“그러게. 나도 몰랐는데-”

“이쯤 되면 강도현 이제 그냥 VM 아닌 거 아님?”

“그럴지도?”

엄청난 스케일의 무대 세트였지만, 그걸 보고도 여유로운 멤버들이었다. 농담 따먹기나 하고 있으니 말 다 했지, 뭐. 그럴 만도 한 게 우리 무대 스케일이 저것보다 대단하다는 건 확실했거든. 리허설 때 잠깐 봤지만, 오해나가 돈 한번 제대로 물고 왔다. 불안해하는 건 오직 나 하나뿐이었다.

‘이대로만 가자, 무슨 X랄을 해도 좋으니까 제발 오늘 무대만 끝나고…….’

그때,

[!SYSTEM ERROR!]

며칠간 조용하던 상태창이 혼자 번쩍이기 시작하더니 에러창이 떴다. 정말 오랜만에 등장한 에러창이었다.

[!SYSTEM ERROR!]

시스템 에러 발생! 랜덤 스텟 차감이 발동됩니다.

‘왜 하필이면 지금……!’

앞에서 스태프가 입장 싸인을 주고 있었다. 다른 멤버들도 마지막으로 인이어를 점검했다. 나는 인이어가 빠져나온 줄도 모르고 빠르게 채워지는 에러 게이지를 확인했다. 시스템 에러창이 뜬 지 3분도 지나지 않은 거 같은데 벌써 절반 가까이 채워졌다.

[!SYSTEM ERROR! …50%]

“야, 너 인이어!”

다행히 강도현이 빠르게 인이어 착용을 도와줬다. 하마터면 대형 사고가 날 뻔했다.

“고, 고마워.”

“너답지 않게 긴장을 하고 그래?”

“괜찮아, 이제.”

“크리드분들, 이제 무대로 이동하시겠습니다!”

“네!”

마지못해 무대를 향해 걸어가고 있음에도 내 시선은 상태창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게다가 이 X랄맞은 상태창이 새로운 기능을 자랑이라도 하듯,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다른 멤버들에겐 안 들리겠지만 내 귀에는 찢어지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리고 있었다.

“…아!”

“뭐야, 승빈아. 발 조심해.”

“긴장했냐?”

무슨 정신으로 걸어가는지도 모를 와중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걱정하는 주위의 말도 귀 옆에서 웅웅 맴돌기만 했다. 무대를 향하는 복도에서도 오로지 정신력 하나로 버텼다.

[!SYSTEM ERROR! …80%]

마침내 그 모든 퍼센트가 채워졌을 때, 퀘스트창이 부서지면서 상태창이 업데이트되었다.

[!SYSTEM UPDATE!]

[이름: 문승빈]

외모: A

끼: A

보컬: A

댄스: B-

프로듀싱: B

상태창의 변화를 보자마자 머릿속에는 하나의 생각뿐이었다.

‘아 X됐다.’

젠장, 보컬 포인트가 한 단계 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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