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169화 (169/346)

169화

“뭐야?”

“야, 괜찮아?”

“구급차 불러야 하는 거 아니야?”

소란스러운 소리에 모두 시선이 집중됐다. 소리가 난 쪽을 보니 제작진 중 한 명이 음식이 목에 걸려 숨을 쉬지 못하고 있었다.

“어, 어떡해요?”

현장은 순식간에 혼란 그 자체가 되었고, 모두 당황스러움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때,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펼쳐졌다.

“유현이 형?”

물놀이를 마치고 잠깐 스태프와 짐을 정리하던 정유현이 달려가 응급처치를 하기 시작했다. 정유현은 곧장 스태프를 일으켜 세우고 뒤에서 흉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설마?’

“컥, 컥!”

“괜찮으세요?”

한참 괴로워하던 스태프의 목을 막고 있던 음식물이 튀어나왔고, 겨우 숨을 다시 쉬기 시작했다. 걱정하던 주변 스태프들도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마워요, 정말…….”

“이제 괜찮으신 거죠? 아직 말하지 마시고 좀 더 호흡 길게 들이마셔 보세요.”

그 후에도 구급차가 도착하기 전까지 정유현은 스태프의 상태를 확인했다. 우왕좌왕하던 스태프들도 정유현의 침착한 대처에 감탄했다.

“와. 유현 씨, 그런 건 어디서 배운 거예요?”

“놀라지도 않고 어린 친구가 대범하네-”

정유현은 스태프와 멤버들의 질문 공세에도 묵묵부답이었다. 회귀 전 정유현을 생각하면 놀랍지 않은 반응이었다. 조만간 터지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발생할 줄은 몰랐다. 회귀 전에도 지금과 같은 사건이 있었다.

[투샤인 센터 정유현, 숨겨진 금수저?]

-인기 아이돌 그룹 투샤인의 정유현이 소아과 의사 협회장 정영훈 의사의 둘째 아들이라는 의혹에 휩싸였다. 지난 14일 정유현이 투샤인의 리얼리티 프로그램 ‘위아투샤인’ 촬영 중 하임리히법을 통해 스태프를 구했다는 글이 인터넷에 올라오면서 화제가 되었다. 뒤이어 정유현이 정영훈의 둘째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익명의 제보자가 나타나면서 관심이 집중됐다……중략……투샤인의 소속사와 정영훈은 공식적인 입장을 내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다.

워낙 가족에 대한 언급이 없었기에, 정유현과 정영훈의 관계를 궁금해하는 대중들이 많았다. 게다가 아버지를 따라서 의사가 된 첫째 정유영이 언론에 자주 공개된 것에 비해 둘째 아들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으니, 대중의 흥미를 자극하기 충분한 소재였다. 그래도 이 정도는 괜찮았다.

[스타를 향한 빗나간 팬심, 어디까지 허용되나?]

[병원 좀 그만 찾아오세요… 인기 아이돌의 호소]

정유현의 사생이 정유현의 개인 정보를 캐내면서, 결국 정유현이 정영훈의 아들임이 만천하에 알려져 버렸다. 그 과정에서 일부 몰상식한 팬들이 정유현 부모님의 병원을 찾아가면서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병원 업무에 차질이 생겼을 뿐 아니라, 소아과였기 때문에 자녀들의 진료에 방해가 되는 상황이 되자 병원 고객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정유현이 직접 부모님의 병원에 찾아가지 말아 달라는 호소를 하고 나서도 과열된 여론을 가라앉히기에는 무리였다. 그 뒤에는 정영훈이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공식 입장을 냈고, 사건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저 일로 부모와의 관계는 더 안 좋아졌겠지…….’

만약 이번에 회귀 전과 같이 이번 사건에 대한 글이 올라오지 않는다면 정유현의 트리거를 자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것까지는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아니니 운명에 맡기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정유현은 어렸을 때 부모님이 알려 줬다는 말로 멤버들의 질문을 사전 방지했다. 박재봉과 선우형은 뭔가 더 물어보고 싶은 눈치였다. 하지만, 정유현이 더 세세하게 말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을 알고 있는 듯 더 말을 얹지 않았다.

“그래도 오늘 진짜 멋졌어요, 형.”

“맞아. 다들 학교에서 한 번쯤 배우지만 막상 닥치면 당황해서 못 하게 되는데-”

“유현이 형 완전 영웅 되는 거 아니에요? 기사도 뜨고…….”

