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모든 멤버가 모니터링을 하기 위해 모였다. ‘레디’ 첫 무대를 컴백쇼에서 공개하기 위해 앞서 진행된 기자 쇼케이스에서도 무대는 했지만, 영상은 컴백쇼 방송 이후에 풀기로 협의했다고 들었다. 그만큼 다들 컴백쇼에 대한 기대가 하늘을 찔렀다.
“형, 저만 떨려요?”
“말도 마라. 아까 무대 할 때보다 지금이 더 떨려.”
“뮤직비디오도 이미 공개됐는데도 왜 이렇게 긴장되냐.”
“그러게요. 차라리 지금 바로 또 무대를 하고 싶어요.”
그리고 당연히도 이 모든 대화는 녹화되고 있었다. 콘텐츠의 연속이었지만, 촬영 중이라는 것도 잊을 정도로 모두가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팬들과 함께한 여러 무대가 먼저 공개되고, 드디어 대망의 레디 무대만이 남았다. 녹화만 몇 번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공을 들인 무대라 과연 방송에 어떻게 나올지가 제일 관건이었다.
“오, 시작한다!”
노래가 시작되기 전 인트로 영상이 먼저 나왔다. 이국적인 분위기의 학교 건물에서 각자의 초능력을 보여 주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었다.
“와, 승빈이 형 눈 감았다 뜨는 거 봐.”
“나 진짜 클로즈업 들어올 때, 살면서 이렇게 카메라가 가까웠던 적이 있었나 했잖아.”
“승빈이 눈이 진짜 예쁘긴 하다.”
미래를 보는 역할에 걸맞게 허공을 응시하는 듯하다가도 갑자기 표정이 바뀌면서 심각해졌다. 지금 다시 봐도 정말 어려운 연기였다. 회귀 전 연기자였을 때도 이런 건 해 본 적 없어서 걱정했는데, 오그라들지 않는 것만 해도 성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지는 장면은 동물과 교류하는 윤빈. 씨넷 측 스태프분의 강아지라고 들었는데, 정말 순하고 귀여워서 촬영장 여기저기에서 앓는 소리가 날 정도였다.
“쟤 이름이 뭐였지?”
“아쿵이. 이름도 너무 귀여웠어.”
“맞아. 진짜 순하고 얌전해서 처음에는 인형인 줄 알았잖아.”
순서대로 다른 멤버들도 초능력을 사용하는 장면이 나오고 마침내 무대가 시작되었다.
“와, 문승빈 진짜 도입부 장인이다.”
“고유승빈이라는 거 누가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찰떡이야.”
“뭐야, 왜 이래? 어색하게.”
“내가 말했지. 칭찬할 건 칭찬한다고-”
장난스럽게 웃는 강도현의 어깨를 아프지 않게 밀었다.
[출발선 위에 서 있어
설레는 이 감정은
한순간에 POP POP
마치 다이너마이트]
‘팝 팝’ 가사에 맞춰서 손가락을 두 번 튕기는 제스처가 있는데, 밋밋해 보이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한 시간이 떠올랐다. 다행히 내가 기대한 대로 카메라에 잘 담겼다. 신세계에서는 각 잡힌 군무가 핵심 안무였다면, 이번에는 조금 더 자유로운 느낌이 중요한 안무였다. 그래서 더 고민이 많았다. 자칫 잘못하다간 중구난방으로 보일 위험이 있으니까.
[알다가도 모르겠을
네 마음속으로
숨차도록 달려 나가
네 곁으로 I’m ready]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멤버들 간의 합이 잘 맞아서 따로 노는 느낌은 전혀 있지 않았다.
“이번에 안무도 진짜… 어려웠어.”
“맞아. 저거 다 프리스타일인 거 같아 보여도 하나하나 다 계획하고 맞춘 거잖아.”
지운이 형의 말처럼 자유로운 분위기지만 결코 동작 하나 가볍게 넘기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안무였다.
“그리고 이번에 확실히 다들 라이브 실력도 늘었어.”
“러닝 머신 타면서 보컬 연습한 게 진짜 도움 많이 됐어요!”
“아이고, 우리 재봉이 연습할 때는 죽겠다고 그렇게 엄살을…….”
“어유, 저 입을.”
재봉이 선우 형의 입을 아프지 않게 찰싹였고, 멤버들과 스태프 모두 웃음이 터졌다. 옆에서 배를 잡고 깔깔대고 웃던 강도현은 선우 형과 재봉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조용히 윤빈 형의 뒤로 숨었다.
[운명의 카운트다운은 시작됐어
행운의 클로버를 쥔 채로
I’m Ready, Run to you!]
“도현이 여기 가사 되게 좋았어.”
“이번 앨범 노래 제목들이지?”
