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150화 (150/346)

150화

“제발 전화 좀 받아 봐…….”

핸드폰을 붙잡고 우는 강도현의 곁으로 다가갔다. 강도현에게는 내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괜히 조심스러운 발걸음이었다. 그리고 핸드폰 화면에 떠 있는 건 내 이름이었다.

‘나한테 전화를 했던 때라면… 티벡스 시절인가?’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려던 찰나, 파노라마처럼 공간이 뒤바뀌면서 예능 프로그램 촬영 현장으로 이동했다. 티벡스와 포커스가 함께 있는 장면을 보고 확신했다. 나와 강도현의 사이가 완벽하게 갈라서게 된 바로 그날이구나.

절대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처음 출연해 보는 유명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보통 한 팀씩 나오거나 아예 4팀 이상이 나오기는 했지만, 두 팀만 등장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런데 티벡스와 포커스가 함께 캐스팅됐다는 소리에 설레서 잠을 설치기까지 했다. 그래도 아직은 우리 팀에 희망이 있구나 싶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다가온 촬영 날. 우리가 훨씬 먼저 데뷔했지만, 인지도나 인기 면에서 포커스와 비교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다들 분량을 따내기 위해 고군분투했었다. 부상을 당하면서까지 게임에 임했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VM과 방송국이 짜고 노골적으로 포커스를 띄워 주기 위한 방송이었다는 걸 뒤늦게 눈치챘다. VM 연습생 출신과 국민적 사랑을 받은 프로그램에 출연한 멤버가 있어도 망돌로 전락한 그룹과 비교하면 포커스가 더 돋보일 것이라고 생각한 거겠지. 그리고 실제로 방영된 방송분에서는 티벡스가 아무리 노력해도 포커스를 이기지 못하는 이미지로 소비되었다.

모두 대놓고 말은 안 했지만, 우리에게 겨우 질문 하나가 들어오면 포커스에게는 5, 6개가 들어오는 정도였다. 당시 오재성은 이럴 거면 우리는 왜 부른 거냐며 불평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오겠냐며 지운이 형이 달랬었지?

“승빈아, 오랜만이네-”

“…응.”

‘저땐 그래도 만나면 인사는 하던 사이였네.’

림보 게임부터 코끼리 코 돌기 등등 게임이란 게임은 다 했던 것 같다. 대체 무엇을 위한 게임인가 싶기는 했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 분량은 확보했다는 생각이었다.

“마지막으로 할 게임은, ‘노래방의 신!’입니다!”

“와아-”

“노래방 기계 점수가 가장 높게 나오는 팀에 준비된 상품과 단독 직캠의 기회를 드립니다!”

이 프로그램에서 마지막으로 하던 게임은 매번 똑같았기 때문에 미리 노래방 기계로 점수 잘 나오는 방법을 연습했었다. 지난 방송을 돌려 보면서 노래방 기계가 어디 제품인지까지 확인해서 그 제품으로 연습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해서라도 꼭 이겨서 분량을 얻고 싶었다. 하지만 결과는 포커스의 승리였다. 몇 번을 시도하고 아무리 해 봐도 95점 이상이 나오지 않았는데 강도현은 한 번에 100점이 나왔다.

모두 강도현의 점수에 감탄했고, 나는 결국 또 병풍이 됐다. 나중에 방송에서는 [래퍼에게 밀린 메인 보컬]이라는 자막이 크게 붙었었지 아마? 망연자실한 표정의 나를 보고 있자니 너무 허탈했다. 왜냐고? 어차피 애초에 이길 수 없는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날 티벡스는 분량도, 상품도 뭐 하나 얻지 못했다. 왜냐고? 막판 뒤집기로 이긴 팀이 진 팀의 분량을 싹 다 뺏어 가는 것이 게임의 마지막 상품인 걸 녹화 막바지에 알려 줬으니까. 얼마나 충격적이었으면 이긴 포커스도 당황한 듯했다. 녹화가 끝나자마자 바로 나를 찾아온 강도현은 미안함이 역력한 얼굴이었다.

