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189화 (189/346)

189화

스케줄 하러 가는 차 안에서 선우 형이 한참 키득거리다가 나에게 물었다.

“너도 이거 봤어?”

형이 보여 준 영상은 역시나 [뮤직쇼 스페셜 무대 댓글 모음] 영상이었다.

“네, 안 그래도 누나한테도 연락 왔었어요.”

“진짜 사람들 말하는 거 너무 재밌다니까? 이런 드립들은 어떻게 생각하는 거지?”

“그게 뭔데요?”

“승빈이 스페셜 무대 한 거에 달린 댓글들 모아 둔 영상인데 나 지금 너무 웃겨서 눈물 고인 거 보여?”

선우 형은 과장되게 눈물을 닦으며 영상을 보여 줬다. 차 안은 금세 영상을 보던 멤버들의 웃음소리로 꽉 찼다. 새삼 SNS의 파급력을 또 한 번 체감한 사건이었다. 뮤직쇼 스페셜 무대 댓글 모음 영상이 나오고 나서 오죽하면 최 피디님에게도 연락이 왔다.

[다음 예능때 민영씨 캐스팅 할까봐-]

[저랑 쭉 같이 한다고 하셨잖아요ㅠㅠ]

[아 그건 당연한 거고~]

예상은 했지만, 영상으로 직접 보니 나조차도 웃음이 나왔다. 서로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어서 그런가, 한 파트도 시선을 뺏기지 않겠다는 묘한 경쟁심이 화면 밖으로도 느껴졌다.

그래도 가장 놀랐던 것은, ‘반의 반’의 원곡자인 듀오가 언급한 것이다. 가요계 대선배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온다는 게 비현실적이었다. ‘반의 반’이 음원 역주행을 하면서 위튜브 예능인 [원곡자등판]에 듀오가 직접 출연했다. 연예계 은퇴 후 이렇다 할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던 그들의 출연이어서 더 큰 화제가 되었다.

[Q : ‘반의 반’이 20년 만에 역주행을 하게 됐다. 주변에서도 인기를 체감하는지?]

[듀오 : 가요계 은퇴한 지 10년이 되어 가는데 연락들이 와서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다. ‘반의 반’이 꽤 인기가 있는 곡이긴 했지만 요즘 젊은이들이 알기에는 옛날 노래 아닌가? 그런데 영상 하나로 이렇게 큰 반응을 얻게 될 줄 몰랐다. 위튜브에 1-20대들이 반의 반 커버 영상을 올리는 걸 보면 감회가 새롭고 감동이다. 요즘 젊은 연예인들은 잘 모르는데 크리드의 문승빈 군, 배우 김민영 양의 이름은 꼭 기억하기로 했다.]

역시 콘텐츠가 중요한 시대다. 이게 이런 식으로 대중들에게 퍼지고 인기를 얻을 거라고 상상도 못 했다. 김민영도 비슷한 생각일 것이다.

“맞다, 생각해 보니까 다음 주 뮤직쇼에서 성재 형 보겠네?”

“성재 형? 이성재 형?”

“응, 성재 형 이번에 데뷔하잖아.”

“그래?”

“와, 너 진짜 바쁘긴 했구나? 성재 형 이번에 드디어 데뷔한대. 그룹 이름이 뭐였더라…….”

옆자리에 있던 윤빈 형이 박수를 짝 치며 답했다.

“투 샤인!”

‘투 샤인’을 듣자마자 등줄기에 소름이 오스스 돋았다. 나는 급히 검색창에 투 샤인을 검색했다. 정말로 성재 형이 포함된 그룹 프로필과 데뷔 확정 기사가 떴다.

[투마월 이성재, 신인 그룹 투 샤인으로 데뷔 확정]

[연습생 기간만 7년… “포기하지 않아서 이룰 수 있었어요.”]

-투마이월드 출신 이성재가 ‘투 샤인’으로 데뷔를 확정했다. 이성재의 소속사는 “투 샤인은 이성재 연습생을 필두로 이루어진 6인조 남성 아이돌 그룹이다. ‘to shine’와 ‘too shine’의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 이름으로 가요계에서 가장 빛나는 음악을 하겠다는 포부를 담은 그룹이다.”고 전했다. 특히 이성재 연습생은 7년이라는 연습생 기간 끝에 데뷔의 꿈을 이루게 되어 많은 이들의 기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이름의 주인을 찾아갔구나…….’

나는 곧장 성재 형에게 연락했다.

[형, 데뷔 소식 들었어요. 축하해요!]

