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161화 (161/346)

161화

하늘에서 날아오는 7개의 운석을 부수는 티저. 누가 보더라도 노골적으로 크리드를 저격했다는 것을 알아차릴 만큼 의도적인 영상이었다. VM은 우연의 일치이며 크리드와는 어떠한 연관성도 없는 트레일러라고 해명했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포커스의 도발적인 행보는 자극적인 이슈를 찾아다니는 대중들의 흥미를 유발했다.

-대놓고 크리드 대항마라는거지?

-의도한거아니라자나;;

└그걸 믿냐?

└덕질 하루이틀하는것도 아니고

-강도현도 떨궈진거임?

└븨엠이 미쳤다고?ㅋㅋㅋㅋ겸임되는순간 데려올걸?

└ㅇㅇ강프들은 2년반동안 열심히 덕질해^^

위튜브와 SNS에는 크리드의 영상과 포커스의 트레일러를 비교하는 콘텐츠들이 쏟아졌다.

[대형 기획사 VM이 크리드를 저격한 이유?]

[크리드에 선전 포고, 포커스는 어떤 그룹?]

“와, 이 기사 봐 봐. 태세 전환이 이렇게 빠를 수 있는 거냐?”

[VM의 한 관계자는 현재 불거진 ‘크리드 저격 논란’에 대해 황당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L 씨는 “포커스는 투마이월드 방영 전부터 세계관과 전체적인 앨범 기획, 멤버 구성을 거의 완성한 그룹이다. 대대적인 연습생 조정을 통해, 연습생 중에서도 최정예 멤버만을 선발하여 만든 그룹으로 VM이 그동안 쌓아 온 노하우를 쏟아부은 그룹이다. 그런데 크리드를 저격했다니, 황당하다.”라는 입장을 전했다. L 씨는 H 연예부와의 인터뷰에서 “저희 애들 정말 착하고, 성실하게 데뷔만 보고 달려온 애들이다. 아이들이 이번 일로 데뷔 전부터 마음고생을 하게 된 거 같아 걱정이다. 따뜻한 시선으로 응원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한다.”고 밝혔다.]

-문승빈 떨어뜨리고 붙은 애들끼리 만든 그룹이라니까 기대되는거 나뿐이냨ㅋㅋ

-불쌍해ㅠ 이제 갓 데뷔한 애들인데ㅠㅠ

└VM이 잘못한일인데 어쩌겠엌ㅋㅋㅋ

└븨엠이 뭘 잘못했는뎈ㅋㅋㅋㅋ;;

-누가보면 크리드가 포커스 저격한줄 알겠음

└크리드도 자기팬들이 이러는거 원치않을텐데…

-븨엠 쫄리긴 한가보네ㅋㅋㅋㅋ 어그로 오진다ㄷㄷ

-븨엠 대형기획사 타이틀 내려놔라 진심ㅎ... 가오떨어져ㅠ

“와…….”

“X발, 이거 지금 승빈이 저격하는 거지?”

“피코하는 것 봐. 가증스러워.”

문스트럭의 심기를 가장 건드린 것은 VM이 은근슬쩍 승빈을 까 내린 것이었다. 자신들이 놓친 연습생들이 전 국민적 사랑을 받는 프로그램에서 센터로 데뷔한 것이 어지간히 배가 아픈 모양이었다.

* * *

포커스의 데뷔 트레일러가 뜨고 연습실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다들 언짢았지만, 섣불리 포커스가 우리를 저격했다고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심증만 있고, 물증이 없으니까. 아니, 사실 트레일러 자체가 물증이었지만, 조심스러운 부분이었다.

“VM도 참 끈질기네!”

선우 형이 머리가 아프다는 듯 연습실 바닥에 드러누웠다.

“너 예능 고정 기사 나와서 팬들도 엄청 좋아하시던 거 같은데…….”

“그니까! 타이밍이 맨날 이래.”

“근데 생각할수록 어이없어요. 하필 운석이고 또 7개인데 그걸 또 부수고 있잖아요! 기분 나빠 진짜.”

VM이 크리드를 견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포커스를 띄울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렇게 초장부터 대놓고 저격을 할 줄은 몰랐다.

처음 트레일러를 봤을 때는 포커스의 이미지에 더 타격을 주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루커스의 성공을 가져온 VM다웠다. 언론 플레이의 대가들이었다.

