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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154화 (154/346)

154화

문스트럭은 추석 연휴지만 그 누구보다도 분주했다. 아이돌 운동회부터 시크릿 싱어까지 쭉 이어서 본방 사수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직 ‘청학동 도령님’이 승빈이라고 확정되진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촉을 확인하고 싶었다.

명절이지만 본가에 내려가지 않은 문스트럭과 K, A가 오랜만에 모였다. 지운이에 대한 애정을 인정한 이후로 아예 방 한쪽에 빔을 설치한 K의 집이 오늘의 모임 장소였다. 다른 둘이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빔 프로젝터와 소파를 세팅해 둔 그녀였다. 오늘의 덕질 푸드는 명절 음식과 그에 어울리는 막걸리였다.

“추석인데 안 내려갔네?”

“응, 이번에 부모님 효도 여행 보내 드렸어.”

“와우.”

“넌?”

“난 가까우니까 오전에 갔다 왔지.”

“나도 점심때 이미 다녀옴.”

대규모 프로젝트를 마치고 얻은 연휴 기간에 A는 제대로 즐겨야 한다며 현수막도 제작해 왔다.

[크리드의 밤]

“나 얘가 드디어 머리가 어떻게 된 줄 알았잖아.”

“디자인 봐, 광기가 느껴져.”

“이 정도면 재능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다고.”

“진심. 그냥 네가 아이돌 운동회 현수막도 제작하지 그랬냐.”

“지금 저기 내보내는 것도 짜증 나는데 했겠냐?”

“인정. 이번에는 팬석도 아예 안 받았잖아.”

“작년에 누구 다쳐서 그런 거지?”

“응, 그때 현장에서 바로 팬이 다치는 영상 찍어 올려서 그런 듯.”

“근데 저건 갔어도 열받는 스케줄이라 그게 그거긴 함.”

“맞아. 오래 보는데도 얼른 끝났으면 하는 스케줄은 저게 유일함.”

거의 하루 온종일 촬영을 하던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팬이건 가수건 썩 반기지 않는 스케줄이기는 했다. 매번 부상을 입는 참가자가 나오는 것도 큰 문제였고. 이제 저 안에서 눈이 맞는지 따위는 신경도 안 쓰이는 수준이었다. 어차피 연애할 애들은 장소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이미 잘 알고 있으니까.

“그건 그럼. 운동회가 6시부터였나?”

“응. 운동회가 9시까지 하고, 9시 되면 바로 채널 돌려서 시크릿 싱어 봐야 해.”

“근데 진짜 도령님? 걔가 승빈이 맞아?”

“나도 그거 확인하려고 보는 거야. 근데 백퍼 맞음.”

“하, 작년에 구오빠 아이돌 운동회 나오는 거 보면서 빨리 탈덕하고 내년에는 절대 안 봐야지 했는데…….”

“탈덕은 하긴 했는데 말이지.”

“근데 또 막상 하면 재밌게 보는 게 짜증 나.”

“그니까. 자존심 상해.”

“이게 몇 년째냐고. 나중에 할머니 되어서도 명절에 이거 챙겨 볼까 두렵다.”

“확실한 건 내가 케이팝 그만두는 게 저거 폐지보다 빠를 듯.”

“인정~”

기나긴 광고 끝에 마침내 아이돌 운동회가 시작되고 소속사별로 깃발을 들고 입장했다. 크리드는 투마월 시즌 1로 데뷔한 선배 그룹과 함께 등장했다.

“애들 분홍색 트레이닝복 입었네?”

“귀여워!”

“애들 옹기종기 모여서 오는 거 왜 이렇게 귀엽냐?”

일곱 멤버가 손을 맞잡고 강강술래를 하는 모습에 팬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재봉이 혼자 너무 푹 들어가있는거 아니야?ㅋㅋㅋㅋㅋ

-유현이랑 지운이 시작도 전에 기빨리는거냐곸ㅋㅋㅋㅋㅋㅋ

-승빈이 스탭꼬였엌ㅋ큐ㅠㅠㅠㅠ

셋 다 자신의 최애가 어느 종목에 나오는지가 가장 큰 관심사였다. 문스트럭은 이왕이면 승빈이 양궁에 나오길 바라고 있었다. 체력 소모나 부상의 위험도 적고 운이 좋으면 전광판에 얼굴이 잡히는데 활시위를 당기는 옆태를 볼 생각에 벌써부터 광대가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뒤이어 나온 VM 엔터테인먼트 깃발 뒤에 루커스와 김병대의 얼굴이 순서대로 나오는 것을 보고 세 명 모두 인상을 찌푸렸다. 방청을 받지 않았기에 다들 처음 아는 사실이었다.

