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174화 (174/346)

174화

컴백쇼를 하루 앞두고 미션을 통해 얻은 포인트를 어디에 적용할지 고민했다. 원래는 고민 없이 외모에 추가할 생각이었지만 신곡 ‘레디’의 특성상 끼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앨범 타이틀곡 ‘레디’는 힙합 베이스에 잔박자가 많은 곡으로 안무 역시 그루브와 느낌이 중요했다. 단체로 흑발을 하기도 했고, 비슷한 스타일링 속에서도 묻히지 않기 위해서는 무대 위에서의 끼가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끼에 1포인트 추가해 줘.’

[이름: 문승빈]

외모: A-

끼: B+ → A-

보컬: A+

댄스: B-

프로듀싱: B

“자, 내일이 컴백쇼니까 마지막으로 리허설 해 보자.”

“라이브도 같이 하는 거죠?”

“응.”

음악이 시작되고 실제 무대라고 생각하며 몰입했다. 지금은 거울 앞에서 땀에 젖은 우리만 보이지만, 내일은 클로버로 가득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피곤함도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너에게 지금 달려가

Run to you

운명의 바톤을 쥐고

숨차게 Run to you]

끼 포인트를 높이기 잘했다는 것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춤 노래에 대한 해석을 더 심층적으로 하게 된 것이 눈에 보였다. 다른 멤버의 반응으로도 알 수 있었다.

“승빈이 형, 뭘 연습한 거예요?”

“응?”

“거울로 보는데 자꾸 형한테 시선이 가서요.”

“그래?”

“맞아. 이번 노래에 엄청 잘 어울리는데?”

“그냥 노래, 춤을 잘하는 게 아니라… 눈이 가.”

외모가 아이돌의 기본이라면, 끼는 플러스 요인이자 성장의 증표다. 외모가 뛰어나지만 끼가 없는 아이돌은 초반 입덕을 가져올 수 있지만, 결국 향기 없는 꽃 취급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외모가 끼가 될 만큼 최상위의 비주얼이라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아무튼 끼가 아이돌을 가장 빛나게 해 주는 요소인 것은 분명했다.

“다행이다. 되게 고민이 많았는데-”

“네가 고민을? 그럴 이유가 있나?”

‘애초에 끼 포인트가 최대치였던 강도현 너는 쉽게 공감 못 하겠지…….’

“이번에 다들 흑발을 하니까… 어떻게 해야 안 묻힐까 고민이었지 뭐.”

“와- 올해 들은 고민 중에 제일 쓸데없는 소리다, 승빈아.”

선우 형의 목소리에 진심이 가득했다.

“맞아. 전혀 안 묻혀 보였어. 너는 우리 팀 메보잖아-”

“우리가 더 노력해야겠는데? 승빈이한테 안 가려지려면”

지운이 형이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고, 다른 멤버들도 장난스레 웃었다. 친하다는 이유로 장난으로라도 자존감을 깎아내리거나 놀리는 사이도 많은데 우리 팀의 장점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자존감 지킴이가 되어 준다는 점.

“너무 비행기 태우는 거 아니에요?”

“서로서로 칭찬해 주는 게 좋지-”

선우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끼리라도 서로에게 잘했다고 칭찬하고 좋은 말로 의욕을 북돋아 줘야지. 직업 특성상 끊임없이 평가를 받고, 수많은 긍정적인 말들 사이에서도 나쁜 말 하나가 더 눈에 들어오기 쉬웠다. 그러니 사소한 일이라도 서로 칭찬할 점을 먼저 찾아야 이 직업을 오랫동안 건강하게 할 수 있을 테지.

“고마워. 다 멤버들 보면서 하나하나 배워 가서 그런 거 같아.”

“이번 컴백 완전 대박 날 거 같지 않아?”

“맞아. 느낌이 좋아!”

새벽이 다 되어 가는 시간이었지만, 누구 하나 연습을 그만둘 생각이 없어 보였다.

* * *

컴백을 앞두고 세상 모든 게 크리드를 위해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피겨 예능 ‘플레이 온 아이스’는 첫 화부터 화제성을 단단히 챙기더니 2화에서는 거의 문승빈을 위한 프로그램 수준으로 편집되었다. 게다가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컴백 홍보로 찍은 예능 ‘떠나볼까’에서 정유현이 스텝을 구한 일까지 생기면서 크리드 컴백이 연일 화제의 중심이었다.

그리고 그 화제성을 증명할 만한 마지막 서프라이즈, 컴백쇼 공지가 떴다.

