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151화 (151/346)

151화

다시 이뤄진 짧은 암전 끝에 현실로 돌아왔다. 눈을 떠 보니 여전히 나 혼자였다. 이른 아침부터 다른 멤버들이 연습을 가서 다행이었다. 지금 강도현의 얼굴을 봤다면 분명 눈물이 났을 거다.

그렇게 혼자 고요한 방에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때의 어린 문승빈을 위로했고, 또 그때의 어렸을 강도현을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생각이 갈무리되었을 때쯤 타이밍 좋게 방문이 열렸다.

“어, 아직 있었네?”

“…응?”

“너 늦게까지 사운드클라우드에 노래 올린 거 반응 보다가 잔 거 같아서 다들 안 깨웠거든.”

“어쩐지, 일어나 보니까 아무도 없어서 당황함.”

“노래 좋더라. 역시 우리 팀 메보다워.”

낯간지럽게 칭찬을 이어 가던 강도현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의아한 맘에 시선을 돌리니, 잠깐의 정적 후 결심했다는 듯 입을 열었다.

“혹시 그 이후로 문어 대가리한테 연락 안 왔지?”

“어, 왜?”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네 번호를 알고 있는 거 같더라고. 한 번으로 끝낼 사람이 아니니까.”

“그건 그렇지. 근데 이젠 그 인간이 뭐라 해도 상관없어.”

“올- 뭐야, 멋있게?”

다행이라는 듯 웃는 강도현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애써 참고 있던 눈물이 다시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됐네요. 그나저나 너, 아침은?”

“아직. 난 잠깐 산책 갔다 왔거든. 너 깨워서 같이 먹으려고 했지.”

이렇게 평범한 일상을 함께 보내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자체가 새삼 낯설게 다가왔다. 지금 우리는 똑같은 열여덟 살인데,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이 유독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고맙다, 도현아.”

“뭐가?”

“그냥 이것저것.”

“뭐야, 민망하게.”

“어차피 늦은 거 시켜 먹자. 내가 맛있는 거 사 줄게.”

“뭐야, 진짜 무슨 일 있냐?”

“어. 할 말도 있으니까 각자 씻고 밥 먹으면서 얘기하자.”

사 준다고 자신 있게 말한 것치고는 아직 연 음식점이 많지 않아, 한정된 선택지 중에서 겨우 메뉴를 골랐다. 주문해 두고 미리 외출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머리까지 말리고 나니 딱 맞춰 도착한 음식을 테이블에 세팅했다.

7명이 다 앉아도 넉넉한 식탁에 둘이 앉아 있으려니 뭔가 웃기긴 했다. 둘이 붙어 앉기도 웃기고, 그렇다고 마주 보고 앉기에는 너무 극과 극이고. 내가 먼저 자리를 잡아서인지 뒤늦게 도착한 강도현이 고민하는 게 눈에 보였다. 고민 끝에 맞은편에 앉은 강도현이 물었다.

“할 말이 뭐야?”

“먹으면서 해도 되는데 하여간 성질 급한 건 여전하네.”

“참나.”

“그냥, 최근에 재봉이 일도 그렇고. 네가 마음고생 많이 했겠다 싶어.”

아닌 척해도 은근히 긴장한 모습이었다. 여전히 긴장할 때면 발을 가만히 두지 못했으니까.

“뭐, 나 혼자만 그랬나? 다들 노력한 거지, 뭐.”

“새삼 웃기지 않냐? 투마월 초반만 하더라도 너, 나랑은 상종도 안 하려고 했었잖아. 나도 그랬고.”

“다 지나간 일 다시 꺼내서 뭐 좋을 게 있어.”

“너무 많은 오해가 있었고,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솔직하지 못했으니까.”

“어떻게 하나하나 풀어낼 수 있겠냐? 사람이 뭐, 항상 모든 걸 말할 수는 없는 거잖아.”

그 말을 듣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날 거 같았다. ‘사실 나는 지운이 형을 살리고 미래를 바꾸기 위해 여기로 회귀했어.’라고 말하고 싶은 순간이 너무 많았다. 절대 믿어 줄 리가 없는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없이 음식만 먹는 내가 이상했는지 강도현이 말했다.

“아무튼 난 이제 너한테 나쁜 감정 없어. 앞으로가 중요한 거잖아. 그러니까 너도… 그만 마음에 담아 뒀으면 좋겠다.”