“뭐야?”

“쟤네 아직 데뷔 안 하지 않음?”

“와… 대기업 힘 X나 세네.”

“이름이 포커스라고 했나?”

“응. 김병대 뒤에 쟤가 오재성. 둘만 나오긴 했네.”

“잘생겼네?”

“근데 뭔가 아이돌보다는 배우 할 얼굴 아니냐?”

“그건 그래. 내 취향은 아님.”

“데뷔 전부터 저렇게 푸시 넣는 거 보면 작정하고 띄울 생각인가 보네.”

“하긴, 루커스 재계약까지 몇 년 안 남았잖아. 그전에 얘네로 어느 정도 팬덤 흡수시켜 놔야지.”

모두의 충격을 뒤로하고 시작된 첫 종목은 볼링이었다. 응원석에서는 강도현을 비롯한 멤버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응원을 하고 있었다. 주변에 다른 아이돌도 가득했지만, 저 부산스러운 움직임이 부산에서 KTX 타고 봐도 강도현이었다.

“크리드! 화이팅!”

하필이면 하이 텐션을 담당하는 세 명이 출전해서 그런지, 나머지 세 명 사이에서 강도현의 텐션이 유독 더 높아 보였다.

“크리드의 에이스는 누구인가요?”

“볼링 에이스는 바로 저희 팀의 막내! 재봉이입니다!”

“와, 어떻게 우리 세 명 최애 중 아무도 안 나올 수 있는 거냐?”

“그래도 애들 응원하는 거 볼 수 있잖아.”

“재봉이는 의외인데?”

모두의 기대와 함께 경기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경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엥, 재봉이 지금 2개 쓰러뜨린 거?”

“좀 더 봐 보자. 애가 처음이라 긴장했나 보네-”

하지만 뒤이어 굴린 공 역시 도랑에 빠지거나, 최대가 5개였다. 지켜보던 셋이 하나같이 의문을 가진 사이 인터뷰 컷이 나왔고 모두 먹던 음식을 내려놓고 웃었다.

“재봉 씨,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분명 크리드의 볼링 에이스라고 했는데……?”

“저, 사실 볼링 태어나서 처음 해 봤거든요? 근데 저희가 멤버 선발할 때 어쩌다가 10개 다 쓰러뜨렸더니 저희 팀 형들이랑 직원분들이 천재라고 해서…….”

“그럼 딱 한 번만 해 본 거예요?”

[당황한 제작진들]

“네, 한번 해 보더니 그냥 저 나가라고 했어요!”

-ㅁㅊ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이 팔불출들앜ㅋㅋㅋㅋㅋㅋㅋㅋ

-아기는 잘못이 없어요

-거대한 박재봉육아 세계관임?ㅋㅋㅋㅋ

-해맑아서 더 어이없엌ㅋㅋ

-근데 한번 했는데 스트라이크면 천재 맞지ㅋㅋㅋㅋㅋ

-그렇지, 실력이 일회용인게 문제지만....

“아, 미치겠네…….”

“하긴 같이 지내는 애들이랑 직원들 눈에는 얼마나 애 같겠어-”

당연하지만 크리드는 1라운드에서 장렬하게 패배했다. 윤빈과 박선우가 하드 캐리 했지만, 박재봉의 반복적인 도랑은 누가 와도 커버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래, 오래 해 봤자 좋을 것도 없지.”

“맞아. 이 정도면 분량도 아쉽지 않게 뽑았고.”

그렇게 한여름 밤의 꿈 같던 볼링 게임이 끝나자 기약 없는 기다림이 이어졌다.

-크리드 나올 때 삐삐쳐주세요

-길어

-1시간 30분동안 크리드 분량 10분 실화냐?

-진짜 찐운동회인줄 아냐고 이 방송국놈들아

-그냥 크리드컷으로나 볼걸.....

-근데 다들 그거 알지? 이러다가 채널 돌리면 귀신같이 울애들 나옴ㅎ

-거의 뭐 볼모 수준 아니냐....

-보고만 있어도 이렇게 지치는데 하루종일 찍느라 다들 고생했겠다ㅠ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양궁 종목이 시작됐고 승빈과 지운의 등장에 문스트럭과 K는 환호성을 질렀다.

“미친, 작정했네. 지금 헤어밴드 하고 온 거임?”

“트레이닝복도 반바지로 바꿔 입음…….”