‘저 기사 속 관계자가 문어대가리다에 내 전 재산을 건다.’

이미 투마월에 나온 김병대와 방송에서 내가 롤 모델이라고 꾸준히 언급한 오재성 덕분에 대중들은 자연스럽게 포커스와 크리드를 라이벌 구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중에 먼저 도발을 하면서도 데뷔도 안 한 그룹이라는 점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동정 여론까지 만들었다.

이런 점은 코어 엔터의 역량 부족이었다. VM이 동정 프레임으로 기사와 인터뷰를 쏟아 내면서 여론전에서 우세를 잡는 동안 코어 엔터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좋은 회사라고 생각하지만, 투마이월드를 통해 아이돌 매니지먼트를 시작한 소속사였기 때문에 확실히 VM보다는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트레일러 역시 모두가 알아볼 만큼 크리드를 연상시키는 것이 많았지만 그것만으로 VM을 대놓고 비난할 수는 없었다. 회귀 전에도 포커스가 투샤인을 견제하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내가 회귀함으로써 또 이런 변화가 생겨 버렸다.

“내가 괜히 미안하네.”

유독 말이 없던 강도현의 혼잣말에 모두 강하게 부정했다.

“네가 왜 미안해?”

“맞아. 너랑은 별개의 문제야.”

박재봉은 자신이 더 발끈해서 주먹을 불끈 쥐고 말했다.

“맞아요. 형이 미안해할 일이 아니죠!”

강도현도 당황스러울 것이다. 따지고 보면 투마월이 아니었다면 이미 포커스의 에이스로 데뷔했을 애니까. 그래도 꽤 오래 몸담고, 신임받아 왔다고 생각했을 텐데 이렇게 순식간에 부서진 운석 취급을 받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겠지.

“고마워.”

강도현의 표정이 한결 나아졌지만, 여전히 조심스러운 눈치였다.

그래도 다들 생각이 어리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개인 예능 섭외 소식이 왔을 때도 내심 걱정했었다. 아무래도 그룹 내에서 첫 개인 활동이기도 하고, 서운해하는 멤버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티벡스 시절에는 혼자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는 지운이 형을 뒤에서 시기하는 멤버가 있었거든. 물론 내가 예능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 그룹 전체에 좋은 영향을 주겠지만, 개개인의 인지도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마냥 축하해 주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멤버가 내 걱정을 빗나갔다. 서바이벌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만났지만, 오히려 동료애가 돈독해진 게 신기했다. 정유현과는 서바이벌 동안 묘하게 신경전이 있었지만, 데뷔한 후에는 눈 녹듯 사라진 것도 새삼 놀랍고. 멤버들이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었던 데에는 굳이 열등감을 느끼지 않아도 될 만큼 각 멤버의 능력치가 좋아서인 점도 분명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시무룩한 강도현의 곁을 떠나지 않고 분위기를 풀려는 멤버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회귀하고 변한 것 중에 제일 마음에 드네…….’

다른 멤버들의 눈치를 보던 강도현도 이내 장난기 있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잠시나마 어지러웠던 마음을 다잡았다. 아무리 장애물을 만날지라도 나는 나와 우리 멤버들, 그리고 팬들만을 생각하며 내 자리를 지키면 된다.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 * *

‘도와줘, 크리드’ 2화 분량 촬영을 마치자마자 ‘플레이 온 아이스’ 촬영장으로 향했다. 양손에는 멤버들이 챙겨 준 간식들을 바리바리 챙겼다.

“뭐, 뭐야 이건?”

“바로 촬영하러 가잖아. 가면서 먹어.”

“이 형은 건강한 간식으로 준비했어.”

선우 형의 말이 무슨 뜻인가 했는데 봉투를 열어 보니 홍삼 캔디가 있었다. 투마월 생각이 나서 괜히 웃음이 나왔다.

‘이것도 되게 오랜만이네.’

강도현은 내 자취방에서 먹었던 자기가 좋아하는 과자를 넣어 놨다. 간식들만 봐도 멤버들이 보이는 걸 보면 짧은 시간이지만 투마월 때보다 더 많이 친해진 게 실감 났다.

“첫 촬영인데 긴장되겠네.”

“네, 조금.”

“잘할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최 피디님이 너 엄청 아끼시는 거 같은데.”

“좋게 봐 주셔서 너무 감사하죠.”

