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여러분들이 또 궁금해하실 게 뭐가 있을까요?”
“영어로 어떤 분이 ‘승빈이랑 재봉이 안경은 누가 고른 건가요’라고 해 주셨네요.”
“그럼 영어로 한번 읽어 봐 주시겠어요, 재봉 씨?”
“네? 아 너무 빠르게 지나가서 제가 찾지 못하겠네요. 다른 거 읽어 드릴게요. 재봉 아이러브유~ 큐트 재봉~”
그새를 못 참고 이번에는 재봉이를 놀리는 도현이었다.
“그래서 안경은 누구 아이디어인가요?”
“아, 이거 승빈이 형 아이디어였어요. 형이 꼭 저런 동그란 안경이어야 한다고 얼마나 강조했는지-”
“맞아요. 저희 스타일리스트분들이 제가 생각한 그대로를 준비해 주셔서 진짜 감사했어요.”
“둘이 같은 옷 입고 저렇게 안경 쓰니까 은근 닮았더라구요.”
“와, 재봉이 영광이겠다.”
“하… 도현이 형 안 닮은 게 어디에요, 그쵸?”
눈으로 다 보지 못할 정도로 빠른 댓글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댓글을 발굴해 내는 멤버들이었다. 이제 어느 정도 라이브가 익숙해진 게 기특하면서도 내심 아쉬운 수정이었다.
“아, 그리고 저희 카운트다운에서 각자 하나씩 운동 종목이 나왔잖아요.”
“맞다. 그게 타이틀곡 뮤직비디오에도 나올 거라고 생각한 분들이 많더라구요.”
“각자 해 보고 싶은 운동을 하나씩 정한 건 맞아요.”
“아직은 스포라서 다 말씀 못 드리지만, 아쉬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와… 여러분 이건 도현이 형의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저도 모르는 일입니다.”
“지금 저희 앞에 계신 스탭분들 다 놀라셨어.”
“스포라서 말 못 한다면서 그냥 다 말한 거 아니냐구요.”
에이라이브의 묘미였다. 자타 공인 스포 요정 강도현이 던진 한마디에 당황한 멤버들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달라졌다.
-도현이가 또........
-도현이는 역시 우리편이다......
-너희 설마 진짜 그 운동들 해보는 거니?ㅠㅠㅠㅠ
-지운이 눈 커진 거 봐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사람 눈이 저렇게 똥그래질 수 있는 거임??ㅋㅋㅋㅋㅋ
-유현이 또 이마짚는닼ㅋㅋㅋㅋㅋ
-정유현을 당황하게 만드는 유일한 남성.....강도현........
“지금 보고 계신 클로버 여러분, 저희만의 비밀입니다.”
“얼른 다음 질문 넘어가 볼까요?”
“제발요.”
“아, 윤빈 형한테 카운트다운 작곡 비하인드가 궁금하시다고 하시네요!”
한차례 태풍이 지나가고 난 후에는 조금 급하게 라이브가 마무리되었다.
“그럼 저희는 다음에 또 찾아올게요. 클로버 사랑해요!”
“도현이 혼나는 거 아니냐.”
“근데 덕분에 애들 찐 반응 너무 귀여웠어.”
“인정. 놀리고 싶더라, 진짜.”
컴백쇼부터 음악 방송, 예능과 에이앱까지. 쉴 새 없는 떡밥에 컴백을 제대로 즐기고 있는 이 자매였다.
* * *
래빗드림은 떨리는 손으로 첫 번째 팬 사인회 명단을 확인했다.
“010-****-***… 있다!”
첫날 판매량이 신세계 때보다 배로 뛴 것을 보고 혹시나 팬 사인회에 떨어질까 봐 가슴을 졸여 왔기에 기쁨이 배가 됐다. 레빗드림은 곧장 승빈이 최애인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야 나 당첨됨]
[ㅁㅊ 다행이다 팬싸컷 많이 오른거 같던데]
[ㅇㅇ온리유현 언니한테 들었는데 1xx장 샀는데 떨어졌대]
[나도 ㅈㄴ아슬아슬했던 거 같음]
[승빈이한테 편지 전해줄까?]
[아 진짜 땡큐 평생 모시겠습니다.]
“재봉이한테 뭘 씌워야 귀여울까~”
레빗드림은 곧장 인터넷 쇼핑 앱을 열고 각종 머리띠와 인형, 액세서리들을 보기 시작했다.
“페이스 체인은 지난번에 가져갔으니까… 이걸로 해야겠다.”
만족스러운 쇼핑을 마친 그녀는 팬 사인회를 위한 짐들을 미리 챙겼다.
설렘과 함께 빠르게 이틀이 지났고, 팬 사인회 당일이 됐다. 팬 사인회장에 도착한 레빗드림은 능숙하게 카메라를 세팅하고 재봉과 승빈에게 줄 편지를 정리했다. 미리 준비한 질문지와 함께, 앨범에 각 멤버들의 사진이 있는 곳에 이름표를 잘 붙였는지 확인했다.
