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신경 써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티벡스 시절에는 해피콘서트에 출연한 적도 없을뿐더러, 인지도 있는 아이돌들만 사용하는 리프트는 더더욱 경험이 없었다. 투마월 초반 박재봉의 사고를 우연히 막은 것처럼 이번에도 운에 맡겨야 하는 걸까?
“해피콘서트라니… 그것도 저희가 2부 오프닝이라잖아요!”
“그니까. 우리 이제 데뷔한 지 겨우 3개월 됐는데.”
걱정으로 가득한 내 머릿속과는 달리, 멤버들의 목소리와 표정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대부분의 신인은 콘서트 오프닝을 하거나 다른 신인들과 묶여서 연달아 나오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크리드는 이례적으로 2부 오프닝을 하게 되었다. 2부에는 팬덤 크기가 압도적인 그룹이 대부분 포함되었기 때문에 더 의미가 있었다.
“게다가 2곡 하게 됐잖아. 난 이게 더 기뻐.”
“진짜! 무대 서는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세 곡 하는 건 루커스 선배님밖에 없다잖아.”
‘그래, 일단 무대부터 걱정하자.’
해피콘서트에 참여한다는 것만 같을 뿐, 다른 곡과 다른 무대를 할 테니 어쩌면 똑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대비하는 건 좋지만 과하게 걱정하지는 않기로 했다.
“클로버들 많이 왔으면 좋겠다.”
“그럼 우리 선곡부터 할까?”
“흠… 데뷔곡이랑 레디를 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대중들에게 조금 생소하겠지만 수록곡 한 곡을 준비하는 게 좋을까?”
“이런 곳에선 무조건 대중적이고 떼창할 수 있는 곡 해야지.”
데뷔한 지 겨우 3개월밖에 되지 않아서 대표곡이라고 해도 타이틀 두 곡이 전부였다. 노래 수가 많았다면 선택의 폭이 더 넓었을 텐데, 한정된 곡에서 선정하는 것도 꽤 골치 아픈 일이었다.
“음… 그럼 클로버한테 투표를 받아 볼까?”
“그래도 되나?”
“이따가 회의 때 한번 말씀드려 보자.”
“그럼 어떤 곡으로 투표 받아요?”
“내가 곡을 좀 추려 봤어.”
“승빈이가?”
“네, 지금 딱 떠오르는 곡이 있는데 만약에 한 번에 오케이 안되면 제가 설득해 볼게요.”
멤버들도 내가 추천한 곡에 대해 설명을 듣더니 모두 동의했다.
“그 두 곡 중 하나로 해도 되겠다.”
“팬들도 좋아하고 대중성도 있고 딱인데?”
멤버들의 반응에 자신감이 더 생겼다.
‘긴장만 하지 말고 말해 보자.’
회의가 시작되고 리더인 유현이 형이 총대를 멨다. 2집 활동 이후 콘텐츠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시간이 끝나고, 넌지시 말을 꺼냈다.
“저희 이번에 해피 콘서트 곡에 대해서 제안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어떤 건가요, 승빈 씨?”
“이번에 두 곡을 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한 곡은 이번 활동곡인 레디를 하고 다른 한 곡은 팬분들의 투표를 받는 게 어떨까요?”
“안전하게 데뷔곡 신세계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저희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공연을 보러 온 타팬분들에게 저희가 타이틀 곡 말고도 이렇게 좋은 노래와 무대를 가진 팀이다라는 걸 보여 드릴 수 있는 기회이지 않을까요?”
“음…….”
유현이 형의 말에 몇몇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도 있었다. 모두를 설득시켜야 받아들여지는 안건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내가 나섰다.
“그래서 저희가 생각한 곡이 있습니다.”
“그래요? 어떤 곡이죠?”
“저희 이번 앨범 수록곡인 [GO!]와 데뷔앨범 수록곡인 [New Dream]입니다.”
“Go랑 New Dream?”
내가 이 두 곡을 선택한 이유는 ‘숨겨진 명곡’이기 때문이었다. 케이팝 고인물인 리스너들은 타이틀보다도 수록곡에 관심을 가지는데, 크리드의 노래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수록곡이 저 두 곡이다. 음원 순위도 가장 높았고, 특히 [GO!]는 케이팝 청량 플레이리스트를 검색하면 열에 아홉은 들어가 있는 곡이다. 해피 콘서트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본진 그룹의 노래만 듣는 것이 아닌, 인지도 있는 아이돌들의 노래를 대부분 아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용기를 얻었다.