최연호 피디에게 말 그대로 ‘간택’당했다고 해도 무방한 캐스팅이기 때문에, 기쁘면서도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었다. 이렇게 기대감을 상승시켜 놨는데, 막상 본 촬영에서 잘 못하면 실망이 더 클 테니까. ‘플레이 온 아이스’ 팀에서 보낸 프로그램 소개서와 대본을 다시 한번 정독했다. 하도 봐서 이미 닳아 있었지만, 아직 부족한 느낌이었다.

운동 예능이라서 자연스러운 모습이 강조되는 건 분명하지만, 그 자연스러움도 결국 치밀한 준비 속에서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내가 출연진 중에서는 제일 막내이기 때문에 더 신경 쓸 부분이 많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촬영지인 서울 근교의 한 아이스링크장에 도착했다. 현장에 도착하니 다행히 내가 제일 먼저 도착한 듯했다. 최연호 피디가 나를 발견하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승빈 씨 왔네?”

“안녕하세요, 피디님! 그동안 잘 지내셨죠?”

“물론 잘 지냈지-”

나를 포함해서 요즘 인기몰이 하고 있는 배우 L까지 섭외에 성공해서 그런지, 최 피디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그때 링크장을 누비고 있던 남자가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피겨 선수 이정훈이었다. 역시 회귀 전에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앳된 모습이었다.

“아, 여기는 이정훈 선수. 승빈 군이 추천했으니까 이미 알고 있죠?”

“네! 반가워요. 경기 잘 챙겨 보고 있어요.”

“피디님께 얘기 들었어요. 너무 감사하고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다른 출연진들도 하나둘 촬영장에 도착했고, 걱정했던 것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출연진과 선수들 모두 연령대가 10대부터 30대까지 다양했다. 아이돌, 배우, 개그맨, 운동선수 등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모였다 보니까 다들 서로가 신기한 듯했다. 출연진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아이스브레이킹 타임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배우 조성환이 말을 걸었다.

“승빈 군? 크리드 잘 보고 있어요.”

“와, 저희 나오신 서바이벌을 보셨어요?”

아무래도 40대 남자 배우가 남자 아이돌 서바이벌을 봤을 거 같지는 않은데 놀라서 여쭤보니 손사래 치며 답했다.

“나는 아니고, 우리 딸이 투마월인가 그걸 엄청 좋아했거든요.”

“따님분 최애가 혹시 저……?”

조금 능글맞게 묻자 조성환이 화통하게 웃으며 답했다.

“아이고, 미안해. 우리 딸은 누구지? 이름이 외자였는데, 민이?”

“아, 윤빈이요?”

“맞아, 맞아. 미안해, 내가 이름을 잘 못 외워요. 근데 승빈 군 팬도 있어요, 우리 집에.”

“오, 누군가요?”

“우리 엄마가 승빈 군을 그렇게 좋아하더라고.”

“네?”

뜻밖의 연령대인 팬이었다. 팬 사인회를 하면 간혹 3-40대 팬을 볼 때는 있었지만, 노년층 팬분은 처음이었다.

“손자 보는 거 같다고 승빈 군을 엄청 좋아하시더라고? 인터넷 투표 같은 건 잘 모르셔서 못했는데, 마지막 생방송 투표는 하셨어요.”

“우와… 정말 감사드린다고 꼭 말씀 전해 주세요. 덕분에 데뷔했다고.”

“대박! 승빈 군 전 연령층한테 인기 있는 스타일인가 보네!”

“국민 남동생, 국민 손자 타이틀 한번 노려 봐야 하는 거 아냐?”

유독 리액션과 목소리가 큰 개그맨 H의 주접에 절로 귀가 빨개졌다.

“막내 귀 터지겠어-”

“열여덟 살이라고 했죠? 진짜 아기네, 아기.”

외면은 열여덟 살이지만, 스물둘의 영혼이 ‘아기’라는 말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게 은연중에 귀가 빨개지는 거로 드러나는 듯했다. 근데 듣고 생각해 보니 유독 나를 최애라고 하시는 팬들의 연령대가 다양하긴 했다. 좋은 흐름이었다. 전 연령대의 관심을 받는 게 쉬운 건 아니니까.

“오프닝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네!”

이번에 나에게 찾아온 기회는 또 어떤 새로운 길을 보여 줄까, 기대감과 함께 첫 촬영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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