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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185화 (185/346)

185화

지운이 형이 올라탄 리프트가 순간 덜컹거렸고, 안 그래도 빗물로 가득했던 바닥에 형이 미끄러졌다. 무대 아래로 떨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떨어지는 형과 눈이 마주쳤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무대 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함성과 노랫소리 때문에 상황을 제대로 파악한 건 양옆에 있던 나와 유현이 형뿐이었다.

“형……?”

다른 멤버들은 눈치채지 못하고 벌써 본 무대로 나가고 있었고, 나는 잠시 패닉 상태가 되었다. 리프트 아래를 다시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두려웠다.

관객들의 함성과 응원 소리가 가득했다. 레디의 인트로가 들려왔고, 옅게 깔린 AR 소리가 들려왔다.

‘말도 안 돼…….’

사고를 막기 위해 분명히 할 수 있는 조치를 다 취했는데- 물론 선우 형이 다치지 않은 건 계획대로 이뤄졌지만- 이런 변수가 발생할 줄 몰랐다. 지금껏 회귀 전의 일을 바꿨다고 대상이 바뀌어서 위험 상황이 벌어진 적은 없었다. 그저 해결을 하거나, 못 하거나의 문제였으니까.

“야, 승빈아!”

“…….”

“문승빈! 정신 차려!”

유현이 형이 양어깨를 쥐고 흔들며 내 이름을 불렀고,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그…….”

탁 소리와 함께 유현이 형이 마이크를 빼냈다. 급박한 상황이지만 혹시나 무대 위에서의 대화가 들리는 대형 사고가 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정신 차리고, 우선 무대 하고 와. 지운이는 내가 확인할게. 알겠지?”

“…네.”

“걱정하지 마. 높이가 낮은 리프트였으니까 크게 안 다쳤을 거야.”

유현이 형이 나를 무대 쪽으로 밀었고, 나는 마이크를 다시 채우고 본무대로 향했다. 무대를 하던 멤버들도 내가 돌아온 것에 안심하면서도 유현이 형과 지운이 형이 사라진 것에 이제야 상황을 파악하는 듯했다. 동선을 이동하면서 무슨 일이냐며- 눈짓을 했고, 나는 애써 담담하게 걱정하지 말라는 제스처를 보였다.

놀란 마음이 아직 진정되지 않아 눈물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최대한 감정을 눌렀다. 평소처럼 표정 연기를 하고, 무대를 이어 가는데 응원봉을 든 팬들의 얼굴을 보니 갑자기 울컥했다. 지운이 형의 슬로건을 들고 있었는데, 걱정으로 가득한 눈이었다.

‘최대한 참아야 하는데…….’

지운이 형과 유현이 형의 파트에서 소리가 빌까 봐 걱정했지만, 팬들의 응원법으로 대신 채워졌다. 2절이 끝나갈 무렵 유현이 형이 무대 위로 돌아왔다. 팬들의 함성 소리가 더욱 커졌고, 멤버들도 혼란스러움이 많이 줄어든 모습이었다.

[알다가도 모르겠을

네 마음속으로

숨차도록 달려 나가

네 곁으로 I’m ready]

드디어 3시간 같았던 3분의 무대가 끝났다. 멤버들은 멘트를 위해 자리를 잡으면서 넌지시 물었다.

“지운이 형은?”

“지운이는?”

여전히 진정되지 않은 나를 대신해서 유현이 형이 상황을 정리했다.

“인사드리겠습니다, 본 투 샤인! 안녕하세요, 크리드입니다!”

“와아아!”

“저희가 두 번째 무대를 보여 드리기 앞서서, 저희 멤버 지운이가 부상으로 아쉽지만, 오늘 무대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점 양해 부탁드리고, 남은 무대도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네!”

회귀하고 이렇게 평정심을 잃었던 적이 없었는데, 지나간 무대를 떠올리니 아쉬움투성이었다. 의기소침해 있는 내 어깨를 유현 형이 가볍게 두드렸다. 그러곤 작게 귓속말했다.

“지운이 큰 부상은 아니고, 발목을 살짝 삐었대. 너무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다행이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미 다리 부상이 있던 형이었기 때문에 발목 부상도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자, 그럼 저희가 준비한 두 번째 곡! 어떤 곡이죠, 선우 형?”

“사실 저희가 클로버의 투표를 받았잖아요? 그런데 딱 50퍼센트씩 나와서 지금 클로버들도 엄~청 궁금할 거예요. 맞죠?”

“네-!”

“저희도 엄청 흥미진진하게 결과를 기다렸어요!”

“맞아요. 저희끼리 막 GO! 팀이랑 NewDream 팀으로 나뉘어서 응원하고 그랬잖아요~”

다행히 재봉이와 선우 형의 만담으로 분위기가 다시 밝아지고 있었다.

