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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156화 (156/346)

156화

시크릿 싱어 방송이 끝나고 바로 반응을 살펴보니, 대부분 내 정체에 놀랐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시차를 넘어 누나에게도 연락이 왔는데, 누나마저 내 정체를 몰라봤던 눈치였다.

[뭐야? 도령님이 너였음?ㅁㅊ]

[왜 말 안했냐ㅡㅡ]

[방송국에서 방영 전까지는 절대 말하지 말라고 해서]

[야 그래도 가족한테는 말해줬어야지!]

누나의 반응에 뭔가 더 뿌듯했다. 가족도 못 알아볼 정도였다면, 정말 지금까지 내가 보여 준 무대와 비교해도 한층 성장한 무대를 보여 줬다는 의미일 테니까.

[아니 근데 어떻게 도령이 너임?]

[너 어디서 수련이라도 하고 왔냐?]

[이건 또 뭔 소리야]

[너 원래 이정도로 잘하지는 않았잖아. 무슨 득도함?]

‘하여간 쓸데없이 객관적이라니까?’

[내가 원래 좀 하잖아^^]

역시 노래 스텟의 포인트를 높인 효과가 있었다. 사실 그동안 개별 곡에 사용한 포인트가 아까울 정도로 확연한 실력 차이였다. 거기에다가 개별곡 노래 스텟까지 포인트를 꽉 채웠으니 이전과 비교하면 엄청난 발전으로 보이긴 할 거였다.

[너 지금 실검 1위야;;]

누나의 말에 놀라서 찾아보니 정말 검색어가 내 이름과 시크릿 싱어 관련으로 가득했다. 예상은 했지만, 그 이상으로 시크릿 싱어의 파급력은 강력했다. 도령의 정체가 나였다는 것을 중심으로 VM의 데뷔 예정 그룹 포커스에 관련된 기사까지, 온갖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시크릿 싱어는 파일럿 프로그램임에도 순간 최고 시청률이 15%까지 나오면서 말 그대로 초대박이 났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시크릿 싱어의 정규 편성 요청이 쇄도했다. 특히 나의 재출연을 요구하는 글들이 몇 페이지씩 채우고 있었다. 이미 정체가 다 드러났음에도 출연을 바라는 모습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던 준비 과정을 싹 다 잊게 해 주는 값진 결과였다.

아이돌 운동회와 연속으로 방송해서 그런지, 크리드에 대한 언급량도 대폭 상승했다. 이렇게 같은 날에 그것도 연속해서 방송될 줄은 나도 몰랐는데, 편성이 기가 막히게 배정됐다. 덕분에 온갖 사이트가 크리드와 내 얘기로 가득했다.

[흔한 아이돌의 반전매력]

양궁 시켰더니 카메라를 깨트리고, 노래 시켰더니 우승하는 아이돌이 있다?

이번 추석 예능 화제성 다 씹어먹음ㄷㄷ

크리드 문승빈이라고 함.

-아니 진짜 어떻게 둘이 같은 사람임??

-레알 문승빈 혼자 다 해먹네....

-둘중 하나만 해도 레전드인데 이게 되네ㄷㄷ

-엄마가 도령님 누구냐길래 엄마 사위라고 함^^

-저기요^^ 번호표 뽑으시라구요!!

-우리 엄마는 사위라 그러니까 무슨 소리냐고 자기꺼라던데?ㅎ....

-ㅁㅊ ㅋㅋㅋㅋㅋㅋ 엄마랑 라이벌이냐고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자랑스럽다 울 메보ㅠㅠㅠㅠㅠ

-공백기인데 언급량 실화냐며;;

확실히 공중파 예능의 파급력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다양한 사람에게 칭찬받는 기분이 낯설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인정받았다는 기분이 온몸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평화롭게 기쁨을 만끽했으면 좋으련만, 상태창이 눈치도 없이 또 빛나기 시작했다.

‘뭐야 갑자기? 설마…….’

불안한 예감은 언제나 정확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새로운 미션창이 떴다.

[!타임어택: 예능 프로그램 고정!]

제한 시간) 240시간

▶성공 시: 체력 증진 200% +3

▶실패 시: 예상치 못한 각혈 +1

“장난하나?”

“응?”

“뭐가?”