“맞아요! 역시 지운이 형이 눈썰미가 좋아.”
스포티한 이미지와 가장 잘 맞는 멤버인 만큼 랩 파트에서도 빛을 발했다. 선우 형과의 목소리 합 역시 최상이었다.
그리고 가장 걱정했던 하이라이트 파트까지 완벽하게 넘어갔다. 고음이지만 너무 파워 보컬로 나오면 노래의 분위기와 맞지 않기 때문에 강약 조절이 필요한 구간이었다.
“전날 걱정한 거치고 너무 잘했는데?”
“역시 크리드 메보~”
멤버들의 칭찬에 낯뜨거워지는 순간이 더러 있었지만, 그동안 고민했던 시간이 헛되지 않음을 보여 주는 무대였다.
* * *
[크리드 상담소 오픈 준비 완료!]
첫 방송이 끝나고, 기다렸다는 듯 에이앱 알람이 떴다.
“미친. 언니, 에이앱 떴다!”
“에이앱? 지금? 애들 체력 대박이다.”
“헐, 바로 회사 갔나 봐.”
“그렇네. 배경이 회사네.”
곧 화면이 켜지고, 멤버들이 등장했다. 뒤에는 언제 준비한 건지 제법 본격적인 크리드 상담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근데 에이앱 제목 뭐지?”
“크리드 상담소?”
“애들이 상담해 주는 건가.”
“아, 나 개인적으로 고민 상담 콘텐츠 싫어하는데.”
“나도…….”
다들 느끼는 게 비슷했는지 댓글이 빠르게 올라왔다.
-크리드 상담소???
-설마 너희 고민상담해주는 거니....??
-오빠ㅠㅠㅠㅠㅠㅠ 대학을 가야 할까요ㅠㅠㅠㅠㅠㅠ
-미래에 대해 고민이 돼요ㅠㅠㅠㅠ
-아이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OPPA ENG Plz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아직 멤버들은 연결된 걸 모르는지 대기 중이었는데도, 온갖 종류의 고민 상담이 댓글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 연결됐나 보다!”
“클로버~ 저희 보이나요?”
“오, 댓글 달리기 시작한다.”
“벌써 천 분 넘게 들어 오셨어!”
“이미 만 명도 더 넘었는데?”
“자, 그럼 먼저 인사드리겠습니다. 본투샤인! 안녕하세요, 크리드입니다.”
“여러분, 다들 제목 보셨나요?”
“혹시 제목도 못 보고 급하게 들어오셨다면!”
“오셨다면!”
“저희 뒤를 봐 주시면 됩니다!”
“맞습니다!”
-뭐야ㅋㅋㅋㅋㅋㅋㅋ 선우랑 도현이 만담하냐곸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둘 티키타카 졸귀ㅠㅠㅠㅠㅠㅠㅠ
-너희 콩트하니 지금ㅋㅋㅋㅋㅋㅋㅋ
“오늘 첫방 기념으로 저희가 크리드 상담소를 열었는데요! 이번에는 첫 상담소 오픈인 만큼 앨범 관련해서 질문을 받아 볼까 합니다.”
“맞아요. 이번에 뮤직비디오도 그렇고 다들 궁금해하시는 게 많으실 거 같아서 준비해 봤어요.”
“그럼 먼저 뮤직비디오 얘기부터 해 볼까요?”
강도현이 진행을 이어 갔다. 역시 크리드의 비공식적 MC다운 자연스러움이었다.
“각자 초능력이 있다는 게 사실인가요, 멤버들?”
“아니, 안 그래도 여기 댓글에서 지금 난리 났어요.”
“‘승빈아 멍’ 님께서 ‘승빈이 초능력은 누나 마음 훔치기 아니었나?’라고 하시네요.”
-아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
-사실 아니냐고ㅠㅠㅠㅠㅠ 울 애들 초능력이 무슨 말이냐며.....
-ㅋㅋㅋㅋㅋㅋ 닉네임부터 심상치않으시넼ㅋㅋㅋㅋㅋ
“들켰네요. 비밀이었는데-”
능글맞게 답변했지만, 잔뜩 열이 올라 빨개진 귀를 숨길 수는 없었다.
“미친…….”
“언니, 문승빈 오늘 미쳤다.”
“부끄러워하면서도 끼 부리는 거 봐.”
그리고 그런 승빈의 모습을 보고 옆에서 더 신난 멤버들이었다.
“와- 찢었다.”
“승빈아, 그런 건 어디서 배워 오는 거니?”
“형, 승빈이는 그냥 타고난 거예요.”
“맞아요. 그냥 저렇게 태어나야지만 가능한 뻔뻔함이라고요.”
“하… 나는 다음 생을 기약해야겠네.”
“저도요. 다음 생이 있다면, 제 목표는 문승빈입니다.”