“아-주 근소한 차이로 오늘 무대 하게 될 곡은… GO!입니다!”

“와아아아!”

공연곡이 공개되자 앞쪽에 있던 클로버 봉을 든 여자 둘 사이에 희비가 교차하는 것이 보였다. 너무 격렬한 반응에 그제야 옅게 웃을 수 있었다.

* * *

“아싸 GO!다!”

“아니, NewDream 투표 안 한 X끼들 누구야?”

순간적으로 열받은 K가 우비 모자를 내리고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 옆에서 문스트럭은 더 신이 나서 K를 놀렸다.

“나다, 이 지지배야! 아, 너무 신나!”

문스트럭에게 주먹을 보이던 K가 금세 시무룩해졌다.

“근데 생각해 보면 난… 뭘 하건 상관이 없네. 지운이 다쳐서 무대도 못 보고…….”

“아, 진짜 미안. 이건 내가 싸패였다…….”

“미안하면 오늘 저녁은 네가… 야, 승빈이 여기 보고 웃은 거 같은데?”

“미친! 찍혔나?”

문스트럭은 급히 앞에 세워 둔 카메라를 확인했다. 그러곤 K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절규했다.

“X발… 촬영 버튼 안 눌렀나 봐. 분명 불 들어온 거 확인했는데…….”

“그러게 사람이 마음을 곱게 먹어야지.”

“네가 그러고도 친구냐!”

가만히 둘을 지켜보던 정연이 타이밍을 엿보다가 말을 꺼냈다.

“야, 걱정하지 마. 내가 폰으로 찍음.”

“헐, 앞으로 은인으로 모실게.”

“그럼 GO! 무대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번엔 촬영 잘되는지 확인 잘해라.”

“당연하지.”

“하, 미친, 그래서 마린룩 입고 나온 거였어? 어쩐지 레디인데 왜 마린룩인가 했네.”

“맞네. 애들은 처음부터 스포한 거였네-”

“X발, 지운이 마린룩을 못 보다니…….”

자신의 얼굴에 흐르는 게 비인지 마린룩 지운을 못 본다는 아쉬움인지 구분이 안 갈 지경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스태프가 무대 위로 올라오더니 의자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뭐야?”

“헐, 지운이 올라오나?”

관객석이 술렁였고, 한쪽 발목에 테이핑을 한 차지운이 스태프의 부축을 받으며 무대 위로 올라왔다. 대형을 정리하던 멤버들도 한걸음에 달려와 지운을 부축했다.

“승빈이 거의 울겠는데?”

“우리 승빈이 마음이 여려 가지고…….”

“넌 왜 우냐?”

“승빈이 마음이 너무 예쁘잖아…….”

“와…….”

[준비됐다면 GO!]

지운의 인트로 파트를 시작으로 GO! 무대가 시작했다. 비록 의자에 앉아 있지만 최선을 다해 파트를 소화하고, 중간중간 팬들에게 인사를 하자 K도 그제야 안심했다. 마린룩은 투마월 ‘눈부셔’ 이후로 정말 오랜만이었다. 춤을 출 때마다 옷깃의 리본이 팔랑이는데, 문스트럭은 처음 승빈을 봤던 날이 떠오르면서 심장이 두근거렸다. 흰색과 파랑 계열이어서 승빈의 퍼스널 컬러와도 찰떡인 의상이었다.

[지도에는 없는 섬

너와 나의 파라다이스

눈 딱 감고 그대로 GO!

숨 꾹 참고 네게로 GO!]

수록곡임에도 불구하고 타팬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다들 가사를 이미 외웠는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떼창을 하기 시작했다. 역시 ‘숨겨진 명곡’으로 알려진 노래다웠다.

멤버들이 중간중간 의자에 앉은 지운의 주변에서 안무를 하거나, 팬 서비스를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따뜻하다, 진짜…….”

“애들 사이 좋아서 너무 다행이야.”

[누구도 가 보지 못한 곳

수수께끼 네 마음속으로

망설임 없이 달려 GO!]

강도현의 보컬 파트에 이어지는 승빈의 파트는 공연장 관객들을 순식간에 집중시키기 충분했다. 보컬이 강조되는 파트이기 때문에 음정이 조금이라도 빗나가면 큰일 나는 파트였음에도 안정적으로 소화했다. 주변에서도 승빈의 보컬 실력에 감탄하는 말들이 들려왔다.

[우리를 막고 있는

장애물은 걱정 마

그대로 GO! 망설임 따윈

잊어버려 GO!]

“야, 이거 완전 시온스 침대급 안정감 아니냐?”

“아니, 그것보다도 승빈이 오늘 비주얼 무슨 일임?”

