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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170화 (170/346)

170화

매니저 형은 의아해하면서도 스케줄을 확인해 보겠다고 흔쾌히 답을 줬다. 우리 중에서도 유독 외출하는 일이 적었던 정유현이 스케줄까지 조정하면서 만날 사람이 누구일까, 궁금해졌다.

숙소로 돌아와 모두가 잠든 시간에도 정유현은 팬들이 준 편지 뭉텅이를 하나씩 꺼내 보고 있었다.

“안 어두워요?”

“안 자고 있었어? 너희 자는 줄 알고 안 켰지.”

“저도 그런 줄 알고 휴대폰 조명으로 보고 있었는데.”

핸드폰 조명을 흔드니 정유현이 피식 웃었다.

“너, 잠 안 오지?”

“조금 출출한 것 같은데요?”

다행히 지운이 형이 잠귀가 밝은 편이 아니어서 우리 둘의 대화에도 곤히 잠들어 있었다. 조용히 방문을 닫고 부엌으로 향했다. 컴백 준비 기간이어서 야식이라고 해 봤자 우유에 다이어트용 시리얼을 말아먹는 게 전부였지만, 아쉽긴 했다.

“강도현이 보면 야식 금지 기간에 왜 야식 먹냐고 뭐라 하겠는데요?”

“너 모르는구나? 강도현 몰래 야식 먹다가 나한테 몇 번 걸렸었는데.”

“아, 진짜요?”

모두가 잠든 새벽에 야식 먹다가 걸린 강도현과 그 자리에서 잔소리했을 정유현을 생각하니, 자꾸 피식거리게 됐다.

둘이서 따로 대화를 나눈 건 윤빈 형 습격 사건 이후 정말 오랜만이었다.

“저희 둘이 이렇게 얘기하는 건 진짜 오랜만 아니에요?”

“그러게.”

“데뷔하고 진짜 정신없었죠?”

“사실 처음에는 리더 역할을 잘해 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아.”

“그래도 저 같은 멤버가 있어서 덜 힘들지 않았나요?”

“참나. 요즘엔 네가 제일 정신없거든?”

데뷔하고 꾸준히 멤버들과 얘기를 나누는 시간은 있었지만, 대부분 밤과 새벽에 잠깐씩 진행되어서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해 내심 아쉬웠다. 그런데 이번 기회에 정유현이 데뷔를 하고 가졌던 생각, 고충들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고 팀이니까… 잘하고 싶어.”

“이미 잘하고 있어요.”

“고맙다.”

정유현에게 아이돌이라는 꿈이 주는 크기는 생각보다 더 커 보였다. 투마월 당시에는 모두가 경쟁 상대였기 때문에 차갑기도 하고 인간미가 없게 느껴졌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꿈을 지키려던 정유현 나름의 방어기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실제로 데뷔하고 나서 정유현은 조금 유난이다 싶을 정도로 멤버들과 팀에 대한 애정을 보이곤 했으니까.

“처음에는 형이 이렇게 애정을 보이는 게 있다는 것 자체가 적응이 안 됐어요.”

“되게 솔직하다?”

“지금은 아니니까 하는 얘기죠.”

옅게 웃던 정유현이 뭔가 결심한 듯,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말했다.

“사실 우리 부모님이 의사야. 우리 형도.”

“그래서…….”

“응. 나 역시 어렸을 때부터 의대에 가야 한다는 말을 귀에 피가 나도록 듣고 자랐어. 그게 전부라고 생각해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갈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더 이상 연락하지 않을 각오로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 거야.”

정유현이 데뷔와 팀에 집착하리만치 애정을 가진 이유가 이제 이해가 됐다. 나 역시 비슷한 이유였으니까. 비록 데뷔라는 꿈 자체가 너무 중요해서 성급한 판단으로 티벡스로 데뷔하는 실수를 저질렀지만. 정유현이 이렇게 속 얘기를 꺼낸 것도 결국에는 팀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어휴, 우리 팀은 왜 이렇게 부모님 말 안 듣고 데뷔한 사람이 많은 거야?”

“자기 소개 하는 거야?”

