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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182화 (182/346)

182화

어느덧 플레이 온 아이스 녹화도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피겨 예능이라는 특성상 시즌제로 운영되는데, 이번 시즌 마지막에는 갈라쇼를 기획하고 있다고 했다.

“승빈 씨 덕분에 요즘 완전 난리 났잖아-”

“선배님, 저도요. 나가는 곳마다 레디 춰 달라고 난리예요.”

“승빈아, 고맙다. 덕분에 딸내미가 아빠 요즘 사람이라고 좋아하더라.”

레디 챌린지가 흥하면서 플레이 온 아이스 식구들도 다들 그 효과를 톡톡히 경험한 듯했다.

“아니, 나는 요즘 왜 그렇게들 영상을 찍나 했는데 이번에 알겠더라고.”

“그니까요. 저도 영상 하나가 그렇게 효과 있을 줄 몰랐어요.”

실제로 레디 챌린지는 단발성의 화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이 넘어가는 시점에도 꾸준한 인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효과로 ‘레디’의 음원 순위 역시 꾸준히 3위권에 머물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만나는 직원분마다 ‘복덩이’라고 하는데, 뿌듯하면서도 쑥스러웠다.

“우리 소속사에서도 승빈이한테 고맙다고 좀 전해 달라더라.”

“저는 심지어 그 챌린지 보고 예능에서 러브콜도 왔다니까요?”

“대박, 형 축하드려요!”

“아예 뚝딱이들만 모아서 예능 만드는 것도 기획하신다는데, 승빈이가 진짜 한 획을 그었어.”

“어휴, 그렇게 띄워 주시면 저 날아갑니다?”

더할 나위 없이 훈훈한 분위기로 이번 주 녹화가 시작되었다. 프로그램 자체도 매주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면서 상승세를 타고 있었는데, 레디 챌린지의 대유행까지. 분위기가 좋을 수밖에 없었다.

“여러분, 이제 드디어 때가 됐습니다.”

이번에는 아예 피겨 의상을 입고 나타난 최 피디가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쯤 되면 그냥 자기 덕질을 위해 프로그램을 만드시는 게 아닐까. 출연진들도 아직 피겨 의상을 제대로 입어 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최 피디가 움직일 때마다 의상에 붙은 비즈가 번쩍거려 눈이 부실 정도였다.

“무슨 때가 된 건가요?”

그나마 먼저 정신을 차린 이정훈 선수가 질문을 던졌다.

“본격적인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가 되었습니다.”

“본격적인? 그럼 저희가 지금까지 한 건 다 뭐였죠?”

“다 예행 연습인 거죠. 이제부터가 진짜입니다.”

“피디님, 저희 이거 시즌제가 맞기는 한가요? 프로그램이 안 끝날 거 같은데요?”

“오, 오히려 좋은 거 아닌가요.”

“맞아요. 형은 끝나길 바라는 거예요?”

“헐… 실망이에요.”

오늘도 빠짐 없는 H 몰이. 플레이 온 아이스에는 양대 몰이 대상이 있는데 그게 바로 개그맨 H와 나였다. 다만 몰이의 결이 좀 달랐는데, 다들 나는 놀리는 거라면 H는 정말 하이에나처럼 물어뜯었다. 평소에 H가 장난끼가 많았던지라, 반대로 H를 놀릴 기회가 생기면 너 나 할 거 없이 복수를 하는 거였다.

“그럼, 다들 준비하고 있는 프로그램 중간 점검을 해 볼까요?”

“갑자기요?”

“원래 장인은 시기를 논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장인이 아닌데요?”

“그럼 승빈, 정훈 팀 먼저 봐 볼게요?”

능글맞게 우리 팀에게 순서를 넘기는 최 피디에 이제 웃음도 안 나왔다.

“팀 이름이 뭐예요?”

“팀 이름이요? 생각 안 해 봤는데……?”

“에이, 팀 이름이 있어야죠! 승빈 팀 다음 주 미션은 이름 지어 오기!”

“네?”

‘무슨 이런 억지가?’

“팀 이름이 없으니 곡 이름부터 들어 볼까요?”

“저희가 준비한 무대는 ‘NewDream’입니다!”