“재봉이 머리띠랑 챙겼고… 하, 너무 기대된다. 얼마나 귀여울까?”
“어, 애들 들어온다!”
“본 투 샤인! 안녕하세요, 크리드입니다! 클로버 반가워요!”
“와아아아-!”
드디어 크리드 멤버들이 단상 위로 올라오고, 팬 사인회의 시작을 알렸다. 곧 레빗드림의 차례가 왔다. 기다리던 재봉의 순서, 그녀는 야심 차게 준비한 아이템을 꺼냈다.
“어? 토끼 모자다!”
“응! 재봉이가 토끼잖아~ 이거 쓰면 너무 잘 어울리고 귀여울 거 같아서 준비했어!”
“이렇게 쓰는 거죠? 이건 뭐예요?”
“거기 꾹 눌러 봐!”
“이, 이렇게요?”
“아, 너무 귀여워…….”
재봉이 모자 밑 부분을 누르자 누른 방향의 귀가 쫑긋하고 움직였다. 그 모습에 현장에 있던 클로버들 사이에서 앓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와, 신기하다!”
“재봉아 저기, 저기 보면서 귀 한 번만 다시 해 줄 수 있어?”
“저기요? 제 이름 왕 크게 써져 있는 곳 맞죠?”
“응! 고마워. 너무 귀엽다-”
“아이, 누나 자꾸 귀엽다고 하니까 좀 민망해요-”
‘그럼 적당히 귀엽든가!’
짧은 시간이었지만 앨범 사는 데 들어간 돈과 앞으로 처리해야 할 앨범에 대한 걱정은 휘발된 지 오래였다. 편지와 선물을 전달하고 ‘이동하실게요.’ 하는 스태프의 멘트와 함께 가차 없이 자리를 이동해야 했다.
“오늘 와 줘서 너무 고마웠어요!”
“응! 나도 너 봐서 너무 좋았어~”
“안녕하세요~”
“승빈아, 안녕?”
“저는 오늘 뭐예요?”
“승빈이는… 초커 준비했어. 강아지잖아!”
초커를 받은 승빈이 잠시 헛기침을 하더니 능숙하게 목에 걸었다.
“초커 했으니까 이런 것도 해야겠죠?”
“응?”
승빈이 두 손으로 앞발을 만들고 고개를 갸웃하며 윙크를 했다. 현장에 있던 승프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고, 레빗드림은 순간 자신이 꿈을 꾸는 게 아닌가 싶어 진심으로 뺨을 쳤다. 그 모습에 승빈이 경악하며 두 손으로 입을 막았고,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괘, 괜찮으세요?”
“괜찮을 리가 없잖아! 너 무슨…….”
혼미한 정신이 날아가기 전에 그녀는 필사적으로 뇌에 힘을 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큰일 났다. 제대로 말렸다. 이러다 한마디도 제대로 못 하고 끝나게 생겼다.
“내, 내 친구 최애가 너거든? 근데 이번 콘셉이랑 흑발 마음에 든다고 자기도 사진 배워서 꼭 찍고 싶다고 나한테 홈 운영하는 거에 대해서 물어보더라고”
“아, 누나 홈 운영해요?”
“아- 내가 재봉이한테만 말했구나? 응, 나 재봉이 홈 운영하고 있어.”
“홈 이름이…….”
“레빗드림이야. 오늘은 그걸로 적어 주라.”
그런데 홈 이름을 듣던 승빈이 싸인하던 손을 멈추고, 그녀를 올려다봤다. 아까 뺨을 쳤을 때보다도 더 놀란 듯한 눈빛이었다. 계속 앨범과 그녀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던 승빈이 마침내 뭔가를 결심했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레빗드림이요? 와…….”
“왜?”
“제가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진짜 감사해요. 덕분에 데뷔했어요.”
승빈의 말에 레빗드림은 투마월 3차 경연 때 자신이 올린 영상 덕분에 악편 논란이 해명됐던 것을 떠올렸다.
“아니야~ 그거 없었어도 데뷔했을 거야!”
“그때 진짜 많이 감사했어요. 꼭 만나면 감사 인사 하고 싶었는데.”
‘승빈이는 이런 것도 기억하는구나…….’
그녀의 마음속에 승빈이 차애로 완전히 굳게 되었다. 순전히 자신이 좋아서 하는 찍덕이었지만, 지난 노고를 다 알아준 것만 같아 제대로 감동받은 그녀였다.
“맞다! 이거 내 친구가 쓴 편지. 꼭 전해 달라고 해서.”
“고마워요!”
“지나가실게요~”
“오늘 반가웠어. 다음에 또 볼 수 있으면… 보자.”
쉽게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게 속이 쓰렸다. 날이 갈수록 인기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다음 활동은 정말 몇 장을 사야 안정권인지 감도 안 잡히기 때문이다. 떨리는 몸으로 겨우 자리에 돌아와서는 옆자리 다른 홈마와 대화를 나눴다.
