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오랜만이다, 승빈아?”
“…안녕하세요.”
“1위 축하한다? 옛 정을 생각해서 연락이라도 올 줄 알았는데 아무 소식이 없었네?”
‘옛 정? 연락을 바라다니, 뻔뻔한 건 하나도 안 변했네.’
“제가 연락드렸으면 더 속 아프셨을 거 같은데요.”
“뭐?”
“제 연락 기다리고 계신 줄은 꿈에도 몰랐죠-”
문어대가리의 얼굴을 보니 분명 내 말을 들은 거 같은데 금세 태세를 전환하는 모습에 긴가민가하는 듯했다. 연습실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문어대가리가 다시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은 옛말인 줄 알았는데-”
“그러게요~ VM 있을 땐 상상도 못 한 일들이었잖아요.”
표정이 묘하게 굳은 문어대가리가 어이없다는 듯 답했다.
“시설은 우리랑 별반 다를 게 없는데 무슨 소리야?”
‘시설 얘기로 이해한 거야? 멍청한 것도 정도가 있지…….’
“시설은 여기가 더 안 좋은 거 같은데요. 이렇게 아무나 들어오는 거 보면.”
“뭐라고?”
“농담입니다~”
물론 강도현 보러 오겠다고 따로 허락을 받은 거긴 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연습실에 외부인이 아무런 제지 없이 그냥 들어올 수 있다니. 매니저 형한테 따로 말을 해 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신인 나온다고 기사 봤습니다.”
“어? 아~ 맞아. 엄청 공들여서 만들었어. 애매한 애들은 다 떨어뜨리고 살아남은 애들로 구성해서 기대가 크지?”
나를 겨냥하려는 듯 일부러 ‘애매한 애들’을 강조하는 게 다 느껴졌다.
“도현이도 빠져서 고민 많으시겠어요.”
“병대도 아예 같이 데뷔를 했으면 덜 머리 아팠을 텐데, 애매한 애가 데뷔할 바엔.”
“저희 팀에 애매한 멤버가 있다고 생각하시나 봐요?”
“아무래도?”
빙긋 웃는 얼굴에 주먹이라도 꽂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웃어넘겼다.
“도현이가 좀 애매하긴 하죠.”
“뭐?”
“제가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걱정 마세요.”
“누가 누굴 도와줘? 돌았냐?”
건들면 건드는 대로 즉각적인 반응을 보여 주는 문어대가리가 이제는 진짜 우스웠다. 무슨 애니메이션 캐릭터도 아니고 저렇게 표정이 다이나믹하다니. 화병 걸리기 딱인 성격이었다.
“아무튼 포커스 데뷔하면 마주치는 일 많을 텐데 잘 지켜볼게요.”
“와, 너 많이 뻔뻔해졌다? 우리 애들 잘 봐주겠다는 식으로 말을 하네?”
‘사람이 꼬여도 저렇게 꼬일 수가 있나?’
“같이 연습한 동생 있는 그룹이니까 그렇죠-”
“그래, 데뷔 초나 선배 노릇할 수 있지. 시간 지나 봐, 누가 남을지.”
포커스에 대한 자신감이 엄청났다. 일종의 자의식 과잉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병대가 팀의 에이스라고 기사 나온 거 봤어요.”
“우리 병대야 늘 기복 없이 잘했고, 안 그래도 투마월 끝나고 애가 독기가 더 생겼나 보더라고? 연습도 더 열심히 하고 실력도 이전이랑 비교할 수 없을 정도야.”
“애매한 애들 사이에서 떨어진 애가 에이스인 그룹이면…….”
명백한 조롱이 담긴 말에 바로 의도를 이해했는지 문어대가리 얼굴이 시뻘게졌다. 한 대 칠 기세로 다가오는데 뒷걸음치지는 않았다. 여기서 뺨 한 대 정도 맞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연습실에 CCTV가 있는 거 정도는 알고 있겠지만.
“지금 뭐라고 했……!”
“실장님?”
타이밍도 이런 타이밍이 없다. 문어대가리가 주머니에 넣은 손을 빼 들던 찰나 강도현이 연습실에 돌아왔다. 뒷모습만 봐도 저 잔뜩 벗겨진 머리는 못 알아볼 수 없지.
“뭐야? 아, 도현이구나.”
씩씩거리는 모습에 강도현도 대충 상황 파악을 한 눈치였다. 강도현이 내 쪽으로 무슨 일이냐고 눈짓했고, 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하하, 여기는 어떻게 찾아오셨어요? 벌써 돌아가신 줄 알았는데.”