‘아이고, 재봉아, 그거 아니다…….’

“나 조금 피곤한데, 조금만 조용히 해 줄 수 있을까?”

“아, 죄송해요.”

아니나 다를까, 정유현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피곤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짜증이 섞인 목소리는 아니었기에 박재봉도 서운해하지 않았다.

“아니야, 나도 이제야 긴장이 풀려서 그런 거 같네.”

“그래, 형도 정신 없었을 거야.”

그래도 정유현이 성숙하다고 느낀 것이, 저런 상황에서도 감정적으로 비춰질 부분에 대해 확실히 짚고 넘어간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리더를 하기에 너무 건조한 사람이 아닌가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리더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정유현은 항상 들고 다니는 안대를 쓰고 귀마개를 귀에 꽂고 잠이 들었다. 왁자지껄하던 퇴근길이 오랜만에 조용했다. 그때 박재봉에게서 문자가 왔다.

[저 괜찮아요.]

[형들이 괜히 마음 쓰신 거 같아서ㅠㅠ]

[재봉이 다 컸네.]

[저 내년에 고등학생이에요~]

메시지를 보고 웃음이 터질 뻔했다. 하긴, 또래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하니 스스로 어른스럽다고 생각하기 쉽다. 나도 열여덟에 데뷔하고 학교 친구들과 생활 자체가 달라지니, 또래 친구들이 나보다 생각이나 가치관이 어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친구들을 조금 부러워했던 것도 같다. 그런 마음을 숨기기 위해 나는 어른스럽다고 스스로 세뇌했던 것 같기도 하고.

옆자리에 있는 박재봉의 양볼을 이리저리 반죽하니,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이 동그래졌다. 그 와중에도 정유현이 깰까 봐 소리도 못 내는 게 귀여웠다. 왜 그러냐는 지운이 형에게 문자 내용을 보여 주니, 형도 나와 같은 반응이었다. 졸지에 빵 반죽이 되어 버린 박재봉은 몇 번 버둥거리다가 체념한 듯 눈을 감았다.

* * *

“유현이 형 진짜 영웅이 됐네…….”

아침부터 선우 형이 들이민 핸드폰 화면에 머리가 지끈했다.

[예능 촬영 중 사람 살린 아이돌]

[컴백 앞둔 크리드, 사람을 구하다?]

‘그럼 그렇지…….’

예능 프로그램 쪽에서 뿌린 기사들인 것 같았다. 아무리 홍보가 중요하다고 해도 그렇지, 자기네 촬영 현장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가 나올 게 뻔한데도 기사를 뿌린 게 신기하긴 했다. 힐링 예능으로 유명한 프로그램도 이 정도니, 정말 이 판은 시청률에 미쳐 있구나.

[정유현은 나의 생명의 은인… 스태프 구한 용기 있는 행동]

“스태프분이 글도 남기셨어. 이제 많이 괜찮아지셨나 봐.”

[해당 기사에 언급된 스태프입니다. 오늘 크리드의 정유현 씨 덕분에 죽을 고비를 넘겼네요. 모든 방송이 그러하듯 촬영이 타이트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스태프들의 식사 시간도 굉장히 촉박합니다. 그래서 급하게 밥을 먹다가 그만 음식이 목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모두가 당황스러워하며 우왕좌왕하는 와중에 유현군이 달려와서 응급처치를 해 줬습니다. 의식을 점점 잃어 가던 와중이었기 때문에 유현 군의 발빠른 대처가 없었다면 정말 위험할 뻔했습니다. 병원으로 이송되기 직전까지도 섬세하게 상황을 체크하더라고요. 아이돌 안 했으면 의사를 했어도 참 잘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무뚝뚝한 면이 많은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촬영하는 동안에도 리더로서 멤버들을 잘 이끌고 현장에서 스태프와 감독님께도 잘하는 친구입니다. 이미 기사까지 나간 거 고마운 마음에 많은 분이 유현 씨의 미담을 알아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 남깁니다. 크리드도 많이 사랑해 주세요!^^]

#정유현 #정유현미담 #크리드

-유현이 천사야?

-ㅁㅊ진짜 사람하나 살렸네;;

-ㅠㅠㅠㅠ우리 리더 최고야ㅠㅠㅠㅠㅠ

-유현이를 국회로

└갑자기?ㅋㅋㅋㅋㅋ

└멋지잖아!!!