“아, 아니에요. 누나한테 갑자기 연락이 와서-”

너무 터무니없는 미션 주제와 제한 시간에 절로 욕이 나올 뻔했다. 다행히 평소에도 누나와 티격태격하던 걸 알아서 다들 별다른 의심 없이 넘어갔다.

예능 고정 자리를 따오라고? 이놈의 상태창이 보자 보자 하니까 내가 지금 아이돌 만들기 게임 속 캐릭터라고 생각하나 보다. 아이돌 포화 시기인 지금, 예능 고정은 정말 인지도 있는 연예인들이나 하는 거였다. 물론 크리드의 인지도가 부족한 건 아니지만, 일회성 출연이 아닌 고정 멤버로 합류하기에는 아직 시기 상조라는 거다. 게다가 10일 안에?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이건 정말 아니다.

‘그래.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했는데, 이참에 그냥 한번 실패해 봐?’

사실 지금껏 나온 다른 미션들에 비해 보상이나 패널티가 그렇게 특별해 보이지 않기도 했다. 체력이 증진된다면 물론 좋겠지만, 각혈 한 번 하는 게 뭐 그렇게 큰일인가 싶었다. 피를 토하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피를 흘려 본 적은 이미 여러 번이었으니까.

시크릿 싱어를 노리고 나온 미션인가 싶다가도, 애초에 고정 멤버가 있을 수 없는 프로그램이었다. 매주 다른 라인업의 참가자들이 나오고, 얼굴 공개를 안 하고 연승을 하더라도 새로운 1위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하차하는 포맷이었다. 게다가 현장에서 게릴라 방식으로 촬영을 하다 보니 고정 게스트도 있을 수가 없었다. 유일한 고정 멤버는 엠시뿐인데, 그건 정말 무리수 그 자체였다.

황당한 미션에 고민을 거듭하던 중, 매니저 형에게 연락이 왔다.

[승빈아, 연휴 끝나고 바로 시크릿 싱어 회식한다는데 너도 참석해야겠다.]

[회식이요?]

[응, 시청률 대박 나서 정규 편성될 분위기인가 봐.]

[네, 연휴 끝나고 뵐게요!]

유레카. 순간 머리 위로 번뜩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시크릿 싱어의 권 피디는 마당발로 유명한 피디였다. 분명 회식 자리에 다른 피디들도 축하해 주러 참석하겠지. 매니저 형한테 얼핏 들은 장소도 해당 방송국 근처였으니 말이다. 이때 뭐라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예상대로 회식 장소는 시끌벅적했다. 붐비는 인파 사이에서 권 피디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어! 승빈 군, 여기!”

“피디님, 안녕하세요! 연휴 잘 보내셨죠?”

“아유~ 잘 보내다마다! 내가 아주 승빈이 덕분에 최고의 추석을 보냈잖아-”

“아, 이 친구가 승빈이야?”

권 피디가 가리킨 곳에는 최연호 피디가 있었다. 티벡스 시절, 그가 기획했던 운동 프로그램에 한 번 출연한 적이 있어서 어렴풋이 기억나는 얼굴이었다.

“맞다, 여기는 최 피디. 내가 승빈 군 칭찬을 좀 많이 했어.”

“안녕하십니까! 본 투 샤인! 크리드의 문승빈입니다.”

“어후, 신인답네. 반가워요, 최연호 피디입니다.”

권 피디는 그 이후로도 회식 장소에 들어오는 사람마다 나를 소개하고 다녔다. 나로서는 둘도 없는 호재였다. 이렇게 얼굴도장을 찍으면 나중에 방송국에서 마주치더라도 괜히 반갑게 보일 테니까.

자리로 돌아와 사이다를 홀짝이며 주변 피디와 작가들이 푸는 연예계 관련 얘기들을 듣고 있었다. 짠 하는 소리와 함께 찰랑거리는 맥주를 쳐다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비싸다는 고기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맥주 한 잔만 하면 딱일 텐데. 어려진 게 안 좋을 때도 있다니. 혼자서 애통해하던 와중에 들리는 최 피디의 말이 내 귀를 사로잡았다.

“내가 이번에 새로 프로그램 들어가잖아.”

“맞아, 이번에도 운동 예능이라며.”

“응, 피겨야. 이번에는-”

“프로그램 이름은 나왔어?”

‘피겨? 최 피디? 내가 왜 그걸 생각 못 했지?’

“플레이 온 아이스.”

