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모든 조명이 꺼졌던 무대가 순식간에 다시 밝아지면서 안무 대형을 맞춰서 선 멤버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노래와 뮤비가 선공개되었지만, 안무를 보는 건 처음이었기에 다들 눈이 동그래졌다. 카운트다운 뮤직비디오에 안무가 하나도 안 나와서 대부분 안무가 없는 곡이라고 생각했기에, 그 충격이 더했다.
“미쳤다. 카운트다운도 안무가 있던 거임?”
“서브곡이라서 별로 기대 안 했는데-”
“너무 좋다, 진심.”
모든 멤버가 무대 중앙에 동그랗게 모여 어깨동무를 하는 모습으로 무대가 시작되었다. 첫 소절이 시작되려는 순간, 마치 다 같이 파이팅을 외치는 것처럼 멤버들이 몸을 숙였다가 뻗었다. 스포츠 경기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안무였다.
[3 2 1 시작되는 카운트다운
너를 향해 달려가]
청량한 멜로디와 함께 시작된 도입부는 역시나 문승빈이었다. 다른 멤버들에게 둘러싸여 있다가 무대 앞까지 달려 나오면서도 흔들림 없는 라이브에 다들 귀를 의심했다.
“승빈이 지금 라이브 맞죠?”
“아니, 어떻게 저렇게 뛰면서 음정이 안 나가지?”
“저 순간 립싱크인 줄 알았잖아요.
‘고유승빈’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크리드의 곡은 대부분이 문승빈의 목소리로 시작되었다. 특유의 맑은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끼는 문스트럭이었다.
음원으로는 몇 십, 몇 백 번이고 이미 닳도록 들은 노래였지만, 라이브가 주는 쾌감은 역시 남달랐다.
“뭐야, 문승빈 득음함?”
“성량 무슨 일이야.”
문승빈의 목소리로 시작된 무대는 콘셉에 충실하게 청량 그 자체였다. 한 명이 가운데서 혼자 안무를 하면, 뒤에 있던 멤버들이 도미노처럼 그 안무를 따라 하는 구성이었다. 마치 혼자서 연습하던 멤버의 뒤를 다 같이 채워 주는 느낌이 들었다.
[잠깐만 기다려 줄래
지금 이 떨림을 설렘을
조금만 더 느껴 보고 싶거든]
[네게 더 바라는 게 없어
부디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주길]
빠지면 아쉬운 강도현과 박선우의 티키타카 래핑이 그 뒤를 이었다. 멤버들이 무대 양쪽으로 나뉘어 섰고, 그 앞에 우두머리처럼 강도현과 박선우가 마주 보면서 서 있었다. 그리고 마치 양 팀의 대결인 듯 강도현 파트에서는 강도현이 춤추듯이 걸어 나왔고, 박선우 파트로 넘어가자 반대쪽 멤버들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평범했던 풍경이
너의 존재만으로
완벽해졌어]
양쪽의 파트가 모두 끝나고 나서는 모든 멤버가 일순간 정면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제일 앞에 서 있던 클로버들은 거의 기절 직전인 듯했다. 파트 중간중간 숨 쉬는 소리가 그대로 들릴 정도로 리얼한 라이브였는데 그런 와중에도 다들 표정 연기까지 알뜰하게 챙겼다.
[모든 준비가 끝난 지금
달려가고 있어
3 2 1 너를 향한
마지막 카운트다운]
특히 중간에 나온 3 2 1 파트에서는 문승빈이 각 숫자마다 다른 표정을 지어서 클로버들의 함성을 자아냈다. 카메라 감독이 별도 캠으로 클로즈업을 따는 걸 보고 문스트럭은 자기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뭘 좀 아는 분들이 분명했다.
카운트다운의 전체적인 안무는 다른 노래들처럼 복잡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파워풀했다. 하이라이트는 후렴구 안무였다. 바로 직전 파트에서는 각자 프리스타일로 다른 춤을 추던 멤버들이, 후렴구가 시작되면서 동시에 같은 안무를 추는 데서 오는 짜릿함이 엄청났다. 춤추는 손의 각도까지 맞춘 것처럼 모두 일사불란한 움직임이었다. 이제 막 첫 컴백을 하는 그룹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완벽한 합이었다.
[처음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어디서 마주친 것만 같은
(그런 익숙한 느낌)]
노래 후반부에 정유현과 문승빈이 교차로 부르는 파트에서 문스트럭은 전율을 느꼈다. 정유현이 메인 멜로디를 부르면 문승빈이 화음을 쌓듯 다음 파트를 이어 갔다. 승빈이가 메인으로 부르는 파트도 물론 좋았지만, 다른 멤버들의 목소리를 받쳐 줄 때면 오히려 문승빈의 보컬적 역량이 더 돋보이는 듯했다. 메인 멜로디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귀에 박히는 음색이었다.
