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검은색으로 처리된 실루엣이지만, 부산에서 ktx 타면서 봐도 문승빈이었다.
[ㅁㅊ 해피콘서트 실루엣 문승빈아님?]
이거 레디 앨범 컨셉포토잖아;;
-ㅁㅊㅋㅋㅋㅋㅋㅋㅋㅋ
-크리드가 해피콘서트 먹었다ㅋ
-내새끼 데뷔한지 얼마 됐다고 벌써 MC르류ㅠㅠㅠㅠ
-야 다음 음방엠씨 확정이다ㄷㄷ
└왜???
└그 공식 모름?ㅋㅋㅋㅋㅋ해피콘서트 엠씨는 차기 음방엠씨인거
└ㅇㅇ곧 개편시기이기도 하고
-축배를 들잨ㅋㅋㅋㅋㅋ
“야, 대박이다, 진짜.”]
“승빈이 너무 기특해서 포카라도 쓰다듬어야겠음.”
“난 승퍼피 챙겨 옴.”
“진짜 승빈이가 복덩이야…….”
“야, 오늘은 승프 둘이 사”
“물론이지, 먹고 싶은 거 싹 다 골라.”
“아싸, 승빈이가 술 사 주네.”
* * *
“드디어 공개됐구나?”
“첫 MC 축하해!”
“고마워. 잘해야 할 텐데.”
“잘할 거야-”
멤버들의 격려에 애써 괜찮은 척했지만 내심 걱정이 됐다. 신경 써야 할 일이 많다고 한 이유 중 하나다. 처음 해피콘서트 MC에 섭외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믿기지 않았다. 티벡스 활동에도, 심지어 인지도를 얻은 배우 생활 때도 이런 대형 콘서트 MC 경험은 없었다. 게다가 차기 MC가 될 가능성도 높다고 하니 책임감이 더 막중해졌다.
“대본 읽어 봤어?”
“응.”
“한번 해 봐-”
“맞아. 우리가 봐줄게!”
대본은 과장 조금 들어가서 천 번은 더 읽어 본 거 같은데, 멤버들 앞에서 대본 리딩을 하려니 뭔가 뻘쭘했다.
“음악과 하나가 되는 오늘! 해피콘서트에 오신 관객분들 안녕하세요, 크리드의 문승빈입니다!”
“오-”
“역시 나를 위협하는 래퍼라니까? 딕션이 아주 귀에 쏙쏙 박히네!”
“아이, 랩 얘기를 왜 꺼내요-”
“목소리 톤도 딱이고. 전생에 배우였던 거 아니야?”
“…그럴 리가?”
“뭐야, 왜 이렇게 당황해? 너, 나중에 혹시 연기하더라도 크리드가 먼저다!”
“당연하지!”
순간 아찔했다. 배우 같다는 말을 굉장히 오랜만에 들어서 그런지, 강도현의 말에 순간 사고가 정지된 기분이었다.
‘전생은 아니고… 후생에?’
잠들기 전에 투표 현황을 확인해 보니 역시 막상막하였다. GO!가 앞서다가도 뉴드림이 치고 올라오고 엎치락뒤치락하는 것을 보니 나 역시 어떤 곡을 준비하게 될지 궁금해졌다.
“승빈이도 투표 보고 있구나.”
방에 들어온 지운이 형이 침대 옆으로 걸어왔다.
“형, 아직 안 잤어요?”
“응, 잠이 잘 안 오네.”
“형은 투표 안 했죠?”
“당연하지. 우리 공식 계정으로 투표하면 큰일 나잖아.”
‘맞다. 이 형 계정 없지…….’
다들 암암리에 비계를 만들어서 팬들 반응을 모니터링하고는 했다. 자발적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만 만든 건데, 멤버들 대부분이 모니터링하는 모습을 봐서 형도 있겠거니 생각했다.
“사실 나는 두 곡 중 아무 곡이 뽑혀도 다 좋아.”
“저도요. 두 곡 모두 좋잖아요.”
“근데 그날 비 온다고 하네…….”
“헐. 무대 하다가 안 넘어지게 조심해야겠어요.”
“맞아. 신발 끈 더 꽉 묶고 올라가자.”
형이랑 해피콘서트에 오를 날이 오다니. 사실 티벡스 시절에도 해피콘서트에 출연할 뻔한 적이 있었다. 완곡이 아니라 1분 정도 잘린 버전으로 올라야 했지만. 그래도 해피콘서트 무대에 오른다는 것만으로도 티벡스에 희망이 남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콘서트 이틀 전, 투샤인과 포커스의 참여곡이 늘어나면서 출연이 공중분해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팬들의 티켓은 환불해 준다고 공지했지만 50명도 채 되지 않아서 그 또한 조롱거리가 됐었지. 그때 참 많이 울고 아쉬워했다. 연습을 더럽게 안 하던 멤버들도 해피콘서트에서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싫었는지 꽤 열심히 준비했기 때문도 있었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취소시키는 게 말이 되냐고 소속사도 처음으로 항의를 했다. 하지만 별수 있는가? 까라면 까야지.