[CR:ID 컴백쇼 참여 안내]

“미친, 우리 애들 이번에 컴백쇼 찍는 거임?”

“대박. 신인인데 컴백쇼라니, 씨넷 작정했네, 진심.”

“사실 데뷔 앨범 때도 조금 기대했는데 쇼콘이라서 아쉬웠음.”

“왜? 너 쇼콘 겁나 좋아했잖아.”

“물론 좋았지만, 컴백쇼는 수록곡 무대도 영상이 예쁘게 남으니까.”

“아, 그건 그렇네.”

“근데 공지 왜 이렇게 안 열려.”

“진심, 공지 뜰 때마다 서버 터지는 듯.”

“이 정도면 자체 서버 포기할 법도 한데 씨넷도 대단함.”

“레알, 지네 사이트 키우겠다고 공지를 저기에만 올리는 거 진심 킹받음.”

새로 고침을 반복해도 무한 로딩인 사이트가 이젠 익숙해질 법도 한데, 매번 열받는 그녀들이었다.

“아, 제발. 날짜 실화임?”

“떴어? 언젠데?”

“당장 이번 주 토요일 새벽 2시.”

“그래도 평일 아닌 게 어디냐.”

“그리고 인원수 700명.”

“뭐?”

“700명을 누구 코에 붙이냐고 진심.”

일반적인 공방 인원보다는 많은 숫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클로버들에게는 턱없이 부족한 참여 인원이었다. 지난 데뷔 앨범 쇼콘이 7,000명 규모로 진행되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딱 1/10이었으니까.

“근데 차라리 새벽 2시면 막차 타고 가서 기다리면 되니까.”

“그건 그래. 새벽 4-5시면 진짜 최악인데.”

“뽑히기만 하면 뭔들 못 하겠니. 우리 투마월 파이널 때를 생각해 봐.”

“못 가면 죽음뿐.”

휴대폰을 붙잡은 문스트럭의 손이 부자연스럽게 떨렸다. 공지가 뜬 순간부터 초조해지기 시작한 그녀였다.

그리고 그 주 토요일, 걱정이 무색하게도 그녀는 지금 크리드 컴백쇼 현장이었다. 거리에 아무도 없을 만큼 칠흑같이 어두운 시간에 비슷한 또래의 여성들이 하나둘 광장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이번 컴백쇼는 무대 스케일 때문인지 익숙한 상암 방송국이 아니라, 일산에 위치한 씨넷의 스튜디오가 오늘의 녹화 장소였다. 아이돌 덕질 고인물인 문스트럭도 방문한 적이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곳이었다.

“야, 여기!”

“진심 일산 개멀어.”

아쉽게도 K만 광탈해서 오늘의 참전 인원은 문스트럭과 A 둘뿐이었다. 사실 700명 중에 둘이나 뽑힌 것도 기적이긴 했다.

“얼마나 걸렸냐?”

“진짜 거의 2시간 걸린 거 같은데?”

“운전하느라 더 피곤했겠네.”

“와, 진짜 이렇게까지 해서 애들 보러 와야 하나?”

“어.”

“맞아. 당연함. 크리드임.”

가을 밤바람은 꽤나 살벌했기에, 담요를 걸치고 있는 사람도 곳곳에서 보였다. 바람이 한번 휩쓸고 지나갈 때마다, 담요나 외투를 부여잡은 손에는 힘이 잔뜩 실렸다. 그럼에도 마주하는 얼굴들에는 모두 설렘이 가득했다. 역시 사랑은 모든 것을 이겨 내니까.

“이제 10분 뒤면 2시다.”

“제발 딜레이 없이 시작하길.”

새벽부터 사녹을 잡은 씨넷도 양심은 있었는지 다행히도 인원 체크는 건물 안에서 진행되었다. 새벽 2시에서 거의 두 시간은 더 지나고서야 드디어 녹화장으로 팬들이 입장했다.

“세트 미쳤다.”

“무슨 노래부터 하려나?”

“뭔가 카운트다운 삘이다.”

“그러게. 벽 세워 둔 거 보면.”

“씨넷 진짜 컴백쇼 작정하고 준비했네.”

첫 무대부터 엄청난 스케일의 세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야외 무대인 것처럼 무대 곳곳에서 풀과 꽃이 세팅되어 있었고, 무대 중앙에는 그라피티가 그려진 벽이 위치해 있었다. 카운트다운 뮤직비디오의 첫 장면을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크리드분들, 준비하실게요.”

