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153화 (153/346)

153화

“오늘의 시크릿 싱어 다섯 분을 공개합니다!”

“시크릿 싱어?”

“노래 프로그램인가 봐!”

“시크릿 싱어는 무대 위로 올라와 주세요!”

진행자의 진행에 따라 무대 위로 올랐다. 한옥 앞마당에 간이로 설치한 무대여서인지, 주변 풍경과 무대가 환상적으로 어우러졌다. 모두 한복을 입고 탈을 쓰고 나온 모습에 무대 아래 관객들은 웅성거렸다.

“뭐야? 얼굴을 안 보여 줘?”

“완전 목소리로만 판단해야 하네?”

“지금부터 다섯 명의 시크릿 싱어의 무대를 보고, 가장 여러분의 마음을 움직인 시크릿 싱어에게 투표해 주시기 바랍니다!”

케이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무대가 시작됐다. 나는 맨 마지막 순서였고, 오재성은 내 바로 앞 순서였다. 앞선 세 개의 공연이 모두 끝나고 오재성의 차례가 왔다. 무대 뒤에서 대기하던 오재성이 목을 풀고 있는 내 앞에 불쑥 나타났다.

“…뭡니까?”

“선배님, 저 너무 떨려서 그런데 응원 한 번만 해 주실 수 있어요?”

“네?”

순간 당황했지만, 긴장하지 말고 잘하라는 응원을 해 줬다. 깜짝 놀라서인지는 몰라도 잠깐 진정되었던 머리가 다시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촬영을 마치고 나서 약을 먹어야 하긴 할 것 같았다.

‘그래, 쟤가 나처럼 회귀를 한 애도 아니고, 티벡스가 되기 전엔 저런 성격이었나 보지. 이것도 빨리 적응해야겠네.’

그래,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했다. 데뷔도 하기 전인 연습생이 혼자 무대 하려니 얼마나 긴장했겠어? 그런데 무대 인터뷰 중에 터무니없는 답을 들었다.

“제 롤 모델이요? 크리드의 문승빈 선배님이요.”

롤 모델? 내가?

“오, 문승빈 씨가 롤 모델인 이유가 있나요?”

“만능 엔터테이너시잖아요. 노래도 춤도 잘하시고, 연기도 잘하시고.”

‘연기?’

“연기도 잘하나요?”

“승빈 선배님 솔로 뮤직비디오 보면 깜짝 놀라실 거예요-”

그럼 그렇지. 순간 얘가 내가 연기했다는 걸 어떻게 아는 건가 싶어서 흠칫했다. 근데 쟤는 무슨 솔로 트레일러도 찾아보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오죽하면 매니저가 나에게 둘이 아는 사이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그럼, 한양 선비님의 무대 시작하겠습니다!”

오재성이 선곡한 노래에 두 번 놀랐다. 내가 투마월 첫 평가 때 불렀던 서재인의 발라드곡이었다.

‘이 X끼 뭐지?’

전생에 앙숙이었던 놈이 이번 생에는 내 덕후가 되기라도 했다는 건가? 거기다가 내 무대를 많이 참고했는지 창법적인 부분에서도 비슷한 점이 많았다. 알 수 없는 찝찝함을 떨쳐 내지 못하고 내 무대 차례가 왔다.

“청학동 도령님, 오늘 어떤 곡 준비하셨나요?”

“‘여름의 끝’을 준비해 봤습니다.”

“오, 이렇게 점잖은 도령님이 락 발라드를 부른다니 의외네요?”

“그런- 반전 매력을 노린… 거까지는 아니지만 제 손이 도령님을 뽑아 버렸네요.”

“하하!”

“운명이라 생각하고 멋있게 불러 보겠습니다.”

사실 나도 콘셉트를 뽑고 조금 당황하긴 했다. 얌전하고 차분한 느낌의 도령 한복을 입고 락 발라드라니, 잘못하면 이질적이라는 평을 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 그럼 청학동 도령님의 무대 시작하겠습니다!”

혼자서 온전히 무대를 채운 것은 솔로 무대 이후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클로버들 앞이어서 크게 긴장이 되지 않았다. 행여 실수를 하더라도 응원해 줄 사람들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는 일반 대중들 앞에서 혼자 노래를 해야 하는 것은 꽤 큰 중압감을 주었다.

‘밑져야 본전이다. 후회 없이 무대하고 내려오자.’

