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188화 (188/346)

188화

MC로 발탁되고 가장 먼저 한 것은 놀랍게도 진행 연습이 아니라 스페셜 무대 준비였다. 대본도 받기 전에 무대 연습부터 시키다니. 사실 음악 방송 MC가 새로 뽑히면 다들 가장 기대하고, 화제성도 높은 콘텐츠라 제작진들이 이해되긴 했다.

스페셜 무대는 대중에게 처음 선보이는 신고식이었다. 그래서 어떤 곡을 선곡하고, 어떤 무대를 꾸미느냐가 굉장히 중요했다. 상대 MC와는 해피콘서트 이후 첫 대면이기 때문에 미묘한 긴장감이 현장을 감싸고 있었다.

“승빈 군도 왔네요. 여긴 민영 씨.”

“안녕하세요! 크리드 문승빈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배우 김민영입니다. 저도 잘 부탁드려요.”

해피콘서트 때 MC를 함께 하긴 했지만, 둘 다 형식적인 인사만 하고 끝났다. 차기 MC가 될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아무래도 이성 연예인이기 때문에 서로 조심했거든.

“두 분 해피콘서트 때 봤으니 구면이죠?”

“네, 이렇게 뮤직쇼 MC로 다시 만나서 반가워요.”

“저도 반갑습니다. 같이하게 돼서 영광입니다.”

“제가 네 살이나 많으니까 서로 그냥 말 편하게 해요.”

김민영. 올해 스물둘로 데뷔작인 로맨스 영화 ’우리가 헤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신예 배우였다. 청순하고 깨끗한 이미지로 ‘국민 첫사랑’ 타이틀을 얻으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아이돌이라고 해도 위화감이 없을 비주얼도 인기 요인이지만, 여느 아이돌 못지않게 콘텐츠에 진심인 소속사 덕분에 빠른 속도로 탄탄한 팬덤을 모은 배우였다. 해피콘서트 현장에서도 웬만한 아이돌 뺨치는 규모의 팬덤이 모인 걸 보고 나도 놀랐을 정도니까.

“두 분, 스페셜 무대 곡에 대해 생각해 봤나요?”

“총 두 곡을 하니까 민영 씨가 준비한 곡, 승빈 씨가 준비한 곡 하나씩 하면 될 거 같아요.”

“저는 크리드의 ‘READY’를 골랐어요.”

“네?”

김민영의 선곡은 예상을 한참 벗어났다. 청순한 이미지를 극대화할 곡을 선정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격한 안무가 있는 곡을 선정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왜 그렇게 놀라요? 제가 원래도 크리드 곡을 좋아했거든요.”

“감사합니다! 저희 곡을 선곡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그럼 승빈 씨는 어떤 곡을…….”

“저는 듀오의 ‘반의 반’을 골랐습니다.”

내 선곡에 스태프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선곡표를 두어 번 확인하는 작가도 있었다.

“반의 반? 승빈 씨가 이 노래를 어떻게 알아요?”

“듀엣 곡이 뭐가 있을까 찾아보다가 멜로디도 귀엽고, 원래 안무가 없는 곡이지만 가볍게 추가하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반의 반’은 90년대 인기 혼성 그룹 ‘듀오’의 곡으로, 서로의 반의 반이 되고 싶다는 조금은 낯간지러운 곡이다. 혼성 MC 무대에 딱 정석인 곡이라서 선정했다. 게다가 가사는 저래도 귀여운 멜로디의 노래라서, 같이 안무를 해도 맞닿을 부분이 전혀 없다는 점이 제일 중요한 이유였다.

“완전 정석 듀엣 곡이라서 딱이네! 근데 민영 씨 레디 안무는…….”

“아, 그건 걱정 마세요. 미리 연습도 조금 하고 왔어요.”

김민영의 말에 나를 포함한 현장의 모든 사람들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떠 있는 듯했다.

‘보통이 아닌 거 같은데?’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아니, 내 예상보다 더했다.

“와…….”

“…민영 씨, 뭐예요?”

도저히 춤을 춰 본 적 없다고 할 수 없는 실력이었다. 많이 준비 못 했다고 했지만, 1절을 모두 준비한 상태였다.

“완곡은 시간이 부족해서…….”

아까부터 녹화 중이던 비하인드 캠을 향해 수줍다는 듯이 웃는 모습까지 완벽했다. 역시 보통은 아니었다.

“승빈 군도 같이 춰 봐요.”

‘와, 정신 제대로 차려야겠는데?’

다시 노래가 나오고, 졸지에 댄스 배틀이 되어 버렸다. 처음에는 레디 안무를 준비해 왔다고 해서, 후렴이나 킬링 파트 안무 정도만 가볍게 준비한 줄 알았는데 말이다.

잠깐 주어진 쉬는 시간을 틈타 넌지시 물었다.

