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157화 (157/346)

157화

오랜만의 칼퇴에 발걸음이 가벼운 문스트럭의 핸드폰에 크리드 공식 계정 알림이 울렸다. 이번에도 자체 콘텐츠인가 알림을 확인하던 그녀는 하마터면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승빈이의 방구석 노래방(강아지 이모티콘)]

“에이앱? 설마 개인이야?”

흥분도 잠시, 문스트럭은 자신이 이어폰을 챙겨 오지 않음을 깨달았다.

‘하필이면!’

그녀는 급한 대로 주변에 보이는 편의점에 뛰쳐 들어가 유선 이어폰을 구매했다. 어차피 지금 쓰던 이어폰은 낡아서 버릴 생각이었다고 합리화했지만, 세상에 이런 X발 비용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송출상의 문제가 있었는지 한 번 방송을 끊고 다시 방송이 시작됐다. 카메라를 멀뚱멀뚱 보던 승빈이 방송이 시작된 것을 확인하고 인사를 했다. 그녀는 급하게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들리는 게 감사할 정도로 구린 음질이었지만, 그 와중에도 승빈이 목소리는 귀여웠다.

“클로버들, 안녕… 하세요?”

개인 에이앱은 처음이라 어색한지 말꼬리를 흐리다가 존댓말을 하는 승빈의 모습에 문스트럭은 이마를 짚었다.

“뭐 이런 애가 다 있어…….”

-승빈아 안녕어엉엉

-왜 아직도 낯가렼ㅋㅋㅋㅋㅋㅋ

-개인에이앱 처음이어서 어색한가봨ㅋㅋㅋㅋㅋ

-Eng plz

-승빈 댓글을 본다면 볼에 하트를 해

“제가 크리드에서 처음으로 개인 에이앱을 하게 됐어요.”

“비니 왜 이렇게 잘 어울려?”

승빈은 흰색 비니에 곰돌이가 그려져 있는 후드 티를 입고 있었다. 평소 무대 의상과는 정반대로 캐주얼한 착장이었다. 정석 훈남 대학생 룩이었는데, 만약 자신이 대학교 다닐 때 이런 학생이 있었다면 평생 졸업 안 해도 괜찮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제목에 적은 것처럼 여러분에게 제가 준비한, 그리고 여러분이 듣기 원하시는 신청곡을 불러 드리려고 해요.”

“이런 X친.”

-팬잘알 아이돌아ㅠㅠㅠㅠㅠ

-승빈이 청춘예찬 존버단

-시크릿싱어때 노래 해주라

개인 에이앱은 문스트럭이 데뷔한 순간부터 바라던 콘텐츠였다. 멤버들과의 케미를 보여 주는 단체 에이앱도 물론 좋지만, 오로지 멤버 개인에게 집중할 수 있는 방송 역시 필요하다. 게다가 승빈의 노래 콘텐츠라니, 이보다 완벽한 타이밍은 없다.

“먼저 제가 정말 감사하게도 시크릿 싱어를 통해 큰 사랑을 받았잖아요. 그래서 그날 무대했던 노래를 준비했어요.”

“대박, 여름의 끝 들을 수 있는 거야?”

개인 에이앱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웠는데, 시크릿 싱어에서 불렀던 노래를 다시 불러 준다니. 둘도 없는 선물이었다.

“이런 방송은 처음이어서 긴장이 조금 되는데. 실수해도 예쁘게 봐주세요!”

-ㅅㅂ 승빈이 부탁인데 당연하지!

-실수해도 귀여울텐데 걱정하지맠ㅋㅋㅋㅋㅋ

-승빈아 파이팅!

-단체곡도 솔로버전으로 듣는거야?

-ㅠㅠㅠㅠㅠㅠㅠ

‘시크릿 싱어’ 1라운드 무대는 5명의 시크릿 싱어가 단체곡 ‘페어리 테일’을 부르는 미션이었다. 방송에서는 2라운드 개인 무대에 중점을 두고 편집해서인지 1라운드는 상대적으로 화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짧은 파트에도 승빈의 존재감은 컸다. 승빈의 목소리와 잘 어울리는 미디엄 템포의 댄스곡으로 산뜻한 매력을 보여 주는 노래였다. 승빈은 남은 긴장을 풀려는 듯 목을 풀고, 심호흡을 했다.

“잘할 거면서-”

이전까지 최애들이 에이앱에서 노래를 한다고 하면 본능적으로 긴장을 했다. 대부분 보컬 멤버가 아니었고, 보컬이라고 하더라도 콩깍지를 뺀다면 뛰어난 실력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에이앱에서 노래하는 것은 어찌 보면 위험한 도전이었다. 실시간 라이브이기 때문에 실수라도 하거나, 목 상태가 좋지 않아 실력 발휘를 못 하더라도 모든 모습이 영상으로 박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스트럭은 1n년 덕질 인생 처음으로 불안하지 않았다. 승빈이 실수할 실력이 아니라는 것을 깊게 신뢰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실수하면 또 뭐 어떤가,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그동안 지켜본 승빈은 금방 털고 일어날 멘탈의 소유자였다.

