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플레이 온 아이스’ 첫 방송을 앞두고 문스트럭은 기대 반 긴장 반이었다. 분량에 대한 욕심은 크게 갖지 않기로 했다. 라인업 자체가 쟁쟁했고, 신인이다 보니 초반에는 꽃병풍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아, 떨려. 입덕하고 실시간 떡밥임.”
“승빈이 입덕하고 나니까 신세계지?”
“응. 진작에 입덕할걸.”
“투마월 때도 나는 우리 오빠밖에 없다고 먹금하더니…….”
“생각해 보니까 애정도 아니고 그냥 정 때문에 붙잡고 있던 거였어.”
“그래, 잘 탈덕했어-”
장기화된 덕질은 일종의 장기 연애와도 같다. 어차피 팬이 탈덕하면 끝날 관계인데 오랜 시간 쌓아 온 덕심과 애정을 한순간에 끊어 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니까. 전 본진을 6년 가까이 덕질한 대학 동기 정연은 일주일 전에 승빈에게 입덕했다. 투마월 때부터 시작된 문스트럭의 영업으로 기나긴 입덕 부정기를 끝낸 것이다.
“시작한다.”
빙상장 가득한 경쾌한 음악과 함께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최 피디였다.
“이번에도 본인이 제일 먼저 나오네.”
[빙상장 한가운데 덩그러니 누워 있는 최 피디……?]
“이곳이구나, 내 새로운 예능이 시작될 곳이…….”
“뭐야?”
“진짜 한결같이 또라이 같은 분이네.”
범상치 않은 오프닝을 뒤로하고, 뒤이어 승빈이 제일 먼저 등장했다.
“아, X친 지금 헬멧 쓰고 나온 거야?”
“무릎 보호대 X나 귀엽네…….”
“승빈이 제일 먼저 출근한 건가 봐.”
-완전 강아지잖아ㅠㅠㅠ
-승빈이 막내라고 제일먼저 도착한거야?ㅋㅋㅋㅋ
└역시 유교보이
└이런 사소한것들에 치이는건데 승빈이 너무 똑부러짐
[여심 저격! 목소리 하나로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시크릿 싱어의 주역, 크리드 문승빈!]
[승빈: 안녕하세요, 이제 데뷔한 지 2개월 차 신인 그룹 크리드의 메인 보컬 문승빈입니다!]
“저 묘한 촌스러운 자막도 여전하네.”
“그래도 영상이랑 사진 선정 좀 봐. 진심 레전드인 것들만 보여 줬네.”
“근데 양손에 뭘 저렇게 많이 들고 오는 거야?”
“뒤뚱거리는 거까지 귀여울 일이냐고-”
[양손 가득 뭔가를 바리바리 들고 온 승빈]
[그게 뭐예요?]
[승빈: 아, 저희 팀 멤버들이 출출할 때 먹으라고 준 간식입니다.]
[홍삼 캔디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요?]
[승빈: 네!]
-저거 선우가 준건가보넼ㅋㅋㅋㅋㅋㅋ
-홍삼캔디 여전히 좋아하는구낰ㅋㅋㅋㅋㅋㅋ
-간식만 봐도 누가 준건지 알겠는거 나만 그런거냐
└심각한 크리드 중독입니다
└흥, 웃기는 소리
-애들 진짜 바리바리 싸준거 봐ㅠㅠㅠㅠ
-클둥이들 진짜 귀엽다ㅠㅠㅠㅠㅠ
[최 피디 : 난 진짜 승빈이 캐스팅하게 돼서 너~무 신나!]
[그 후로도 최 피디는 한참 동안 승빈이를 칭찬했습니다……. (제발 그만)]
-야, 됐다 이제
-최피디수저;;
-승빈이야~ 소속사가 일 안해도 스스로 최피디의 아들이 된거야?
-내새끼 사회생활도 잘해
-막내여서 그런가 다른 출연진들이 엄청 귀여워하넼ㅋㅋㅋㅋㅋ
“야, 근데 최 피디가 승빈이 엄청 마음에 들었나 봐. 눈에서 꿀이 떨어짐.”
“진심 승빈이 미래가 창창하다……. 최 피디 수저가 최고 아니냐?”
“당연하지. 우스갯소리로 최 피디 사단 들어가면 예능 쪽은 완전 프리 패스라고 하잖아.”
“막내여서 출연진들한테 우쭈쭈당하는 것도 너무 좋아.”
[알고 보니 피겨 덕후 문승빈?]
[승빈: 제가 워낙 피겨 경기 보는 걸 좋아해서…….]
[그래서 제작진들이 피겨 고사를 준비했습니다.]
“피겨에 관심이 있었구나-”
“최 피디가 좋아할 만했네!”
[모두들 거의 백지를 낸 와중에 홀로 만점을 받은 승빈]
플레이 온 아이스의 희망이라는 말에 승빈은 연신 손사래를 치며 해명했다.