“7명을 했는데 15분 남짓인 게 말이 되냐고-”
“그니까. 최애랑 시간 몰아 주는 것도 아니고.”
“잘 찍혔나?”
“응. 근데 너 승빈이 앞에서 뺨은 왜 때린 거냐?”
“못 봤어? 앞에서 끼 부리는데 나 순간 흔들릴 뻔했잖아.”
“그 정도였어? 아깝다.”
“승빈이 홈 중에 누구 하나는 찍었겠지- 제발.”
그때만 해도 그녀는 몰랐다. 그게 얼마나 큰 파장을 가져올지.
[오늘 팬싸에서 제일 웃겼던 게 승빈이가 팬이 준비한 초커 하더니 갑자기 강아지마냥 앞발 내밀고 윙크하는거임;; 근데 앞에 팬 반응이 ㅈㄴ웃긴게 안 믿겼나봨ㅋㅋㅋㅋㅋ갑자기 자기 뺨을ㅋㅋㅋ큐ㅠㅠㅠㅠㅠ (영상)]
-많이 놀랐나보닼ㅋㅋㅋㅋ
-아 ㅁㅊ 근데 고화질 사진보고오면 왜 그런지 이해가 됨
└ㅇㅇ 문승빈이 내 눈앞에서 저러면 난 진짜 뺨으로 안 끝났음
-진심 저분 맛잘알이다…초커도 진짜 개목줄같은걸ㅋㅋㅋㅋㅋㅋㅋ
└승빈이도 사람이에요;;
└무슨 소리예요 승빈이는 댕댕이인데;;
-팬반응이 너무 찐이어서 더 웃곀ㅋㅋㅋㅋ
-저분 뺨 안아프실까ㅠㅠㅠ
[시야 공유 좀]
[뺨은 괜찮냐?]
[아앀ㅋㅋㅋㅋ나인건 어떻게 안거얔큐ㅠㅠㅠ]
[니가 어제 저 초커보여줬었잖앜ㅋㅋㅋ]
[야 근데 승빈이 진짜…강아지 아니고 여우임]
[강아지탈을 쓴 여우라니ㅋㅋㅋㅋ오히려 좋아]
다들 그녀의 행동에 놀란 승빈이 영상을 보고 즐거워할 때, 레빗드림은 혼자 감정의 홍수에 빠져 있었다.
집에 가는 길에야 확인한 승빈의 PS 때문이었다.
[세상이 어둡게만 보일 때, 빛이 되어 줘서 고마워요.]
* * *
“오늘 1위 후보네.”
“이렇게 긴장감 없는 1위 후보 오랜만임.”
“그니까- 이번엔 음원 성적도 꾸준히 좋게 나와서 걱정할 필요 없을 거 같아.”
이제는 정연까지 합류해서 4명이 된 클로버 모임이다. 네 명 모두 공방 신청에 떨어진 기념으로 호캉스와 더불어 덕후 투어를 떠난 그녀들은 각자 챙겨 온 포토 카드와 인형을 들고 예절샷을 남겼다. 각자 스타일대로 꾸민 포카 사이에서도 K의 화려한 탑로더가 눈에 띄었다. 지운의 상징 동물은 여우 모양 파츠에, 몽글거리는 질감의 데코텐까지 보통 퀄리티가 아니었다.
“탑로더 어디서 산 거야? 예쁘다-”
“이거? 내가 만든 건데?”
K의 답에 세 명은 일제히 놀란 얼굴로 동시에 외쳤다.
“미친, 너 이런 재능이 있었냐?”
“왜 이래? 나 미대 나온 사람이거든?”
“야, 진지하게 만들어서 팔 생각 없냐?”
“이미 하고 있다면?”
K가 보여 준 계정은 팔로워 만 명의 탑꾸 계정이었다.
“팔로워가 만 명이나 돼?”
“미친, 탑꾸러버가 너였냐?”
“그렇게 됐다.”
“너, 너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 줄 알았냐?”
“안 그래도 지난번에 A가 탑로더 샀다고 보여 주는데 내가 만든 거여서 흠칫했잖아. 더 못 속이겠다 싶어서 오늘 말하는 거야.”
“내 친구가 금손이었다니.”
“옆에 문승빈 탑시드가 들으면 섭섭해하겠다.”
세 명의 대화를 듣던 정연의 표정이 묘하게 시무룩해졌다.
“나는 딱히 잘하는 게…….”
“야, 큰일 날 소리 한다. 페이퍼북이나 엔스타에서 팔로워 많으면 협찬이나 돈이라도 받지, 짹짹이 팔로워 수 많으면 그냥 감시하는 사람들이랑 어그로들만 꼬이고 좋을 거 하-나도 없어!”
문스트럭은 그동안 쌓인 게 많았는지 숨도 쉬지 않고 짹짹이에서 팔로워가 많으면 안 좋은 이유에 대해 늘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