“지금부터 열심히 기도하면, 다음 생에는 이룰 수 있겠죠?”
한마디를 하면 열 마디가 따라붙었다. 귀부터 시작해서 승빈의 얼굴 전체가 발그레함을 넘어 벌게지고 있었다.
“오늘 애들 텐션 장난 아닌 듯.”
“컴백해서 신났나 봐.”
“너무 귀엽다, 진짜.”
“아니, 그사이에 더 친해졌나 봐.”
“그니까. 놀리는 거 너무 귀여워.”
이대로 가다가는 끝이 없겠다고 생각했는지, 승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자자, 그래서 각자 초능력이 뭐라구요?”
“맞다, 승빈이의 엄청난 능력에 놀라서 까먹을 뻔.”
“클로버 여러분, 저는 뭐였게요-”
혼란한 와중에도 틈새를 놓치지 않고 애교 부리는 게 역시 박재봉다웠다.
“우리 재봉이 귀여운 거 봐.”
“재봉이가 뭐였지?”
“사람 마음 읽는 거! 재봉이랑 완전 찰떡 아니냐.”
“맞네. 재봉이 그 자체네.”
“맞아요! 역시 우리 클로버들 다 뮤직비디오 보셨네요? 저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있답니다.”
“여러분, 다들 모르셨죠? 그래서 재봉이가 그렇게 클로버 맘을 잘 알고 있던 거였어요.”
-윤빈이 과몰입하는거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과몰입 레전드라곸ㅋㅋㅋㅋㅋㅋ
-아니.......빈아...... 너 해외파 아니었냐곸ㅋㅋㅋㅋㅋㅋ
-요즘은 가끔 빈이가 해외파인거 까먹고지냄ㅋㅋㅋㅋㅋㅋ
“맞습니다, 클로버. 저한테는 거짓말했다가 큰일 난다구요~”
“근데 재봉이가 뮤비에서는 아직 맘을 잘 못 보는 거 같던데, 왜 그러신 거죠?”
“와, 형 아까 저 똑같은 내용 댓글 봤는데. 형이 단 거 아니에요?”
“…들켰네요. 비밀이었는데-”
그새를 못 참고 다시 승빈이를 놀리는 강도현이었다. 목소리를 한껏 깔고 승빈이 한 대사를 성대모사를 하는데, 웃음기까지 쫙 빼고 여간 뻔뻔한 게 아니었다.
“하… 여러분, 제 초능력 다들 아시죠?”
“그럼요. 미래를 보는 거잖아요.”
“머지않은 미래에 도현이가 아주 큰일 날 게 보이네요.”
“네? 제가요?”
“네, 님이요. 여러분, 제가 도현이 잠자는 거 찍어 둔 사진이 있거든요?”
“야, 문승빈 너 설마-”
“이번 1위 공약으로 그 사진을 걸겠습니다. 정말 너-무 귀여워서 다들 보면 깜짝 놀라실 거예요.”
-뭐야 무슨 사진이얔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도현이 표정봨ㅋㅋㅋㅋ
-도현이 저렇게 놀라는거 처음봨ㅋㅋㅋㅋㅋ
-애가 찐으로 당황했넼ㅋㅋㅋㅋㅋㅋㅋ
-대체 어떻게 자길래ㅠㅠㅠ 안봐도 벌써 귀엽다ㅠㅠㅠㅠ
“제가 잘못했습니다. 얼른 다음 분 초능력으로 넘어가시죠! 유현이 형?”
마지막 동아줄이라고 생각했는지 강도현이 정유현을 간절하게 부르자 댓글이고 현장이고 난리가 났다. 오죽했으면 촬영하는 스태프의 웃음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어쩌다 제가 크리드의 리더가 된 건지… 시간을 돌리고 싶네요. 하지만 제 능력은 시간을 돌리지는 못하고, 멈추게만 할 수 있답니다.”
“오- 대박. 형, 진짜 준비했죠?”
“이건 백 퍼 준비한 멘트다!”
정유현은 절대 아니라는 듯 팔을 교차해 엑스자를 만들고 연신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멤버들은 멈추지 않고 정유현의 옆에서 오디오가 빌 틈이 없이 붕방거렸다.
“아니, 유현이는 진심 뭐지?”
“뭐가요.”
“어디서 저런 완벽한 애가 튀어나왔지?”
“인정, 나는 유현이가 아이돌 해 줘서 감사할 지경임.”
“진심. 그냥 갓반인으로 살 거 같은 앤데-”
“역시 최최차정임. 최애는 최애고 차애는 정유현이다.”
“누구나 가슴속에 유현이 하나쯤은 품고 다니잖아요.”
서로 한마디도 안 놓치는 완벽한 합이 역시 친자매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