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이른 아침부터 멤버들이 모두 함께 종합 운동 센터로 향했다. 졸린 눈을 비비면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볼링장이었다.
“볼링에는 3명이 출전할 거야. 일단 다들 한 번씩 굴려 볼래?”
볼링은 영 자신이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애매하게 3핀을 쓰러뜨리고 끝났다.
“아, 승빈아- 세 개가 뭐냐, 세 개가!”
“넌 얼마나 하나 보자.”
강도현이 의기양양하게 볼링공을 굴렸다. 처음에는 일직선으로 잘 굴러가서 나도 자존심은 상하지만 인정하려고 했다. 강도현도 이미 게임 끝났다는 듯 아예 등을 돌리고 나를 향해 이거 보라며 손짓을 했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엥? 공이 어디로 가는 거야?”
“설마 도랑이야?”
“아, 대박!”
“네?”
심상치 않은 반응에 고개를 돌린 강도현이 마주한 것은 시원하게 도랑에 빠진 공이었다.
“도현아, 도랑이 뭐냐 도랑이?”
웃음을 참으며 자신이 했던 멘트 그대로 놀리니 강도현이 분하다는 듯 머리를 쓸어 넘겼다.
“도현이 형 오늘부터 강도랑이라고 저장해야겠다-”
“재봉아, 아이디어 좋다.”
“아니, 잘 가다가 이럴 수 있나?”
“도현아, 원래 사람 인생 한 치 앞도 모르는 거란다?”
“뭐야, 애늙은이도 아니고.”
‘아무래도 내가 너보다 4살 더 많으니까……?’
윤빈 형과 재봉이는 한 번에 스트라이크를 쳤다. 박재봉도 스스로 놀랐다.
“헐… 재봉아, 너 볼링 해 본 적 있어?”
“아뇨?”
“재봉이 천재네, 천재.”
“에이 매니저 형, 누나들 오버한다!”
“아니야, 멤버는 이렇게 둘에 선우까지로 정했어.”
“벌써요?”
“이렇게들 잘하는데, 더 볼 필요 있겠니? 이제 양궁 하러 가자.”
스트라이크는 아니었지만, 스페어로 깔끔하게 마무리한 선우 형까지 볼링 멤버가 바로 정해졌다.
‘이렇게 속전속결로 정한다고?’
양궁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공평하게 다들 한 번씩 쏘게 해서 점수가 높은 멤버 셋을 선정하는 방식이었다.
‘지금도 잘 나올지 모르겠네…….’
시간이 꽤 지났지만 연습을 하던 그때와 비슷한 나이의 몸이기도 하고, 진짜 죽을 각오로 연습해서 그런지 어느 정도 감이 남아 있었다. 숨을 가다듬고 침착하게 활시위를 당겼다.
“10점!”
“우와!”
“뭐야? 왜 이렇게 잘해?”
10점을 쏘고 나도 당황했다. 8점 정도만 나와도 만족하려고 했는데 덜컥 10점을 쏴 버렸다니.
“우리 양궁은 문제없겠는데?”
오늘따라 동행한 코어 직원들의 칭찬이 과했다. 마치 자기 아이가 천재라며 이것저것 학원에 보내는 극성 부모의 느낌이었다. 결과적으로 양궁은 나와 정유현, 지운이 형이 뽑혔다. 속전속결로 출전 멤버가 정해졌다.
“승빈 군은 전에 양궁 배워 본 적 있어요?”
“아, 아뇨? 저 그냥 영상 보는 걸 좋아해서.”
“에이, 문승빈 거짓말하네~”
“뭐가?”
“서바이벌에서 했었잖아!”
“아, 맞네. 그때도 잘해서 깜짝 놀랐는데.”
“그래요? 확실히 자세가 다른 멤버들이랑 달라서요. 근데 배워 본 적이 없다니, 타고났나 보네-”
“그러게. 승빈 씨 덕분에 금메달 하나는 확보해 뒀네, 우리~”
‘티벡스 시절에 분량 얻으려고 안무 연습보다도 더 열심히 훈련했었지…….’