우리 팀의 선곡은 데뷔 앨범의 수록곡인 ‘NewDream’. 타이틀 곡에 비하면 인지도 있는 곡은 아니지만, 수록곡 명곡 모음에 항상 포함될 만큼 나름 많은 사랑을 받는 곡이었다.

선곡의 난항을 겪던 중, 정훈 선수가 먼저 추천한 곡이었다. 사실 처음 이 곡을 안다고 했을 때 얼마나 놀랬는지. 크리드의 노래를 안다고 해도 타이틀 곡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정훈 선수와 대화를 해 보니 이미 우리 앨범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노래 가사나 분위기에 플레이 온 아이스에서 승빈이 형이 보여 준 노력과 도전이 잘 담겨 있다고 생각해서 선곡하게 되었습니다.”

“정훈 선수도 클로버인 거 아니야?”

“모르셨어요? 저 이미 앨범도 다 샀는데.”

“완전 성덕이네, 성덕.”

“준비 다 됐어?”

“넵!”

“그럼, 음악 주세요-”

반주가 재생됐고 떨리는 첫발을 떼었다. 비트와 함께 심장이 쿵쿵 뛰는 게 다 느껴질 만큼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배웠던 스텝과 스핀 그리고 실제 ‘NewDream’ 안무를 넣어서 만든 1분 30초 남짓의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눈앞에 펼쳐진 NewDream

눈부신 색들의 향연

컬러풀하게 칠해 봐]

아직 어색하지만 한 발짝 두 발짝 혼신의 힘을 다해 빙판 위를 돌아다녔다. 비틀거리는 때도 있었지만, 처음 촬영을 하던 날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한 걸음 내디뎌

두려움보다 짙은

나에 대한 믿음

나를 이끌 거야 NewDream]

그동안 준비했던 과정들이 가사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소름이 돋았다. 우연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캐스팅 과정부터 몸이 마음을 따라가지 못해서 갑갑했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스핀에서 자잘한 실수가 있었지만, 정훈 선수와 다른 출연진들의 응원을 받으며 무사히 프로그램 중간 평가를 마쳤다. 겨우 1분 30초지만 안 넘어지려고 집중력을 최대치로 썼더니 진이 다 빠졌다.

“중간에 안무는 원래 있는 건가?”

“네.”

“이 노래도 너무 좋다! 이건 뭐 없어?”

“피디님 완전 챌린지 중독자라니까?”

그새 NewDream 안무를 따라 하는 최 피디다. 하지만 역시나 얼음 위에서 비틀거렸다. 다른 출연진들의 프로그램 중간 점검이 끝나고, 미션 순위 발표가 시작됐다. 생각보다 오래 이름이 불리지 않았지만 1위는 가망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3위까지 이름이 불리지 않으면서 약간의 기대가 생겼다.

“2위… 승빈‧정훈 팀!”

“와!”

“축하해요, 형!”

꼴찌만 아니길 바랐는데 이렇게 높은 순위를 받을 줄이야. 그동안 스케줄 끝내고 시간을 쪼개 가며 연습한 보람이 있었다. 컴백과 겹치면서 더 시간적, 체력적으로 여유가 없었지만, 항상 열정적으로 코칭해 준 정훈 선수 덕분이었다.

“제가 처음 시작할 땐 꼴찌였잖아요.”

“맞아. 그때 진짜 갓 태어난 기린 같았잖아.”

“H 형한테 그런 말 들으니까 조금 자존심 상하지만…….”

“하하하!”

“정말 아무것도 못 하고 마음만 앞서던 사람이었는데, 정훈 선수 그리고 다른 동료분들 덕분에 이렇게 빙판 위에서 안무도 하고… 정말 감사해요!”

“승빈 씨, 나는?”

최 피디가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고 나는 필사적으로 모른 척했다.

“소감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아니, 나는~”

졸지에 빙판 위에서 술래잡기를 하게 되었다. 나와 스케이트 실력이 비슷한 최 피디여서 나름 게임이 됐다. 그러다가 결국 백기를 들었다.

“아우, 진짜 집념의 한국인이라니까요?”

“당연하지! 내 좌우명이 ‘내 사전에 포기란 없다.’거든.”

말은 그렇게 했어도 이 프로그램을 하고 얻은 가장 큰 수확 중 하나가 최 피디와의 인연이다. 아무리 그래도 방송계에서 이름 있는 피디와 이렇게까지 격 없는 사이가 될 줄은 몰랐지.