“미안해. 너희 팀 진짜 열심히 했는데…….”

“네가 왜 미안해? 네가 잘해서 이긴 거니까 미안해할 필요 없어.”

“그치만…….”

“정말 괜찮아.”

“고마워, 그리고 오랜만에 얼굴 봐서 좋았어, 승빈아.”

화면은 다시 전환되었고, 복도에서 마주한 문어대가리와 내 모습이 보였다. 머리가 지끈 아파 왔다.

‘하필이면 이날을 전부 보여 주려나 보네…….’

“백~날 노력해 봐라, 어차피 안 될 놈은 죽어도 안 돼, 승빈아. 그게 딱 너 같은 애들이고.”

저 때는 문어대가리에 대한 두려움과 트라우마가 남아 있는 상태여서 아무 반격도 하지 못했다. 답답한 마음에 문어대가리에게 욕을 했지만 들릴 리가 없었다.

“그래도, 저 정말 열심히 할 겁니다.”

“열심히? 그런다고 네가 강도현이나 병대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하냐? 정신차려-”

“…….”

“아직은 너네가 친구인 거 같지? 좀만 지나 봐. 너, 도현이한테 말도 못 걸어. 얘가 지금이라도 아는 척해 주는 걸 감사히 여겨야지.”

“그래도…….”

“넌 항상 열심히 하더라? X나 쓸모없이. 오늘도 그래, 어차피 오늘 방송 우리 애들 띄워 주려고 너희 일부러 끼워 판 건데 너희 소속사는 좋다고 덥석 미끼를 물더라고?”

저 말을 듣고 속으로 얼마나 무너졌는지 모른다. VM 연습생 시절부터 티벡스 활동을 하고 있는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 없었다. 미련할 정도로 열심이었고, 그렇게 하면 언젠가 보상이 올 거라고 굳게 믿으며 버텨 왔다. 그런 나에게 문어대가리가 가볍게 뱉은 말은 너무 큰 무력감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저 말까지는 참을 만했지. 곧 나오겠네, 하이라이트가.’

더 이상 듣기 힘들어 대충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는 나에게 문어대가리가 비수를 꽂았다.

“도현이 참 잘하지? 애가 티 안 나게 능글맞게 잘하더라고?”

“…….”

“그치, 승빈아. 못하는 게 없어, 우리 도현이는?”

사실 더 이상 볼 필요도 없었다. 저 모든 장면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생생하게 박혀 있으니까. 결국 강도현도 다 알고 있었던 거다. 그러면서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는 듯 미안한 표정으로 와서 사과하기까지 하다니. 애써 덤덤한 척하려던 내가 얼마나 우스웠을까.

VM 엔터테인먼트와 문어대가리, 그리고 김병대에게는 그 무엇도 기대하지 않았다. 충분히 그럴 사람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강도현이 이렇게까지 사람을 엿 먹일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이날 이후로 강도현의 번호를 차단했다. 그리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문어대가리 말처럼 강도현과 연락을 끊으니 더 이상 강도현과 마주할 일이 없었다. 포커스는 오해나 디렉터와 함께 점점 승승장구하더니 명실상부 1군 그룹이 되었고, 티벡스는 더 떨어질 곳도 없이 망했으니까. 그러던 중에 대기실 인사 사건까지 있으면서 완전히 연을 끊었던 거다.

“근데 이게 뭐가 숨겨진 이야기라는 거야?”

어차피 과거에 있었던 일을 보여 주는 게 무슨 숨겨진 이야기라는 건지 의문이었다. 말했지 않나, 보지 않아도 그려질 만큼 생생한 장면들이었다고. 하지만 뒤이은 장면이 바로 그 질문에 답을 주었다.

“문어대가리랑 강도현?”

익숙한 VM 연습실에서 나타난 건 문어대가리와 강도현이었다. 아직 녹화를 했던 그날인지, 문어대가리의 착장이 똑같았다.

‘둘의 대화를 더 보여 준다고 달라질 게 있나?’