해당 파트의 안무 역시 무대 정중앙에서 둘이 추는 페어 안무였다. 등을 맞대듯 서서 서로가 보이지 않음에도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완벽한 호흡이었다. 그동안은 무대에서 페어로 잘 엮이지 않았던 조합인지라 더 귀하게 느껴지는 문스트럭이었다.
[3 2 1
아니 이제는 1 2 3
하나 둘 세어 갈
우리 이야기]
마지막 파트 직전에는 모든 멤버들이 일렬로 서서, 마치 모델 워킹을 하듯 같은 동작으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다시 대각선으로 대형을 바꾸더니 시곗바늘처럼 순차적으로 움직였다. 각자 다른 각도로 손을 뻗은 잔상 안무를 마지막으로 카운트다운 무대가 끝이 났다.
이제 겨우 무대 하나를 본 건데도 이들의 지난 연습량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무대를 마친 멤버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넘어왔다. 그리고 잠깐의 정적 후에 그 숨소리를 모두 뒤덮을 만한 함성이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어떻게 이게 타이틀이 아니지?”
“하, 레디도 얼른 무대 보고 싶다.”
“근데 오늘 레디는 안 하는 거지?”
“어, 유출 때문에 레디만 비공 사녹으로 한다는 거 같음.”
“아쉽다.”
그 이후로도 팬송인 [CL♡VER]와 데뷔 앨범 타이틀곡 ‘신세계’ 무대가 이어졌다. 장장 3시간에 걸친 컴백쇼 녹화가 전부 끝나고 나오니 밖은 벌써 환해져 있었다.
“클로버분들, 번호 순서대로 다시 줄 서실게요.”
코어 엔터 직원의 안내에 따라 100명씩 줄을 맞춰 서니, 차례대로 역조공 물품이 전달되었다.
“크리드 분들이 제일 좋아하는 도시락 업체에서 주문했어요.”
화려한 비주얼의 도시락보다도 더 난리가 난 건 함께 들어 있던 폴라로이드의 존재였다. 각 멤버별로 100장씩 준비한 싸인 폴라로이드였다.
* * *
“야, 이거 봐봐. 조회수랑 미쳤음.”
“이게 뭔데?”
A가 보여 준 글은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크리드의 역조공 글이었다.
[오늘자 난리난 아이돌 역조공]
오늘 컴백쇼 촬영했다는 크리드 역조공ㄷㄷ
700명 전원한테 2단 도시락+찐폴라+돗자리 역조공함ㅋㅋㅋㅋ
(도시락 사진) (폴라로이드 사진)
-찐폴라??ㅁㅊ 700장을 다 일일이 찍어서 싸인한 거임?
┕ㅇㅇ 심지어 장소나 착장도 겁나 다양함
-이거 진짜 멤버들이 준비한게 맞는게 폴라가 공백기 시절에 짬짬이 찍어둔 거임ㅠㅠㅠㅠ
┕돌았다.... 폴라는 같은장소 같은 착장으로 포즈만 다른게 국룰 아니었냐며....
-진짜네 공개되는 것마다 겁나 제각각임ㅋㅋㅋㅋㅋ
┕원래는 각 멤버별로 700장 다 찍으려다가 포기했대...
┕그럴 만도.... 100장도 대단함. 나는 평생 찍은 사진 다 합쳐도 700장 안될 듯ㅎ.....
-웬만하면 최애꺼랑 교환할 텐데, 다들 감동받아서 교환도 거의 없나봄
-와 도시락 퀄리티 봐 개맛있겠다.
┕ㄹㅇ... 무슨 후식까지 다 챙겼네ㅋㅋㅋㅋㅋ
-근데 저기 도시락 업체가 대체 어디임??? 비주얼 돌았네
┕우리 애들도 서포트 들어간 적 있는데 ‘00의 한끼’ 여기임
┕오 정보 ㄱㅅㄱㅅ 구경가봐야겠다
-아니 넘 귀여운게 저 도시락 업체가 예전 활동 때 크리드한테 서포트 들어갔던 업체래
┕그니까ㅋㅋㅋㅋㅋ 자기들이 먹어보고 제일 맛있다고 고른 거라며
┕메뉴도 잘 보면 각 멤버들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채워져있음ㅋㅋㅋㅋㅋ
-근데 돗자리는 뭐야??
┕222 갑분 돗자리?????
┕333 돗자리 졸귀인데 대체 왜 준거임??
-돗자리도 웃긴게ㅋㅋㅋㅋㅋㅋㅋ (링크) 이거 봐봐
댓글에 달린 링크를 누르니 또 다른 게시물로 이동했다.
[팬들끼리 다 친구인 줄 아는 아이돌(ㄱㅇㅇ...)]
크리드가 오늘 컴백쇼 촬영하고 팬들한테 역조공했는데 뜬금없이 돗자리가 껴있어서 다들 의아해함. 근데 사실 이거 때문이었음.