분위기를 풀어 보려 한 말이었지만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이런 주제로 동질감을 가지는 게 씁쓸했지만, 아이돌을 꿈으로 정한 이상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이 기회에 정유현이 누구를 만나러 가는 건지 은근슬쩍 물어보기로 했다.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기도 하고, 이게 정유현의 트라우마와 연관이 있다면 미리 알아 두는 것도 분명 도움이 될 거니까.

“근데 형, 누구 만나려는 거예요?”

“그게…….”

“아, 말하기 곤란하면 안 해도 돼요. 저는 그냥 궁금해서.”

“…아니야. 말해 줄게.”

정유현이 컵에 담긴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시작했다.

“몸이 아픈 팬한테서 편지가 왔어. 소연이라고 아직 중학생밖에 안 됐는데, 어렸을 때부터 병 때문에 병원 생활을 오래 했대. 데뷔하고 지금까지 거의 매일 편지를 보냈거든. 원래는 소연이가 손 글씨로 편지를 보냈는데, 어제 온 편지는 글씨가 다른 거야.”

“설마.”

“상태가 악화되어서 어머니가 대신 편지를 써 주신 거더라고. 다행히 고비는 넘겼대. 심장이 철렁했어.”

“아…….”

“편지에도 항상 버킷리스트가 나랑 크리드 만나는 거라고 했었거든. 더 늦기 전에 그 소원… 꼭 들어주고 싶어.”

“다른 애들한테도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모두 가게 되면 병원이 소란스러워질 거야. 그냥 혼자 조용히 갔다 오려고.”

“그럼 저, 저도 가고 싶어요.”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었다.

“애들한테는 비밀로 해 줘.”

“대신 소연이 상태 좋아지면 그땐 다 함께 찾아가기로 해요.”

“알았어.”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새벽 3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내일 연습이 몇 시부터였죠?”

“한 4시간 잘 수 있겠다.”

“그 정도면 거뜬하죠-”

체력 스텟을 높인 보람이 있었다. 스케줄에 연습까지 하루 온 종일 에너지를 쓰고도 체력이 남아 있는 게 신기했다.

* * *

“유현아, 잠깐만 나와 봐.”

매니저 형의 부름에 정유현이 연습실 밖으로 나섰다. 곧 들어와서는 나에게 조용히 전달했다.

“오늘 저녁에 1시간 정도 갔다 와도 될 것 같대.”

“선물이라도 사 갈까요?”

“내가 준비한 게 있어.”

‘섬세하네.’

연습하는 내내 만나게 되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가 그냥 자연스럽게 팬 사인회에서 팬을 만날 때처럼 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를 좋아하는 마음은 다른 팬들과 다름없으니까.

저녁에 어디를 가냐는 멤버들의 질문에, 영화 보고 오겠다고 얼버무리고 나왔다. 이 시간에 그것도 둘이 영화를 보러 가냐며 선우 형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치밀한 정유현은 영화표 예매 창을 보여 줬다.

“대박, 그건 언제 준비한 거예요?”

“하고 바로 취소하면 돼서 캡처만 하고 바로 취소했지.”

눈에 띄지 않는 무채색의 옷, 마스크에 모자까지 중무장을 했다. 선글라스도 써야 하나 했지만, 그러면 오히려 너무 꽁꽁 싸매서 연예인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수 있으니 포기했다. 매니저 형과 함께 미션 임파서블을 방불케 하는 병원 방문기였다. 몰려다니면 의심받을 수 있어서 일부러 몇 걸음씩 떨어져서 이동했다. 병실 호수는 유현이 형이 미리 알려 줘서 동선을 달리하다가 정해진 시간에 병실 앞에서 만나게 되었다.

“너희 이번 콘셉이 단체 흑발이어서 진짜 다행이다.”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요?”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 보니 잠이 든 소연이와 어머니가 보였다. 소연이의 자리는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침대 옆 선반 가득 크리드의 앨범과 정유현의 사진, 굿즈들이 놓여 있었으니까. 잠든 딸의 얼굴을 가만히 쓰다듬던 어머니 곁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갑자기 정체를 공개하면 놀랄까 봐 미리 적어 둔 쪽지를 건넸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쪽지를 확인하던 어머니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틀어막고 물었다.

“어, 어떻게…….”

“편지 보고 꼭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대화 소리에 잠이 깬 건지 소연이가 뒤척이기 시작했고, 서서히 눈을 떴다.