“전에도 춤춰 보신 적 있죠?”

“네, 아이돌 연습생 3년 했거든요.”

“아이돌 연습생이었다고요?”

“뭐, 다 옛날 일이니까요.”

“두 분 이제 같이 MC도 하는데 번호 교환이라도…….”

뜻밖의 과거의 놀라기도 잠시 이어진 스태프의 말에 김민영과 내가 동시에 답했다.

“아니오.”

“괜찮습니다.”

놀라운 반응 속도였다. 하지만 내가 진짜 놀란 건 거울에 비친 둘의 표정이 똑같았다는 점이었다.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면서도 단호하게 거절하는 모습. 뭔가… 동족을 만난 듯한 기분이랄까? 덕분에 스태프분도 요즘 애들 철저하다며 자연스럽게 자리로 돌아갔다.

그 이후로도 몇 번 동질감을 느끼는 순간이 있었다. 아이돌 연습생을 3년이나 하고 배우로 데뷔한 것을 보면 분명 여러 차례 데뷔조가 무산되었을 것이다. 아이돌 준비에 회의감을 느끼다가 배우로 전향했겠지. 게다가 우연의 일치겠지만 딱 회귀 전 내 나이였던 스물두 살인 것도 동질감을 느끼게 했다.

“그럼, 반의 반 녹음 날 다시 뵙겠습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가는 모습에 매니저 형이 귓속말했다.

“긴장 좀 해야겠다, 승빈아.”

‘이미 그러고 있는걸요.’

묘한 경쟁심은 ‘반의 반’ 녹음 날에도 여전했다. 같이 녹음 부스에 들어가서 녹음했지만, 숨겨진 선이라도 있는 듯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각자 파트를 녹음할 때만 나왔다 들어갔다를 반복했다.

[너의 반의 반이 되고 싶어

우리 서로의 반이 되어

허전한 마음 없이 사랑하자]

[나 너의 반의 반이 될게

허전한 마음 가득 채워 줄

그런 멋진 사람이 되어 볼래]

꽤 난이도가 있는 곡인데, 김민영은 노래 실력도 출중했다. 고음 파트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아니, 이럴 거면 왜 아이돌로 데뷔 안 한 거야? 인재를 놓쳤네…….’

[우리 사랑 이대로-]

“얘, 얘들아, 잠깐만?”

작곡가가 갑자기 녹음을 중단했다.

“둘, 둘 다 잘 부르는데…….”

“네.”

“조금만 서로 다정하게 불러 보는 건 어떨까? 너네 지금 너무 배틀하는 거 같아…….”

노래 부르면서도 똑같이 느꼈는데, 작곡가의 귀에는 얼마나 더 적나라하게 느껴졌겠는가?

“그, 그럼 다시 불러 보자?”

“네.”

“네!”

“하… 한 번에 끝내는 게 낫겠죠?”

“네, 그러죠.”

마주치는 눈빛에 스파크가 튀었다.

‘오랜만에 몰입 좀 해 볼까.’

“근데 승빈 씨는 아직 너~무 어려서 사랑 노래 어렵지 않아요?”

하마터면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지금 저것도 도발이라고 하는 건가? 그래 봤자 자기도 겨우 스물둘이면서.

“제가 간접 경험은 많이 해서요.”

“하긴, 아이돌이니까 연애는 쫌… 어렵겠다.”

“뭐, 국민 첫사랑도 연애하긴 쉽지 않았을 텐데요?”

‘따지고 보면 동갑인데… 뭔가 웃기네?’

하지만 김민영도 역시 배우는 배우였다. 방금 전과는 아예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이제야 TV에서 나오던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도 로맨스 영화를 찍었던 기억을 되살려서 가사에 몰입했다. 그러자 김민영의 눈동자가 미묘하게 흔들렸다. 아마도 이렇게 확 바뀔 줄 몰랐겠지. 게다가 난 지금 열여덟 살의 몸이니까.

‘저도 그쪽 노래 부를 때 많이 놀랐거든요?’

“애들아, 너무 좋다! 아까는 서로 어색해서 그랬던 거지?”

녹음이 끝나자마자 둘 다 컷 소리를 들은 배우처럼 순식간에 몰입에서 빠져나왔다.

“수고하셨습니다.”

“넵.”

이유 모를 경쟁심에 불탔던 우리 둘은 첫 촬영 날에도 다를 바 없었다.

* * *

“스페셜 무대 하려나 봐!”

“노래 뭐 할까?”

“레디를 하네?”

“승빈이 헤메코 X나 이뻐.”

“근데 김민영 뭐야? 춤을 왜 이렇게 잘 춰?”

“둘, 둘이 댄스 배틀 하는 거 같은데?”