“당연히 피디님이 제일 고맙죠! 저 정말 아무것도 없는 신인이었는데 가능성 하나만 보고 캐스팅해 주신 거잖아요. 사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피디님 떠올리면서 이길 수 있었어요. 나를 믿어 주셨으니까 꼭 보답해야지. 그런 마음이 컸던 거 같아요.”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본다니까? 오히려 내가 고맙지. 기대한 모습보다 훨씬 더 좋은 모습들만 보여 줬으니까.”

“오~ 오랜만에 훈훈한데요?”

이제 진짜 갈라쇼 미션만이 남았다. 팬들과 일반 관객 앞에서 하는 공연인 만큼 최상의 무대를 보여 주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촬영이 끝나고 정훈 선수가 다가왔다.

“형! 오늘 엄청 놀랐어요.”

“다 네 덕분이야.”

“에이, 전 옆에서 살짝 도와준 게 전부죠~”

그리고 정훈 선수는 내가 플레이 온 아이스로 얻은 또 다른 인연이다. 이 세계로 회귀하면서 잃게 된 인연에 대해 아쉬워하고, 후회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소중한 인연들을 새로 만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더는 아쉬워하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도 내가 가지고 있었던 만큼, 아니 어쩌면 더 멋진 사람들과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갈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감상에 젖어 있을 무렵, 정훈 선수의 말에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갈라쇼는 이것보다 더 빡세게 프로그램 구성 추가해도 되죠?”

“…응?”

“이번에는 한 발 스핀도 넣고, 점프도 넣어 볼까요?”

“저, 점프?”

“형 실력이면 무조건 할 수 있어요!”

“너, 나를 너무 믿는 거 아니야?”

“당연하죠! 생각해 봐요, 지금까지 형이 못 한다 못 한다 한 것 중에 못 한 거 있어요?”

‘사람 할 말 없게 만드네…….’

평소의 악바리 근성이 피겨라고 없어질 리가 없다. 못 할 것 같은 일에는 오히려 반드시 해내겠다는 마음부터 들었다. 그래서 스케줄을 마치면 바로 링크장으로 향해서 대관 종료 시간까지 쉬지 않고 연습했다. 노력한 걸 굳이 티 내지 않는 타입이지만 이번에는 정말 체력을 갈아 넣어서 만든 결과였다.

다가오는 연말 준비로 금세 바빠지겠지만 다행히 이제 활동도 끝났고, 연습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오늘보다 더 어려운 프로그램을 소화할 수 있을까? 스스로 확신이 들지 않은 것도 잠깐, 투마월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정말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내 힘으로는 해낼 수 없다고 생각한 일들도 많았지. 그래도 결국 모든 걸 해결했고,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이겨 낼 수 있다고 다짐한 적이 있었다.

“음… 그래, 해 보자!”

그래, 지금까지 얼마나 고민하고 행동에 옮겼다고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가?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해 봐야 알 수 있다. 그리고 나름의 확신이 있다. 불완전할지언정, 해낼 수 있다고.

* * *

2집 활동까지 순식간에 지나가고, 어느덧 날씨가 꽤나 쌀쌀해졌다. 중간 점검도 할 겸 핸드폰에 정리해 둔 타임라인을 확인했다.

[11월/ 해피콘서트]

해피콘서트. 매년 5월과 11월 두 차례 개최되는 대규모 케이팝 콘서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공연장에서 열리는데, 약 30여 팀이 출연한다. 잘나가는 아이돌은 물론이고, 인지도가 조금 낮은 아이돌들도 대거 참여하면서 약 3만 명에 가까운 팬들이 모이는 날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케이팝 대통합의 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처음 해피콘서트 출연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눈물이 날 뻔했다. 정말 꿈의 무대였고, 죽기 전에 저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 했으니까. 하지만 감격도 잠시, 메모 내용을 확인하고 온몸에 긴장감이 순식간에 맴돌았다.

[박선우 리프트 사고]

-리프트 작동 오류로 인한 추락 사고.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연말 무대 준비에 차질이 생겨 몇 개의 시상식 무대 불참. 리프트를 포함한 현장 장치에 대한 꼼꼼한 확인 필요.

‘이날은 특히 신경을 써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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