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191화 (191/346)

191화

[!타임 어택: 노래 포인트 5칸 달성!]

제한 시간) 72시간

▶성공 시: 랜덤 스텟 +1

▶실패 시: 랜덤 스텟 -1

생각보다는 무난한 미션이었다. 타임 어택이라 제한 시간이 짧은 게 걸리긴 했지만, 끊임없는 연습의 연속인 만큼 쉽게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노래 제목도 따로 나오지 않았으니, 어떤 노래건 포인트 5칸을 다 채우면 된다는 얘기 같았다.

‘우선 가장 먼저 하게 될 ‘플라워 매직’이 목표다.’

벌써부터 어떤 스텟을 올릴지 기대가 됐다. 그러다 불현듯 의문이 생겼다.

‘근데 랜덤 스텟? 갑자기 웬 랜덤?’

어쩐지, 스텟창에 특별한 변화 없이 지금까지 온 게 신기한 일이었다. X랄맞은 상태창이 순순히 넘어갈 리가 없지. 랜덤이라면 성공하거나 실패했을 시에 내가 원하는 스텟을 올리는 게 아니라 랜덤으로 올라간다는 뜻인가? 아니면 보상 및 데미지를 얻을지 선택을 안 하면 랜덤으로 스텟에 변화가 생긴다는 뜻인가?

‘아 다르고, 어 다르다더니… 어쨌든 미션 성공하면 그만인 거잖아? 일단 연습에 집중하자.’

하여간 불친절하기로는 원탑인 상태창이었다. 이건 어떻게 좀 못 바꾸나.

“승빈아, 뭘 그렇게 혼자 서 있어?”

“어? 어.”

상태창 생각에 몰두한 나머지 멤버들 모두 동그랗게 앉아 있는데 나 혼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런데 어이없는 것은 굳이 멍때리고 서 있는 나를 중심으로 동그랗게 앉았다는 것이다.

“하여간, 다들 나 놀리는 맛으로 살지?”

“당연하지!”

“승빈이가 센터네, 센터야-”

왁자지껄해지기 직전 유현이 형이 핑거 스냅 소리로 모두를 집중시켰다.

“자자, 집중. 우리 커버 무대 콘셉은 어떻게 잡을까?”

“원곡 콘셉이 어땠지?”

“완전 꽃의 요정 그 자체.”

“맞아. 무대에서 꽃잎 흩날리고 그랬던 거 같은데.”

“한번 무대부터 보자.”

‘플라워 매직’은 투 마이 월드 시즌 1으로 데뷔한 걸그룹 ‘블라썸’의 데뷔 앨범에 수록된 곡이었다. 타이틀곡은 아니었지만, 데뷔곡과 함께 서브곡으로 몇 번 무대를 꾸몄기에 참고할 만한 무대 영상이 있었다. 영상을 틀어 보니 ‘꽃이 만개한다’는 그룹명과 걸맞게 꽃의 요정 느낌의 전형적인 청순 콘셉이었다.

“원콘셉 그대로 가도 좋을 거 같은데?”

“맞아요. 꽃잎 흩날리는 게 예쁠 거 같아요.”

“꽃의 요정 콘셉에 뭘 더할 수가 있나?”

걸그룹 노래였지만, 막상 무대를 보니 콘셉 자체가 어렵지는 않았기에 그대로 가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너무 뻔해.’

우리가 아무리 기를 쓰고 청순하게 나와 봤자 원곡자를 따라잡기는 힘들 거였다. 게다가 포커스가 루커스의 ‘BONUS’를 한다면 더더욱 피해야 할 콘셉이었다. ‘BONUS’는 루커스 곡 중 가장 파워풀한 노래 중 하나였다. 노래 자체는 대중적인 멜로디였지만, 작정하고 카레이싱 콘셉으로 나왔던 곡이라 안무가 강렬했다.

“아예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다른 방향?”

“이 노래가 청순하지만, 몽환적인 분위기잖아. 몽환 쪽을 좀 더 살려 보는 게 어떤가 해서.”

영상으로만 평가되는 거라면 청순한 콘셉도 문제가 없었지만, 연말 무대는 실시간으로 방송되는 게 핵심이었다. 바로 눈앞에서 두 개의 무대를 연이어 관람한다면, 당연히 더 임팩트 있는 쪽을 선택할 확률이 높았다. 똑같이 파워풀한 느낌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도 무게감 있는 무대를 보여 줘야 관객들을 만족시킬 수 있겠지.