“뭐야… 진짜 유현이 오빠 닮았다아…….”

“꿈인 줄 아나 봐요.”

“옆에는 문승빈이네…….”

“역시 최애랑 반응이 다르네.”

확연히 다른 온도 차에 매니저 형을 포함한 우리 모두 웃음이 터졌다.

“소연아, 일어나 봐. 일어나서 여기 좀 봐 봐.”

“……?”

정유현이 눈앞에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는지 연신 눈을 비비던 소연이 한순간에 긴장이 풀린 듯 바람 빠진 소리를 내더니, 얼굴을 양손에 묻었다.

“편지 항상 잘 읽었어. 고마워.”

“말도 안 돼…….”

“소연아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크리드 왔는데 한 번이라도 더 봐야지-”

침대 옆 선반에 놓인 크리드 데뷔 앨범 속 정유현과 눈앞의 정유현을 번갈아 보던 소연이 울먹이며 물었다.

“이거 꿈 아니지, 엄마?”

“볼이라도 꼬집어 줄까?”

“내가 이미 해 봤는데 아팠어. 이거 현실이지?”

“현실 맞아, 소연아. 여기, 선물.”

정유현이 준비한 선물은 크리드 사인이 담긴 앨범과 편지였다. 선물을 받아든 소연의 팔에는 무수히 많은 주사 자국이 있었지만,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감사합니다! 진짜 오늘 죽을 때까지 못 잊을 것 같아요! 승빈이 오빠도 같이 보고…….”

“이제 승빈이 오빠라고 해 주네-”

어머니의 말에 소연의 두 눈이 커지며 나에게 물었다.

“저, 저 혹시 뭐 잘못 말했어요?”

“아니, 아니야.”

듣고 있던 어머니도 방금 전 일이 생각나는 듯 웃음을 참고 계셨다.

“근데 오빠, 진짜로 제가 보낸 편지 다 읽었어요?”

“당연하지. 맨날 병실 호수도 적었었잖아. 오늘 그거 보고 찾아온 거야.”

“거봐, 엄마- 내가 적어 두면 언젠가 놀러 올 거라고 했지?”

“그래, 우리 딸 대단해.”

한참 동안 정유현의 선물을 하나하나 살펴보던 소연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엄마, 나 진짜 행복해.”

그 말을 듣던 어머니가 조용히 등을 돌렸고, 정유현도 잠시 물을 마시겠다며 병실을 나섰다.

“뭐야- 또 울어? 난 너무 좋아서 눈물도 안 난다, 엄마.”

이번에는 매니저 형이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자꾸만 목이 시큰거렸지만 나까지 울어 버리면 기뻐야 할 시간이 줄어들 것 같아 필사적으로 참았다. 그때 의사 가운을 입은 누군가 병실에 들어왔다.

“소연아, 지금은… 누구시죠?”

의사의 얼굴을 봤을 때 기시감이 느껴졌는데, 명찰을 보고 등줄기에서 소름이 돋았다.

[정영훈]

‘뭐야, 여기 정유현 아버지가 있던 병원이었어?’

“아, 선생님. 이쪽은…….”

“어머니, 외부인 출입은 조심하시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외부인 아니에요! 승빈이 오빠예요.”

“승빈?”

나를 보는 정영훈의 표정이 놀람으로 가득했다. 그래도 아들이 데뷔한 그룹에 누가 있는지 정도는 알고 있는 눈치였다.

“유현이 오빠도 왔는데 어디 갔지?”

그리고 타이밍도 이런 타이밍이 없다. 뒤이어 정유현이 병실로 들어왔으니까. 의사 가운을 본 정유현의 얼굴이 사색이 된 걸 보니, 정유현도 몰랐던 게 분명했다. 뒷걸음치던 정유현에게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이대로 도망치거나, 정면 승부 하거나. 병실 문을 붙잡은 찰나, 소연이의 한마디에 정유현은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섰다.

“오늘 오빠 덕분에 너무 행복했어요!”

정영훈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고, 마침내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숨 막히는 부자의 상봉 속에서 정유현이 먼저 시선을 피했다. 문고리를 움켜쥔 손이 잔뜩 떨리고 있었다. 이제껏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쾅!

그렇게 정유현은 도망침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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