[승빈아 고맙다! 이번 주에 뮤직쇼 출연하는데 그때 만나겠네~]

[투샤인이라는 이름이랑 너무 잘 어울려요.]

[아직 실감 안난다ㅠㅠ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문승빈 선배님!]

[아 뭐예욬ㅋㅋㅋㅋ뮤직쇼에서 인사하러 갈게요.]

[아이고 선배님이 먼저 인사해서 되겠어? 내가 갈게.]

[ㅋㅋㅋㅋ누가 먼저 가는지 두고 보자고요. 그럼 뮤직쇼 날 봐요!]

* * *

뮤직쇼 촬영장에 도착하니 김민영이 먼저 도착해서 대본을 확인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 안녕?”

‘왜 갑자기 반말이지?’

“맞다, 말 놓아도 되지? 내가 4살이나 누나잖아.”

“아… 네.”

‘나보다 생일도 느려서 엄밀히 말하면 내가 연장자인데……!’

“댓글 모음 영상 너도 봤어? 진짜 웃기더라.”

“저도 한참 웃었어요.”

“영상이 웃겼어? 난 그걸 보고 웃는 사람들이 웃기던데. 별게 다 웃긴가 봐. 신기해.”

“네?”

“뭐, 부럽다고. 그런 시답잖은 거에 웃을 수 있다는 게.”

‘뭐야, 이 세상 다 산 사람 같은 발언은?’

“누나는 생각보다 의외인 사람인 거 같아요. 이런 모습 막 보여 줘도 돼요?”

“당연히 안 되겠지? 근데 넌 좀…….”

“…좀?”

김민영은 소품인 안경을 치켜올리며 답했다.

“넌 좀 나랑 같은 부류 같아서 굳이 숨길 필요가 없어 보이네?”

“네?”

정말 한 치 앞도 예상이 안 가는 인간이었다. 나만 동질감을 느끼는 건가 했는데, 김민영도 똑같이 느꼈다는 점이 일단 놀라웠다.

“녹음할 때 알아봤어. 사실 마음만 먹으면 연기로 다 속일 수 있는데 굳이 안 그러고 있던 거잖아.”

“에이, 그건 그냥 연기 좀 한 거죠.”

“아니? 단순한 연기랑은 다른 느낌이었어.”

“…….”

“아무튼, 앞으로 잘 부탁해.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더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거 같네.”

김민영이 떠난 대기실에 혼자 멍하니 앉아 있었다. 회귀하고 VM과 서바이벌, 데뷔하면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런 캐릭터는 또 처음이었다. 그때, 대기실 문이 열리고 호들갑 가득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승빈~아!”

“성재 형?”

“야, 너무 오랜만이다! 진짜 이게 얼마 만이냐? 우리 투마월 끝난 지 이제 4개월 됐나?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티비에서 크리드 나올 때마다 내 동생 있는 그룹이라고 엄청 자랑했잖아~ 이번에 레디 활동은 어땠어, 맞다. 밥은 먹었어?”

“와… 형은 진짜 하나도 안 변했네요?”

정말 투마월 때랑 하나도 변한 게 없었다. 속사포처럼 우다다 쏟아지는 질문과 말에 정신이 혼미해졌지만, 오랜만의 만남에 반가웠다. 그리고 성재 형의 뒤에 5명의 멤버들이 쪼르르 따라 들어왔다. 딱 봐도 앳된 얼굴들이 많았다.

“맞다, 여긴 우리 멤버들! 한 명씩 소개해 줄게. 여긴 우리 팀 막내 에이스!”

“아, 안녕하세요, 투 샤인의 귀염… 둥이 막내 에이스입니다!”

잔뜩 긴장했는지 목소리도 떨리고, 꽉 쥔 손도 떨리고 있었다.

‘나 설마 어려워 보이는 선배인가……?’

“얘, 영철아, 구호 외쳐야지!”

“맞다…….”

“성재 형, 영철이 본명 말하면 어떡해요!”

“아, 쏘리.”

순간 우리 팀 막내가 떠올라서 웃음이 터질 뻔했다. 어딜 가나 막내들은 멋있는 걸 좋아하나?

“와, 설마 형이 리더예요?”

“그럼~ 애들이 얼마나 의지하는 좋은 리더인데! 그치?”

“형만 아직 인사 안 했어요!”

“하늘 같은 리더님은 마지막에 하는 거야~”

여전히 구김살 없고, 어린 동생들 잘 챙기는 형이었다. 멤버들이랑 나이 차이가 꽤 나는 것 같아서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흠, 흠. 자, 형이 하는 거 잘 보고! 다음부터 선배님들 만나면 이렇게 인사하는 거다?”