“내 말이! 365일 잘생긴 애지만 입덕하고 본 얼굴 중에 오늘이 제일 미친 거 같아.”

문스트럭은 쉬지 않고 연사를 찍었다. 게다가 비까지 적당히 내려 주니, 오늘은 뭘 찍어도 레전드가 나오겠구나 확신했다.

[걱정 마 우린 늘

하나니까 GO!]

지운의 주변에 멤버들이 모이면서 엔딩 샷이 잡혔다. 지운이를 포함한 모두가 밝게 웃는데 승빈만 코끝이 붉어져 있었다.

“아이고, 승빈이 울다가 웃다가 난리 났네…….”

“어……?”

“조용히 해라, 무슨 말 할지 예상 가니까.”

“아, 넵.”

짹짹이 반응을 살펴보니 승빈에 대한 걱정과 귀엽다는 반응이 갈리고 있었다.

[승빈이 완전 아기 강쥐였음ㅜㅜ

근데 지운이 다쳐서 많이 놀랐나봐 코 끝이 빨개ㅠㅠ]

-누가 울렸어ㅠㅠㅠㅠㅠ

-승빈이 진짜 여린가보네ㅠㅠ

└완전 물만두 아니냐고ㅠㅠ

└승빈이가 지운이 진짜 아끼나봄…

-아씨 근데 왜이렇게 시골강아지같고 귀엽냨ㅋ큐ㅠㅠㅠ

-승빈이 오늘 얼굴주사위도 미쳐서 우는게 더 예뻐보인다면?

└저건 눈물이 아니고 성수임ㅇㅇ

[차프인데 오늘 승빈이한테 감동했으뮤ㅠ

무대 끝나고 나서도 계속 신경써주고 부축하고 내려가더라ㅠ

처음에 승빈이 본무대 못나온것도 지운이 신경쓰느라 그랬던거같음]

-와이엠아이쿠라잉

-이둘 관계성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남

-청예즈때부터 알아봤다고

[애들 신인인데 오늘 무대대처도 너무 잘해서 기특해죽겠으뮤ㅠㅠㅠ]

-유현이도 당황안하고 애들 멘탈 잡아주고, 멘트도 잘하더라

-ㅇㅇ중간중간 승빈이 상태 체크하고 참리더임

-선우랑 재봉이도 곡소개하면서 분위기 띄우고

-윤빈이는…

└윤빈이는 오늘 끝내주게 귀여웠음

└아 그럼 ㅇㅈ

└제일 중요한거 해냈네

* * *

무대를 마치고 지운이 형의 양쪽에는 나와 유현이 형이 붙었다. 혼자 목발 짚고 걸을 수 있다는 형의 만류에도 양보할 수 없었다.

“발목 괜찮아요?”

“응, 리프트가 다행히 높지 않았어서 살짝 삐끗한 거야.”

“미안해요, 형. 너무 어두워서 미쳐 못 봤어요.”

“미안할 게 뭐 있어? 그리고 봤어도 무대는 해야지.”

“아무리 그래도…….”

“진짜 괜찮다니까?”

서바이벌 당시 지운이 형의 루머 사건 이후 가장 당황스러웠던 순간이었다. 형은 계속해서 괜찮다고 오히려 나를 안심시켰지만, 자책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제가 분명히, 리프트 잘, 봐 달라고 했는데.”

“야, 야 뭘 울려고 그래- 진짜 하나도 안 아파!”

안 아프다는 걸 증명하려는 듯 이리저리 발목을 움직여 보는 지운이 형이다.

“승빈이 형 저런 모습 파이널 이후로 처음 보는 거 같죠?”

고개를 끄덕이던 유현이 형이 지운이 형에게 말했다.

“그래도 무리하지 마. 너 이미 다리 부상당한 적 있잖아.”

“네.”

“승빈이도 잠깐 바람이라도 쐬고 와. 곧 다시 MC 보러 가야 하잖아. 지금 너무 감정적인 거 같다.”

“…네.”

지운이 형과 데뷔를 하고 미래와 같은 불행을 만들지 않기 위해 이곳에 왔는데, 미래를 바꾸기 위해 했던 선택이 도리어 형에게 해가 됐다. 처음이었다. 어쩌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어려움이 찾아올 수 있다는 위협감이 느껴졌다.

잡념을 떨쳐 내려고 MC 대본을 꺼내 읽었다. 하지만 마음이 잡히는 것도 잠시뿐, 곧 근본적인 고민에 휩싸였다.

만약 투마월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바꿔 왔던 모든 일들이 카르마가 되어 돌아온다면? 어쩌면 무엇 하나 바꾸지 못하고 같은 엔딩을 향해 흘러가는 시간이라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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