“잘자! 내일 일찍부터 연습하려면 체력 관리 잘해야지.”
“형도요.”
회귀하고 닮은 듯 전혀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쩌면 이전 세계에서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한을 풀기 위한 기회인 걸까? 더 생각이 많아지기 전에 서둘러 잠을 청했다.
‘깊게 생각할수록 머리만 아픈걸.’
* * *
“결과 나왔어?”
“응, 바로…….”
일곱 명 모두 떨리는 마음으로 매니저 형의 입 모양에 집중했다.
“GO!로 정해졌어.”
“와!”
“아쉽긴 하지만 GO 무대 최초 공개기도 하고, 의미 있는 무대를 만들 수 있겠어요!”
GO!가 선정되고 순조롭게 풀리는구나 기뻐하던 찰나, 거울 위로 미션창이 떴다.
‘그럼 그렇지…….’
[3번의 도움] +1
[제한 시간 12시간]
[성공 시: 1포인트 적립]
그래도 다행히 무난한 미션이었다. 나왔던 미션이기도 하고, 도움이야 연습하면서 백번이고 더 줄 수 있는 거니까.
“그럼 오늘 GO! 안무부터 다시 맞춰 보자.”
“네!”
타이틀곡 ‘레디’가 힙합에 청량 한 스푼 첨가했다면, GO!는 정석 청량이었다. 그래서 안무 역시 통통 튀는 포인트들이 많았다. 마린룩 컨셉이어서 투마월 시절을 떠올리는 팬들도 많을 거 같다.
[지도에는 없는 섬
너와 나의 파라다이스
눈 딱 감고 그대로 GO!
숨 꾹 참고 네게로 GO!]
“여기 눈 딱 감고 그대로 GO! 할 때 아이솔레이션 좀 더 정확하게 들어가야겠어.”
“넵!”
안무 단장인 지운이 형의 설명에 따라서 서서히 디테일을 잡아 갔다.
“아이솔레이션… 어렵다.”
연습 중에도 혹시 도움이 필요한 멤버가 있을까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는데, 마침 박재봉의 목소리가 들렸다.
“재봉아, 봐 봐. 일단 네 몸이랑 목이랑 분리되었다고 생각해.”
“잔인…….”
“야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네-”
장난스럽게 웃는 박재봉의 얼굴을 바로 잡고 다시 아이솔레이션 설명을 해 주었다.
“그리고 몸은 고정하고 이렇게 목만 움직여 봐.”
“몸은 고정하고, 목만… 오! 좀 되는 거 같죠?”
“응, 훨씬 나아졌다.”
역시 습득력이 빠르다. 금세 감을 잡은 게 신났는지 몇 분째 아이솔레이션 부분만 하는 게 귀여웠다.
[3번의 도움] +1
[1/3]
[제한시간 9시간]
“승빈 스쿨 개학한 거야?”
“예-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부르세요~”
“이따가 숙소 가서도?”
“가능하세요~”
“뭐야, 진짜 학원 강사 같잖아-”
유명 인터넷 강의 강사의 성대모사를 하자 지운 형이 까르르 웃었다. 가볍게 웃는가 싶더니 배를 쥐고 데굴데굴하면서까지 웃기 시작했다.
‘또 이상한 웃음 포인트를 건드렸나 보네…….’
“승빈아, 그럼 난 여기 보컬 좀 봐줘.”
“그래.”
강도현이 부탁한 파트는 클라이맥스가 끝나고 무반주로 부르는 부분이었다. 계속해서 풍부한 사운드와 함께하다가 한순간에 소리가 사라지고 목소리로만 채워야 한다는 부담이 있는 파트였다.
[누구도 가 보지 못한 곳
수수께끼 네 마음속으로
망설임 없이 달려 GO!]
“여긴 특히 음정이랑 피치 잘 잡아야 해. 네 뒤로 이어지는 파트 하는 사람 안 헷갈리게.”
“응.”
“이건 내가 하는 연습 방법인데. 음, 하나하나 피아노로 눌러 보면서 연습하는 거야. 피아노 없어도 어플로 할 수 있으니까 한번 해 보자.”
다행히 연습실 한편에 피아노가 있었다. 한바탕 보컬 수업이 끝나고 다시 들어 보니 확실히 전보다 발전했다.
“완전 좋은 방법인데? 확실히 낫지, 처음보다?”
“응, 훨씬.”