“고맙다. 나도 마찬가지야. 제대로 말 못 하고 잠수 타서 미안했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대로 사과할게.”

“…….”

“사실 그 이후로 우리가 다시 얘기를 나눈다면 꽤 먼 미래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인생 진짜 모를 일이다.”

“…….”

“말도 없이 사라진 나를 찾아 줘서 고마웠고, 실망했으면서도 다시 나한테 말 걸어 줘서 고마웠어. 도현아, 우리 앞으로 진짜 잘 지내 보자. 이제는 내가 너를 찾아갈게.”

오로지 지금 내 앞에 있는 강도현만을 생각하면서 얘기했다. 적어도 강도현에 한해서는 회귀 전의 모든 일들이 나에게 더 이상 무의미해졌으니까. 함께 연습했고, 서로를 응원했으며, 말없이 사라진 나를 원망하기보다 찾아 주었던 강도현만을 생각했다. 의외로 답은 간단한 곳에 있었다.

“뭐야, 문승빈. 아침부터 사람 울리네.”

“우냐? 그럼 이거 내가 다 먹어야지.”

“너 그러려고 지금 말한 거지.”

“티 났냐? 억울하면 빨리 드시든가. 다 식겠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촉촉해진 눈가를 애써 모르는 척하고 장난을 치는 게 우리다웠다. 무슨 맛인지도 기억 안 날 정도로 정신이 없었지만, 떠먹은 국물이 유난히 따듯하게 느껴지는 아침이었다.

* * *

미션을 클리어하고, 강도현과의 오해까지 풀고 나니 ‘시크릿 싱어’ 촬영이 정말 코앞임을 깨달았다.

[제목 : 여름의 끝]

-노래:■■□□□

혹시나 하는 기대로 노래창을 확인했지만, 이전과 같았다. 그럼 그렇지, 정말 자비 없는 상태창이다. 연습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걸까, 연습에 소홀하거나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면 꼼짝도 않는다.

최종 점검까지 이틀, 실제 촬영까지는 5일 남았다. 최종 점검 때 후회 없이 실제 무대처럼 해내야 이 노래를 사수할 수 있다.

‘오늘부터 맹연습을 해야겠어.’

먼저, 많이 불러 본 장르가 아니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락 발라드 곡을 들었다. 그리고 대중들에게 인기가 많은 목소리를 찾기 위한 노력도 했다. 원곡자는 말 그대로 파워 보컬이어서 내 원래 목소리와 창법에 녹아들게 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먼저 노래 가사를 하나의 시나리오라고 생각하고, 기승전결을 나누었다. 내용에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멜로디와 노래의 흐름도 생각했다. 확실히 노래를 통으로 이해할 때보다 더 집중이 분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감정이 섞일 필요 없이 적재적소에 몰입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분석하고 연습했을까, 드디어 노래창에 변화가 생겼다.

[제목 : 여름의 끝]

-노래:■■■□□

이후에는 노래 스킬 자체에 대한 연습을 늘려 갔다. 마침 활동 중간에 타임 어택 미션으로 얻은 포인트가 있었다. 이번에는 아예 노래 스텟에 포인트를 사용해서, 실력 자체를 업그레이드하기로 했다. 노래에 대한 이해도는 이제 연습으로 채워 갈 자신이 있었으니까.

‘노래에 1 포인트 추가해 줘.’

[이름: 문승빈]

외모: A-

끼: B+

보컬: A+

댄스: B-

프로듀싱: B

노래 스텟이 A+가 되면서 불안감이 많이 사라졌지만, 쉴 새 없는 스케줄이 유일한 변수였다. 공백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의 스케줄이었다. 부족한 연습 시간에 이동하는 시간까지 활용하면서 틈틈이 연습에 임했다.

“승빈아,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맞아. 잠도 거의 못 잤잖아.”

“괜찮아요- 요즘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멤버들은 거의 매일 새벽 연습을 하고 오는 나를 걱정했다. 연습을 만족할 때까지 해야 마음이 놓이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몸은 피곤했지만 심리적으로는 오히려 안정을 찾고 있었다. 시간을 쪼개 가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드디어 촬영 이틀 전, 노래창의 스텟까지 모두 채우게 되었다.

[제목 : 여름의 끝]

-노래:■■■■■

‘이제 됐다.’