“위튜브와 음악 사이트 오렌지에 들어가 보시면 여러 케이팝 팬들이 만든 플레이리스트가 있습니다. 특히 GO!는 청량 키워드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노래입니다. 뉴드림 역시 수록곡 추천에 항상 올라오는 곡이고요.”
거의 프리젠테이션을 하듯이 아예 회의실 앞으로 나와서 설명을 하게 됐다. 말로만 하던 설명에 확신이 없던 사람들도 이미지로 보여지니 자세를 고쳐 잡고 듣기 시작했다.
“댓글 반응을 보더라도 ‘GO!’와 ‘NewDream’이 타이틀이 아니어서 아쉽다, 무대를 보고 싶은 곡이다, 라는 반응이 압도적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 곡 모두 아직 안무를 공개한 적이 없거나, 데뷔 쇼케이스에서 한 번 보여 준 것이 전부인 무대이기 때문에 보고 싶어 하는 팬들이 많다. 마침 [GO!]도 연말에 있을 팬 미팅을 위해 연습이 거의 끝난 상태였다.
“대중분들에게 익숙한 노래로 떼창을 유도할 수도 있고, 새로 안무를 공개하는 만큼 신선함도 줄 수 있는 곡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해나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쥐고 있던 볼펜을 두어 번 돌렸고, 종이 위로 딱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긴장 때문에 절로 침이 꿀꺽 넘어갔다. 멤버들도 오해나를 한 번, 나를 한 번 곁눈질하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고개를 몇 번 끄덕이던 오해나가 입을 열었다.
“전 괜찮은 거 같은데, 다른 분들은 어때요?”
“저도 좋습니다.”
“그럼 GO와 New Dream 두 곡 중 하나를 투표받는 걸로 하죠?”
“네!”
“콘텐츠 담당자분은 바로 공식 SNS 계정에 투표 관련 글 올려 주시고, 연습 기간도 필요하니 기한은 지금이 6니까… 7시까지 올려서 내일 6시까지 받는 걸로 합시다.”
“넵!”
회의실을 나오면서 멤버들은 잔뜩 들떠 있었다.
“와, 승빈이 형, 진짜 무슨 전문가 같았어요! 발표를 진짜 잘하네요?”
“맞아.”
그야 티벡스 시절 자체 제작을 밥 먹듯이 하면서 회사 임원진을 앉혀 두고 프리젠테이션을 했으니까. 허구한 날 태클만 걸고 실질적인 조언이나, 피드백을 주지 않아서 X같았던 기억뿐이지만. 나중에는 익숙해져서 어떻게든 빨리 끝내려고 PPT를 더 열심히 만들었다. 눈으로 봐야지만 이해를 하는 인간들이었거든.
“어떤 곡이 되면 좋겠어?”
“난 GO!”
“나는 New Dream”
나와 지운이 형, 유현이 형은 ‘GO!’를 다른 넷은 ‘New Dream’을 골랐다.
“뭐야, 승빈 형이랑 선우 형이 바뀌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왜?”
“미자들은 NewDream이고 성인들은 GO 고른 거 되잖아요.”
“이 형도 마음만은 고딩이란다, 재봉아?”
투닥이는 대화를 듣던 유현이 나지막이 말했다.
“하긴 정신 연령으로 보면 선우가 저기에 있는 게…….”
“아, 형!”
“뭐야? 난 빼 줘요-”
“강도현, 너가 빠지면 섭섭하지-”
“문승빈, 너한테 들을 얘기는 아닌데?”
강도현의 울분에 찬 외침을 듣자니 코웃음이 날 뻔한 걸 참느라 힘들었다. 엄밀히 말하면 난 열여덟의 몸에 갇힌 스물 둘의 영혼이니까.
‘따지고 보면 내가 제일 연장자인데……!’
“우리는 젊은 팀, 저기는 늙은이 팀이라고 해요 그럼!”
“재봉이 잘한다!”
“뭐야, 선우 형. 방금 전까지 싫은 티 내더니?”
“아니지. 젊은 팀이랑 아기 팀인 거지”
“…….”
윤빈 형의 말에 적막이 오갔다.
“풉, 아기, 아기 팀?”
“지운이 형은 스무 살인데 올드맨? 근데 재봉이는 베이비가 맞잖아.”
“형도 베이비가 되는 건데요?”
“나? 우리 부모님은 아직도 나 베이비라고 해서 상관없어.”
“…와.”