“어떤 느낌으로?”

“편곡을 약간 웅장한 느낌으로 오케스트라 악기를 쓰면 어떨까?”

“웅장한 느낌?”

“어, 포커스가 ‘BONUS’를 고른 거면, 작정하고 화려한 무대를 보여 주려는 거 같아서.”

“그건 그래.”

‘VM이라면 오토바이도 끌고 올라올 인간들인걸.’

연말 무대는 원래 방송사에서 준비한 세트에서 진행하는 게 기본이지만, VM이 곧이곧대로 따를 리가 없었다.

“근데 우리가 연말 무대에 그렇게 쓸 수 있을까?”

“그러게. 준비해야 할 무대가 많은데-”

다들 처음 겪어 보는 연말 무대였기에, 자신이 없는 듯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 회사에 벌어다 준 것만 해도 얼만데.

“무대는 걱정하지 마, 믿을 만한 사람 있잖아.”

‘자본에는 자본이다.’

핸드폰을 꺼내 오해나의 연락처를 찾았다. 돈은 거짓말 안 하거든.

* * *

“오랜만이네요, 승빈 씨.”

“그러게요. 디렉터님, 요즘 바쁘시다고 들었습니다.”

“어휴, 승빈 씨만 하겠어요? 다들 요즘 고마워하잖아요.”

“…네?”

“승빈 씨 덕분에 직원들 이번에 제대로 보너스 받았거든요.”

역시 돈은 거짓말을 안 하네. 어쩐지 요즘 다들 날 보는 시선에 애정이 가득하다 했다. 특히나 매니저 형들이 그렇게 따듯할 수가 없었다.

“다행이네요. 오늘 얘기가 좀 수월하겠어요.”

“왜요?”

“돈 얘기 하려고 왔거든요.”

“……?”

벌어진 입이 닫힐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제껏 본 적 없는 표정이었다. 오해나도 저렇게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완벽해 보이던 디렉터님이 조금 사람답게 느껴졌다.

“와, 대박. 나 지금 너무 재밌다.”

“그 정도예요?”

“그럼요, 얼른 말해 봐요. 뭔데요? 못 하는 거 빼고 다 해 줄게요.”

“뭔지도 안 들었는데 그러셔도 돼요?”

“그래서 못 하는 거는 뺏잖아요.”

언제 벙쪘냐는 듯 흥미로운 표정으로 돌변하더니 항상 들고 다니던 태블릿까지 꺼내 들었다. 됐다, 저거 꺼냈다는 건 오해나가 흥미로워한다는 얘기였다. 될 법한 아이디어면 항상 저기에 기록했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저걸 다른 의미로 ‘오해나의 데스노트’라고 불렀다. 저기 안 적히면 죽은 아이디어였거든.

“저희 포커스랑 대결하는 거 말인데요…….”

“네, 그거 무대를 어떻게 하고 싶은데요?”

“오, 제가 무대 얘기할 줄 아셨어요?”

“척하면 척이죠. 돈 얘기라면서요. 얼마나 크게 하고 싶은데요?”

그 짧은 새에 예상하다니, 역시 두뇌 회전이 남다른 사람이었다. 아예 그림까지 그리려는 듯 태블릿 펜을 꺼내 들었다.

“일단 콘셉은 무도회로 잡으면 어떨까 해요.”

“대박, 가면 무조건 쓰는 거죠?”

“네! 그리고 의상은 깔끔하게 슈트를 입으면 어떨까 해요.”

“좋아요. 세트가 화려하면 의상이 심플해야 오히려 돋보일 거예요.”

“그리고 뭔가 마술 같은 연출도 넣고 싶은데…….”

이것저것 떠오르는 대로 말하다 보니 정리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오해나 디렉터는 찰떡같은 아이디어만 골라서 얘기해 주었다.

“장미꽃 쓰면 되겠네요.”

왜 그런 걸 고민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담담한 목소리였다.

“네?”

“장미꽃 나타나는 마술 있잖아요. 간단하고, 노래도 플라워 매직이니까 꽃 쓰는 게 딱이네.”

“와…….”

“원곡 무대 보니까 꽃잎 흩날리던데, 그 사이로 등장해서 딱 꽃 꺼내면 될 거 같은데요?”