“알았어요~”

“샤인 포에버! 안녕하세요, 투 샤인 성재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성재 형의 입에서 ‘투 샤인’이 나오는데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탈락이 확정됐을 때 가장 아쉬웠던 연습생 중 하나였으니까. 같이 데뷔했어도 좋았겠지만, 이렇게 좋은 리더로 데뷔할 수 있게 되어서 온 마음 다해 축하할 수 있었다.

“이거 우리 앨범!”

“우와, 고마워요! 저도 앨범 가져왔는데 여기-”

“감사합니다!”

“헐, 승빈 선배님 싸인이다…….”

“맞다. 얘들아, 먼저 대기실 가 있을래? 형이 승빈 선배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대기실 잘 찾아갈 수 있지?”

“그럼요~”

투 샤인 멤버들이 대기실을 떠나고, 성재 형이 말을 꺼냈다. 좀 전과는 달리 진지한 목소리였다.

“그… 사실 고맙다는 말 꼭 얼굴 보고 하고 싶었어.”

“저요? 왜요?”

“그야 네 덕분에 데뷔할 수 있었으니까.”

“형이 데뷔한 게 왜 제 덕분…….”

“청춘예찬 무대, 네가 그렇게 팀원 구성하고 무대 꾸미지 않았다면 난 파이널까지도 못 갔을 거야. 그리고 네가 크리드라는 이름을 내서 내가 지금 투 샤인이라는 이름으로 데뷔할 수 있었고.”

그 말을 들으니 목이 따가울 정도로 눈물이 차올랐지만, 꾹 참았다. 필사적으로 참느라 깨문 입술에 피가 날 지경이었다. 며칠 동안 품고 있던 고민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 주는 말이었다.

내가 이곳에 회귀하면서 ‘청춘예찬’이라는 팀을 새로 만들어 형이 파이널에 오를 수 있었고, 크리드라는 그룹명을 제안했기 때문에 투 샤인은 형에게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 모든 나비 효과가 소름 끼치게 놀라우면서도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음에 안심했다.

사실 저 두 가지 일은 내가 의도해서 한 일이 아니었다. 크리드라는 이름을 제안한 것도, 단순히 내가 만든 이름으로 데뷔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제안한 이름이었다. 누군가를 도우려고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결국 누군가에게 선한 나비 효과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받은 셈이다. 지운이 형의 부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나비 효과였다.

“뭐, 뭐야 왜 네가 울어?”

“아니에요…….”

“지금 나 데뷔해서 너무 좋아서 우는 거야? 헐, 진짜 감동. 야, 나도 눈물 난다…….”

졸지에 성재 형이 나를 달래는 상황이 됐다. 이 형도 감정 동기화 하나는 엄청난데, 어느새 내 어깨가 축축해질 정도였다.

“형, 메이크업…….”

“흐엉어… 악! 이거 번지면 혼나는데?”

“이미 혼나겠는데요…….”

“망했다……. 흐어엉”

이 형을 어떻게 달래야 하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사이 김민영이 들어왔다.

“누구야?”

“아, 여기는 투샤인의…….”

“샤인, 흡, 포에브어…….”

“악, 깜짝이야……!”

김민영의 잔소리와 함께 결국 성재 형은 연행되듯 대기실에서 쫓겨났다. 투 샤인 대기실로 성재 형을 보내고 나오는데 문 너머로 스타일리스트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메이크업 다시 해야 하잖아-!”

‘정말 웃수저라는 게 있긴 한가 봐…….’

* * *

“이번 주의 핫데뷔! 투 샤인과 함께하는 대기실 토크!”

“안녕하세요, 투 샤인! 데뷔하신 소감이 궁금해요.”

“우선, 너무 오랫동안 꿈꿔 온 일이 이렇게 현실이 돼서 믿기지 않고 너무너무 기쁩니다! 앞으로 더 성장해서 최고의 아이돌이 되고 싶습니다!”

“와~ 그리고 성재 씨, 승빈 씨와 함께 투마월을 함께했는데요! 혹시 승빈 씨가 해 준 조언이 있을까요?”

“오늘 대기실에서 만났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기죽지 말라고 했습니다!”

“정말 좋은 조언이네요!”

“네! 투마월 때부터 많이 도와주고, 정말 배울 점이 많은 동생이자 선배라고 생각해요. 이번 생에 만나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은 거창한 소감에 투샤인 멤버를 비롯한 현장의 모두가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한 번 더 울컥한 감정을 추스르고 있었다. 애써 눈물을 참으려는 혼자만의 싸움이었지만, 그것마저도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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