“도현이 화살 쏘는 거 보고 싶었는데…….”

1라운드는 가볍게 승리했다. 특히 문스트럭은 승빈의 양궁 실력에 놀랐다. 그래도 평타는 치지 않을까 싶었지만 자세나 집중력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스트럭의 바람대로 전광판에 승빈의 원샷이 잡혔는데 현장 반응 역시 좋았다. 초첨을 맞추느라 한쪽 눈을 윙크한 상태에다가 긴 팔로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이 화랑 같았다. 가뿐하게 9점을 쏘고 나서도 함성이 멈추지 않자 어리둥절한 승빈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런 ㅁㅊ

-사극한번찍자 승빈아

-전광판나올 때 함성봨ㅋㅋㅋㅋㅋㅋ

-승빈이 어리둥절햌ㅋㅋㅋ

-역시 승빈이는 얼굴이 제일 잘해

“미쳤다. 이거 빨리 누가 짤 쪄 줬으면 좋겠어.”

정유현과 차지운 모두 전광판에 얼굴이 잡혔는데, 그때마다 현장이 떠나가라 함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셋 다 청춘 학원물 양궁부 선배들이 당장이라도 만화를 찢고 나올 거 같은 비주얼이었다. 그리고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고화질 짤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의외로 팬들 기 살려주는 방법: 잘생기기

└ㅇㅈㅇㅈ

어느덧 결승전까지 살아남았고, VM과 대결하게 되었다. 개인 스케줄 때문인지 루커스 멤버가 둘만 나오면서 남은 자리를 김병대와 오재성으로 채운 것 같았다. 문스트럭과 K, A 모두 찝찝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징하다, 진짜.”

-크리드랑 포커스를 붙여놓넼ㅋㅋㅋㅋㅋ

-마라맛 아니냐고ㅋㅋㅋㅋㅋㅋㅋ

-둘 다 팬아니라 그런가 ㅈㄴ 재밌음ㅇㅇ

-ㄹㅇ 올해 남돌 볼맛나겠네ㅋㅋㅋㅋ

-자꾸 븨엠이랑 엮지말라고;;

“크리드 팀의 양궁 에이스는 누구인가요?”

“저희 팀 양궁 에이스는 승빈이입니다!”

“승빈 씨와 재성 씨, 상대 팀에게 각오 한마디 부탁드려요!”

“오늘 렌즈 한번 깨고 돌아가겠습니다.”

“승빈 선배님과 함께 경기할 수 있어서 너무 영광이에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

-각오 말하라니까 팬심을ㅋㅋㅋㅋㅋㅋ

-승빈이도 어제 데뷔했는데 선배님소리를 듣넼ㅋㅋㅋㅋ

-재성이 좀 귀여운데?

-ㅋㅋㅋ문승빈 가오잡다가 망했네

└뭐래

결승전답게 엎치락뒤치락 점수가 오갔다. 크리드가 9점을 쏠 때 VM이 10점을 쏘고, 크리드가 10점을 쏘면 VM이 9점을 쏘면서 거의 동점으로 진행됐다. 마지막 턴이 오고 크리드에는 차지운이, VM에는 김병대가 출전했다.

“형, 긴장하지 마요!”

“잘하고 와!”

멤버들의 응원을 받고 쏜 첫발은 9점,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김병대가 똑같이 9점을 쏘면서 점점 긴장감이 고조됐다.

두 번째 화살이 8점이 되면서, K는 티비 방향으로 선풍기를 돌리며 마치 현장인 양 김병대의 화살이 빗나가게 해 달라고 고사를 지냈다.

“제발, 제발……!”

하지만 김병대가 9점을 쏘면서 마지막 화살이 중요해졌다. K는 손에 땀을 쥐고 지운을 응원했다. 다행히 지운이 10점을 쏘면서 김병대를 압박했다.

“제발 8점, 병대야 딱 8점만 쏘자.”

“몇 점이야?”

“8점 아니면 9점이라는데?”

[9점]

[27 : 27]

“아씨!!”

“동점인 거야?”

“이제 한 발씩 쏘겠네.”

“엄청 부담되겠… 승빈이가 나와?”

“상대는 오재성이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결승전 현장]

먼저 오재성이 활시위를 당겼고 세 명과 클로버들은 멘붕에 빠졌다. 오재성이 10점을 쐈기 때문이다.

-아;;

-졌네

-가운데에 더 가깝게 쏜 사람이 이기는 거지?

└ㅇㅇ...

VM 쪽은 이미 승리를 한 듯 환호성을 지르며 축하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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