PD의 말과 함께 크리드가 무대 뒤쪽에서 등장했다.

“클로버, 안녕~”

“와, 대박. 클로버 분들 진짜 많이들 와 주셨네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엄청난 데시벨의 함성이 녹화장 안을 가득 채웠다.

“미친, 의상 돌았나.”

“애들 진짜 다 흑발인가 봐요.”

“와, 흰 티에 청바지 진짜 미쳤다.”

무엇보다도 클로버들을 소리 지르게 한 건 바로 의상이었다. 카운트다운이 첫 무대인지, 뮤직비디오에서 입고 나왔던 흰티에 청바지 의상을 그대로 입고 나온 거다. 적당히 달라붙은 티셔츠의 핏과 나시를 입은 일부 멤버들의 팔근육 덕에 다들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물론 당연히 절대 현실에 없다는 걸 그 누구보다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세팅되지 않은 듯한 흑발에 저런 착장을 입으니 그나마 현실에 존재할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얼굴을 보면 그 현실감이 바로 사라졌지만 말이다.

“자, 인사드리겠습니다.”

“본투샤인! 안녕하세요, 크리드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 혼돈 속에서도 모든 멤버가 다 무대 위로 올라오자, 정유현의 구호에 맞춰 모든 멤버가 인사했다.

“여러분, 밥 먹었어요?”

“네!”

“아니, 지금 새벽 4시야 도현아.”

“다들 진짜 밥 드신 거 맞아요? 저녁 말고?”

“맞아요. 지금 식당도 다 문 닫았을 텐데.”

“뭐야, 클로버들 완전 거짓말쟁이-”

질문이 무엇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흑발 강도현이 저 얼굴로 웃으면서 밥 먹었냐고 물어봤는데, 아니라는 말이 나오겠냐고. 사람 죽인 적 있냐고 물어봤어도 아무 생각 없이 그렇다고 대답할 만한 죄 많은 얼굴이었다. 최애가 아니었음에도 홀린 듯이 ‘네.’라고 대답한 문스트럭이었다.

‘이게 바로 공방 오는 맛이지.’

개인 멘트를 할 수는 없었지만, 콘서트나 다른 스케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사전 녹화만의 몽글몽글한 분위기가 있었다.

“여러분, 밥 드시고 오셨으면 안 되는데~”

“그니까. 다시 한번 물어볼게요. 다들 밥 먹었어요?”

답지 않게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연 정유현에 함성이 더 커졌다.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된다는 듯한 분위기에 클로버들은 다시 한번 홀린 듯이 외쳤다.

“아니요!”

“와, 대박. 클로버들 목소리 최고다.”

“밥도 안 먹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큰 소리를 낼 수 있어요?”

“밥 먹고 왔으면 큰일 날 뻔했네.”

“오늘 녹화 끝나고 저희가 맛있는 거 준비했으니까, 다들 꼭 먹고 가야 해요.”

“오늘은 진짜 옆자리 클로버랑 밥 먹을 수 있겠죠?”

인터넷에서 유명한 본인 썰을 알기라도 하는 듯 윤빈이 웃으며 말했다.

“맞네, 윤빈이가 우리보고 다 같이 밥 먹으러 가냐 그랬잖아요.”

“그때 진심 누구라도 붙잡고 밥 먹으러 가야 하나 했음.”

“저는 그날 현장에서 그 얘기 듣고 정말로 옆에 앉은 분이랑 얘기하다가 밥 먹으러 갔어요.”

“대박, 윤빈이가 이어 준 인연이네요.”

“네, 그 이후로도 계속 같이 덕질하는데 걔는 오늘 광탈해서 못 왔거든요.”

지난 데뷔 앨범 활동 때 이뤄진 사녹에서 윤빈이 녹화 끝나고 다 같이 밥 먹으러 가는 거냐고 물어봐서 하나같이 빵 터진 적이 있었다. 해당 후기는 수많은 리짹을 기록하고 SNS까지 퍼지고는 했다. 사전 녹화를 보러 온 클로버들이 다들 아는 사이인 줄 알았던 윤빈의 귀여운 일화였는데, 오늘 그게 정말 현실로 다가온 거다.

역조공도 역조공이지만, 세세한 것까지 기억하면서 또 다른 추억을 만들게 해 주는 크리드 멤버들의 마음에 더 감동받은 클로버들이었다.

그렇게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세트가 전부 준비되었고, 마침내 컴백쇼 첫 무대가 시작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