심호흡을 마치고, 반주자에게 시작 사인을 보냈다.

[함께였던 공간이

너무나도 커다랗게 느껴져

내 방은 그대로인데

너 하나 없을 뿐인데]

첫 소절은 피아노 반주 하나만 깔리고 온전히 내 목소리에 집중되는 파트다. 숨소리 하나까지 신경 쓰면서 조심스럽게 불렀다. 너무 긴장이 된다면 차라리 두 눈을 감고 부르려고 했지만, 탈로 가려졌으니 표정으로 긴장이 드러나도 아무도 못 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그 어떠한 감정의 여과 없이 온전히 노래에 집중할 수 있었다.

[쏟아지는 빗소리만

멍하니 듣고 있었어

끝내 네 번호를

누르지 못하고 있어]

의도하진 않았지만 노래 가사에 집중하다 보니 저절로 두 손으로 마이크를 꼭 쥐게 되었다.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후렴구가 되면서 점점 텐션을 올렸다. 하지만 1절에 모든 걸 터뜨리지 않고 반가성 위주로 천천히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별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던 경험을 최대한 떠올리며 그때 가졌던 감정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이 빛을 발했다.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도무지 말을 꺼낼 수 없어

끝까지 어른스럽지 않은 모습

미안해 못난 나라서]

가장 공들여서 연습했던 하이라이트 구간이 왔다. 초고음이 있는 파트이면서, 그동안 쌓아 온 감정을 한꺼번에 터뜨리는 파트이기 때문에 단순히 고음을 잘한다고 만족할 수 없다. 이전까지 비축했던 에너지와 감정을 모두 쏟아 냈다. 그러다 보니 몸이 살짝 비틀거릴 정도였다.

[그래 이제 인정해야 해.]

그리고 이어진 파트는 모든 이별의 과정이 끝남을 인정하듯 허탈한 마음을 보여 줘야 했다. 그래서 오히려 목이 메인 쇳소리가 잘 어울렸다. 모든 악기 소리가 다 사라지고 목소리만 남았다.

[끝나 버린 여름도

영원히 기억할게]

마지막 파트를 하면서 눈물이 살짝 고였다. 3분 만에 영화 한 편의 감정을 모두 쏟아 냈더니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어떻게 무대를 했는지도 모르게 끝이 났고, 걱정과 달리 엄청난 박수 소리와 함성 소리가 들렸다.

“와아아!”

순식간에 긴장이 풀렸고, 쓰고 있던 탈 위로 마른세수를 했다. 아드레날린이 최대치로 분비되면 이런 기분일까? 숨이 벅차오를 만큼 심장이 두근거렸다. 막을 틈도 없이 눈물이 흐르는데, 탈로 얼굴이 가려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무대 아래를 보니 무대 시작보다 관객이 더 많아져 있었다.

“청학동 도령님의 무대까지 잘 보셨나요?”

“네!”

“자, 그럼 여러분의 마음을 움직인 시크릿 싱어에게 투표해 주세요!”

투표가 모두 끝나고, 모두 1등의 정체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뒤이은 진행자의 안내에 아쉬워하는 관객들이 많았다.

“최종 결과는… 방송을 통해 확인하세요!”

“엥?”

“뭐야?”

“아, 궁금한데!”

녹화 종료를 알리고 세트를 정리하고 있음에도 혹시나 결과 발표 촬영을 하지 않을까 기대하며 자리에 남아 있는 관객들도 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SNS를 확인해 보니 역시나 ‘시크릿 싱어’ 촬영 현장을 담은 영상들과 사진이 우후죽순 올라와 있었다.

“현장 게릴라로 진행하니까 대중 반응들이 바로바로 올라오더라고.”

“그러게요. 그래서 일부러 촬영을 막지 않은 거 같아요. 알아서 바이럴 되라고.”

“승빈이 네 영상이 제일 반응 좋더라.”

“다행이다. 저 진짜 긴장 많이 했거든요.”

[시크릿 싱어 예상 달글]

-내시는 케이 아님?

└ㅇㅇ목소리가 지문임

-내시는 케이, 평민이 G, 노비가 F인거 같은데

└저 셋은 확실한 듯?

-도령이랑 선비가 누군지 모르겠음

-도령이랑 선비 둘다 신인이라서 모르는 건가?