지난 데뷔앨범 사녹에서 윤빈이가 팬들한테
“다들 이거 끝나고 뭐하세요? 다같이 점심먹으러 가시나요” 이런 거임ㅋㅋㅋㅋ
해외파 멤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얘는 사녹 온 팬들이 다 아는 사이라고 생각한 거ㅋㅋㅋㅋㅋ
하.... 다시 생각해도 ㅈㄴ귀엽다 아님?ㅠ
멤버들이랑 팬들이 다 빵터지니까 윤빈이 혼자 어리둥절하고ㅋㅋㅋㅋㅋ
그래서 왜 돗자리를 줬는지로 넘어오면 윤빈이가 오늘은 옆자리 분이랑 진짜로 같이 밥먹을 수 있지 않겠냐고. 오늘 날씨 좋으니까 다들 피크닉 온 것처럼 돗자리 깔고 같이 먹고가라고ㅋㅋㅋㅋㅋㅋㅋㅋ 클로버들 진짜 다 귀여워서 뒤집어짐ㅠ
근데 사실 사녹찍을 때까지는 애가 농담한 건줄 알았는데, 나와보니까 찐인 거임ㅋㅋㅋㅋ 씨넷 일산 스튜디오 앞에 공터 있는데 크리드가 씨넷한테 요청해서 전날 다 미리 정리해두고, 진짜로 거기에 돗자리 깔 수 있게 함ㅋㅋㅋㅋㅋ
(사진)
이거 보임?? 공터 중간중간에 크리드 뮤비에서 나온 꽃이랑 풀, 소품들 배치해놔서 팬들 진심 지금 축제 분위기임ㅠㅠㅠㅠㅠ 밥먹다가 사진찍고 진심 소풍나온 기분ㅇㅇ
-아니 역조공도 역조공인데 정성 무슨 일임???
┕ㄹㅇ 나 진짜 이런 역조공 처음 봐ㅋㅋㅋㅋㅋㅋㅋ
-나 지금 현장인데 진짜 도시락 존맛임ㅠㅠㅠ
┕와 전생에 나라를 구함??
┕폼림 어떻게 성공함?? 대박이다ㅠㅠㅠㅠ
-아니 진심 그라데이션 놀람임. 역조공? 2단도시락?? 찐폴라??? 돗자리????
┕너=나 스크롤 내리면서 계속 놀라는 중ㅋㅋㅋㅋ
-아 근데 쟤가 윤빈이라고? 덩치랑 다르게 겁나 귀엽다
┕22 나 쟤 저런 성격인지 처음 알았음ㅋㅋㅋㅋㅋ
┕윤빈이 진심 아직 자기가 다 자란지 모르는 대형견 그 자체임ㅠㅠㅠㅠ
┕입덕해 (짝) 입덕해 (짝)
-광탈했는데도 애들 맘이 넘 예뻐서 감동함ㅠㅠㅠㅠ
┕22 나 진짜 배찢어질뻔했는데 인증샷 뜨는 거 보면서 걍 같이 웃는 중ㅋㅋㅋㅋ
┕333 애들도 귀엽고 저기서 진짜 같이 도시락 까먹는 클로버들도 귀여움ㅋㅋㅋㅋ
“잠깐, 승빈이 공계 떴다.”
“아씨, 내 꺼 알림 왜 이래? 남찍사 미쳤네.”
“윤빈이 사진은 승빈이가 찍어 준 건가? 귀엽다-”
[안녕 클로버! 오늘 컴백쇼 촬영했는데, 클로버들에게 멋진 모습 보여주고 싶어서 멤버들이랑 정말 열심히 준비했어요! 그리고 저희가 준비한 선물 마음에 들었나요? 다음번에는 더더 좋은 선물 드릴 테니까 쭉 함께하기, 약속! 앞으로 더 좋은 무대로 클로버에게 행복을 주고 싶어요! 사랑해요♡
ps. 클로버들끼리 짱친 됐다고 윤빈 형한테 알려주니까 엄청 좋아했어요ㅎㅎ]
-ㅁㅊㅋㅋㅋㅋ애들도 클로버들 소풍간거 봤나봄
-여기서 얼마나 더 잘해주겠다는거이뮤ㅠㅠㅠㅠ
└평생 클로버하겠다는 피의 연합 모집합니다
-애들 마음이 너무 예쁘뮤ㅠㅠ
“하… 우리 애들 너무 착해서 어떡하냐?”
“X나 사랑스러움…….”
“단체로 예쁜 짓하고 칭찬해 달라고 꼬리 흔드는 강아지들 같아서 너무 괴로움.”
“이미 예쁜데 계속 사랑해 달라고 하는 아이돌 안 사랑할 수 있음? 난 못 해.”
“불가능하지.”
매번 사랑에 빠질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수없이 외쳤지만, 이번에는 정말 오랫동안 그 약속을 지킬 거 같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문스트럭은 탄식했다.
“이미 망했어… 최소 논산 훈련소임.”
그리고 그런 그녀를 더 미치게 만들 마지막 티저가 공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