민망하기는 해도 기분 좋은 반응이었다. 소속사 직원들이 이렇게 아티스트를 칭찬하고 챙겨 줄 수도 있다니. VM에서 연습생 했던 시절은 뭐, 말할 것도 없고, 데뷔하고 나서는 더했다. 그 회사에 돈 벌어다 줄 수 있는 건 그나마 티벡스밖에 없었는데도 대우가 최악이었으니 뭐, 비교하기도 죄송스러울 지경이다.
“나는 아무것도…….”
“도현이는 계주랑 달리기 하면 되겠네!”
“네?”
“지난번에 도현이 촬영장에서 뛰어다니는 거 보니까 잘 뛰던데?”
“그래 보였어요?”
“그럼- 도현이가 계주랑 50m 나가자.”
“그리고 축구도 했었잖아~”
“맞네!”
그새 기분이 풀려서 센터 이곳저곳을 방방 뛰어다니는 강도현이었다. 확실히 운동 신경은 좋은 애인데, 이렇게 안 맞는 종목들만 있을 줄이야. 아이돌 운동회 소리에 가장 신났던 것도 강도현과 윤빈 형이었느니, 그 실망감이 충분히 이해가 됐다.
저녁이 되자 벌써부터 목격담이 떴다.
@asdjakdjl 1분 전
시간 꽤 지나서 올려요! 오늘 00종합 운동 센터에서 크리드 봤어요 멤버 전체랑 코어 직원 몇 명이서 왔는데 볼링이랑 양궁하고 갔습니다. 근데 직원분들이 엄청 우쭈쭈 한다고 해야하나? 멤버들 공만 굴려도 반응이ㅋㅋㅋㅋ 도현이 볼링치다가 도랑 빠진 것도 봤어요. 다들 엄청 장난도 많이 치고 너무 귀여웠습니닼ㅋㅋ
#크리드 #문승빈 #강도현
-도현이 도랑ㅋㅋㅋㅋㅋ
-도현이 운동 잘하지 않나?
└축구했던 걸로 아는데 손으로 하는 건 잘 못하나봨ㅋㅋㅋ
-코어 극성부모냐곸ㅋㅋㅋ
-애들 아이돌 운동회 나오나보네ㅎ
└아.............?
└ㅅㅂ...
└곧 2집 나온다고 하지않았나? 벌써부터 굴리네
-운동회 폐지기원 1일차
-재미도 없는데 왜하는거임?
└명절 프로그램 중에 시청률 제일 잘나오더라ㅎ....
역시 팬들의 반응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아무래도 부상의 위험도 있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팬들은 화장실도 제대로 갈 수 없이 자리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남녀 아이돌이 한곳에 모여 있기 때문에 우연히 눈이 마주치거나, 인사만으로도 온갖 궁예 판이 깔리기 제격이었다. 안티들과 위튜브 렉카들에게는 축제 날일 것이다.
대놓고 피디의 압력이 큰 프로그램인 것이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어서 부상이 있거나, 몸 상태가 좋지 않더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출연하는 그룹이 한둘이 아니었다. 슬프게도 티벡스 시절의 나는 이렇게라도 방송을 출연할 수 있다며, 이런 프로그램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 * *
“잘하고 와.”
“다 이기고 와요, 형!”
“응.”
드디어 결전의 날이 다가왔고, 시크릿 싱어 촬영 전 숙소에 있던 모든 멤버들의 응원을 받았다. 솔직히 말해서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만큼 긴장 중이었다. 멤버들에게 티를 내진 않았지만, 촬영장으로 향하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많이 긴장돼?”
“솔직히 말해서… 네. 지금 완전 긴장 그 자체예요.”
“하긴, 그룹 대표해서 나가는 첫 예능이잖아.”
내가 긴장과 떨림을 멈출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였다. 티벡스 시절에는 내가 그룹을 대표하는 중대한 역할을 한 적이 거의 없었다. 있어 봤자 곡 소개나 케이블 프로그램 예능에서였지. 그때는 나머지 멤버들 다 숙소에 있을 때 혼자 스케줄 가는 형을 부러워하기만 했는데, 새삼 지운이 형이 가졌을 책임감과 중압감이 느껴졌다.
‘내가 첫 스타트를 잘 끊어야 해.’