└근데 신인이 벌써? 아무리 파일럿프로그램이라고 해도;;

-근데 진심 이렇게 홍보 없이 촬영할 줄이야ㅋㅋㅋㅋㅋ

└ㄹㅇ 나 조카 데리고 민속촌 갔다가 깜짝 놀랐잖아ㅋㅋㅋㅋㅋ

[시크릿 싱어 도령님 누구냐?]

-도령님이 제일 궁금함

-분명 존잘일 듯

└ㅇㅇ탈로 가렸는데 그냥 피지컬이랑 비율이 미쳤음

└아이돌이려나?

-누구 예상 가는 애 없음?

-아이돌 메보 중에서도 탑티어 아님?

-현장에서 듣는데 성량이랑 감정 너무 좋아서 놀랐음

-ㅇㅇㅋㅋㅋㅋㅋㅋ나 민속촌 놀러갔다가 투표하고 갔잖앜ㅋㅋㅋ

역시나 출연진들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평소에 자주 하지 않았던 스타일의 노래를 해서일까,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댓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승빈이 같은데?

└승빈? 문승빈?

└ㅇㅇ크리드 메보 문승빈.

└엥 문알못이네;; 승빈이 목소리 저렇게 허스키하지않음

└아니 장르가바뀌니까 창법은 다르게할 수 있지 근데 끝음처리랑 특정발음이 승빈이야

‘이런 것도 알아본다고?’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대부분 저 댓글에 반박을 하고 있었다.

-ㅇㅇ승빈이는 그리고 저렇게 감정적이게 안부름

-승프들 올려치기 한두번보냨ㅋㅋㅋㅋㅋ

└ㄲㅈ

-좀만 잘하면 다 지새끼래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칭찬과 조롱 사이에서도 제일 마음에 드는 반응이 있었다.

-탈을 썼는데도 표정이 보이는 무대였음ㅇㅇ

해당 댓글은 너무 마음에 들어서 따로 캡처를 해 두었다. 무대를 준비하면서 가장 원했던 반응이었다. 감정 표현이 무척 중요한 무대였고,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그 연기가 전달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시싱 1위 누가할거같냐?]

-닥도령

└22

└33

-도령이 너무 강력했음

-선비도 괜찮지않았냐

└도령이랑 비비기엔;;

-근데 애초에 경연보다는 무대보여주려는게 강해서 1위 안알려줘도 많이는 안 아쉬울거같음ㅋㅋㅋ

-ㅇㅇ1위 누구일지보다도 그냥 도령이 누구인지 궁금함

이 정도면 꽤 성공적인 반응이었다. 실력에 대한 인정도 받았고, 무엇보다도 대중의 호기심과 흥미를 자극했다는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단톡방에서 멤버들에게도 연락이 와 있었다.

-오늘 수고 많았어!

-영상 봄ㅋㅋㅋㅋㅋㅋ너가 무조건 1위야

-노래 선정 진짜 잘 한거 같아요!

아주 조금 남아 있던 긴장이나 두려움까지 모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오히려 방송 날이 기대가 됐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 노래를 들려줄 기대 역시.

* * *

짹짹이 타임라인을 거의 도배한 시크릿 싱어 영상을 보던 문스트럭은 ‘청학동 도령님’의 영상을 무한 반복했다. 핸드폰으로 찍은 영상이라 화질도 음질도 떨어졌지만, 이상하게 이 영상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그녀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승빈이인데?”

“뭐가?”

“이거 청학동 도령이라고 올라온 영상.”

“와, 그거 지금 완전 난리긴 하더라. 근데 승빈이한테 이런 목소리가 있었나?”

“목소리보다도 끝음 낼 때 승빈이 특유의 느낌이 있는데 그게 있다니까? 그리고 고음할 때 제스처가 딱 승빈이야.”

“승빈이가 저런 노래 한 거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던데.”

“그건 그런데 내 심장이 반응하고 있음.”

“그러다 그냥 다른 오빠 하나 더 생기는 거 아님?”

“야, 그게 무슨 소리야! 내 케이팝 마지막은 문승빈이라니까?”

K는 확신에 찬 문스트럭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흥분한 문스트럭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큰일 나니까. 그때 문스트럭이 댓글을 읽더니 분노했다.

“아, 알못? 이 X끼 지금 나보고 문알못이라고 한 거냐?”

“하긴, 네가 문승빈으로 논문 썼으면 박사 학위 딸 인간이긴 하지.”

“저 X끼 내가 기억한다. 도령 정체 밝혀지는 날 어디 한번 두고 보자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