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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171화 (171/346)

171화

유난히도 크게 울린 문소리를 마지막으로 병실에는 정적이 가득했다. 나에게도 꽤나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우선 소연이가 놀라지 않게 이야기를 이어 갔다.

“소연아, 유현이 오빠가 화장실이 급한가 봐.”

“무슨 소리예요. 유현이 오빠는 화장실 같은 거 안 가요!”

“아… 그래?”

“그럼요! 승빈 오빠도 화장실 안 가잖아요!”

“…큽.”

매니저 형이 웃음을 참는 소리가 삐져 나왔다. 차라리 웃으시지. 참는 소리가 더 클 일인가 싶었지만, 그럴 만한 상황이긴 했다.

“그렇네, 맞다. 그럼 유현이 형이 뭘 좀 놓고 왔나 봐.”

“유현이 오빠 더 보고 싶은데-”

“내가 유현이 형 찾아올게. 여기 매니저 형이랑 잠깐 놀고 있어, 알았지?”

급하게 소연이를 달래고 병실을 빠져나왔다. 다행히 정영훈 씨도 더 이상 그 공간에 남아 있기는 힘들었는지, 함께 병실 밖으로 나왔다.

“…안녕하세요. 유현이 형 아버님이시죠?”

사실 유현이 형 아버지가 처음 등장하는 그 순간부터 고민했다. 과연 여기서 아는 척을 해야 할까? 이 세계의 나는 저분이 유현이 형 아버지라는 걸 아직 모르고 있는 게 맞으니까. 지금껏 회귀 전 기억을 무수히 많이 써먹었음에도, 그게 가족과 관련되니까 쉽게 판단할 수 없었다. 내가 남의 가정사에 끼어드는 게 맞는 걸까? 무슨 자격으로?

하지만 부모님 얘기가 나올 때마다, 미묘해지던 유현이 형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건 분명 그리움의 얼굴이었다. 누구보다 그 감정을 잘 알고 있기에 알아볼 수 있었다. 회귀 전 내가 그런 얼굴로 가족을 그리워했거든.

“유현이 형한테 몇 번 얘기 들었어요. 덕분에 사람을 살릴 수 있었다고-”

그래서 입을 열었다. 부디 이 선택이 옳은 방향이기를 바라면서.

“…우리 유현이가?”

‘됐다.’

정영훈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몇 번이고 마주했던 유현이 형의 그 표정과 놀라울 정도로 똑같았다. 둘이 부자지간인 걸 몰랐어도, 저 표정을 마주했다면 바로 눈치챌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얼굴이었다.

“네, 너무 늦게 인사드렸네요. 형이랑 같이 활동하고 있는 문승빈이라고 합니다.”

“아, 그래요. 내가 초면에 실수했네요.”

“아닙니다! 저희가 말도 없이 찾아온 게 문제였죠.”

“소연이가 얼마 전에 급격하게 상태가 안 좋아져서 순간 예민했네요.”

“사실 저희도 그렇다는 편지를 받고, 급하게 왔습니다.”

정영훈의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와 줘서 고마워요. 소연이가 웃는 걸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

“그건 제가 아니라 유현이 형한테 해 주셔야 할 거 같아요.”

“유현이가?”

“네, 형 저기 비상구 뒤쪽에 있을 거거든요.”

저 덩치로 뭘 숨겠다는 건지. 비상구 문 뒤쪽에 불빛이 깜박거리는 걸 보고 이미 눈치챈 지 오래였다. 잠시 망설이는 듯했지만, 정영훈은 이내 결심한 듯 걸음을 옮겼다.

* * *

한동안 아무 말도 오가지 않던 공간의 정적을 깬 것은 놀랍게도 정영훈이었다.

“기사 봤다. 그걸 여태 기억하고 있었구나.”

‘스태프 응급 처치 일을 알고 있는 건가?’

가족의 연을 끊은 것처럼 보였지만 역시 그 정도로 매몰찬 사람은 아니었다.

“그때 아버지가 저한테 시범 보여 준다고 했다가, 저 토할 뻔했잖아요. 그걸 어떻게 잊겠어요.”

“안 그래도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할까 봐 조마조마했다.”