핸드폰 반주와 연습용 마이크여서 고르지 않은 음향이었지만 두 눈을 감고 몰입하는 승빈을 보니, 전혀 아쉬움이 없었다. 오히려 버스킹을 하는 것 같아서 더 자유분방해 보였다.

[너와 눈 마주치는 지금

동화 같은 순간이 시작돼

너만이 나의 페어리테일

분명한 건 우리가 함께라는 것]

-목소리 머선일이야…

-승빈이 너무 행복해보여ㅠㅠㅠㅠ

-노래할때가 제일 좋아ㅠㅠ

-승빈이버전 페어리테이류ㅠㅠㅠㅠ

처음에는 미세하게 음정이 떨리는 것이 들렸지만, 1절 사비부터는 완전히 긴장이 풀린 듯했다. 자유롭게 연습실을 돌아다니며 노래를 하는 모습을 보며 문스트럭은 급하게라도 이어폰을 사길 정말 잘했다고 스스로 칭찬했다. 방송에서는 파트가 한정적이어서 아쉬웠던 점까지 완전히 해소해 주는 순간이었다.

“클로버, 잘 들었어요? 어땠어요? 저 너무 긴장을 많이 해서…….”

-당연하지ㅠㅠㅠㅠ

-너무너무 잘했어ㅠㅠㅠ

-승빈이 긴장했다는거 거짓말아니야? 너무 잘했는데?

-승빈이목소리에 치얼스

“클로버가 좋아해 줘서 다행이다……. 사실 이 곡이 솔로 곡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에이앱 준비하면서 연습할 때도 아, 괜히 욕심부렸나? 했었어요.”

-욕심이라니!!!

-솔직히 원곡보다 좋아

-음원내놔

-승빈아 어디까지 잘하려고 그러는거야

“댓글로 정말 좋은 말을 많이 해 주셔서 진짜 행복해요……. 사실 아직 많이 부족한데.”

‘승빈이는 자기한테 되게 엄격한가 봐, 내가 저 실력이었으면 연습 안 하다가 태도 논란으로 욕먹었을 텐데.’

시크릿 싱어를 기점으로 실력이 또 한 번 성장했음을 느꼈는데 정작 당사자는 현재 실력에 안주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역시 자신의 안목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투마월 때도 기복 없이 잘해서 승빈이 타고났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지만, 승빈은 항상 연습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다른 연습생의 분량에도 뒤에서 연습하는 승빈의 모습이 항상 걸려 있었다.

아이돌이 자신의 실력에 만족하지 않는 것만큼 기특한 일도 없다. 계속해서 실력을 키우고,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덕질이 주는 하나의 재미니까.

“두 번째 노래는 2차 경연곡인 ‘여름의 끝’입니다. 그 전에 오늘 방송을 도와줄 아-주 멋진 피아노 연주자를 소개할게요.”

“엥, 연주자?”

-??

-누구 나와?

-피아노?

-게스트야?

“바로 바로- 윤빈 형입니다!”

“안녕하세요~”

윤빈이 양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스케줄이 없었는지 깔끔한 셔츠에 청바지로 편안한 옷차림이었다. 화장기 없는 말간 얼굴도 한몫했다.

-빈이안녕!!

-삔이들 오랜만이닼ㅋㅋㅋㅋ

-윤빈이 피아노도 연주하는구나

-완전 대학생 윤빈 아니냐고…

-윤빈 댓글을 보면 볼에 손을 찌르시오

“오늘 방송한다고 하니까 형이 고맙게도 피아노 연주를 도와주기로 했어요.”

“귀여워…….”

“승빈이 노래 가까이서 들을 수 있는 기회니까-”

“윤빈 형 피아노 진짜 잘 쳐요.”

“승빈이도 잘하잖아. 청춘예찬 때 했으면서.”

“에이, 그건 그냥 코드만 딴 거라서.”

삔즈 조합은 문스트럭이 좋아하는 조합이었다. 둘 다 해외에서 살았던 경험도 있고, 영어가 유창해서 그런지 유독 편안해 보였다. 특히 윤빈이 승빈이랑 얘기할 때면 자유롭게 영어를 섞어서 얘기해서인지 윤빈 팬들도 꽤 좋아하는 조합이었다.

“그럼 노래 들려 드릴게요-”

“클로버들, 응원 많이 해 주세요!”