[승빈: 에이, 이론만 조금 아는 거죠. 실제로는 한 번도 타 본 적 없어요. 저 막 얼음 위에서 넘어지고 기어 다닐 수도 있어요…….]
-겸손하기까지해ㅠㅠㅠ
-다 같은 점프인줄 알았는데;;
-오늘부터 승민수로 피겨공부한다
└그걸 왜 손민수햌ㅋㅋㅋ큐ㅠㅠㅠㅠ
-저건 찐임ㅇㅇ
-ㄹㅇ방송 때문에 급하게 준비한다고 알 수 없는 내용임
-아니 근데 진짜 승빈이는 몸이 몇 개야ㅋㅋㅋㅋㅋㅋㅋㅋ
“진심 하늘도 승빈이 편인가 봐.”
“빨리 빙판 위에서 스케이트 타는 승빈이 보고 싶어. 당연히 잘하겠지?”
“승빈이는 못하는 게 없으니까-”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승빈의 스케이팅 실력은……!]
[조성환: 아마 제일 잘하지 않을까요? 제일 어리기도 하고 아는 것도 많으니까.]
[민정: 승빈 군 아이돌이잖아요~ 몸으로 하는 건 다 잘할 거 같던데.]
다른 출연진들의 기대 가득한 인터뷰가 나오면서 승빈의 스케이팅 실력에 대한 기대감도 상승했다. 빙판 위에서 능숙하게 스케이트를 타는 승빈을 상상하던 둘에게 뒤이은 장면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먼저 미션을 해 보겠다는 막내의 패기를 보여 준 승빈이 첫발을 떼자마자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은 것이다.
[…꽈당승빈?]
“엥?”
“승빈아?”
“아, 웃으면 안되는데… 아기 너무 아플 거 같은데… 근데 웃음이 나오는 걸 어떡하지?”
[우리가 알고 있던 승빈은…….]
자막과 함께 프로 아이돌미를 내뿜으며 무대 위에서 날아다니는 문승빈과 빙판 위에서 속절없이 넘어지는 문승빈의 모습이 교차 편집 되면서 더 큰 웃음을 자아냈다.
[최 피디 : 승빈이가 넘어지는데… 유레카를 외쳤죠! 사실 캐스팅하는 과정에서 승빈 군 영상을 많이 찾아봤는데 무대도 잘하고 운동신경도 좋고, 요리도 꽤 하는 거 같고, 사람이 너무 완벽하면 어쩌지? 걱정했었는데 이렇게 허당 같은 모습도 보여 주니까 피디 입장에서는 최고의 출연진인 거죠.]
-승빈이도 사람이었어…
-아씨 방송국놈들앜ㅋㅋㅋ큐ㅠㅠㅠㅋㅋ
└최피디 그런줄 몰랐는데 무서운사람이었네;;
-갓태어난 기린이 딱 저렇게 걷지않음?
└오늘부터 승빈이 모에화 기린임ㅇㅇ
-웃으면 안되는데 너무 귀엽게 넘어져섴ㅋ큐ㅠㅠㅠㅠㅠ
-이리와 승빈아 호해줄게
└승빈아 도망쳐
-어쩐지 최피디가 그렇게 칭찬을 하더랔ㅋㅋㅋㅋㅋㅋㅋ
-예상치 못한 예능원석이냐곸ㅋㅋㅋㅋㅋㅋ
[많이 넘어지던데…….]
제작진의 짓궂은 질문에 승빈은 얼굴을 감싸고 개미가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답했다. 쉽게 민망해하거나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승빈이었기 때문에 더 희귀한 장면이었다.
[승빈: 제가 말했잖아요오…….]
“이런 X친.”
“누가 문승빈 강아지래. 완전 폭스임.”
“말꼬리 늘이는 거 어디서 배워 온 거냐고.”
그 뒤로도 승빈은 셀 수 없을 만큼 넘어지고 또 넘어졌다. 다른 출연진의 분량에서도 뒤를 보면 항상 승빈이 넘어지거나 휘청거리고 있었다. 오죽하면 ‘꽈당승빈 모음집’까지 나왔을까.
“그래도 빙판 위라서 그런가. 애가 하얗게 질렸는데 볼은 빨갛고…….”
“최고다.”
“승빈아, 이런 팬이라 미안하다.”
“하지만 네가 먼저……!”
자꾸 넘어지는 게 자존심 상했는지 인상을 찌푸리거나, 볼에 바람을 넣는 모습조차도 덕심을 자극했다. 오뚜기처럼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자세도 팬들의 마음에 불을 지피기에 딱이었다.
[승빈: 계속 안 되니까 오히려 승부욕이 생기더라고요. 노력해서 안 되는 건 없잖아요.]
-독기가득한 눈이 너무 좋아
-마음먹은대로 상황이 안움직일 때 승빈이 보는게 제일 귀여움ㅋㅋㅋㅋㅋㅋ
-맞아 승빈이는 결국엔 다 해내ㅋㅋㅋㅋ
-승부욕강쥐ㅠㅠㅠㅠㅠ
-미쳤나봐....... 노력해서 안 되는 건 없대...........