이미 원곡 무대까지 다 찾아 봤는지, 그걸 활용하는 방안까지 순식간에 생각해 내는 게 대단했다. 역시 반드시 붙잡아 둬야 할 인재다. 성실한 데다가 아이디어까지 무궁무진했다. 여기에 실행력까지- 투샤인 때처럼 오해나를 놓쳤다면 얼마나 막막했을지 새삼 느껴졌다.

“디렉터님 진짜 아이디어가 바로바로 나오시네요.”

“그것도 재밌어야 나와요.”

“그래도요!”

“무대 진짜 재밌겠는데요? 화려한 금빛 무대에 검정 슈트 입고 딱 서 있으면-”

“슈트도 턱시도 느낌이면 좋을 거 같아요.”

“빙고!”

‘이분 지금 제대로 신나셨는데?’

듣기만 해도 신난다는 듯 오 디렉터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넣어서 편곡하려고 하거든요.”

“뒤에 실제 오케스트라도 불러 줄까요?”

“그게 가능해요?”

“그럼요. 크리드 무대인데 그 정도를 못 하겠어요?”

“그럼 오케스트라보다 무용수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사운드는 윤빈 형이 풍부하게 넣어 줄 거라서-”

“무용수요?”

“네, 오르골에서 무용수분들이 나오면서 왈츠를 추는 모습을 넣고 싶어요.”

“헐, 여러분들도 오르골에서 나오는 게 어때요?”

“저희도요?”

역시 재능은 기본이고, 열정까지 있는 사람을 이길 방법은 없다. 내가 하나를 말하면 열 수를 내다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막힘없는 대화에 나도 더 신이 나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다행히 내 아이디어들이 오해나 디렉터에게 터무니없어 보이는 것들은 아니었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인트로에서는 오르골에서 춤추다가 무도회장으로 나오는 거죠.”

“마치 인형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요?”

“네, 12시 종이 울리면 여러분만의 무도회장이 열리는 거죠.”

역시 오해나 디렉터는 옳은 선택이었다. 머릿속에서 혼자 구상하던 얘기를 입 밖으로 내뱉으면 오 디렉터가 그걸 현실로 구현해 줬다. 덕분에 나도 얘기하면서 아이디어가 추가로 떠오르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몽환적인 느낌은 가져 가면서 웅장함을 더하면 좋겠어요.”

“좋아요. 그럼 가사도 ‘정원’을 ‘무도회장’으로만 바꾸면 될 거 같아요.”

“네. ‘무대’도 ‘왈츠’로 바꾸려구요.”

“편곡만 잘 뽑히면 이거 진짜 난리 나겠는걸요?”

“어때요, 포커스 이길 것 같아요?”

“승빈 씨, 그걸 말이라고 해요? 지금 그쪽은 문제도 아니에요.”

별걸 다 걱정한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생각보다 얘기는 간단하게 끝났다. 내가 던진 아이디어에 신난다는 듯 더 살을 덧붙이는 오 디렉터를 보니 무대 세트 스케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 * *

무대 세트와 콘셉까지 정해지자 노래에 대한 이해도도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덕분에 노래 포인트를 올리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아직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세 칸을 채웠다.

‘이 정도 속도라면 내일쯤 미션 성공할 수 있겠는데?’

노래 포인트를 올리는 방법은 몇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익숙해졌다. 이제는 도가 텄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역시 방심은 금물이었다. 세 칸이 채워지고 나서부터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 포인트창이 요지부동이었다.

‘뭐지? 새로운 방법을 써야 하나?’

의문은 들었지만 불안하지는 않았다. 아직 40시간가량 여유가 남았으니까. 그사이에 여러 방법을 동원하기로 했다.

‘누군가를 도와주면서 해 볼까?’

“재봉아, 뭐 도와줘야 할 거 있어?”

“저 이 파트요!”

박재봉을 도와주면서 내 노하우를 알려 주기도 했지만, 반대로 박재봉의 창법과 노래 부르는 방법의 장점을 배울 수 있었다. 재봉이는 ‘맛깔나게’ 부르는 법을 아는 멤버인데, 아직 어려서 무게감이 약간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노래를 더 맛있게 부르는 법을, 박재봉은 노래를 더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다.

노력 끝에 드디어 노래 포인트가 네 칸을 채우게 됐다. 미션 시간은 10시간. 조금 아슬아슬하지만 한 칸만 채우면 된다는 생각에 안심했다. 그래서 다른 예정된 연말 무대들도 연습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생각이 얼마나 오만한 것인지, 10시간 뒤의 나는 뼈저리게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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