아무렇지 않게 폭탄 발언을 하는 윤빈 형에 박재봉과 선우형도 투닥거림을 멈추고 조용해졌다.
“저, 저희는 뉴드림 팀 할게요, 하하…….”
“그게 좋겠다…….”
슬금슬금 연습실로 향하는 둘의 뒷모습을 보면서 윤빈 형은 고개를 갸웃했다.
“나, 뭐 잘못 말했어?”
“아뇨? 잘 말했어요.”
“승빈이도 베이비 팀하고 싶으…….”
“전! 지금이 좋아요-”
베이비나 아기라니. 팬들이 불러 주는 거야 항마력을 얻었지만 아무래도 같은 멤버한테 듣기에는 알레르기 반응이 오는 호칭이었다.
“자, 자 가서 연습이나 하자!”
* * *
@CR:ID_official 1분 전
[클로버들이 보고싶은 무대는?
GO! VS NewDream]
-뭐야 이게?
-??우리 뭐하나?
-해피콘서트때 나오는건가?
└헐
-무조건 고짘ㅋㅋㅋㅋㅋ
└알못이네 이건 뉴드림해야함ㅋ
-그래도 떼창생각하면 고 해야지
└고민말고 다들 고로 GO!해
└그의손가락에 끼워지는금반지
└뿌부ㅃ부이
“이건 당연히 GO!지-”
“무슨 소리야 NewDream 해야지”
“하, 카운트다운은 왜 후보에 없는 거임?”
“우리 진짜 취향 다 갈리네? 난 승빈이 솔로곡에 한 표.”
“야, 둘 중 하나 고르라고 하면 GO라는 거지 나도 당연히 이터너티지.”
K, A, 정연 그리고 문스트럭은 퇴근길 치맥을 위해 모였다가 졸지에 크리드 최고의 수록곡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누가 이기고 있어?”
“GO!가 55퍼센트고, 뉴드림이 45퍼센트.”
“지금 이벤트하고 난리 났다.”
“나도 해야 하나?”
봉이즈마이라이프 @bongbong_life 2분 전
[본 트윗 RT하시고 ‘GO!’에 투표한 캡쳐 화면과 아이디를 멘션에 남겨주시면
추첨을 통해서 치킨 기프티콘을 보내드립니다!
GO! 파이팅 GO! 많이 넣어야지]
-이런거도 이벤트하는거냐곸ㅋㅋ큐ㅠㅠㅠㅠㅠ
-뉴드림 기죽지마
-(인증사진)
투표 참여 수는 벌써 10만이 넘어가면서 점점 과열되고 있었다.
“야, 실트에 ‘당연히 GO가’라고 올라간 거 왜 이렇게 웃겨?”
“그 밑에 ‘뉴드림 안 돼면’도 봐 봐.”
‘당연히 GO가’를 들어가 보니 한 일반인 계정의 트윗이 많은 리짹과 하트를 받고 있었다.
slow밍밍(비팔알림끔/이별은 블언블) @asjdlakjl
[실트 상태 왜이럼?
당연히 GO!가 뉴드림 안돼면 밤샘하더라도 이겨낸다?
GO랑 뉴드림이 뭔데;;]
-뭐야 이거 왜 리짹하세요;;
-GO!와 뉴드림을 가진 남자들을 영업합니다. (크리드 사진)
-다들 GO! 투표하고 가세요^^
-뉴드림뽑고 다같이 이 안무 보자고요 (데뷔 쇼케이스 무대 영상)
“투표 결과는 해피 콘서트에서 공개하려나?”
“가서 확인해야겠네.”
“아, 맨날 나만 못 가.”
“어떻게 하필 그날 팀장이 휴가를 가냐?”
“그니까 X발, 내가 그날 휴가 낼 거라고 몇 번을 얘기했는데!”
“도현이 사진 많이 찍어 올게”
“어, X나 땡큐.”
A는 쓰디쓴 마음을 맥주로 달랬다. 이번 프로젝트만 끝나면 정말 이직하겠다는 말을 말버릇처럼 했지만, 오늘만큼 퇴사 욕구가 밀려오는 날은 없었다.
“근데 여기 MC 아직 공개 안 되지 않았나?”
“맞아. 대충 실루엣도 공개 안 하더라?”
“누가 나오길래…….”
“엥, 해피 콘서트 계정 알림 떴네?”
“MC 실루엣이… 이런 미친!”
“뭔데? 그… 헐?”
네 명 모두 남자 MC의 실루엣을 보고 식당 한가운데에서 벌떡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