최 피디의 입에서 ‘플레이 온 아이스’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소름이 돋았다. 지난 10년 동안 히트시킨 운동 예능만 다섯 손가락을 넘어가는 최 피디의 별명은 ‘운동 예능의 아버지’였다. 그런 그가 제작한 피겨 예능이 ‘플레이 온 아이스(Play On Ice)’인데, 당시 피겨 열풍을 가져올 만큼 파급력 있는 예능이었다. 처음에는 ‘피겨를 가지고 예능을?’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점차 빠져들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캐스팅은 다 했고?”

“하, 그게 문제야, 지금. 대부분은 확정됐거든? 근데 뭔가 뉴페이스가 필요한데, 잘 안 보이네. 나도 우리 승빈 군처럼 복덩이가 하나 굴러 들어오면 딱인데.”

‘그 복덩이, 제가 한번 되어 보겠습니다.’

내가 소름 돋았던 이유는 단순히 그가 유명 예능 피디여서가 아니었다. 내가 피겨 예능에 출연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투마월 시즌 4 당시 준비하던 작품 속 배역이 바로 피겨 선수였다. 가난한 환경의 피겨 천재가 어려움을 이겨 내고 국가 대표가 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기본적인 스케이팅과 간단한 정도의 스핀 및 피겨 기술을 연습했었다. 물론 피겨 경기 자체에 대한 공부도 했었고.

“그럼 실제 선수들도 나오는 건가?”

“응, 근데 그것도 남자 선수 하나가 좀 애매해서. 화면 받을 만한 사람이 누가 좋을까 물색 중이야.”

“저기…….”

“응? 승빈이, 뭐 할 말 있어?”

이제 권 피디는 아예 성과 호칭을 빼고 ‘승빈’이라고 부르는 단계까지 왔다.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피겨 선수 한 명을 추천했다. 회귀 전 피겨선수 역할을 준비하면서 모티브로 삼았던 선수 중 하나였다.

“혹시 이정훈 선수는 어떠세요? 올해 시니어로 올라왔는데 컨시도 좋고, 점프 스케일도 좋으시더라구요. 무엇보다… 잘생기셨어요.”

“그래?”

역시 구구절절 말할 필요도 없이 잘생겼다는 말의 파급력이 제일 컸다. 최 피디는 곧장 이정훈 선수를 검색해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인지도가 막 높은 선수는 아닌가 보네? 이미 얼굴이 알려진 다른 선수들 사이에서 신선한 이미지일 것 같고… 바로 섭외 가능한지 한번 콘택 해 봐야겠네. 고마워요. 근데 원래 피겨에 관심 있었어요?”

“아, 제가 피겨 영상 보는 걸 좀 좋아해서-”

“그럼 피겨 기술이나 이런 것도 좀 알겠네요?”

“부끄러운 수준이지만 그래도 조금 아는 편입니다.”

“와, 우리 승빈이 모르는 게 뭐야-”

최 피디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모르는 척하기 힘들 정도의 반짝임이었다. 거기다가 권 피디가 옆에서 바람까지 제대로 넣어 주니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피겨 해 본 적도 있나?”

“아뇨. 해 보고 싶긴 했는데, 제가 어렸을 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해서- 몸 쓰는 건 춤 말고 제대로 해 본 게 없네요. 그래서 영상이라도 보면서 대리 만족 하다 보니까 이렇게 잡지식만 늘었네요.”

피겨를 해 본 적 없다는 말에 최 피디의 눈빛이 더 강렬해졌다. 아무래도 경험이 없는 쪽이 더 예능적으로 활용하기 좋을 테니까.

“와, 마음 같아서는 지금 바로 승빈 군부터 섭외하고 싶네.”

“내가 말했잖아. 이 친구 진짜 괜찮다고.”

“신기할 정도로 내가 딱 찾던 캐릭터야. 서바이벌 출신이라 안정적인 팬층은 있는데, 신인이라서 아직 이미지 소비도 거의 없고. 피겨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풍부한데 제대로 타 본 적은 없는! 게다가 딱 피겨에 어울리는 얼굴이랑 몸이기까지?”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후로는 회식 내내 최 피디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고, 최 피디가 다른 스케줄로 먼저 자리를 뜨면서 넌지시 말했다.

“조만간 다시 만나겠네요.”

어쩌면 10일이 채 지나기도 전에 미션을 성공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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