정영훈의 말에 정유현의 옅은 미소 소리가 들렸다. 정유현과 정영훈의 대화는 생각보다 더 담백했다. 혹시라도 언성을 높이거나, 이들의 관계가 더 악화될까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잠시 둘 사이에 정적이 오갔고, 곧 정영훈이 말을 이었다.

“소연이가 네 팬이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하긴, 모를 수 없었겠죠.”

“그 앨범도 내가 선물로 준 거다.”

“…네?”

“사춘기 중학생의 대화 주제에 따라가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 걸 넌 모르겠지.”

아직까지는 화기애애한 대화 분위기에 긴장이 서서히 풀리고 있었다. 적어도 정영훈 역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그것도 얼마 지속되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단다.”

“…….”

정영훈의 낮은 목소리 때문인지 순식간에 긴장감이 오갔다. 이들이 최소 몇 달은 대화를 단절하고 산 사이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순간에 손바닥 뒤집듯 변할 수 있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처음 네가 아이돌 연습생이 되겠다고 했을 때 우리 가족 모두 장난치는 줄 알았다. 착실하게 공부만 하던 애가 하루아침에 아이돌이 되겠다고 하니 당황스러웠던 건 사실이야. 네 데뷔가 결정되던 날은 방송으로 보면서 네 엄마가 몇 번을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 얼마나 난리쳤는지 모를 거다.”

“그래서 파이널 전에 전화하셨던 거였어요?”

“그때가 아니면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어렸을 때는 저도 그게 제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죠. 열심히 공부하고, 부모님처럼 의대에 진학해서 의사가 되는 삶이 옳은 거라고 끊임없이 말씀하셨잖아요.”

“사람을 살리는 일만큼 가치 있고, 옳은 일은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정영훈의 목소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역시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회귀 전 정유현이 정영훈의 아들임이 언론에 공개되었을 때, 그에 대해 수많은 선행 기사가 나왔었다. 병원비를 낼 경제적 여력이 안 되는 가정에 무료 진료를 해 주고, 꾸준히 아동 및 청소년과 관련된 기부를 해 온 사람이었다. 눈앞의 이익보다는 의사의 역할과 본질적 가치를 더 중요시하는 사람이라고, 그 당시에도 감명 깊게 봤던 기억이 있다.

“내가 그 길을 걸어왔고 너 역시…….”

“그게 저에게는 아이돌이었어요.”

“뭐?”

정유현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감정적인 동요를 보이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보여 준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에게도 낯선 목소리였다.

“의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가치 있고, 중요한지 알아요. 아버지가 살아온 삶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도와 왔는지도 알아요. 하지만.”

정유현이 숨을 고르고 말을 이어 갔다.

“전 제가 정말 원하는 일을 하는 것만큼 제 인생에 가치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너…….”

“사람을 살리는 것만큼 숭고한 이유가 될 수는 없죠. 하지만 단 한 번이라도 제가 선택하고 싶었어요, 제 미래를.”

“유현아, 나는…….”

정유현은 정영훈의 말이 두 마디 이상 이어지지 않도록 급하게 자신이 할 말을 먼저 내뱉었다. 혹시라도 과거와 같이 망설이거나, 뒷걸음질 칠까 봐 선수를 치는 듯했다.

“아버지가 전에 말씀하셨죠?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라고. 저는……!”

“이미 알고 있다, 유현아.”

“…아버지.”

“네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거, 이미 알고 있다.”

과열됐던 공기가 한순간에 제 온도를 찾은 듯 고요해졌다. 숨 쉴 틈 없이 말하던 정유현도 예상외의 대답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문 너머로 듣고 있던 나 역시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

“그게 무슨…….”

“너를 좋아하기 시작하면서 소연이가 웃는 날이 정말 많아졌단다. 매일 무기력하게 병실 창문 밖만 보던 애였는데 말이야. 소연이는 내가 의사로서 해 줄 수 있는 그 이상의 치유를 너에게서 얻은 거야. 그걸 난… 뒤늦게야 인정한 거고.”