-승빈아.... 그건 니가 잘생겨서 할 수 있는 소리다.......... 얼굴은 안되더라....
-아잌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감동적인 순간에 무슨소리냐곸ㅋㅋㅋㅋㅋ
“내가 승빈이 제일 좋아하는 이유잖아. 저 악바리 같은 모습이 너무 좋아.”
“나도 결정적으로 입덕한 계기가 투마월 파이널 랩 연습하는 장면이잖아.”
“야, 그때는 다시 생각해도… 아찔했다.”
“나도 이미 결과 다 알고 보는 건데도 조마조마했음.”
-우리 승빈이 이러다가 아무한테도 선택 못받는거 아니냐ㅠㅠㅠㅠ
└귀여우니까 뽑아줘요ㅠㅠㅠㅠ
└그건 좀 자존심 상할거같은데;;
문스트럭과 정연 역시 같은 고민을 했다. 아무래도 앞으로 미션을 함께해야 하는 파트너를 골라야 하는 것이니 실력 위주로 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둘에게 구원자가 나타났으니, 바로 이정훈 선수였다.
[승빈이 연습하는 모습을 유심히 보는 이정훈 선수]
[아까부터 승빈 군을 계속 보고 있던 거 같던데?]
[정훈: 처음에는 계속 넘어지는 거 같았는데 계속 보니까 점점 나아지고 있더라고요. 뭔가 요령 없이 정석으로 해내는 느낌? 그게 조금 눈에 들어왔어요.]
-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ㅠㅠ
-역시 어디서든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뮤ㅠㅠㅠ
-우리 애 진짜 열심히 합니다ㅠㅠ
이후로 이정훈 선수가 승빈을 전담 마크 하며 미션을 도와주는 장면이 나왔고, 승빈의 실력도 점차 좋아지는 과정이 나왔다. 편집 자체가 승빈의 스케이트 성장 스토리처럼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미션 대결의 순간이 왔다. 승빈은 이정훈 선수가 알려 준 방법을 주문처럼 작게 속삭이면서 링크를 돌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갔다가 안으로 들어오고…….”
“형, 얼마 안 남았어요!”
“밖으로… 으악!”
“아이고 승빈아-”
“그래도 벌떡 일어나는 거 봐!”
[승빈: 넘어져도 멈추지는 않을 거예요.]
승빈의 인터뷰 장면이 오버랩되면서 승빈이 다시 미션을 수행하는 장면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승빈이 결승선에 들어오고, 이정훈 선수가 곧장 승빈에게 달려갔다.
“진짜 잘했어요, 형!”
“한 번 넘어졌는데…….”
“결승선까지 온 게 중요한 거죠!”
-ㅅㅂ… 나 왜 우냐?
-승빈이 예능하고오라니까 청춘드라마 찍고왔네
-너무 아름다운 우정이야(우는 이모티콘)
-그래 승빈아 한번 넘어지는게 대수냐ㅠㅠㅠㅠㅠ
결국, 이정훈이 승빈을 선택하면서 모두가 바라던 시나리오가 완성됐다.
[정훈 선수가 선택했을 때 어땠어요?]
[승빈: 저 진짜 조마조마했어요, 아무도 안 뽑아 주실까 봐……. 근데 딱 정훈 선수가 제 이름 부르는데 너무 좋아서 얼음 위라는 것도 까먹고 뛰려다가 또 넘어질 뻔했잖아요!]
-아까 휘청하던게 그거때문이었냐곸ㅋㅋㅋㅋㅋㅋ
-깜찍해 진짴ㅋㅋ큐ㅠㅠㅠㅠㅠ
-하 잘생긴 애들끼리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다오
[정훈: 승빈 형 스케이트 타는 모습이 꼭 저 피겨 시작했을 때 같더라고요. 넘어지면서도 바로 일어나는 게 감동적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앞으로 더 많은 걸 알려 드리고 싶어서 뽑게 되었습니다!]
“너무 괜찮은 선수다……. 올림픽 메달 따세요, 꼭.”
“지금 검색해 보니까 유망주라는데? 실력도 좋은가 봐.”
“올림픽 몇 년 남았냐?”
“올해 했으니까 4년 뒤?”
“그때 꼭 올림픽 나왔으면 좋겠다…….”
“그때도 승빈이 좋아하고 있으면 진짜 레전드일 듯”
“당연하지. 근데 그때 되면 크리드 계약 종…….”
“너 지금 그 단어를 입에 올리는 거야?”
“오늘부터 물 떠 놓고 재계약 연장 계약 빌어야 할 듯.”
“아니면 어디 기깔나는 소속사에서 데려가는 걸로.”
당장 내일 일도 모르지만, 4년 뒤에도 승빈을 좋아할 거라는 마음에는 한 치의 의심도 없는 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