“너 연습하는 거나 좀 보려고 했지.”
“그럼 저한테 연락을 하시지! 저 보러 오신 걸 텐데 뭐 하러 여기까지 오셨어요,”
“아유, 대한민국에서 제일 바쁜 그룹일 텐데 스케줄이라도 하러 간 줄 알았지.”
뻔뻔하게 말을 바꾸는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몇 년 뒤에 남아 있을 그룹은 포커스라고 하던 입으로 저런 말을 하는데 안 웃기고 배기겠냐고.
“너도 고생이 많아, 찝찝한 애랑 같은 그룹 하기 힘들 텐데. 빨리 겸업 기간 와서 합류해야지. 그치?”
“하하, 역시 우리 실장님 농담도 잘하신다니까.”
“농담?”
“아, 실장님. 배 안 고프세요?”
“배고파? 그래, 오랜만에 봤는데 점심이라도 사 줘야겠네!”
“우와, 너무 좋아요!”
강도현은 아예 문어대가리의 팔을 붙잡고 끌고 가고 있었다. 문어대가리는 순순히 끌려가는 듯하면서도 또 큰 소리로 말했다.
“하긴, 너희 데뷔 조 결정 났던 날 이후로 처음이지? 누구 덕분에 파토 났지만?”
‘저 X끼가 끝까지……!’
“하하, 벌써 그렇게 됐나요?”
“내가 진짜 고심하고 고심해서 만든 조합이었는데…….”
“아유, 맞죠. 실장님 안목을 누가 따라와요? 하하…….”
“그런데 저놈이 주제도 모르고…….”
“저, 저 배가 너무 고파요!”
“왜 이렇게 재촉해? 그래, 다음에 보자, 승빈아?”
문어대가리를 끌고 나가는 강도현은 보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연습생 시절에도 똑같았다. 문어대가리가 나를 까 내리고, 가스라이팅을 하던 때에도 강도현은 은근히 문어대가리 편을 들면서 상황을 무마하려고 했다. 연습생이 실장에게 맞서는 것만큼 무모한 짓도 없지만, 서운한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 봤자 쟤도 열여덟인데 뭐 어쩌겠냐… 연습이나 해야지.”
씁쓸한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연습에 매진하려 거울을 보는데 머리 위 상태창이 반짝이고 있었다.
[!타임 어택: 30만 명의 칭찬(NEW)!]
제한 시간) 120시간
달성 인원) 0 / 300,000
▶성공 시: 숨겨진 이야기 +1
▶실패 시: 외모 스텟 감소 -1
“뭐? 외모를 건드려?”
이건 진짜 선 넘었지.
* * *
미션창을 보는데 기가 찼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무리 아이돌의 덕목이 다양해졌다고 하지만 외모는 기본 중 기본이었고, 시대를 불문하는 필수 요소였다. 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가장 중요하다는 건 불변의 법칙이라고.
그리고 이제 공백기가 막 시작됐는데 실패라도 해서 외모 스텟이 깎인다? 바로 신인이 관리도 안 하고 빠졌다고 욕먹을 게 분명했다. 게다가 음악 방송 활동만 끝난 것이지 당장 다음 주가 ‘시크릿 싱어’ 녹화인데 외모 스텟이 떨어진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사실 ‘숨겨진 이야기’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미션창이 뜬 거면 아마 문어대가리와 관련된 숨겨진 이야기일 텐데, 저 인간에 대해서는 더 이상 궁금한 것도 알고 싶은 것도 없다.
‘그래, 이건 오직 외모 스텟을 지키기 위한 미션 수행이다.’
그런데 외모 스텟 감소에 집중해서 지금 발견했는데 30만 명? 전에 타임 어택 미션이 떴을 때는 1만 명의 칭찬이었는데, 인플레이션도 이런 인플레이션이 없었다. 아무리 크리드의 인기가 커졌다고 해도 기본으로 요구하는 숫자가 30만이라니… 그것도 5일 만에? 얘가 아주 기본값을 이제 10만 단위로 잡은 게 분명했다.
그리고 자세히 보니 이번 미션창은 이전 타임 어택 미션창과 퀘스트창을 합쳐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기간이 아닌 시간으로 제한이 있었지만 실패 시의 페널티가 존재하는 혼종이었다. 신인상 퀘스트가 아직 떠 있는 상태임에도 이게 뜬 걸 봐서는 메인 퀘스트와는 또 별개로 취급되는 것 같았다.