“녹화는 어땠어?”

“재밌게 잘하고 왔습니다. 티벡스분들이 되게 열심히 해서 자극도 많이 됐고요.”

“그래? 뭐 그런 애들한테 자극까지 느끼고 왔어- 하여간 너무 겸손해도 문제다, 도현아?”

문어대가리의 말에 멋쩍게 웃던 강도현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런데… 마지막에 분량 뺏기는 조금 당황스러웠어요.”

강도현의 말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미 다 알고 있었는데 대체 뭐가 당황스러웠다는 거지?

“아~ 뭐 어때? 어차피 너네 띄워 주려고 나온 애들인데?”

“…네?”

“너희가 걔네랑 왜 같이 나왔겠냐.”

“…….”

“눈치 못 챘구나. 노래방 기계도 다 짜고 친 거였어~ 네가 부르니까 바로 100점 나왔지?”

“그게 무슨…….”

금시초문이라는 강도현의 표정에서부터 뭔가 잘못됨을 느꼈다. 문어대가리는 의아해하다가 뭔가 알았는지 크게 웃으며 강도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왜 그런 표정이야? 아, 미리 말 안 해 줘서 당황한 거야? 어차피 티멕? 티벡스? 걔네는 너희 아니었으면 저런 프로그램 죽을 때까지 못 나와- 덕분에 예능 출연도 하고, 저쪽한테도 아쉬울 거 없지. 안 그래?”

강도현은 몹시 혼란스러운 듯 등 뒤로 숨긴 손을 가만두지 못했다. 시선도 불규칙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문승빈 표정이 아주 볼만했는데. 제까짓 게 용써 봤자지, 뭐.”

온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결국 이 모든 오해와 앙금은 문어대가리의 계략에 놀아난 것에서부터 시작한 것이었다. 그날 이후 얼마나 오랜 시간 강도현을 오해하고 미워했는데, 고작 문어대가리의 이간질 때문이었다는 게 허탈했다.

녹화장에서 자신이 했던 말과 행동이 떠올랐는지 강도현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꽉 쥔 주먹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너 혹시 우냐?”

“아, 아닙니다.”

“도현아, 연예계는 네 생각보다 더 거친 곳이야. 이런 사사로운 감정 가지고 하나하나 신경 쓰고 그러면 오래 못 가-”

저놈의 ‘사사로운 감정’, 나에게 말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강도현에게 책임 전가를 하고 있었다. 문어대가리가 떠나고 강도현은 홀로 연습실 한구석에 주저앉았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 듯 멍하니 허공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를 들썩이며 울기 시작했다. 나 역시 허무함에 강도현의 맞은편에 주저앉았다.

“난 그동안 누구를 원망하고 지냈던 걸까…….”

강도현에게 들릴 일이 없다는 걸 알기에 혼잣말을 쏟아 냈다. 대상을 잃은 분노에 허비했던 시간들이 떠오르며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분명 오해했을 텐데…….”

잔뜩 막힌 목소리로 핸드폰을 쥔 강도현이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하지만 받을 리가 없다. 저 때 나는 강도현의 번호를 아예 스팸 처리했으니까. 우리 사이에 더는 들을 말도, 할 말도 없다고 생각했다.

대답 없는 핸드폰을 놓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서 눈물 흘리는 강도현을 보고 있자니 문어대가리에 대한 분노가 더 커졌다. 겨우 열여덟인 애들을 가지고 제 입맛대로 구워삶는 데 양심의 가책도 없었을까?

“제발 전화 좀 받아 봐…….”

다시 처음 그 장면으로 돌아왔다. 상태창은 등장 후 처음으로 친절했고, 그래서 더 잔인했다. 한 치의 오해도 남기지 않기 위해 그 모든 과정을 다시 보여 준 거였다. 정말 말 그대로 숨겨진 이야기였다. 강도현도 나도 미처 다 몰랐던.

이제 와서야 스물둘의 문승빈은 더는 열여덟의 강도현을 미워하지 않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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