비록 지금은 파일럿 프로그램이지만 ‘시크릿 싱어’는 장차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예능 프로그램이 된다. 이번에도 반응이 좋아 정규 프로그램이 된다면 그 시작을 함께하느니만큼, 여기서 좋은 모습을 보여 주면 앞으로 나를 포함한 크리드 멤버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첫 번째 촬영지는 민속촌이었다. 촬영장에 도착하자마자 제작진들이 출연진을 모았다. 아직 파일럿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라인업이 엄청 화려하지는 않았다. 애매하게 2군인 그룹 ‘오드’의 케이, 신인배우 G, 뮤지컬 배우 F 그리고 오재성이 있었다.
‘오재성이 어떻게? 아직 데뷔도 하지 않았는데?’
“안녕하세요, 선배님! 여기서 다시 뵙네요!”
거의 90도로 폴더 인사를 하길래 나도 얼떨결에 인사를 받았다. 지나치게 반가워하는 목소리에 당황했지만,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썩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때 알 수 없는 두통이 몰려왔다. 찰나였지만 뒷통수에 번개를 맞은 듯한 충격이었다.
‘너무 신경을 많이 썼나? 갑자기 두통이…….’
다른 출연진들에게도 싹싹하게 인사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회귀 전 오재성과는 딴판이었다. 역시 망돌 생활을 하면서 삐뚤어졌던 것일까?
“못 보던 얼굴인데, 신인인가?”
오재성을 위아래로 훑어보던 케이가 물었다. 오재성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답했다.
“아, 곧 포커스라는 그룹으로 데뷔할 오재성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데뷔도 안 했는데 용케 지상파 예능을 다 나오네요? 소속사가 어디길래…….”
“VM입니다. 하하, 정말 열심히 준비했으니까 예쁘게 봐 주세요.”
VM이라는 말에 케이의 눈썹이 빠르게 일그러졌다가 돌아왔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본 것이 열심히 음료수를 돌리던 케이와 매니저였기 때문이다.
‘어차피 방송은 추석 연휴 시즌에 나올 거고, 그때쯤이면 포커스도 데뷔할 테니, 홍보 겸 출연시킨 거구나-’
역시 VM의 파워는 무시할 수 없었다. 탐탁지 않게 보던 이들도 VM 한마디에 조용해졌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데뷔도 안 한 신인을 지상파 예능에 바로 출연시키다니 상상을 뛰어넘는 푸시였다. 회귀 전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크리드의 성공에 독이 단단히 오른 게 분명했다. 앞으로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뽑기로 의상과 콘셉트 정할 예정이니, 하나씩 뽑아 주세요.”
제작진이 준비한 상자에서 종이를 꺼냈다.
[청학동 도령님]
내가 뽑은 의상은 푸른 계열의 도령 한복이었다. 민속촌에서 촬영하는 만큼 다들 한복을 입고 진행할 모양이었다. 의상을 입고 나오니 출연진들이 가지각색의 코스튬 한복을 입고 있었다. 오재성은 선비 역할인지 갓과 한복을 입고 있었다. 이외에도 내시, 평민, 노비 의상이 있었다.
‘확실히 잘생기긴 했네…….’
티벡스 시절에도 괜찮은 얼굴이었지만, VM에서 관리를 받아서인지 그때보다도 상태가 좋아 보였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정석 미남상인데 그 당시에도 아이돌보다는 배우상에 가깝다는 반응이 컸던 걸로 기억한다. 회상도 잠시, 제작진이 준비한 탈까지 쓰고 모든 준비를 마쳤다.
“선배님, 의상 정말 잘 어울리세요.”
“네? 아, 감사합니다.”
“화이팅하세요!”
회귀 전과 똑같은 얼굴인데 행동은 전혀 딴판인 오재성이 도통 적응이 안 됐다. 티벡스 시절에는 무대에 대한 간절함이나 열정이 없어 보이는 태도 때문에 부딪히는 일이 잦았다. 그때는 아이돌로 데뷔하고 적당히 인지도 얻은 뒤에 배우로 성공하려는 야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으니까.
“출연진분들 대기하실게요!”
스태프의 외침과 함께 무대 뒤로 대기했다. 틈새로 확인해 보니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시크릿 싱어’의 포맷상 야외에서 게릴라 형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얻기 힘들다는 것을 감안하면 성공적인 스타트를 끊은 셈이다.
언제나 그랬듯 무대를 앞둔 이 순간, 적절한 기대감과 긴장감에 심장이 미친 듯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