고민을 마치고 일단 지난번처럼 공식 계정에 사진을 올리기로 했다. 연습실 거울에 대고 찍은 거울샷 하나와 셀카 하나. 같은 자리에서 몇십 장을 찍고 나름 고심해서 고른 조합이었다.
[활동은 끝났지만 오늘도 연습실 출근완료!
실시간 승빈입니다.
클로버들 벌써 보고 싶어요ㅠㅠ
#승빈포토 #크리드 #문승빈]
-아니 크리드 휴가 아니었냐고ㅠㅠㅠㅠㅠ
-완전 연습실요정이네 울애기ㅠㅠㅠ
-승빈이 셀카실력 무슨 일이야....
-승빈이가 드디어 셀카를ㅠㅠㅠㅠ
-이제 셀고 아니네 울 승빈이ㅋㅋㅋㅋ
-그래도 실물에 비하면 아직 셀고임ㅠㅠ
-셀고여도 ㄱㅊ 거울샷장인임ㅇㅇ
-거울샷 남친짤 가능??
-OPPA- ENG PLZ
순식간에 올라가는 좋아요와 댓글 수, 올린 지 5분도 채 안 됐는데 이미 하트 수가 20만을 넘어가고 있었다. 게다가 중간중간 보이는 셀카에 대한 칭찬까지 완벽했다. 내가 그동안 재봉이한테 얼마나 혼나면서 배웠는지 클로버들은 모르겠지.
‘이거 완전 껌인데?’
평소에는 좋아요 수를 신경 써서 볼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렇게 빠르게 오르다니. 새삼 신기했다. 그리고 내가 미처 다 신기해하기도 전에 하트 수가 30만을 넘었다. 하트 수가 30만이라는 건 최소 30만 명 이상이 이걸 봤다는 거고, 실제로는 더 많은 사람이 봤을 테니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상태창을 확인했다.
[!타임 어택: 30만 명의 칭찬(NEW)!]
제한 시간) 120시간
달성 인원) 0 / 300,000
▶성공 시: 숨겨진 이야기 +1
▶실패 시: 외모 스텟 감소 –1
“뭐야, 왜 그대로인데?”
“뭐가 그대론데?”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온 소리에 대답한 건 놀랍게도 선우 형이었다.
“언제 왔어?”
“지금 막 들어왔지. 너 사진 올렸더라?”
“…어.”
“이제 보니까 우리 몰래 연습실 셀카 찍으려고 다들 내보낸 거구나? 오구 우리 승빈이, 형들 앞에서는 부끄러워쪄요?”
“아, 뭐라는 거야.”
하, 아주 제대로 잘못 걸렸다.
“밥도 포기하고 셀카를 찍는 그 열정, 존경한다.”
“아니라고!”
“형은 또 우리 승빈이가 열심히 연습하려고 그러는 줄 알았더니-”
“그만해라?”
“그럼그럼. 더 놀렸다가 우리 승빈이 부끄러워서 셀카 안 찍으면 어떡해. 나 클로버들한테 혼나기 싫어.”
선우 형은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주위를 맴돌았다. 그만둔다는 말과는 달리 내가 올린 사진을 계속 보여 주더니 결국에는 내 포즈를 따라하는 모습에 등짝을 한 대 맞고서야 겨우 장난을 멈추었다.
“와, 문승빈 연습 안 해서 힘 남아도는 거 봐.”
아니, 멈추는 척만 했다.
다른 멤버들이 하나둘 연습실에 돌아오고 나서야 형은 조용해졌다. 다들 각자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지만, 나만 제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사진을 올리고 클로버들의 칭찬이 쏟아졌는데도 미션 클리어가 안 떴다는 건 이 방법으로는 안 된다는 소리였다.
[!타임 어택: 30만 명의 칭찬(NEW)!]
제한 시간) 120시간
달성 인원) 0 /300,000
▶성공 시: 숨겨진 이야기 +1
▶실패 시: 외모 스텟 감소 –1
다시 미션창을 자세히 살펴보니 이전과 다른 점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칭찬 뒤에 붙어 있는 ‘NEW’라는 단어. 저 단어와 지금 상황을 보아하니 예전과 같은 방법으로 이미 받아 본 적 있는 칭찬은 반영이 안 되는 듯했다.
내가 해 본 적 없는 것으로 새롭게 칭찬을 받아야 한다? 쉽게 보였던 미션이 순식간에 너무 어렵게 다가왔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마침 며칠 뒤에 ‘시크릿 싱어’ 선곡과 관련하여 회사 내부 회의가 끝나고 콘텐츠 관련 기획 회의가 있을 예정인데 그때 한번 제안해 봐야겠다.