정영훈과 정유현의 대화를 들으면서 아이돌이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다. 누군가는 아이돌을 여전히 딴따라라고 생각할 것이고, 한순간 반짝이다가 사라지는 별과 같은 존재라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내 목소리와 존재 덕분에 하루를 보낼 수 있다고 하고, 병과의 사투에서 꼭 이겨야 할 명분이 되기도 한다.

티벡스로 4년간의 망돌 시간을 보내면서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나를 붙잡아 줬던 말이 있다. 조회수가 천 단위도 안 됐던 내 개인 행사 직캠에 달린 댓글이었다. 문스트럭이 찍은 영상이었는데, 폭우 속에서 진행한 계속 넘어지고 미끄러지는 무대여서 나도 잘 못 보는 영상이었다.

오죽하면 문스트럭이 설명란에 찍는 동안 여러 번 카메라를 내려놓아서 중간중간 끊겨 있다고, 이런 날씨에도 무대 열심히 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남길 정도였다.

[정말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할 때마다 보러 오는 영상.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모습에서 많은 용기를 얻고 가요.]

내가 스스로 가장 밑바닥이라고 생각한 순간에도 누군가에게는 희망을 주고 있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었다.

누군가를 응원하고 애정하는 마음은 생각보다 더 큰 힘을 준다. 말도 안 되는 기적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리고 그 마음을 받는 것만으로도 아이돌은 직업 그 이상의 가치를 선물하고 선물받는 행운을 얻은 셈이다.

혼자서 다시 한번 다짐했다. 절대 나를 좋아했던 기억을 부끄럽거나 지우고 싶은 기억으로 만들지 않겠다고. 지금의 팬들이 일평생 나만을 좋아할 거라고는 생각 않는다. 그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고. 하지만 적어도 ‘그때 내가 참 괜찮은 사람을 좋아했었다.’고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게 불특정 다수의 대가 없는 사랑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한 아주 작은 보답이겠지.

“네 데뷔가 확정되던 날부터 끊임없이 고민했다. 언제 연락을 해야 할까,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까.”

“…….”

“네 성격이 어떤지 알기 때문에 섣불리 먼저 말할 수가 없더구나.”

“…제 성격이 어때서요.”

“애매한 거 싫어하고, 대충하는 거 싫어하고, 정확한 거 좋아하고. 그러니까 그 몇 달 동안 연락 한 번을 안 했지.”

“그거 다 아버지 닮아서 그런 거잖아요.”

“그렇지. 누구 아들인데.”

진지한 둘의 대화에 내가 웃음이 터질 뻔했다. 부전자전이라는 말이 틀린 게 아니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너 괜찮을 때 엄마한테도 연락 한번 드려. 나보다 더 마음고생 많이 했을 거다.”

“네.”

“이제 올라가자. 소연이 기다리겠다.”

밖으로 나오려는 소리에 맞춰서 나도 자연스럽게 화장실을 갔다 온 척 걸어갔다. 슬쩍 보니 눈가가 붉어져 있었다. 정유현은 급하게 고개를 돌려 눈가를 훔쳤다. 이번에도 유현이 형의 눈물을 보는 건 실패였다.

“뭐야, 형. 여기 있었어? 소연이가 형 어디 갔냐고 물어보는데 몰라서 난감했잖아- 아, 안녕하세요, 아버님. 또 뵙네요.”

머쓱한 척 인사하자 처음 볼 때보다는 확실히 유해진 얼굴로 인사를 받는 정영훈이었다.

“응, 이제 올라가려고.”

“빨리 가 봐-”

유현이 형은 나를 스쳐 지나면서 조용히 ‘고맙다’라고 말했다.

‘내가 일부러 둘을 만나게 한 걸 알았나?’

평소 눈치가 빠른 형이기 때문에, 이미 눈치챈 듯했다. 정영훈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병실로 돌아가는 둘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매니저 형의 독촉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

[곧 소속사 복귀해야 해]

[소연이 울려고 한다ㅠ언제 와?]

[나 지금 크리드 전곡 랜덤플레이 댄스하고 있다.]

[언제 오니…]

[이제 유현이 형이랑 아버님 올라갈 겁니다!]

[저도 바로 올라갈게요.]

[누구든 제발 빨리 와줘…]

여태껏 본 적 없는 매니저 형의 다급한 SOS 요청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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