-의사유현이…존멋이겠다

└나만 의사가운입은 유현이 상상한거 아니네

-하임리히법은 어디서 배운거냐ㅠㅠㅠ

-당황 안하고 응급처치한것도 너무 유현이답고 쭈아…

└근데 어떻게그러지? 아무리 침착한 애라고해돜ㅋㅋㅋㅋ

└그니까ㅋㅋ 대부분 저런거 알려주는 시간때 딴짓하지않음?ㅋㅋㅋㅋ

└설마 부모님이 의사나 구급대원이신건 아니겠지?ㅋㅋㅋㅋㅋㅋ

미담이라서 정유현의 이미지에 타격이 갈 글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유현이 침착하게 응급처치를 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한 궁금증의 씨앗이 뿌려진 셈이다.

위튜브를 돌다가 헛웃음이 나오는 영상도 발견했다.

[크리드 정유현도 알고 있다? 하임리히법에 대해 알아보자!]

[국내 최초 응급처치 아이돌?]

‘빠르기도 해라.’

이런 것에서도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게 아이러니했다. 밖으로 나가 정유현을 확인했다. 다행히 평소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아직 글을 못 본 건가?’

하지만 얼마 안 가서 정유현이 글을 못 본 게 아니라,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한 것임을 알았다. 2집 컴백을 앞두고 인터뷰 촬영이 있었다. 그리고 예상한 대로 리포터는 정유현에게 응급처치에 대한 질문을 했고, 스태프가 글을 올린 것도 얘기했다.

“평소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성격인가 봐요. 그런 응급 상황에서도 안 떨고 응급처치를 했다는데.”

“저희도 그런 줄 알았는데,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유현이 형이 뒤늦게 긴장이 풀렸다는 말을 듣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형도 긴장이라는 걸 하는구나-”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다른 응급처치에도 능숙해 보였다는데, 학교에서 배운 게 전부였나요?”

“네.”

정유현의 단호한 답변에 리포터도 더 캐묻지 않았다. 확실히 정유현에게 부모님은 달갑지 않은 주제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게 부모님에 대한 원망인 건지,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자발적인 배려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충 예상은 됐다.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 만큼 화제성 있는 프로그램에서 성공한 아이돌 그룹의 리더로 데뷔했음에도 숨기는 것을 보면, 아이돌 활동에 반대가 컸을 게 분명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컴백 연습까지 마치고 나니, 어느새 12시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숙소로 향하는 중에 매니저 형으로부터 편지를 전달받았다. 주기적으로 팬들에게서 온 편지를 묶어서 전달받는데, 그 양도 어마어마했다. 직접 적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하는 팬들이 많았다.

“우와, 이번 주에도 엄청 많이 왔네요?”

“집 가서 천천히 읽어 봐야겠다.”

“이분 진짜 꾸준히 보내 주시는 것 같아.”

“그걸 다 기억해?”

“항상 편지지에 같은 스티커가 붙어 있더라고-”

인사말을 똑같이 한다거나 반복된 표시를 남기는 등, 최애에게 기억되고 싶은 팬들의 방법은 다양했다. 나도 편지를 몇 통 꺼내 봤다. 손 글씨 가득 애정이 꾹꾹 담겨 있었다.

[승빈아 안녕! 벌써 30번째 편지야ㅎㅎ 올해 추석은 승빈이 덕분에 너무너무 행복했어! 아이돌 운동회에서 퍼펙트 골드도 너무 멋있었고, 시크릿 싱어 무대는 너무너무 감동적이었어. 게다가 이제 단독 예능까지 나온다니… 너 좋아하고 하루하루 웃을 일이 더 많아진 것 같아. 사실 요새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많았거든. 그래도 승빈이 볼 때면 웃음이 나더라고. 진짜 너 덕분에 살아~ 그만큼 넌 누군가에게 말로 다 할 수 없이 위로가 되는 존재라는 거 꼭 기억해 줘ㅎㅎ.]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존재만으로 위로가 된다는 말을 들을 때면 이 길을 걷는 게 옳았다는 강한 확신을 가지게 된다. 한참 편지의 감상에 젖어 있을 무렵, 정유현이 매니저 형에게 넌지시 물었다.

“형, 이번 주 중에… 스케줄 비는 날 있을까요?”

“응? 그건 갑자기 왜?”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서요.”

들어 본 적 없던 다급한 목소리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