노래 포인트를 높여 놨기 때문에 개별적인 노래창 포인트는 미달이어도 큰 문제는 없었을 거다. 하지만 하나둘 채워 갈 때의 쾌감은 포기할 수 없었다. 성장한 노래 실력과 다 채워진 노래 포인트가 만나면 현장에서는 얼마나 시너지 넘치는 무대가 될까- 기대감이 차오르고 있었다.

* * *

연습을 마치고 바로 회의가 있어서 회의실로 이동했다. 다른 멤버들이 먼저 도착해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해나 디렉터가 들어왔다.

“오늘은 2집 앨범에 대한 간략한 콘셉트, 그리고 지난번에 멤버 여러분이 말했던 아이디어 중 각자의 능력에 대해 가볍게 얘기하는 회의가 될 겁니다.”

“네.”

“크리드의 자아 찾기 4부작 중 두 번째는 바로 ‘Ready’입니다. 1집에서는 단순히 여러분들의 아이디와 이드를 발견하는 과정이었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여러분들이 능력이 발현되고 자아를 찾는 여정을 준비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준비한 이미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오해나 디렉터가 준비한 레퍼런스에는 달리기 출발선에 선 운동복을 입은 소년들의 모습이었다.

“컴백 프로모션에 사용될 영상의 콘셉트는 바톤을 주고받는 소년들입니다. 매일 한 명씩 바톤을 전달하는 영상을 공개할 계획입니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멤버인 승빈 군이 결승선을 통과하는 장면으로 일주일간의 프로모션을 진행할 예정이고요. 이제 각자 원하는 능력에 대해 자유롭게 얘기해 보세요.”

“저는 염력!”

“저는 순간 이동이요.”

“막 동물이랑 대화하기도 가능해요?”

“왜 안 돼요? 선우 군은 염력. 도현 군은 순간 이동, 윤빈 군은 동물들과 대화하는 능력…….”

최대한 신중하게 고민했다. 이런 거 한번 잘못 선택하면 두고두고 놀림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사이 지운이 형과 박재봉도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저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요!”

“저는 치유 능력이요.”

“음, 재봉 군은 독심술, 지운 군이 치유 능력 맞죠? 승빈 군은요?”

“저는 미래를 보는 능력으로 하겠습니다.”

“미래를 보는 능력… 알겠어요. 일단 여러분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서 세계관 및 뮤직비디오 콘티를 준비해 볼게요. 다음 회의 때 봅시다.”

“네, 감사합니다!”

“그때 뵐게요!”

오해나 디렉터가 먼저 회의실을 나서자, 기다렸다는 듯 멤버들이 모두 들떠서 한마디씩 소감을 내뱉었다.

“저 이런 거 너무너무 해 보고 싶었어요!”

“나도. 대체 이번에는 어떻게 구현하실지 너무 궁금해.”

2집 활동에 대한 기대감이 점점 커져만 갔다. 그렇게 다들 다음 활동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이번에는 매니지먼트 팀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아이돌 운동회요?”

“그래, 추석 특집 아이돌 운동회에 출전할 거야. 양궁이랑 볼링, 계주. 원하는 종목 있으면 더 나갈 수도 있기는 한데 일단은 이렇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당장 이틀 뒤가 시크릿 싱어 촬영이고 연습 시간도 빠듯한데 운동회 연습까지 겹쳐 버렸으니 말이다. 그나마 양궁은 할 줄 알기는 했지만 잘못했다가는 이것도 저것도 놓칠 위험이 컸다.

“연습은 어떻게…….”

“종합 운동 센터 가서 연습할 거야.”

“그렇게까지 해요?”

“당연하지. ‘아이돌 운동회’ 피디가 방송사에서 얼마나 힘이 센데. 최대한 좋은 모습 보여 줘야지.”

아이돌 운동회를 담당하는 최 피디는 해당 방송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피디였다. 그의 한마디에 방송사 프로그램의 출연 여부가 결정될 만큼 절대 눈 밖에 나서는 안 되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아이돌 운동회에서 메달을 따면 단독 인터뷰와 음악 방송 추가 출연권을 얻을 수 있다.

티벡스 시절 저 추가 출연권 하나 얻겠다고 기를 쓰고 윤빈을 이겼다가 오만 가지 욕을 먹었던 걸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이제 내가 윤빈 형이랑 같은 팀으로 운동회에 참여한다는 거잖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