보통 MC들의 스페셜 무대라고 하면 아기자기한 노래에 기껏해야 율동이 있는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둘은 ‘READY’ 1절을 풀로 하고 있다. 아무리 신세계보다는 안무가 덜 빡세졌다고 한들 ‘READY’ 역시 쉴 틈 없이 안무가 이어지는 곡이다. 그런데 배우로 알려진 김민영이 승빈에게 뒤처지지 않는 에너지로 무대를 하고 있으니 시청자들이 놀랄 만했다.

-뭐임?

-독기레전드다…

-이거 춤대결인가요?

-둘이 거의 뭐 한팀 아니냐곸ㅋㅋㅋㅋ

-민영씨 크리드에 들어와주시겠어요....?

하지만 정말 가관은 다음 곡인 ‘반의 반’이었다. 처음 선곡으로 ‘반의 반’이 나왔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사랑 노래니까 서로 연기도 좀 하고, 말랑한 분위기의 무대가 나오겠군.’이었다. 하지만…….

[우리 사랑 이대로-]

쉴 틈 없이 나오는 고음 파트에서 누구 하나 지지 않기 위해 고음을 뽑아내는데, 문스트럭과 정연은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이, 이게 사랑 노래 맞나?”

“내가 아는 반의 반이 아닌 거 같은데…….”

-쟤네 눈한번 안마주치는거 봨ㅋㅋㅋㅋㅋㅋㅋ

-반의 반의 반의 반도 안 친한거 같은데?

-사회적거리두기냐곸ㅋㅋㅋㅋㅋ

-이건 그냥 노래배틀 아님?

└놀랍도록 그 누구도 노림수가 없음…

-진짜 제대로 비즈니스 커플이네ㅋㅋㅋㅋ

둘은 일정한 간격을 절대 넘지 않았다. 마치 같은 극의 자석처럼 붙으려 하면 고개를 돌리거나, 한 발자국 옆으로 가는 것이었다. 심지어 서로 손을 맞잡는 안무에서도 영혼이라곤 볼 수 없는, 완벽한 비즈니스 관계적인 면모를 보여 줬다.

-진짜 신기하다.... 분명 둘다 웃고있는데 왜 영혼이 없어보이지??

└ㄹㅇ ㅋㅋㅋㅋㅋ 나도 보면서 뭔가 이상하다 싶었음ㅋㅋㅋㅋㅋ

-둘다 진짜 온몸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하는줄ㅋㅋㅋㅋㅋㅋ

-정말 여러의미로 둘다 프로다 프로야.....

-아니 나 프로망붕러라 기대했는데..... 망한 주식이었네......

└222 시작도 전에 망한 주식 처음 봄.......

“저희의 꿀 떨어지는 스페셜 무대 어떠셨나요?”

“너무 로맨틱한 무대라 준비하는 내내 참 간지러웠죠?”

무대가 끝나고 천연덕스럽게 자신들의 무대를 ‘꿀 떨어지는’, ‘로맨틱한’ 무대라고 수식하는 멘트에 정연이 물었다.

“지금 ‘꿀 떨어지는’이라고 했어?”

“내가 아는 표현이랑 다른 건가?”

“승빈이 국어 공부 다시 해야겠네.”

-능청스러운거봨ㅋㅋㅋㅋㅋㅋ

-꿀이 아니라 간 떨어지는 무대 아니고?

-여기 꿀맛한번 살벌하네;;

-꿀 두 번 떨어지면 지구종말올듯

그리고 둘의 스페셜 무대 영상은 삽시간에 인터넷으로 퍼졌고,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특히 무대 댓글 모음 영상은 하루 만에 조회 수 100만을 기록하면서 화제가 되었다.

[뮤직쇼 스페셜 무대 댓글 모음]

-여기 댓글이 그렇게 웃기다고 소문나서 놀러왔습니다.

└어서오세요 댓글맛집 잘 찾아오셨습니다.

-나랑 대리님도 저 둘보단 안 어색할 듯

-이거 합성 아니죠?

-아닠ㅋㅋㅋㅋㅋ김민영씨 청순이미지 아니었냐곸ㅋㅋㅋ

└파워청순;;

-둘이 노래로 맞다이뜨는거같은데요

-사랑노래인데 왜 둘이 맞짱을 뜨는건데요ㅠㅠㅋㅋㅋㅋ큐ㅠㅠㅠ

-두 분 아무쪼록 원만한 합의하시길 바랍니다.

-이름 사이에 ♡가 아니라 vs붙여야 할 거 같은데요;;

-절대 열애설 날 일 없는 사이

└지금까지 이보다 더한 비즈니스 커플은 없었다.

-연말에 베스트커플상 받으면 ㅈㄴ웃길듯ㅋㅋㅋㅋㅋ

열애설과 같은 구설수가 절대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점에서 좋은 일이지만, 어쩐지 뮤직쇼의 미래가 걱정되는 문스트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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