[3번의 도움] +1
[2/3]
[제한 시간 7시간]
나머지 하나는 선우 형의 곡 소개 멘트를 도와주면서 완성할 수 있었다.
“MC는 내가 해야겠는데?”
“MC 자리 눈독 들이는 거야?”
“긴장해라, 승빈아-”
이제 얻은 포인트를 어디에 써야 할까 고민했지만, 스텟창이 뜨자마자 결정했다.
[이름: 문승빈]
외모: A-
끼: A
보컬: A+
댄스: B-
프로듀싱: B
‘…이번엔 외모 스텟을 높여야겠다.’
상대 MC도 최근 작품이 성공하면서 본격적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신예 배우인데 뛰어난 비주얼로 유명했다. 옆에 서더라도 비교당하거나, 욕먹지 않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이름: 문승빈]
외모: A- →A
끼: A
보컬: A+
댄스: B-
프로듀싱: B
미쳤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확실히 피부나 얼굴형이 정리된 것이 느껴졌다. 아마 헤메코 세팅을 마치면 더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까.
* * *
“크리드 스탠바이할게요!”
“네!”
콘서트 당일 현장 리허설을 하면서 장비들과 리프트를 꼼꼼하게 체크했다. 그리고 역시나 일부 리프트가 삐걱거리는 걸 발견했다.
“여기 덜컹거리는 거 같아요.”
“아, 리허설 끝나고 확인해 볼게요.”
스태프는 스쳐 지나가듯 답을 했고, 나는 선우 형에게 다가가 작게 말했다.
“리프트 실제로 올라가지는 말고, 수리 끝나는 거 확인하고 올라가요.”
선우 형도 불안해 보였던 리프트를 확인했기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승빈 군, MC 리허설 들어갈게요!”
“네!”
“잘하고 와-”
“네, 리프트 잘 확인하고요.”
“알았어- 크게 문제 있는 것도 아닌 거 같은데…….”
“안 돼요.”
평소보다 단호한 태도에 다른 멤버들은 의아한 눈빛이었지만, 사고를 막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외모 스텟 상승은 세팅하면 더 효과를 발휘할 거라고 했는데, 그 예상은 정확히 맞았다. 메이크업을 하던 담당 스태프가 호들갑을 떨며 물었다.
“세상에. 승빈아, 오늘 무슨 일이야? 너 뭐 따로 관리받아?”
“네? 아뇨?”
“오늘 화장 너무 잘 먹는데? 그리고 너 요즘 경락받지?”
확신에 찬 목소리에 잠시 주춤할 정도였다.
“그냥 회사에서 관리 차원으로 몇 번 한 거 말고는 없는데…….”
“레디 활동 때랑 비교해도 붓기가 하나도 없는데? 괜히 쑥스러워서 그러지 말고 공유 좀 해봐-”
“오늘 컨디션이 좋은 날인가 봐요. 다행이다.”
전문가의 눈으로 봐도 차이가 느껴진다는 게 내심 뿌듯했다. 스타일링을 마치고 바쁘게 무대 위로 올라갔다. 3만 명의 함성 소리가 들리는데, 심장이 쿵쿵 울렸다.
“음악과 하나가 되는 오늘! 해피콘서트에 오신 관객분들, 안녕하세요, 오늘 MC를 맡은 크리드의 문승빈입니다!”
“와아아아아!”
“미친, 문승빈 오늘 얼굴 무슨 일이야?”
내 멘트가 끝났음에도 함성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전광판을 보니, 내 얼굴이 부담스러울 만치 얼빡샷으로 잡혀 있었다. 그리고 속으로 나이스를 외쳤다.
‘앞으로 얼굴 스텟만 높여 볼까……?’
순조롭게 진행된 해피콘서트는 어느덧 1부 마무리를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아침의 예보대로 작은 빗방울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공연장에 VCR이 틀어졌고, 잠깐의 휴식 시간 후 2부가 시작됐다.
“2부는 승빈 씨가 등장하죠?”
“네, 2부의 첫 무대는 바로 크리드입니다!”
MC 석에서 크리드를 소개하고 무대 밑으로 향했는데, 리프트에 오른 멤버들의 위치가 달라져 있었다. 상황을 바꿔 보려고 다 같이 리프트를 타기로 했는데, 회귀 전처럼 한 명씩 따로 서 있는 거다.
‘뭐지?’
지운이 형을 보며 어깨를 으쓱이니, 비를 가리켰다.
‘비 때문에 움직였다는 건가?’
불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아까 분명 수리했으니 별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곧 무대가 시작되고 리프트가 올라왔다. 한 명씩 공개되는 형식이었고, 선우 형은 무사히 등장했다. 그렇게 순조롭게 끝이 나는구나 안심하던 순간, 지운이 형의 외마디 비명이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