그사이, 시청자 수는 이미 80만을 넘어가고 있었다. 개인 브이앱인데 웬만한 그룹의 단체 에이앱 시청자 수를 훌쩍 넘는 시청자 수였다.

문스트럭은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듣기 위해 이어폰을 깊숙이 밀어 넣었다. 승빈은 방금 전까지 윤빈과 웃으며 대화한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순식간에 표정이 진지해졌다.

[함께였던 공간이

너무나도 커다랗게 느껴져

내 방은 그대로인데

너 하나 없을 뿐인데]

도입부는 실제 방송 때처럼 피아노 반주로 시작했다.

[쏟아지는 빗소리만

멍하니 듣고 있었어

끝내 네 번호를

누르지 못하고 있어]

방송에서는 이후에 다른 악기의 사운드가 들어오면서 점점 고조되었다면, 에이앱 버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피아노 반주로 진행되어 색다른 느낌이었다. 의도치 않은 ‘여름의 끝’ 어쿠스틱 버전이었다.

깔리는 사운드가 잔잔해지다 보니 자연스레 승빈의 목소리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확실히 연습을 많이 한 노래여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이었음에도 그런 게 하나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완벽한 라이브였다. 게다가 중간중간 피아노를 치는 윤빈과 시선을 맞추면서 노래의 템포나 사운드를 조절하는 모습은 또 다른 매력 포인트였다.

“와, 여러분 승빈이 목소리 진짜 쩔지 않아요?”

“형!”

“…왜?”

승빈이 급하게 윤빈에게 귓속말을 했다. 아마도 쩔다에 대한 걸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아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

-승빈이 놀란 거 봐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이거 설마 에이앱 짤리지는 않겠지ㅋㅋㅋ

-코어라면 그럴 지도ㅋㅋㅋㅋ

-윤빈둥절ㅋㅋㅋㅋ

“아, 나는 그냥 cool- 의 느낌인 줄 알았어.”

“그건 맞기는 한데…….”

-이럴 때면 처음으로 애들 어린 게 느껴진다ㅋㅋㅋㅋ

-진심ㅋㅋㅋㅋ 완전 프로아이돌 같다가도 역시 아직 애기들임

-괜찮아 윤빈아ㅠㅠㅠㅠ

-너무 놀래서 안쓰러울 지경임ㅋㅋㅋㅋ

-긍까ㅋㅋㅋㅋ 누가 보면 욕이라도 한줄ㅋㅋㅋㅋ

“자, 여러분! 다음 노래 바로 가 볼까요?”

황급히 대화 주제를 돌리려는 승빈의 귀가 잔뜩 빨개져 있었다. 쉴 새 없이 캡처 버튼을 누르고 있는 문스트럭이었다. 집이었으면 바로 움짤 따는 건데, 아쉬웠지만 퇴근하고 본 게 어디냐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이번 노래는 바로 제 첫 솔로 곡이었던 ‘Eternity’입니다!”

이후로도 승빈의 노래방은 계속 이어졌다. 1집 앨범의 거의 모든 곡을 한 소절씩 불러 주더니, 윤빈과 함께 화음을 쌓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덧 라이브 방송 시간이 한 시간을 훌쩍 넘어갔다.

“여러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마지막 노래를 들려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안돼ㅠㅠㅠㅠㅠ

-시간 눈치챙겨라 진짜ㅡㅡ

-아니 언제 벌써 한시간이나 지남???

-하.... 보내기 싫다고ㅠㅠㅠㅠ

-근데 승빈이 진짜 많이 부르긴 해서 쉬어야 할 듯ㅠㅠ

-한시간 넘게 혼자서 라이브가 가능하다니ㅠㅠㅠㅠ

-크리드는 콘서트 걱정은 없겠다 ㄹㅇ

“저도 너무 아쉬운데, 앞으로 자주 찾아올 거니까요!”

“맞아요. 저희 라이브 자주 할 거예요!”

“그리고 다음 에이앱 주자는 윤빈 형이니까 많이들 기대해 주세요!”

“와우! 승빈이도 이제 그냥 스포하는 거야?”

“대신 무슨 콘텐츠인지는 비밀-”

“오케이. 여러분, 제가 뭐 할지 궁금하시죠? 기대하세요!”

둘의 티키타카에 절로 웃음이 지어지는 문스트럭이었다.

“그럼 진짜 마지막으로 제가 들려드릴 곡은 바로바로-”

밀당하는 승빈의 옆에서는 윤빈이 책상에 손을 얹고 두구두구 거리고 있었다.

“‘시간을 돌려’입니다.”

문승빈이 대면식에서 불렀던 바로 그 노래, 서재인의 ‘시간을 돌려’. 밀당할 만한 선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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